박영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왕룽일가>는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새로운 격변의 시기를 보내던 1980년대 말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버무린 TV 연속극이다. 특히 뽀글뽀글 촌스러운 파마머리에 새까만 선글라스를 걸치고 능청스럽고도 기름진 목소리로 “누님 예술 한번 하시죠”를 무기 삼아 변두리 카바레를 주름잡던 삼류 제비 ‘쿠웨이트 박’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르는 인물이다.
1970년대는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수많은 속칭 ‘노가다’들이 열사의 건설 현장으로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떠나던 시절이었다. ‘쿠웨이트 박’은 가족을 위해 머나먼 타국으로 돈 벌러 떠났었던 우리들의 아버지였고 삼촌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주변에는 고단한 일상이지만 소박한 꿈을 꾸며 살아냈던 수많은 쿠웨이트 박이 있었고 그의 “예술 한번 하시죠”라는 설레는(?) 꼬임에 모르는 척 장바구니를 내던지던 수많은 ‘누님’들이 있었다. 쿠웨이트 박과 누님들에게 ‘예술’은 어설픈 카바레 댄스였지만 그래도 고된 일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잠시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미워해야만 하는 캐릭터 ‘쿠웨이트 박’이 아직도 뭔가 짠한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 사는 맛, 멋
문화의 정의는 수백 가지가 있다.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라고 되어있는 국어사전의 정의는 복잡하고도 어렵다. 나는 한국의 문화인류학자 조흥윤의 문화의 정의를 좋아한다. 조흥윤은 문화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맛과 멋”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맛과 멋을 추구하며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라고 일갈하던 유행가 가사도 있었지만, 인류의 진화를 연구하는 고인류학에서 사람은 “두 발로 걷는 포유동물”이다. 오직 우리 사람만이 두 발로 걷는다. 두 발로 걷는 게 사람이고,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가 사람이다. 그래서 언제부터 두 발로 걷게 되었을까? 누가 처음 두 발로 걷기 시작했을까? 이 질문은 고인류학 궁극의 질문이며 숙제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적어도 500만 년 전에는 두 발로 걷는 존재, 즉 인류가 등장한 것 같다. 까마득한 옛날 같지만, 지구의 역사가 46억 년인 점을 상기해 보면 또 그리 오래된 옛날도 아니다.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으로 계산했을 때 11시 59분 몇십 초 정도에 사람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약 500만 년 전 시작된 인류의 어설픈 두 발 걷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여 살아남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이다. 익숙했던 환경의 변화로 맞이하게 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우리 인류는 두 발로 걷는다는 획기적인 체질적 진화를 통해 극복하였다. 동물은 움직여야만 살 수 있다. 네 다리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두 발로 걷게 된 인류에게는 이동의 임무 수행을 벗어난 두 손이 생겼다. 자유로워진 두 손을 갖게 된 인류는 비로소 국어사전의 ‘문화’ 정의에 부합되는 다양한 창조물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자유로워진 두 손을 갖게 된 인류가 처음 만든 도구는 돌을 깨서 만든 석기다. 인류 최초의 도구 석기는 약 300만 년 전에 등장한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한 때부터 무려 200만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서야 돌과 돌을 서로 부딪쳐 깬 투박하면서도 단순한 석기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류 최초의 석기는 돌을 몇 번만 두드려 깨면 만들 수 있는 굴러다니는 돌조각과 다름없는 아주 단순한 도구였다. 하지만 제법 사람과 비슷한 재주를 학습한 영리한 침팬지들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엄청난 고난도의 테크닉이다. 석기를 만들 수 있게 된 인류는 두꺼운 짐승 가죽을 찢고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인류는 계속해서 진화의 길을 걸을 수가 있었다.
아름다움을 향한 불필요한 노력
처음 석기를 만들 수 있게 된 때부터 또 150만 년 정도의 긴 시간이 흘러 인류는 마침내 주먹도끼라고 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석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주먹도끼는 최종 완성품의 이미지가 마치 설계도의 형태로 머릿속에 완벽하게 입력이 되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다. 좌우대칭의 주먹도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소위 추상적 사고, 즉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의 힘, 주먹도끼’라는 말이 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주먹도끼를 만들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니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지만 세상의 모든 문명은 주먹도끼로 수렴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과학의 뿌리도, 예술의 시작도 거슬러 올라가면 주먹도끼와 만나게 된다. 곰곰이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는 힘, 그 힘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먹도끼는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우리가 원시인이라고 폄하하는 구석기시대 인류가 만들어낸 주먹도끼지만, 무려 150만 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에게도 주먹도끼 만들기는 간단치 않다. 주먹도끼는 단순한 석기에 비해 매우 복잡한 공정을 거쳐 계획된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돌을 떼어내야만 만들 수 있다. 주먹도끼는 현대인의 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인다. 짐승의 가죽을 찢어 고기를 얻고, 뼈를 부숴 골수를 파먹기 위해서라면 굳이 이렇게 공력을 들여 주먹도끼를 만들 필요는 없다. 투박하게 떼어낸 돌조각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인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들여 주먹도끼를 만들었다.
왜 굳이 힘들여 좌우대칭의 아름다운 모양의 주먹도끼를 만들었을까? 이 질문에 나는 “그래서 사람이 되었다”라고 대답한다. 자기가 쓰는 도구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어쩌면 불필요한 노력,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이유다. 박물관에 전시된 주먹도끼를 자세히 들여다보시기 바란다. 그저 짱돌 같아 보이는 주먹도끼에서 아름다운 ‘예술의 싹’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많은 시간이 흐른 약 4만 년 전 후기구석기시대, 주먹도끼에서 발아된 예술의 싹은 그야말로 본격적인 꽃을 피우게 된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빙하기’라는 기후변화가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 춥고 배고픈 혹독한 시기가 닥치자 사람들은 함께 모여 앉아 동굴벽화를 그리고 사자인간을 깎았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고난의 그때를 먹고 사는 것과 가장 관계없어 보이는 예술 활동을 하며 살아냈다. 예술을 한다는 것 바로 우리가 사람일 수 있는 이유다. 그래서 삶은 예술이다. 이제 우리는 두 발로 걷고, 예술을 하는 포유동물이 되었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역병의 시대, 하지만 우리에게는 예술이 있다. 오래된 미래가 그랬던 것처럼 살아남기 위해서는 ‘예술’을 해야 한다.
우리 오늘 다 같이 ‘예술’ 한번 합시다.
이한용
이한용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구석기고고학을 전공하였다. 1990년부터 전곡리유적 발굴에 참여하였다. 2011년 전곡선사박물관 개관시 학예팀장을 맡았고, 2015년부터 전곡선사박물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mr15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