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핀란드, 러시아, 에스토니아, 스웨덴까지 발트해를 가로질러 바다를 항해하며 공연하는 예술단체가 있다. 단체의 이름은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기후를 위한 행동’(Acting for Climate)이다. 이름에서 눈치를 챘을 것이다. 이들의 항해가 그저 독특하고 낭만적인 기획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기후를 위한 행동은 컨템포러리 서커스 단체이다. 덴마크 출신의 시인이자 수학자이며, 가구 디자이너인 피트 헤인(Piet Hein)이 “예술은 해결되기 전에 명확하게 공식화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라고 예술을 정의한 것에 영감을 받아 2014년 노르웨이에서 시작되었다. 이 단체는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행동하도록 영감을 주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있다. 처음 시작한 핵심 구성원들은 모두 액티비스트로서의 활동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예술가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들의 예술을 가장 유용하게 쓸 방법으로 예술단체를 만들었다. 예술가로서 행동과 즐거움, 변화를 만들어 갈 기회와 책임을 가지고 창작하며 관객과 만나고 있다.
  • 오슬로 워크숍(2018)
기후위기 시대, 다른 관점의 예술 방법론

기후를 위한 행동은 노르웨이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다른 유럽 지역과 북미 지역에서 예술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플랫폼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기후위기를 고려하여 비행기 이동을 금지하는 환경 정책을 실천하고 있으며, 활동이 많아지면서 유럽과 캐나다 몬트리올, 미국에 지사를 만들었다. 각 지역의 단체는 모두 같은 이름 아래 공동 가치를 추구하면서, 개별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7명의 핵심 구성원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예술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프로젝트별로 과학자, 활동가들이 참여해 점점 규모 있는 네트워크로 확장해가고 있다.
2014년, 기후변화에 관한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막막했던 구성원들이 처음 시작한 것은 워크숍이었다. 워크숍을 시작하면서 단체를 구성했고, 해마다 워크숍을 통해 함께 할 좋은 사람들을 찾고 단체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또한 워크숍을 통해 기후변화 작품 창작 방법론을 만들어나가고 사람들과 연결하고 공유와 교류를 통해 더 많은 기후 활동, 예술 활동이 일어나도록 한다. 워크숍의 근간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있다. 기후변화와 점점 잃어버리는 생명 다양성을 살피고, 우리 주변의 살아있는 세계에 대한 감각을 여는 훈련을 하며, 우리가 평생 가지고 있던 것과는 다른 관점을 예술 방법론으로 찾고 질문한다.
작년부터는 좀 더 심도 깊은 워크숍을 위해 ‘그린하우스 네트워크’(The Greenhouse Network)를 시작했다. 2021년~2022년에 걸쳐 일 년간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며, 공개모집으로 선정한 단체 구성원 5명과 외부 예술가 10명이 참여하고 있다. 신체훈련과 온라인 세션이 교차로 진행되는 이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은 기후변화와 환경주의 또는 자연을 주제로 작업하고 실천하는 ‘기후 예술가’(Climate Artist)라고 불린다. 기후심리학, 인류 중심적 세계관, 규범, 비평, 억압이론, 사회 양극화, 유토피아, 액티비즘, 환경윤리 등 여러 환경 이슈를 둘러싼 광범위한 주제와 서커스, 가면극, 연극, 무용, 장소 특정형 공연 등의 예술 방법론 탐구를 통해 예술과 환경 주제의 통합 방법론을 찾아 나가고 있다. 2020년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임에도 공개모집에 전 세계 많은 예술가가 관심을 보였다. 팬데믹과 항공 이동 금지 정책으로 근거리 지역의 예술가를 우선 선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장기적으로 그린하우스 네트워크가 워크숍을 넘어 기후변화 대응 네트워크로 확장되기를 단체는 바라고 있다.

  • <바크>(BARK, 2021)
예술과 기후위기, 관객이 분리되지 않도록

기후를 위한 행동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관객, 지역 커뮤니티와의 관계 맺기이다. 모든 공연에는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요소가 포함되어있다. 작품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 행동에 대한 예술가의 책임을 관객과 공유하며, 이 책임에 동참하도록 질문을 던진다. 때때로 이러한 질문은 공동의 의식, 함께 하기 방식으로 보여진다. 2021년 초연한 작품 <바크>(BARK)는 숲에서 자연과 인간의 재연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숲, 흙, 나무가 주인공으로, 예술가와 기후과학자 등이 공동 창작했다. 관객은 공연자들과 함께 나무에 오르도록 초대받는다. 작품 안에서 자연과의 연결을 놀이로 풀어냄으로써 공연자와 관객은 분리되지 않고 보는 것을 넘어 공연을 감각 할 수 있다.

사회적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는 시골의 청소년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사회적 소수자를 찾아가 함께 작업한다. 또한 공연 외의 방식으로 관객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단체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활동가, 과학자 등과 협력하며 기후 심리학, 물 순환 등 기후와 과학, 예술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생성해 내고 있는데, 모든 공연에 강의나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을 함께 배치한다. 공연 관람 후 정서적으로 교감이 이루어진 관객은 공연 후 강의 또는 워크숍에 참여함으로써 관찰자에서 적극적인 참여자 또는 책임을 공유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작품이 컨템포러리 서커스를 기초로 한다는 것 또한 관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관객은 서커스공연에서 즐거움에 대한 기대를 넘어 뜻밖의 환경 이슈를 만나게 된다. 또한 서커스는 어떤 예술 장르보다 협업의 가치에 강하게 기초하고 있다. 서로를 주의 깊고 안전하게 돌봐야 하는 예민한 감각은 기후변화와 환경주의에서도 매우 중요하며, 이러한 가치와 감각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지구와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예술적 실천
기후위기 대응과 실천을 만들어나가는 단체로서 당연히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단체는 항공 이동을 금지하는 환경 정책을 따르고 있다. 2019년 작품 <물속으로>(Into the Water)에서 시도했던 배 이동 공연의 성공 이후 올해는 발트해를 항해하며 각 항구에서 신작 <트랜스 포트/리플>(Trans Port/Ripples)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투어 기간 동안 배 이외에 어떤 다른 교통수단도 사용하지 않는다. 숲에서 공연하는 <바크>는 모든 구성원이 최소한의 짐을 꾸려서 자전거로 이동하며 유럽투어를 진행한다. 물론, 대도시 간의 자전거 이동은 한계가 있어 중간중간 기차를 타기도 한다. 공연은 대부분 야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대 조명 또는 전기가 필요하지 않아 무대에서 생성하는 탄소 발자국이 많지 않지만, 함께 요리하고 가능한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창작과 발표뿐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실천한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예술가와 함께 존재하는 방식의 작업 윤리를 실천하고 있다. 스스로 작업 방식을 질문하고, 동등함과 경청을 중요시하며, 모든 공연에 서커스 규범을 새롭게 만들고 공유해 나간다. 무대 위에서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대표성을 유지하기 위해 창작, 거주(레지던시), 작업의 모든 기간 중 평등성이 존중되도록 보장한다. 주의 깊게 경청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대화하기 위한 토론과 상호 학습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근무환경과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물속으로>(Into the Water, 2019)
    ⓒHawila project & Acting for Climate
예술에 대한 굳건한 믿음
단체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초청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케냐와의 협력 초청을 받았는데, 비행기를 타지 않고 케냐에 닿을 방법을 찾는 중이다. 종종 국제적으로 많은 투어를 하는 것이 성공한 예술가(단체)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단체 핵심 구성원이자 서커스 예술가인 엠마 랑모엔(Emma S. Langmoen)은 이러한 기준이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지역에서 순회 공연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찾아가거나 지역의 해결책을 함께 찾고 지속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예술가들을 만날 때 큰 감동을 받는다. 그들은 진정 지역과 연결되어 있으며, 큰 도시에서 만나는 것과는 또 다른 관객을 만난다. 무엇을 성공으로 보느냐는 결국 순위에 관한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최우선 순위에 놓는다면, 예술가로서 최고 수준의 성공은 전체 분야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기후를 위한 행동은 예술의 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여주었다. 엠마는 기후과학자 카렌 오브라이언(Karen O’Brien)의 저서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You matter more than you think)를 소개했다. 양자 물리학과 사회 변화 이론을 결합하는 방법에 관한 저술이다. 힘없는 사람들이 산을 옮길 수도 있고, 사회를 바꿀 수도 있고, 기후위기를 막을 수도 있다. 기후변화는 인류와 지구를 파괴하는 문화의 위기이며 예술가는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내는 힘이 있고, 새로운 길을 만들고 그곳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람들에게 예술을 경험하게 함으로 대안적인 길을 알 수 있게 한다. 예술이 잠시나마 다른 사람의 삶과 다른 가치를 경험하게 하고, 관점을 변화시켜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강한 믿음이다. 대화의 마지막에 엠마는 다시 한번 예술의 역할과 힘에 대해 강조한다.
“예술이 지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과학자가 과학적 사실을 기초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가지고 대중에게 도달하듯이, 예술가 또한 명확한 목소리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가질 특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변화에 사용할 수 있다.”
* 이 글은 ‘기후를 위한 행동’ 이사이자 서커스 예술가인 엠마 랑모엔(Emma S. Langmoen)과의 인터뷰와 웹사이트(www.actingforclimate.com) 내용을 기초로 작성하였다.
박지선
박지선
연극, 무용, 다원,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축제, 레지던시 기획, 공연예술작품 제작 및 국제 네트워크(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 경계, 기술과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예술가와 새로운 탐험을 하며 예술의 동시대성을 탐구하고 있다.
jisunarts@yahoo.com
사진제공_필자
사진출처_기후를 위한 행동 www.actingforclim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