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지방분권 흐름이 거센 와중에, 지역이 주체가 되는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지역화의 흐름과 더불어 지역이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를 짚어보는 ‘지역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 포럼’이 7월부터 11월까지 광역과 기초단위에서 매달 릴레이 방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포럼은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지방 이양 논의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17개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기초문화예술교육 거점이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마련하였다. 이 포럼의 주요 논의내용을 바탕으로 지방분권 시대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에 관한 주요 이슈를 짚어본다.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그리는 손>(Drawing Hands, 1948)은 두 개의 손이 서로를 그리고 있다. 아래 손을 그리고 있는 위의 손, 그리고 위의 손을 그리고 있는 아래 손을 보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질문이 떠오른다.
손들기 : 지속을 위한, 틈을 메우는 합의들
성북문화재단은 지난 2년 동안(2020~2021) 기초 단위 문화예술교육 거점 구축 지원사업을 추진해 왔고 그 과정에 대한 공유의 시간을 갖기 위해 11월 30일 성북문화예술 포럼을 개최하였다. 포럼의 제목은 ‘나도 거점이다, 동네에서 손들기’이다. 선언처럼 들린다. 포럼으로 치기엔 제목부터 수상하다. 제목 못지않게 형식에 있어서도 기존의 포럼과는 사뭇 다르다. 포럼의 일반적 형식은 대부분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일렬로 테이블을 앞에 앉아서 발제문을 읽고 난 후 토론에 들어간다. 토론이라고는 하지만 발제문에 대한 개별의 의견을 개진하는 데 그친다. 성북문화예술 포럼은 한 편의 극처럼 진행되었다. 깜깜한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켜지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중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세 가지 이야기를 전한다.
김경옥 민들레 대표가 맨 처음 손을 든다. 손을 들자 거점인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켜진다.
“코로나로 우왕좌왕한 2020년은 사업이 시작된 해다. 멀리 이동하거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고, 지근거리에서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그래서 동네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삶의 전반적 고민을 새롭게 도전해보는 계기였다. 동네에서 활동하는 엄마들, 재택근무자, 문화예술교육가가 함께 리듬을 맞추고 같이 해보는 과정을 경험하며 팬데믹에서도 즐거울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선을 만드는 일이었고 풍성한 이야기의 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교훈이자 지침이자 활동의 원리인 3가지를 합의했다. 첫째, 함께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연결되고 점점 더 늘려간다. 둘째, 우리의 속도대로 한다. 기초 단위 성북에 맞는 것, 그리고 잘해 낼 수 있는 것을 역량껏 한다. 셋째, 필요한 일을 한다. 세상에 필요한 일과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합의한 것을 집중적으로 한다.”
그다음 공론장으로서 거점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지역연계 예술활동가인 지강숙 극작가가 손을 들었다.
“실천가들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서는 시민과의 합의가 중요하다. 그래서 합의를 위한 자료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자료를 만들면서 문화예술교육에서 자주 쓰이는 언어를 살펴보니 ’올바른 인성 함양’ ‘청소년 문제의 예방’ ‘재능과 역량의 향상’ 같은 말을 꽤 자주 쓰더라. 언어를 고치는 문제가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시민들과의 합의를 위한 언어 개발 공론장 랩을 진행하며 우리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전문가적 식견으로 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외부 평가 못지않게 중요한 게 스스로 평가하는 내부 평가다. 내 작업을 돌아보고 점검해보는 거다. 예술교육 실천가들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깊은 부분이다. 교육가의 정체성과 예술가의 정체성 모두를 가지고 있는데 두 개의 정체성이 서로 이해하고 교류한다는 것은 세계의 충돌처럼 어려운 일이다. 괴리를 줄일 방법은 또 다른 정체성을 갖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이다.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은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를 발견하고 질문을 하고 대안을 찾는 과정이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고 나서 자유롭고 좀 더 편안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연구자로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선에서 활동하다 보니 단 한 사람이라도 내 활동을 지켜봐 주고 격려해주는 동료가 있으면 자존감과 자신감이 고취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어를 개발하니 그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예술교육의 가치 증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혐오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국·영·수가 아니라 예술이다. 예술교육의 경험은 슬픔과 기쁨, 즐거움이다. 실용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실용적이지 않은 것을 어떻게 수치로 담아낼 수 있을까? 예술교육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위해 예술교육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술가, 예술교육 실천가, 연구자로서 스스로 질문을 가진 연구거점이 되는 것이 시급하다.”
에듀레터 [수다(SooDa)]를 발행하는 박한별 자문자답 대표는 계면활성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참여자와 실천가 사이의 틈을 메우기보다 틈 사이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실천가를 만나서 문화예술교육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부터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했다. 직접 묻고 답을 들으니 이래서 필요하겠구나 하는,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더라. 더이상 사업 이름을 헷갈리지 않게 되었다. 정보 공유가 차가운 대리석 같은 느낌이었는데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정보 전달이란 게 뉴스 전달이 아니라 관계를 기반으로 이해하는 마음이 생겨야 공유가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보다 ‘레터’가 중요한 것 같다. 용기 없는 사람들, 마땅히 물어봐야 할 것을 어디에 물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주고 싶다. 민원성 항의도 전달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예술교육철학 연구가인 김재현 미술작가, 권정원·승희조 문화예술교육 실천가, 박현진 성북문화재단 지역문화팀장, 서경대학교 예술대학 한정섭 교수도 손을 들었다.
손으로 말하다 :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안전한 공간
“인생의 예술이란 당신의 손을 보여주는 것이다.” – 영국 작가 에드워드 버롤 루카스
2009년 대림미술관은 수집가 헨리 불의 컬렉션전 《Speaking with Hands》(손으로 말하다)를 선보였다. 점자를 읽는 손, 경건함과 권위가 느껴지는 목사의 손, 고목과 일체감이 느껴지는 어느 노인의 손, 테레사 수녀의 기도하는 손 등 다양한 이미지의 손이 전시됐다. 인간의 신체 부위 중 가장 감정적이고 정직한 부위는 아마 손일 것이다. 손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으며, 그 사람의 인생과 현재를 보여준다. 창작은 예술가의 머릿속에서 탄생했을지라도 현실로 구체화하는 것은 예술가의 손을 통해서이다. 성북문화재단은 문화예술교육 포럼에서 왜 ‘동네에서 손들기’란 제목으로 2년간의 과정을 공유하고자 한 것일까. ‘손들기’는 마무리의 단어가 아니다. 시작의 단어다.
다시 에셔의 <그리는 손> 이야기로 넘어가자. 어떤 손이 어떤 손을 그리는 것일까? 시작도 끝도 명확지 않은 얽히고설키는 무한 순환구조를 통해 시작도 끝도 없는 세계가 그려졌다. 시작과 끝이 없는 세계다. 지역문화예술교육 거점은 중심구조 혹은 거대한 기관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불쑥 손들고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내어주는 ‘신뢰의 에너지’와 관련된 일이다. 바로 식당이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 조만간 따뜻한 밥이 나올 거라는 아주 단순한 신뢰를 주는 식당. 그게 거점이다. 손들기보다 편안한 손 얹기의 시간으로 진화해 갈 성북의 거점을 기대한다.
추운 겨울 어느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 고영민, 「공손한 손」(창비, 2009) 전문
  • 지역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 포럼 5차 (기초 단위)
    2021 성북문화예술교육포럼 ‘나도 거점이다, 동네에서 손들기 :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예술 교육’
    [출처] 성북문화재단 유튜브
김정이
김정이
비커밍 콜렉티브 대표. 손재주 없는 똥손이다. 어느 날 금손들과 친해지면서 똥손의 불편함이 싹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 뒤, 살아가는 이치를 터득한다. 하늘의 보살핌인지 천만다행 다양한 금손들과 친하다. 금손들은 주로 자기 영역의 전문적인 일을 한다. 나는 금손들을 엮어 일한다. 일이 곧 배움이다. 일할 때마다 설레고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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