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상의 회복은 멀기만 하고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면서 생기는 피로감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재난의 시대를 사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이미 예고되어 있고, 이와 함께 문화예술교육의 지역화와 지역문화 분권이 본격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임인년 새해를 맞아 [아르떼365] 편집위원과 함께 현재의 변화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보고 ‘지금’ 문화예술교육이 추구해야 할 본질은 무엇일지 이야기 나눴다.
좌담 개요
일 시 : 2021년 12월 13일(월) 오후 2시
장 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A.Library
참석자 : 고영직 (문학평론가, 좌장), 정원철(작가), 조은아(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최보연(상지대학교 조교수)

고영직 : 항상 이맘때쯤이면 제가 좋아하는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이라는 시집을 꼭 한 번씩 들춰본다. 제목도 아주 의미심장한 「두 번은 없다」라는 시가 있다. 인간을 인간이도록 하는 것은 어쩌면 시간의 유한성, 유일성 같은 게 아닐까.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에는 회복, 회복력이 많이 회자되었던 반면 2021년에는 우리 삶의 전환, 예술교육의 전환에 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각자 개인적인 상황이나 예술교육 현장, 우리 사회 전반을 전환이라는 키워드로 돌아보자.
최보연 : 2020년에는 급박하게 전개된 코로나 상황으로 위기에 대응하면서도 코로나19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측면에서 회복력이 강조됐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적응해야 할 환경으로 고착되다 보니 좀 더 깊이 있는 전환적 태도가 근본적으로 요청되는 것 같다. 나의 관점이나 살아가는 방식, 생각하는 태도와 관점을 바꿔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원철 : 팬데믹 상황이 워낙에 장기화되다 보니까 이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개인 간의 거리 두기로 인해 오히려 개인과 국가 간의 거리가 좁혀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국가의 존재를 체감할 일이 별로 없었다면, 이제는 마스크 착용이나 모임 인원까지 강제하는 등 개인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다 보니 아주 민감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민감함이 정책이나 정치에 관한 관심이 아니라 정량적인 이해관계에 치중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좀 불안하다.
조은아 : 대학에서 접한 예술교육 현장은 서둘러 비대면 강의를 양산하면서 정서적 교감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학생의 자기 주도성은 현저히 떨어졌고 교강사 역시 고립과 무기력에 허덕였다. 조급함은 당연히 서투름을 낳았고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격변의 정점에 다다르다 보니 오히려 기본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재난의 시대에 예술교육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할까 고민하게 됐다. 만나서 부대끼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예술의 즐거움을 비대면 상황에선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까. 장기적 전환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텐데, 여전히 그 돌파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어려운 시절을 지나는 전환의 관점
고영직 : 저도 이번 학기 강의가 유독 힘들었다. 학생들 사이에 피로감이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온라인 교육 문제를 ‘교사 실재감’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긴 하지만 현실은 마냥 쉽지 않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찰스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이라는 제목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2021년 [아르떼 365]는 월별 주제에 따라 다양한 기획을 했다. 월별 주제를 분명히 했던 것에 독자들로부터 상당히 호응을 얻은 것 같다. 지난 기획에 관하여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조은아 : <꿈틀> 인터뷰 코너에서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의 진솔한 생각, 좌충우돌 경험담이 크게 공감되었다. 특히 ‘예술강사 인터뷰 시리즈’에 담긴 현장의 생생한 경험들,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헤쳐가고 계신지에 적극 공감했었다. 월별 기획 중에서는 ‘장벽 없는 문화예술교육’이 기억에 남는다. 정은혜 작가 인터뷰, 안희제 작가의 칼럼, 직접 당사자로서 겪고 있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편집회의에서도 몇 번 논의했었지만, <비틀>에 담았던 주장이나 논조가 우리의 기획과 다르거나 일관적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독자가 느끼기에는 현장과 유리된 공허한 사변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정원철 : 하반기부터 월간 주제를 드러내는 시도가 좋았다. 그런데 주제와 조금 거리 있는 글이 나오면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점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장벽 없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주제가 가장 잘 구체화됐다는 생각이다. 특히, 감각에 관해 아주 섬세한 접근과 생각을 하게 함으로써 장애 문화예술교육의 범주에서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문화예술교육을 어떤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지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기후위기에 관한 연재 기사도 좋았는데, 연재가 가진 힘이 있는 것 같다. 주제를 잘 바꿔가면서 연재 형식을 활용하면 좋겠다.
최보연 : 저는 ‘당사자성’에 관련한 주제가 기억에 남는다. 특히 김혜일 대표님이 쓴 ‘예술이 말을 걸 때, 한 사람을 맞이할 때’를 읽는 순간 정말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문화예술교육에서 대상을 지긋이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비대면 상황이 지속되면서 무기력하게 피상적인 태도로 그냥 이것이 최선이라고 합의하고픈 상황이 반복됐다. 학교 수업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해결책을 고민하던 저에게 본질적인 부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반대로 ‘지역화’는 정책 변화에 포커스를 맞춰 너무 어렵게 다뤘던 게 패착이었던 것 같다. 완전히 정책의제로만 평면화되어 그 안에 ‘지역’이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현장 전문가나 활동가에게 어떤 식으로 이해될까 싶었다. 오히려 그들이 살갗으로 직접 느끼는 관점에서 이 이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지 등을 스케치하듯 얘기하는 꼭지들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르떼365]에서만큼은 정책 용어를 뒤집어보았으면 좋겠다. 분권, 자치 같은 건조하고 딱딱한 정책 언어를 헤드라인으로 뽑아내다 보니 그 틀 안에서만 글이 나왔던 게 아닐까.
(왼쪽부터) 고영직, 조은아, 최보연, 정원철
지역의 생생함을 담아야
고영직 : 하반기에 지역화 이슈를 다루는 부분이 좀 미흡했다. 기획 의도와 현장 간에 약간 괴리감도 있었던 것 같다. 당사자성을 탐구하자고 해놓고 정작 지역화 당사자의 다양한 언어를 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역화는 2022년에도 중요한 이슈가 될 것 같다.
최보연 :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이 20년이 되어 가면서 중앙-광역의 수직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문화도시 사업도 마찬가지다. 대의적으로 ‘지역 중심’을 강조하지만, 그 틀에 대한 정책적 점검이 필요하지 않은가? 정책의 속성상 그럴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다른 한편으로 마치 일렬종대로 숨구멍을 내고 거기로만 숨 쉬라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본질적으로 정책에 재기발랄하거나 다양한 생각이 담기기는 어렵고 건조한 용어들만 난무하는데 그 안에서 어떻게 다양한 상상력을 할 수가 있을까?
정원철 : 제 제자 중 한 명은 경북 의성에서 레지던시를 하고, 한 명은 경기 이천에 작업실을 냈다. 단순히 지역에 내려가 창작 활동만 하는 줄 알았는데 커뮤니티 활동도 하더라. 그게 하나의 해법일 수 있다. 결국 지역화가 성공하려면 그 지역에 역량 있는 문화예술교육자나 예술가가 있어야 한다. 레지던시 공간이 역량 있는 예술가를 끌어모으고 지역에 들어와 살 수 있도록 제도화되면 좋을 것 같다. 지역에서 살면서 개인적인 창작 활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작가적인 경험을 녹여 동네 사람들과 같이 활동하는 것이다. 레지던시 입주 기간이 최소 6개월 길면 1~3년인데, 어떤 경우에는 생활비도 지원해 준다. 문화예술교육에서도 참고해볼 만하다.
최보연 : 동감한다. 그러나 지역에서 새로운 예술가를 발굴해서 그들의 작업이 문화예술교육 영역과 접점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지 않고 계속 기존의 정책 패턴 속에서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부분도 있다. 그러니까 고인 물이 되어 가는 건 아닌가 싶다. 어떻게 물꼬를 틀 것인가, 어떻게 더 다양한 방식으로 숨구멍을 내고 저마다 조금씩 다르면서도 생동감 있는 에너지가 발산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고영직 : 우리가 사는 지역이 일종의 생태계라면 갯벌에 다양한 생명이 살기 위해 좀 말랑말랑한 토양이 필요한데 그 숨구멍을 내놓은 다양한 주체가 필요하다는 말씀인 것 같다.
조은아 : 저도 숨구멍에 하나 보태자면, 중구난방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제가 보기에는 상향식과 하향식의 절묘한 교차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예술가를 발굴해서 참여를 독려하고 지역의 자원과 주체를 발굴하고 연결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너무나 익숙해져 고착화된 흐름을 깨야 하는 부분도 있다. 중구난방의 제도화와 예술이나 교육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그 지역을 바라보는 시도를 조금 더 지원하면 숨구멍이 트이지 않을까.
고영직 : 중구난방을 멋있게 얘기하면 화해(和諧)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유토피아로 생각하는 화해의 가치에는 중앙이라는 건 없다. 중앙-광역-기초가 따로 있고 위계화된 방식이 아니라 결국 어떻게 이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들 것인가 고심해야 할 것 같다.
정원철 : 문화예술교육 영역에서만 정책을 마련하거나 해법을 찾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예술가의 활동과 생활 영역의 탈중심화가 함께 고려되어야 해결할 수 있다.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서 머물면서 기회를 노리던 것에서 벗어나 지방분권 시대에는 예술가의 활동 영역을 자꾸 분산시켜서 함께 가야 한다. 지역에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고영직 : 지역에서 젊은 예술가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정성숙 작가의 『호미』(삶창, 2021)라는 소설에는 그동안 우리 농촌 소설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았던 ‘여성 농민’의 목소리가 나온다. 양파값이 폭락하고 소값 파동이 나는 농촌 현실이지만 마냥 어둡지만은 않았고 언어에 활력이 있었다. 30년 넘게 지역에 착 붙어산 사람이 포착한 현실과 언어라서 아주 고귀하다고 생각했다. 예술가 이전에 주민으로서의 관점이 중요하다. 주민 의식은 그곳에 오래 산 시간에서 나오는 것인데 예술가, 예술교육가, 지역 기획자가 그런 관점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정원철 : 거주자로서의 예술가가 필요하다. 저도 고향에 살면서 예술가의 관점으로 마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 제가 우리 동네를 상징하는 마을 로고를 만들자고 주민회의에서 제안했다. 대석1리 주민 명함과 경조사 봉투, 스티커 등에 사용된다. 편리하기도 하고 이 동네에 사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상징적 요소가 될 것이다. 거주자로서의 예술가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사업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하고 1년 단위 지원사업에 빠지게 된다. 정책에서도 거주자로서의 예술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최보연 : 정말 공감한다. 이전까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꽉 짜인 지원사업의 틀을 벗어난다면 아주 적은 예산으로도 작지만 의미 있는, 새롭고 다양한 시도가 나올 수 있다. 상상력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맨날 당사자성과 포괄성을 얘기하면서도 정책을 상상하는 데는 그러지 못했던 게 아닌가 한다.
예술의 본질을 되묻기
고영직 : 2022년도 상황이 좀 여의치 않은 것 같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고 대선과 지방선거 등 큰 정치 일정도 있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는 눈은 갖고 있지 않지만,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2022년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조은아 : 어쩌지 못해서 끌려가는 것 같아 비관적이긴 하지만,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큰 이슈일 것 같다. 기술이 예술을 확장시킨다는 유토피아적 믿음이 유포되고 있다. 시공간을 제한하지 않으며 전 세계 누구든 만날 수 있고 효과적인 반복 학습이 가능하고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치를 내세우는 것이다. 예술이 기술의 힘을 빌리면 감각의 확장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그러자면 사람이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활용될 자발적인 유인책이 있어야 세상과의 연결을 훨씬 더 북돋을 수 있다. 비대면 고유의 감각을 기술이 이루어내는 시기가 목전에 와 있는 듯하다. 과연 이 길이 올바른 길일까. 저 개인적으로는 휩쓸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보연 : 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환경이나 기술의 변화는 늘 있었고 그것과 예술이 만나서 새로운 길을 내는 것도 늘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예술이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예술의 본질 때문인 것 같다. 중심, 기본. 저는 오히려 그런 단어들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문화예술교육이나 예술이 지향해야 할 그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NFT니 메타버스니 에듀테크니 하는 말이 난무하는 게 사실 한편으로 조금은 불편하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고 새로운 상황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적응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서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야 하지 않을까.
정원철 : 언제부턴가 제가 쓰는 다이어리에 ‘열외(列外)일기’라고 제목을 붙였다.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류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열외 하자는 다짐을 담아 지었다. 열외일기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것이 본질을 돌아보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여러 변화 속에서 정신을 차리게 하는 힘이다. 제가 예상하는 키워드도 본질을 돌아보는 것, 본질에 관해 되묻는 것이다.
최보연 :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연구해 왔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게 달라졌다며 정책도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렇다고 가치와 지향부터가 다른 민간의 취향 기반 온라인 강의 플랫폼과 문화예술교육을 비교하고 경쟁하게 해야 할까? 화석 같은 가치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환경 변화 속에서 새롭게 재탄생한 지향점을 찾자는 이야기다. 다만 본질을 되묻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나, 독자들이 공감할지 약간 걱정이 들기도 한다.
고영직 :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작은 친절도 베풀고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우리의 언어가 많이 달라져야겠다. 정책의 언어는 우리 삶을 조금도 바꾸지 못한다. 마음의 태도가 더 섬세해지고 말랑말랑한 언어를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져야 한다. 대량 생산하고 대량 유통하고 대량 소비하고 대량 폐기 처분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면 새로운 삶은 도래하지 않는다. 우리 안의 관료주의를 어떻게 넘어서야 할지 더 좀 발랄한 언어로 계속 떠들어야 하지 않을까.
제대로 멋있게 즐겁게
고영직 : 전반적으로 예술, 예술교육, 예술가의 본질에 대해서 강조하신 것 같다. 앞서 2021-2022 결산과 전망 기사에서도 본질에 대한 탐색을 강조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나 비전을 공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에서 각개약진 각자도생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고민이 여전하다.
조은아 : [아르떼365]가 좀 더 젊은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담아냈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글을 쓰는 필자부터 새롭고 신선하고 도전적인 시각,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고민, 갈지자(之) 방황을 드러낼 수 있는 인물을 발탁하면 좋겠다. 또 독자와의 소통이 활성화되어 독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내고 더 적극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여러 창구를 마련해서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다.
정원철 : [아르떼365] 편집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 역사학자 브로델이 말한 역사 기술의 세 가지 방법-사건사, 국면사, 구조사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찰랑찰랑하는 수면이 사건사라면, 물속은 국면사, 해저 밑바닥이 구조사다. 우리는 보통 구조보다는 사건이나 국면에 관심을 가진다. 그것이 더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구조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이고, 그것이 결국 본질이고 굳건한 기준이다. 이제 구조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훨씬 더 중요해진 시점에 온 것 같다. 그것이 결국 본질이고 굳건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에는 [아르떼365]도 문화예술교육도 이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보연 : 예술의 사회적 실천, 사회적 가치는 구조사다. 예술은 그 자체로 사회적 실천이며, 사회적 가치를 가진다. 그런데 예술의 본질을 정책사업 용어나 목표로 앞세우니까 마치 사건사가 되어 버린다. 예술이 사회적 가치를 발현할 수 있습니까? 문화예술교육이 시민력을 기를 수 있습니까? 그건 그냥 믿고 가야 하는 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정책일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정책이 ‘구조사’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보다 그때그때 상황과 환경에 반응하는 ‘사건사’를 만들어내는 데 치중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고영직 : 예술과 예술교육의 본질은 정말 중요하다. 현장의 의견이나 목소리를 좀 더 다양하게 반영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바흐친이 말한 ‘민중 언어의 다성성(多聲性)’이라는 가치를 지면에도 반영했으면 좋겠다. 특히 현장을 위에 두고 행정이 뒷받침하겠다는 태세의 전환도 필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지극히 사적인 질문이다. 2022년에는 어떤 개인적인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지 살짝 공개해 달라.
조은아 : 작년 좌담에서도 이것이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때 말씀하신 선생님들의 다짐이 와닿더라. 말을 줄이고 몸을 움직이고 싶다고 하신 정원철 선생님 말씀을 제 목표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보연 : 저 역시 새해에는 다 내려놓고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마음으로 말은 줄이되, 눈과 귀를 더 깊게 열고 싶다.
정원철 : 퇴직하고 1년 동안은 어떤 일이 저한테 요구되는지 보고 싶어서 일부러 여러 제안을 마다하지 않았었다. 새해에는 고영직 선생님이 칼럼에서 주장하신 것처럼, 인문대피소 역할에 충실한 ‘칼산 마을 예술학교’를 운영하면서 동네 지식인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우리 집 뒷산 이름이 칼산인데, 돌이 삐쭉 튀어나와서 어렸을 때부터 저에게 굉장히 깊은 인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의 상징이다. 마을 예술학교 교장으로 동네에서 열심히 재밌게 살아보겠다.
고영직 : 요즘 ‘사라지는 매개자’라는 말에 유독 꽂혔다. 문화 DNA를 남겨놓고 사라지는 매개자로서 제대로 멋있게 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 사회적으로 자기와 타자를 돌볼 줄 아는 능력이 높아지려면 돌봄의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제 몸이 좀 불편하기도 하고 여러 성가신 일도 있어서 그런지 어떻게 하면 돌봄의 능력을 더 높일지 생각하게 된다. 공자가 얘기한 근자열원자래(近者說遠者來)라는 말로 소감을 대신하고 싶다. 가까운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면 멀리 있는 사람이 저절로 찾아온다는 말이다. 그 말의 의미를 더 실감하는 2022년이 됐으면 한다.
고영직
고영직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을 지냈으며, 경희대 실천교육센터 운영위원, 춘천문화재단 [POT] 편집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삶의 시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 『인문적 인간』을 비롯해 『자치와 상상력』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공저), 『생애。전환。학교』(공저) 등을 펴냈다.
정원철
정원철 편집위원

홍익대학교와 독일 카셀종합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에 재직하며 미술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해왔다. 문화연대 시각문화교육 대안교과서 연구에 참여하면서 교육 활동이 예술가의 중요한 창작영역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되었다. [아르떼365] 편집위원, 문화예술교육지원위원회 위원장 역할을 하고 있다.
조은아
조은아 편집위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및 독일 하노버음대, 파리 고등사범음악원, 말메종음악원을 졸업했으며, 서울시향 토크 콘서트, KBS 교향악단 실내악 시리즈 진행, JTBC ‘차이나는 클라스’ 강연, KBS 클래식FM ‘실황연주&라디오 피아노 레슨’ 해설 및 연주 등 음악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 강연과 음악 해설을 하고 있다. 현재 더겐발스 뮤직 소사이어티 멤버,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보연
최보연 편집위원

정동극장, 아트선재센터, 세종솔로이스츠 등에서 공연기획과 마케팅 업무를 경험했고, 미국 뉴욕대학교 공연예술행정학 석사를 마치고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창의성 담론에 대한 연구로 문화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연구재단 지원의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일했으며, 현재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프로젝트 궁리
녹취·정리 _ 프로젝트 궁리 남은정·주소진
사진 _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