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 시절을 보낸 이곳 울산 북구 염포는 조선 세종 때에는 일본과 교역을 담당하던 삼포 개항지 중 한 곳이었고 근대 이후 자동차 산업과 조선업이 들어오면서 현재는 우리나라 자동차·조선산업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염포는 노동을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이주민이 터를 잡아 뒤에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공장을 바라보며 위에서 보면 산과 공장 사이 기다란 꼴로 독특한 형태의 마을을 이뤘다. 마을 끝자락에는 염포의 여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공장을 바라보고 있는 시각예술 레지던스 공간인 ‘북구예술창작소’가 있다. 어릴 적 친구를 기다리던 그 골목에 이런 멋진 공간이 생겼다는 것을 새삼 놀라워하며 기쁜 마음으로 북구예술창작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문화예술교육에 애정과 열정이 가득한 북구예술창작소의 김수진 관장과 만났다.

공간이 나서서 주민을 만나다
북구예술창작소는 울산에 창작 지원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지역에서도 운영 경험이 부족했던 시절, 시각예술 분야 레지던스 공간으로 2014년 개소하여 유망 작가들이 입주하며 창작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인구 밀집도가 다른 마을에 비해 낮은 대신 산업과 노동이 존재하는 이곳 염포에 공간을 만들었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노동과 예술의 만남 혹은 산업도시 울산에서 산업의 한 가운데 있는 예술 공간이라는 상징성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관점에서 초기 운영 단체와 지원 기관의 고민이 엿보였다. 자동차 산업을 위해 출퇴근하는 주민이 대다수인 마을에 예술 공간이 생기자 초기에는 주민 하나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마을 주민은 예술 공간의 문을 쉽사리 열지 못했다.
“북구예술창작소는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레지던시 공간이지만 또 북구에서는 흔치 않은 문화예술 시설이다 보니 주민이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얼마나 문턱 높게 바라볼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리고 마을 반대편이 다 공단이기 때문에 청소년과 아이들이 체험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없어요. 그래서 주민이 자주 그리고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생각을 했죠.”
– 김수진 북구예술창작소 관장
북구예술창작소가 생기고 나서 가장 먼저 마을 주민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염포에 공장이 들어서기 전부터 살았던 마을 어르신을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염포의 변화를 모두 지켜봤고 공장이 들어서면서 터전을 잃고 이주했던 경험이 있었다. 염포는 본래 해안선을 따라 위치했는데, 자동차 공장이 생기면서 원주민은 해안선에서 뚝 떨어진 지금의 염포동으로 이주를 해왔다. 김수진 관장 또한 여기 염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돼서야 마을을 떠났을 정도로 오랜 시간 염포에 살았다. 그도 마을의 원형을 기억하고 있던 터라, 그 모습을 사진으로 간직하고 있는 어르신을 보며 첫 번째 기획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르신 댁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여섯 개 정도의 앨범이 나온 것 같아요. 그 앨범을 보면서 이야기보따리를 꺼냈고, 그 당시 풍경과 모습이 그대로 있었어요. 지금은 자동차 공장이 있어서 길 건너에 바다 쪽으로는 접근할 수가 없는데,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바닷가로 야유회 가고 가족과 조개도 줍고 하던 곳이거든요. 그러면서 ‘그러면 조금 더 일을 키워서 우리 개관할 때 이 사진을 모아서 전시로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기획하는 모든 단계에서 마을 주민들과 첫 번째 입주작가들이 참여했어요. 작가가 바라보는 마을에 대한 시선과 마을을 오랫동안 지켜온 삶의 증인들이 내놓은 이야기가 함께하니까 자연스럽고 즐겁게 마을 주민을 초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북구예술창작소 첫 번째 개관 전시로 사진전 《소금포 어제와 오늘 그리고 우리들》을 진행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철학이 담긴 시각예술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를 통해 주민은 북구예술창작소를 알게 되고 참여하게 되었다. 주민을 단순히 향유자로 인식하고 공간에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공간이 먼저 주민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로 예술을 만드는 생산자로 변모시킨 것이다. 사람이 공간을 ‘나의 공간’으로 느끼는 것은 그곳에 내가 만든 것 혹은 나의 이야기가 담긴 ‘나의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삶의 밀접한 공간에 예술 공간이 존재한다면, 주민의 힘으로 공간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확신으로 공간 운영에 대한 계획을 세웠으리라.
사진전 《소금포 어제와 오늘 그리고 우리들》
예술 공간을 들락날락하는 노동자
북구예술창작소 건너편 벽 너머에는 자동차 공장이 길게 위치해있다. 울산, 특히 북구는 노동자의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 염포의 자동차, 조선업 공장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노동 운동을 실천했던 곳이고 그 힘이 여전히 존재한다. 김수진 관장은 초기 운영부터 노동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진행을 했지만,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처음 시작한 노동자 대상 프로그램은 실제로 기업과 연계해서 참여자를 모집하는 데 한계가 있어, 지인들을 모아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하지만, 퇴근하고 저녁 시간에 이곳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당사자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참여도와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단순히 참여자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김수진 관장을 포함한 공간의 입주작가, 큐레이터 그리고 지역의 영상 작가들이 함께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초기 기획 당시 목표만큼의 그림은 나오지 않았지만, 참여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포함한 참여자 모두가 굉장한 희열을 느꼈다고 김수진 관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북구예술창작소는 여전히 노동자들이 공간에서 다양한 예술 활동 혹은 문화예술교육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울산이 노동자의 도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예술, 문화예술교육으로 노동자와 매칭되어 진행하기 어려운 곳이에요. 회사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렵거든요. 무수히 시도해도 성사되기가 너무 어려운 과정이 있었죠. 여전히 노동자들이 이곳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 과제이긴 한데, 다행히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시는 서각 작가님이 계셔서 창작소에서 모임을 가지며 열정적으로 활동을 하세요. 공공의 공간은 보통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사용할 수가 없는데 저희가 위탁 운영하기 때문에 유연하게 공간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 할 수 있죠.”
북구예술창작소는 위탁 운영 방식이기에 일반적인 공공시설과 달리 저녁 시간과 주말에도 공간을 개방했다. 공공의 시간(평일 낮)에는 노동자가 들어갈 틈이 없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영되고, 프로그램에 참여해야만 공간에 출입할 수 있고, 프로그램이 없는 시기에는 공간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진 공공 공간에서는 주민이 결국 동원의 대상, 객체로 전락해버릴 위험이 있다. 그러한 운영방식의 한계를 너무도 잘 알았던 김수진 관장은 근무시간이 늘어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노동자, 주민이 늦은 시간까지 활동할 수 있도록 공간의 뒷문을 열어두기도 했다. 예술 공간을 들락날락하며 열정 가득히 활동하던 노동자들은 이제 머지않은 미래에 닥칠 퇴직 이후 삶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직장인 프로그램
예술과 놀이하는 염포 아이들
북구예술창작소는 마을에 위치해 있기에 자연스레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있었다. 산업이 주인 지역이다보니 마을에서 문화예술을 경험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다. 북구예술창작소는 시각예술 공간이지만 오랫동안 문화예술교육을 해온 김수진 관장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등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했다. 작년에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화제작 교육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 올해는 아이들 스스로 기획, 제작, 애니메이션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한 <두둥!두둥!나의 부캐찾기> 등 어느 것 하나 아이들의 주도 없이 완성되는 교육이 없다.
산업 지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예술 공간은 마을 아이들에게 문화예술교육으로 머무를 곳을 마련해주었고 자연스레 마을의 필요 시설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갈 수 있는 예술 공간이 있다는 것은 마을에 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마을 안전망’의 역할이 가능해진다. 북구예술창작소가 입주작가 위주의 시각예술 공간을 넘어 문화예술교육을 실천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운영진이 마을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고민과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열정과 경험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주민이 주체로 성장하는 문화예술교육
북구예술창작소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단순히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고민과 시도들을 하고 있지만, 지역의 상황은 좋지 않다. 여전히 문화예술 영역에서 주민이 단순히 향유자로만 머물러있는 경우가 흔하다. 여느 지방 도시들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가까운 과거까지도 울산은 문화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었고 미술관, 공연장이 일상 용어는 아니었다. 북구예술창작소가 고민하는 문화예술교육에는 참여자가 주도적으로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문화예술 영역의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이 있기에, 주민은 더 이상 향유자가 아닌 생산자로서 등장하게 된다.
“지금 상황에서는 문화예술교육이 아주 좋은 해답이라고 생각해요. 시민이 주도적으로 자기 활동을 하는 순간, 누군가 끌어줄 필요가 없는 거죠. 그래서 자기 활동을 하는 시민들 만나는 자체가 그냥 좋아요. 시민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서 알려고 제가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 문화예술교육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모든 복합 공간과 마을의 공간에서 문화예술교육이 포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민이 주체로 성장하는 문화예술교육의 해답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북구예술창작소는 오랜 시간 실천을 통해 답해왔고 그 고민을 여전히 품고 있다. 방법적으로 여러가지가 존재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염포 주민이 공간에서 마음껏 문화예술에 대한 상상을 실현하는 바람이 가득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 아닐까.
각자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예술 공간과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성장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수한 의미와 성과를 남긴다. 지방자치와 더불어 문화자치, 문화분권이 시대적 과제로 등장하는 것은 더 이상 시민이 문화예술영역에서 향유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시민이 주체로 등장하는 활기가 문화예술을 바꾸고 있다. 불빛이 환하게 공간의 대문을 열어두자.
조강래
조강래
도시재생 영역 내 주민 공동체,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과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하는 웨일웨이브협동조합에서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올해 울산저널 인턴기자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사람의 이야기를 기사로 연재하고 있다. 이밖에도 울산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청년 정책 활동을 실천하고 있으며, 울산문화도시추진단과 ‘꿈꾸는 문화공장 기록단’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jgrjgr005@naver.com
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j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_북구예술창작소 cafe.naver.com/bukguart www.facebook.com/bukgu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