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은 사회적 의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 공연예술가이자 예술교육자이기도 한 김설아 예술강사는 자신의 삶도, 예술교육의 방식도 하나의 정해진 방법을 따르기보다 열 가지의 새로운 방법을 찾아 세계를 확장하고 도전하는 데 꽤 적극적이다. 창작활동과 예술교육 활동을 병행할 동지들과 만나 2020년 ‘예술단체 삼따’를 창단하기도 했다. 다양한 대상을 만나 드라마 과정을 통해 학습이 아닌 문화예술 경험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활동을 하는 김설아 예술강사를 아주특별한예술마을·보편적극단 연출가이자 문화예술교육자로 활동하는 권지현 연출이 만나 창작과 문화예술교육 활동에 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세계를 확장하기
권지현  어떤 계기로 예술강사가 되었는지 소개를 부탁드린다.
김설아  전문 예술인으로의 삶을 동경하다 뭔가 결핍을 많이 느꼈고, 분야를 좀 더 확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 우연한 계기로 연구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예술강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방 극단에서 연극과 방송 연기를 해왔다. 전문 예술인으로의 교육을 받다 보니 감정적으로 치달을 때도 많고, 부딪힐 때도 많고, 내가 옳다고 고집을 부리는 순간도 많아지면서 사람이 옹졸해지더라. 또 알 수 없는 허전함으로 계속 마음이 메말라가는 게 느껴졌다. 내가 예술가로서 계속 능력을 인정받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이대로는 나 자신이 올곧이 설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해온 일을 놓지 않고 넓힐 방법을 고민하다 나온 게 교육이었다.
권지현  인상적이다.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부족한 영역을 확장하고자 택한 것이 교육이란 말이지 않나. 예술교육을 통해 여러 교육 대상을 만났다고 들었는데 어떤 사람들과 함께했나?
김설아  경기도에서 성인 장애인 대상 연극동아리를 진행했고, 충남교육연구소를 통해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만나 연극 수업을 진행했다. 태안에서 가족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맡고, 전교생이 45명 정도인 소규모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권지현  다양한 교육 대상자를 만날 때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김설아  아이들의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이다. 내가 딸기가 맛있다고 모든 아이가 딸기를 좋아하라는 법은 없잖나. 저도 사람인지라 수업하다 보면 참여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눈빛을 보내게 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을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수업의 일환으로 축제나 공연을 해야 할 때 배우 역할을 하기 싫다고 하면, 하지 말라고 한다. 그 대신 연극에는 배우뿐만 아니라 기획, 무대감독, 조명감독, 소품 제작 등 다양한 역할이 있으니 이 중 괜찮은 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등 다른 방법을 함께 찾아본다. 가르침을 주되 내가 수업을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촉진제의 역할을 하자는 생각이다. 그리고 장애인을 만날 때는 장애에 따른 특성이 다르므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열 가지 정도의 다양한 방법을 생각한다. 하나의 방법만을 가지고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를 결정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를 할 수 없으면 아홉 가지의 방법으로 함께 할 수 있게 범위를 최대한 넓혀 선택지를 많이 가져가는 편이다.
권지현  요즘 제가 하는 고민이기도 한데, 연령대로 교육 대상자를 나누는 것은 차치하고 흔히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집단을 지원하기 위해 그룹으로 묶는다. 그러한 성격으로 집단을 묶는 것이 긍정적인 효과나 좋은 결과도 있지만 어떤 편견을 만들거나 혹은 프로그램을 할 때 더 갇히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 보편타당한 주제를 가지고 수업할 수 있음에도 소극적이 되거나 동일한 연령대의 다른 대상을 만났을 때 택하지 않는 주제를 내재적으로 갖게 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된다. 그런 경험이나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는지 궁금하다.
김설아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한다. 특히 지원사업의 경우 특정 대상을 묶고 어떤 뚜렷한 결과를 얻기를 원하는데, 그래서 수업할 때 딜레마가 많다. 초등학교 수업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는 나도 모르게 감정적 수업을 많이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물음표를 가지고 돌아온다. 예술강사 활동을 하면서 일지 같은 느낌으로 그런 고민과 결핍을 끊임없이 일기에 쓴다.
권지현  삶에 어떤 일관된 맥락이 있는 것 같다. 여러 대상자를 만나는 것과 다른 분야의 예술을 접목하는 것에 있어 경계를 먼저 인정하고 모자라는 것은 모자라는 대로, 다른 것은 다른 대로 인정하고 그다음으로 넘어가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전업 예술가로 살다가 예술교육자의 길을 택했을 때도 그렇고.
예술가와 예술교육자로의 순환 고리
권지현  예술교육자로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야기 해달라.
김설아  예술강사 1년 차 때 대학원과 MOU를 맺은 안양시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성인 장애인 연극동아리를 맡게 됐는데, 1기 지도교사라 너무 부담됐다. ‘꿈’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고 참여자와 함께 제목을 만드는데, 자폐증이 있는 분이 ‘트로이메라이(Träumerei)’라고 말하는 거다. 평소 음악에 많이 집중하던 분이었는데, 검색해보니 슈만의 곡이 나오더라. 다 같이 음악을 듣고 노래 제목을 검색하니 꿈에 관련된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그해 공연 제목이 <물레방아의 트로이메라이>라는 이름으로 올려졌다. 이들과 5년 뒤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영상도 남겼는데, 얼마 전 이사하면서 그 편지를 발견했다. 묘하게 5년 정도가 지났다. 그래서 복지관 선생님의 연락처를 찾아 보내드렸다. 그들이 그때 원했던 삶을 잘 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권지현  극을 쓰는 창작자로서도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예술가의 활동과 예술교육을 병행·지속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김설아  예술가로서의 삶은 때론 버리고 싶은데, 먹던 밥이 이거라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나 유튜브에서 사회적 이슈 영상을 많이 찾아보는데,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들 뒤에 무슨 일이 있을까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계속 쓰고 있더라. 작년에 힘든 일이 많았는데, 예술가가 아니었다면 울고, 술 마시며 털었을 텐데 슬픔을 곱씹다가 이전에 썼던 글을 결국 완고했다. ‘김문명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번에 공연을 올린다. 예술교육자의 삶과 예술가(창작자)의 삶은 명확히 다르다. 교육자로서는 내 것을 풀어내기보다 교육 대상자의 어떤 것을 풀어내기 위해 내가 촉진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항상 내 것을 많이 드러내진 않을까 염려하고 절제한다.
권지현  어떤 말인지 공감이 된다. 예술교육과 창작 작업을 병행하는 선생님들을 만나면 교육자로서의 삶이 소모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간혹 있더라. 내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만드는 것보다 매번 다수의 사람을 만나 끊임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 사람들을 촉발해야 하는 게 훨씬 더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보통은 수업은 그만하고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선생님은 반대의 말을 해서 인상적이다.
김설아  연수 프로그램 같은 곳에서 다른 분들을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교육은 어쨌든 다른 사람을 키워내는 양육지명의 일이지 않나. 힘들 수밖에 없다. 예술교육이라는 자체가 전문성을 갖고 내 안의 것을 계속 내어주는 작업이기 때문에 내 것을 많이 만들어 놓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술강사의 고용이 안정되어야 제대로 된 사람을 길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예술강사 일을 시작할 때 SNS에 공개적으로 써놓고 다짐한 것이 있는데, 예술교육을 해서 번 돈은 예술가와 예술교육자로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것에 투자하여 순환의 고리를 만들겠다는 글이다. 모든 것에는 낮과 밤이 있듯이 예술교육과 창작 작업을 병행하는 것에도 장단점이 있다. 최대한 장점을 살리려고 하고 있다.
권지현  자신의 결핍에서 출발해 예술교육자로서의 세계가 확장되고 그것이 참여자에게 전해지고 다시 창작자인 선생님에게 돌아오고. 사회적 안정과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만드는 이 모든 과정이 긍정적으로 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 태안 가족 문화예술교육
  • 충남학생연극제 <수상한 전학생>

지역에서 주체적으로 예술(교육)하기
권지현  예술교육도 그렇고 창작 환경도 대체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지 않나. 지역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예산이나 지원금 같은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인프라나 관객, 혹은 창작진을 꾸리는 것에서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또 예술교육을 할 때도 동료를 만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수도권과는 다를 텐데 어떤가?
김설아  어렵다. 수도권보다 인프라가 부족하니까. 지역의 공연이나 문화예술은 질이 낮다는 평가도 있는데, 그런 말이 너무 싫다. 그렇다고 해서 지역에서 벗어난다면 지역의 문화예술은 도태될 거다. 지역의 문화예술(교육) 질이 높아지려면 많은 예술가가 지역에 내려가 그곳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고, 주체적으로 인프라를 형성해야 한다. 문화예술은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경기도에 오래 있다가 갑자기 충남으로 내려오게 돼 연고지가 아무 데도 없었다. 다행히 마음에 맞는 연극과 국악 분야 선생님을 만나서 예술단체 삼따를 꾸리게 됐다.
권지현  예술단체 삼따는 어떤 성격의 단체이고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됐는지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다.
김설아  2016년에 지역으로 이주했더니, 교육의 기회는 있는데 공연할 기회가 없더라. 배우로 공연을 하고 싶어 갈증이 나는데, 공연하려면 극단에 들어가야 한다. 아는 분께 공연하고 싶은데 예술교육도 소홀히 할 수가 없어 조율 가능한 범위에서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어떻게 연결이 되어 공연하고 싶은 예술강사들이 모이게 됐다. 함께 작품을 리서치하고 각색해서 작년에 첫 공연을 올렸다. 단체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마침 ‘삼다 별장’에서 회식을 하고 있어 ‘삼다’의 뜻을 검색했더니 ‘재능 있는 사람을 지기(친구)로 삼다’라는 문장이 예문 중에 있었다. 뜻이 좋아 읽히는 발음을 그대로 따서 예술단체 삼따가 되었다.
권지현  여러 교과를 통합한 예술교육 연구 개발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연구 과정이 궁금하다.
김설아  요즘 다들 통합·융합 수업을 지향하지 않나. 같은 분야 예술강사를 만나면 시너지가 커진다. 반면 다른 분야 선생님이랑 만나면 서로 색이 달라 시너지가 작아질 때도 있지만 재미있다. 하나의 주제 안에서 각기 다른 분야가 단계별 연결성을 가지고 만나는 게 통합 수업이라면 융합 수업은 연결점 없이 한 데 섞여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통합 수업을 하려면 서로 경계점이 명확하다는 걸 인정하고 시작해야 하고, 융합 수업을 하려면 이 경계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내가 알지 못한 분야의 세계에 계속 발을 들이고 공부하는 과정이 즐겁다. 대신 조금 겸허한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다. 내 분야가 최고야! 라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결국 오합지졸이 되더라. 일부러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국악, 컴퓨터공학 등 다른 분야 선생님과 함께한다. 연극에 풍물 하는 것도 들어가서 소리 악기도 새롭게 연습해보려고 한다.
권지현  수업 내용이나 진행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다.
김설아  예술단체 삼따의 한 선생님이 출강하는 학교에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너무 많은데, 일차원적인 다문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드라마 과정을 통해 조금 더 깊이 있게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 다문화라는 걸 깨달으면 좋겠다고 해서 어떤 이야기를 개발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국악 동요 ‘산도깨비’ 노래에서 착안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2021 주제중심 학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예술로 탐구생활’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직접 실행해보고 있다. 언어와 사는 환경, 규칙이 다른 산나라, 물나라, 그림자 나라, 바람 나라의 도깨비가 사는 마을에 어느 날 태풍이 불어 큰 고목나무 아래 도깨비들의 상징물이 한 데 얽혀버린다. 상징물이 뒤섞이다 보니 어떤 게 어느 마을의 상징물이고 이게 왜 필요한지 몰라 서로 난장이 난다.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자기 마을의 상징물을 찾아올 수 있을지 만지고, 사용하고, 소리를 듣고, 서로 질문하며 극을 풀어가는 프로그램이다.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물음표 대화법’이다.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서로 ‘이렇게 해야 해’ ‘저렇게 해야 해’ 하는 강요의 말을 많이 한다. 질문(대화)을 통해 각 나라의 규칙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학습의 형태가 아닌 경험으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수업이다.
권지현  예술단체 삼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가.
김설아  문화예술교육과 공연 창작을 병행하는 주체적인 단체가 되었으면 한다. 제 뿌리는 예술인이고 나무의 여러 가지는 교육이 될 수도 또 다른 방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단체 삼따가 어떤 경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곳에 가지를 펼 수 있으면 좋겠고, 이를 위해 많은 것을 시도해 볼 예정이다.
김설아
김설아

성결대학교 연기예술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연극영화교육을 전공했다. 2017년 안양시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성인 장애인 연극 동아리를 시작으로 예술교육을 시작했다. 지역아동센터 연극강사, 가족 문화예술교육 사업, 학교 예술강사로 활동하며 다양한 대상을 만나고 있다. 현재 예술단체 삼따의 대표를 맡아 예술교육과 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bonnieaa@naver.com

권지현 아주특별한예술마을, 보편적극단 연출
권지현

특수교육과 연극을 전공한 후 2012년 권주리 대표와 아주특별한예술마을이라는 공연단체를 시작했다. 장애 유무를 떠나 모두가 접근 가능한 문화·예술환경을 지향하는 단체 아주특별한예술마을과 보편적극단의 연출. <기억의 자리> <느릿느릿 엉긍엉금 거북이> 등을 연출했다.

gone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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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프로그램 사진제공_김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