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코로나19가 한창인 시점에 마을에 작은 극장을 열었다. ‘빛나는 사람들의 별별 이야기’라는 슬로건으로 과천의 민간극장 1호이자 마을극장을 연 셈이다. 이름은 극장이지만 창작공간에 가깝고, 작은 공연과 예술교육이 가능한 공간이다. 메이커스페이스 <시행차고>를 운영하는 동네 주민과 공동육아로 인연이 되어 춤, 연극, 콘서트 등의 소규모 공연, 다양한 예술교육과 쇼케이스까지 가능한 공간을 함께 꿈꾼 결과였다. 코로나로 활동이 제한된 시점에 로컬-택트가 더욱 중요하고 소중할 것으로 생각되어 지역 예술가로서 과감한(!)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지면서 지역 공공 공간이 문을 닫았지만 별별극장은 방역지침을 지켜가며 ‘경기 꿈의학교’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등 문화예술교육의 장이 사라지지 않게 지금까지 꾸준히 문을 열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민의 자부심이 사라진 순간
그런 과천에서 삐걱거림이 생겼다. 동네에 갖고 있던 자부심은 수치심으로 변해갔다. 문제의 발단은 과천문화재단 설립부터였다. 2019년부터 과천문화재단 설립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며 그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의회에서는 재단설립부터 예산을 삭감했다. 그때부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예술가들이 별별극장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해 4월 추경에서도 작년에 출범한 과천문화재단 주요 사업 예산과 과천축제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예산삭감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도 깊이 있는 고민도 대안도 제안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현수막을 만들어 동네 곳곳에 게시하며 시민들에게 이 사태를 알리려 했으나 게시한 지 12시간도 되지 않아 불법 현수막으로 간주해서 모두 철거되기도 했다. 당시는 과천축제를 하던 정부청사 유휴지에 주택건설을 한다는 정부 발표에 반대하는 현수막으로 온 동네가 도배되었던 때다. 바로 그 시점에 과천예술가연대 이름으로 내건 현수막만 떼어진 것이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내건 현수막을 동의 없이 철거한 시청 건축과에 항의했지만 납득되지 않는 답변뿐이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지역 문화재단의 사업예산뿐 아니라 오랫동안 지켜온 축제 예산을 전액 삭감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에 과천에 거주하고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은 분개하며 연대를 시작했다. 역할을 권력으로 착각하는 이들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과천 문화예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각 단체의 이익만을 외치는 것이 아닌 함께 행동하고 함께 학습한다는 것을 전제하여 지난 5월 22일 과천문화·예술연대가 출범했다. 릴레이 피켓 시위와 퍼포먼스 시위, 국회의원 간담회 등 여러 모임과 학습을 이어 나갔고, 이러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 영상 을 제작했다. 11월 6일에는 <축제를 기억해>라는 타이틀로 과천문화·예술연대가 함께 준비하는 축제도 개최한다.
하지만 문화예술 예산 삭감에 반발하는 과천문화·예술연대의 활동을 이기적인 행동으로 폄하하고 향후 지원 배제까지 언급한 어느 시의원의 모욕적 발언은 전국의 많은 예술가를 충격에 빠뜨렸고, 보다 못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에서는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입장문 을 발표했다. 그러나 입장문이 나온 이후에도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과천문화·예술연대에 속한 단체들이 국비와 도비로 받아온 지원사업 예산을 삭감했다. 매칭 사업이다 보니 시에서 예산을 반영하지 않으면 확정된 국비·도비도 집행되지 않는 상황이 매우 답답할 뿐이다. 또한 필자가 대표로 있는 예비마을기업 사업비 역시 5차 추경까지 올렸으나 결국 반영되지 않았다. 반대의 목소리를 낸 예술가 명단을 짚어내며 심의 사안과 관련해 명백히 무엇을 지적하는 것인지는 없고 정치색을 덧씌우려는 의도와 블랙리스트가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 사업에도 정치적 편을 만들어 그대로 적용하는 상황이다. 예술가들은 무조건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단 말인가? 예술가야말로 정치적이야 하지 않을까?
도시를 향한 예술의 상상은 정치적인가
문화 자치와 분권을 이야기하는 지금, 지역에서 예술교육을 만들고 공연을 제작하며 마을활동가로서 지역의 흐름과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예술가를 지켜줄 제도는 만들어져 있는가. 해마다 지원사업에 응모하고 수행하고 정산하고 나면 매서운 겨울이 온다. 내년에는 살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걱정과 불안이 엄습할 때면 다시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서를 만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 동네 과천에서는 내년이 떠올려지지 않는다. 예술이 하고 싶어 예술가가 되었고 좀 더 나누기 위해 예술교육가가 되었고 지속 가능과 유지를 위해 조합을 만들어 예비마을기업까지 이뤄내는 과정은 정말 순탄하지 않았고,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그렇게 지원심사를 통과해 이제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된 시점에 기초의원들의 정치적 편 가르기로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어이없는 현실을 마주하는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정말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예산이 삭감되었다고 창작과 상상력을 멈출 수 없었다. 직업이 예술가이지 싸움꾼이 아니지 않은가.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창작자의 기질을 발현해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를 기획했다. 공연과 예술교육의 장도 여전하다. <우리 동네에서 뭘 하고 놀아야지?>는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가장 재밌는 이야기, 마을의 이슈를 그대로 반영해 ‘과천축제예산 9억 삭감, 축제 없는 도시에서 뭘 하고 놀까!’라는 주제로 워크숍 혹은 파티 컨셉으로 딱딱하지 않고 말랑한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삭감된 예산 9억 원을 어디에 어떻게 써 볼까, 마을 사람들과 기획하고 상상하고 공유했다.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지금 우리 동네에서는 지역의 예술가들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당연하게 여겼던 문화예술 생태계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이번에는 현장 예술가들이 새로운 밭을 일구려 한다. 험난한 밭갈이가 예상된다. 올겨울은 더욱더 추울 것 같다.
석수정
석수정
무대 위 존재적 움직임에 중점을 두고 비전공자와 전공자 경계를 넘나들며 창작 안무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2014년 창작집단 움스를 설립하고 ‘누구나 가능한 몸의 언어’를 위해 다양한 대상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몸플학교> 외 다수의 워크숍을 개발하고, 참여형 창작 공연과 축제형 공연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과천에 이주한 지 9년차로 예비마을기업 별별문화기획 협동조합 대표, 과천 최초 민간극장인 별별극장 감독을 맡고 있으며, 마을활동가, 안무가, 기획자, 제작자이자 문화예술교육자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창작집단움스 @creativegroup_wombs
별별극장 @theater_byulbyul
별별문화기획 협동조합 @byulbyulculture.coop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