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슨 요상한 말일까? 더 많이 가져야 안전하고 행복한 시대에, 적을수록 풍요롭다니. 심지어 많을수록 빈곤하다니. 경제가 성장해야 생활이 안정되고, 그래야 문화예술도 꽃핀다는 것이 상식인데 빈곤을 강요하다니. 그런데 역사를 돌이켜보면 경제성장이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온 건 맞지만 모두를 풍요롭게 만든 건 아니다. 북반구의 풍요는 남반구의 희생을, 도시의 풍요는 농촌의 희생을, 자본가의 풍요는 노동자의 희생을, 건물주의 풍요는 세입자의 희생을 요구했다. 우리는 풍요로울수록 점점 더 불평등해졌고 특정한 문화가 다양한 문화들을 집어삼켰다.
  •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
    (마야 괴펠, 나무생각, 2021)
  • 『적을수록 풍요롭다 –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
    (제이슨 히켈, 창비, 2021)
공존을 위한 절제
독일의 경제학자 마야 괴펠은 경제적인 이윤만을 따지는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이 기후위기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경제성장이 지구 생태계를 파괴했고 그 결과 기후위기가 심각해졌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생계의 어려움에 대한 걱정이 언제나 자연의 위기를 앞지른다. 괴펠은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다양한 근거를 들어 설득한다.
경제성장이 불평등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인간에게 불행과 스트레스를 불러왔다는 역설(이스털린 역설), 에너지를 절약하는 기술발전이 외려 더 많은 에너지 소비를 폭발 시켜 기후위기를 심화시켰다는 역설(리바운드 효과)이 그것이다. 늘어나는 인구와 줄어드는 지구를 생각할 때, 그리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를 고려할 때, 더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 괴펠은 지구의 파괴를 더 이상 성장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요즘 유행하는 그린 뉴딜, 녹색성장은 어떨까? 괴펠은 내연기관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꿔도 그 배터리를 만드는데 필요한 희귀광물을 캐느라 환경이 파괴되고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비된다고 지적한다. “커다란 ‘SUV’에 장착되는 10kWh 배터리 제작에만 15~20t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 양의 이산화탄소는 연비가 좋은 휘발유나 경유 차량이 20만㎞를 운행하면서 발생시키는 것입니다.”(131~132쪽) 녹색상품이 우리의 삶을 구원하진 못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뭔가? 괴펠은 상품의 생산과 유통, 폐기까지를 가격에 반영하고 한정된 자원을 공정하게 배분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남은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하고 창의적인 대안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제 절제는 미래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가치가 되었다. 이제는 풍요에 의지한 문화예술에서 공존을 북돋우는 문화예술로 전환해야 한다.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책임을 떠맡으려 하지 마십시오. 환경을 지키고 미래 지향적 세계를 꾸리고자 하는 책임만 해도 우리에게는 벅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습니다. 어떤 경우든 절대 낙담하지 않고 유머와 웃음을 즐기는 것입니다. 미래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은 즐겁게 보람된 인생을 사는 일입니다.” (괴펠, 240쪽)
자본주의 너머로 가는 길
괴펠이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비판의 초점을 맞춘다면, 영국의 경제 인류학자 제이슨 히켈은 자본주의에 초점을 맞춰서 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비판을 가한다. 거대한 에너지 흡입기계인 자본주의를 탈출해 성장이 필요 없는 경제로 전환해야 인류의 미래가 지속할 수 있다. 필요 없는 물건을 낭비하는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번영과 풍요에 초점을 맞춘 경제, 포스트 자본주의 경제로 건너가야 한다.
히켈도 괴펠처럼, 꼭 높은 소득이 많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본다. 인간에게 중요한 건 소득 자체가 아니라 소득의 복지구매력이기 때문이다. 만약 “보편적 의료보장, 실업 보험, 연금, 유급 휴가와 병가, 저렴한 임대주택, 보육 서비스, 강력한 최저임금 같은”(242쪽) 복지체계들이 우리 삶을 지탱해 준다면 소득이 꼭 높아야 할 필요는 없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 3만 불, GDP 몇십 억불에 삶을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히켈은 성장을 벗어난 삶, 탈성장은 원시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필요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부문에서 무분별하게 성장을 추구하기보다 우리가 성장시키고 싶은 것(청정에너지, 공중보건, 필수 서비스, 재생 농업 등의 부문, 혹은 그 밖의 무엇이든)과 급격히 탈성장해야 할 분야(화석연료, 전용기, 무기, SUV 같은 것)를 결정”(58쪽) 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우리는 탈성장을 통해 더욱더 정의로운 사회, 풍요로운 삶을 만들 수 있다. 개인적인 실천도 중요하지만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채굴·생산·폐기의 미친 속도를 늦추고, 우리 삶의 미친 속도를 늦춰야 한다.”(272쪽)
히켈은 상품의 수명을 늘리고, 필요 없는 소비를 조장하는 광고를 금지하며, 다양한 물건들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고, 버려지는 식품을 잘 관리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산업을 줄이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안한다. 우리는 탈성장을 통해 꽤 매력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타인들과 공유할 매력적인 공유 공간을 만들고 광고가 자극하는 욕망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기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을 위한 시간과 공간도 성장이 아니라 탈성장 사회에서 더 풍부해질 것이다.
“공정하고 보살핌이 충분한 사회, 모든 이들이 사회적 재화에 공평한 접근권을 갖는 곳이라면 일상의 기본적 필요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염려하는 데에 시간을 쓸 필요가 없어진다. 그들은 삶의 예술을 즐길 수 있다. 이웃들과 끊임없는 경쟁 속에 있다고 느끼는 대신, 사회적 연대의 유대감을 만들 수 있다.” (히켈, 242~243쪽)
하승우
하승우
대학을 관두고 비수도권으로 내려와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하며 이런저런 일을 도모하고 있다. 지금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후정의운동, 토건사회에 대항하기 위한 예산감시, 탈성장과 순환경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후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hereandnowlab@gmail.com
이미지 제공_나무생각,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