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서 지역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대이다. 지역을 재발견하는 시선과 다양한 실천이 요구되는 가운데, 지역의 특이성을 발견하며 상상하고 연결하는 예술강사 한 분을 만났다. 현장 중심의 실천적 고민과 성찰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지역민과의 관계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전개해 나가는 삼천포예술학교 대표이자, 12년 차 사진 분야 예술강사인 박호상 작가를 만나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경험과 앞으로 그려지길 희망하는 ‘빅 픽처’를 들어보았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와 어떠한 계기로 예술강사 활동을 시작했는지 말씀 부탁드린다.
예술강사이다. 사진 작업을 하고 기획도 한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엉뚱하다고 하는데, 내가 버퍼링을 즐기기 때문인 것 같다. 사진은 일시 정지와 버퍼링이 필요하다. 버퍼링이 일어나는 순간을 주목하고 어느 지점에 함몰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어?” 하고 보게 되는 정지의 순간을 즐긴다. 2000년도 무렵, 대도시 작업이 많았던 시기에 풍경 사진 작업을 하다가 대도시 외부로 작업을 확장하고자 여러 지역을 다니던 중에 예술강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농촌 읍면 단위의 시골이 변모해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자괴감을 느꼈다. 지방 중소도시가 쇠락해가는 과정과 그로부터 밀려오는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다. 그런 대상을 그대로 옮겨놓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예술강사로 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나니, “그 장소에 가서 내가 하려고 했던 작업이 대상을 훔쳐 오는 행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작업과 예술 활동에 대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으로만 이뤄지는 작업이 아닌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과 직접 부딪히며 무언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며 예술강사를 시작하였다.
대도시를 벗어나 마주하게 된 풍경과 예술강사로서 그린 활동의 방향성을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 달라.
2000년 중반부터 도시로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텅 빈 모습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일하러 빠져나가고 노인들만 남아있었다. 학교도 없어지고 있었다. 대형 마트, 부동산이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대도시의 모습을 답습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악순환될 과정에 어떻게 개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이들이 없는 게 큰 문제였다. 아이들이 없다는 것은 3~40대의 생산 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식을 느낀 2010년부터 지역의 분교로 수업하러 다녔다. 전라도 해남, 신안, 고창, 강원도 태백, 영월 등 예술강사 신청 시스템에서 남는 학교들로 갔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지역 내 주민을 폭넓게 만나게 됐을 것 같다. 아이들과 어르신의 세대 통합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어르신들의 빅픽쳐> 2년 차에 부산 다대포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하는 작업이었다. 어르신들이 찍었던 옛날 사진을 모아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 지역의 변화를 아카이빙하고 영상 작업을 진행했다. 어르신들이 문화 향유자에서 직접적인 연대자 또는 실천자가 될 수 있도록 촉진해 보고자 했다. 영상 촬영하고 구술로 풀어내서 책으로 만드는 작업과 이를 모아 사이트를 구축해서 플랫폼화한다면 가까운 과거부터 동시대 이야기가 공유될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며 작업을 시작했었다. 올해는 두 군데 지역에서 진행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나름대로 큰 그림을 그린 프로젝트라 계속하고 싶다. 코로나 지나면 삼천포에서 프로젝트를 이어갈 계획이다. 지금은 유무형의 자원으로 개발하려고 방향을 잡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기획하고 실천하면서 사진이라는 매체에 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현대사회에서 사진은 보편적인 매체가 되었다. 그리고 영상 시대이다. 현재 사진과 영상 매체에 관한 생각은 어떠한가.
사진은 아날로그나 디지털 할 거 없이 보편적인 매체가 됐다. 매개체,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 관계의 상호작용에 집중한다. ‘디지털 문화’는 평등한 문화다. 사진을 가능성 있게 보는 이유는 과거에는 사진이 아카데미 한 배움이었는데 디지털화되면서 이제는 언제든 스마트폰으로 접할 수 있다. 물론 디지털 격차가 있긴 하지만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주목해서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사진을 관계나 상호작용의 측면에서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사진이 무엇일지가 아니라 사진을 가지고 내가 뭘 할지, 내가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을 연결할지를 질문하게 된다.
사진 작업은 기체 상태다. 고체나 액체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것하고도 같이 반응할 수 있는 것이다. 색깔과 냄새가 없고, 일종의 케미를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가능하다. 전대미문의 어떤 것들, 코로나 같은 그런 것들에서 예술의 의미를 찾고 집중적으로 표현하거나 극대화하는 활동을 사진작가들이 많이 한다. 그것이 예술이라고 하면 풀어내는 과정은 삶이다. 난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삶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삶을 풀어내는 과정, 또는 폭로하는 과정에 예술적이고 교육적인 면모이지 않을까. 예술교육은 그 중심에 있다.
<어르신들의 빅픽쳐>
삶을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과정, 예술교육 현장에서 케미 돋았던 사건이나 사례를 말씀해달라.
최근에 삼천포예술학교에서 <어르신들의 빅픽쳐> 활동을 할 때, 어르신들의 과거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무도장에서 댄서를 하셨던 어르신이 계셨다. 그 어르신을 따라 무도장을 따라가서 춤도 춰보고 여러 가지 어르신들만의 재밌는 문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지역 복지학과 대학생들과 연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같이 현장을 가보고 또 다른 어르신들을 만나 리서치 작업을 했다. 사진은 수단일 뿐이니까.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서 어르신들 수업할 때 비대면 환경으로 진행했다. 어르신들은 꽃을 찍는 걸 좋아한다. 코로나로 못 나가니까 꽃 씨앗을 사드렸다. 집에서 기르며 과정을 찍으시도록 했다. ‘이런 작업도 예술이 되고 다 예술이 될 수 있구나’라는 것을 학습 참여자와 예술강사가 함께 느끼게 된다면 이것이 일종의 케미가 아니겠는가.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어르신들과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나름의 묘안을 내오신 것 같다. 비대면 환경에서 노인 문화예술 활동을 하며 경험한 바에 대해 듣고 싶다.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노인 예술교육에서 가장 어려운 게 예술을 설명하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서다. 우리가 하는 행위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끔 하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 힘을 빼고 젊은이로서 만난다. 어르신들과 유튜브를 하고 있다. 앱(app)이 뭔지, 플레이스토어가 어딨는지 모르신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많으시기도 하다. 그렇지만 하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어르신들도 유튜버 하실 수 있다고 눈높이에 맞춰 계속해서 설득한다. 보통 복지관에서 수업하면 20명이 하는데 20명이 유튜브 만들면 구독자 19명이 저절로 생기는 거다. 조회수가 늘어나고 구독자가 생기고 좋아요가 생기니까 기분이 좋아지고 욕구가 계속 생긴다.
어르신들이 관심 두고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건 어떤 것인가.
남자분들은 등산을 많이 간다. 체력이 좋으신 분들은 자전거도 타신다. 산에 가면서 길을 찍어서 올리는 것을 좋아하신다. 나름의 콘텐츠가 되고 문화해설사로서 작업하시도록 촉진한다. 여자분들은 음식이 대세다. 자기만의 구술, 자기 특기로 콘텐츠화 하시도록 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누가 보나? 의심을 많이 하시지만 좋아요 눌린 것을 보면 좋아하신다. 나이가 많이 들어 연로하시면 밖에 못 나가는 경우가 있다. 누워서 생활하는 분도 계시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같이 사시면 건강식 만드는 법을 올리도록 권유한다. 노부부 두 분이 앉아서 노래 부르는 것을 올리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을 하며 댓글로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 인간과 사물이 연계되어 네트워크가 발생하는 것을 함께 목격하고 감각하면서 디지털 네트워크 중에서도 일상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뤄내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본다. 시골 산골에서 외로워도 그걸로 인해 외롭지 않을 수 있다.
  • 어린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삼천포 사진이야기
  • 현장 갤러리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보다는 어떤 사람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하게 된다. 고향인 삼천포에서 삼천포예술학교를 열게 된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면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로그램이 1,2년 정도 진행되었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기획자나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또 지역 문제를 외부의 자원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지역에는 자원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삼천포예술학교를 만든 이유는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잘 알고 있고, 고향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적극적으로 모니터링은 해야겠다는 목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2019년에 열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활동을 많이 못 했다. 자급자족으로 하고자 하는 의지로 공간을 계속해서 운영하는 상황이다.
삼천포예술학교의 목적이기도 한 지역 연구와 리서치를 기반으로 하는 기획이나 활동 사례를 소개해달라.
만나고 부딪히고 신체활동을 하는 과정을 작업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지역 어르신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일이 있었다. 최근까지 느낀 것은 어르신들의 입장에서는 도시에서 지방에서 내려간 내가 실패한 사람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을 만나서 얘기하면 허리부터 치료해야 한다. 요가나 무용과 접목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마을회관이 없으니까 프로그램 실행 장소를 물색하며 구조적인 문제와 마주하고 프로그램과 소통이 가능한 공간을 기획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가 지역에서 결혼하고 가정으로 이루고 살아가는 삶, 삼천포의 낚시 문화 그리고 삼천포로 낚시를 하러 오는 사람들과 지역민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동네의 변화, 관광 문화 뒤의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마주하면서 지역의 유무형 자원 리서치는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삼천포예술학교의 작업이 기대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2년 동안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할 것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어, 삼천포는 건어물이 유명하다. 그래서 물건 판매 영상촬영을 유튜브로 연계해서 어르신들이 직접 올릴 수 있는 갤러리를 만들어 놓았다. 어르신들이 직접 와서 건어물을 전시하고 촬영하고 인터넷에 올리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갤러리가 사랑방이 되면 좋겠다. 고향 사람인 내가 기획해도 진행에 있어서 보수적인 부분이 있다. 이는 젊은 사람이 없고 지역에 기반을 두고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생긴 문화라고 본다. 지역을 잘 알면서 커뮤니티 디자인의 관점으로 지역 문화 연대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 활동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박호상
박호상

상명대학교 사진학과 순수사진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예술학협동과정 박사를 수료했다. 부산비엔날레 특별전 《OUTSIDE OF GARDEN》, 《A SQUARE – 작은 공원이 있는 풍경》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다. 2010년부터 예술강사로 활동하며 초등학교와 노인 문화예술교육을 해왔으며, 서울문화재단 ‘청소년 창의예술학교’, 대림미술관 지역연계 프로젝트 ‘통의동에서 동인동으로’, 성남미디어센터 ‘어린이 사진가 나야 나’, 사진캠프 ‘어린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삼천포 사진이야기’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19년 고향 삼천포에서 ‘삼천포예술학교’를 설립하고 “삶이 곧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삼천포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함께 고민하며 예술교육이 중심이 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bodenlos@hanmail.net
만나고 싶은, 만나야 할 문화예술교육자를 소개해주세요!
현장에서 발견하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철학, 의미와 생각을 공유해주실 문화예술교육자를 소개해주세요. 독자게시판에 간단한 소개와 성함, 연락처 등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아르떼365]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습니다.
민경은
민경은
여러가지연구소 대표. 2010년 부천시 원미동에 여러가지연구소를 열고, 지금까지 대표이자 마담을 맡고 있다. 자기를 표현하며 삶의 경험을 확장해보는 교육, 개인의 표현이 소통되는 삶의 문화를 생산하며 사람 사이의 연대를 만들어가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무빙스쿨 ‘D.D.I.Y CAFÉ’, 원미동 수선 장인 안토니오 할아버지와 함께한 ‘땀땀공작소’, 텃밭 프로젝트 ‘밭&곁’, 여성들의 글쓰기 모임 ‘언니네 글밭’ 등 동네 주민들과의 소소한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박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