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을 때 완주에서는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복합문화지구 누에는 2015~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철거될 뻔했던 옛 호남 잠종장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초창기에는 예술가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되었고 현재는 완주 문화예술교육의 거점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목표와 방향 찾기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 거점 구축 지원사업 공모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던졌던 질문 – 군 단위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자립이 가능한 일인가? 그럴만한 자원은 있는가? 기존 문화예술교육과 어떤 차별점을 둘 수 있을 것인가? – 이런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공동체 하나하나를 만나는 일이 시급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완주지역에는 2012년 ‘아침에 수확한 농산물을 그날 저녁 식탁에 올린다’라는 개념으로 전국 최초로 시작되었던 로컬푸드 공동체를 비롯하여 사회적경제 소셜 굿즈 지원, 귀농·귀촌 지원 등 다양한 분야의 경험이 풍부한 공동체가 수백 개에 이른다. 지역 리터러시(Community Literacy) 확장을 위해, 마을 거점을 발굴하기 위해 기존 공동체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공동체가 잘 구현되고, 성숙한 것은 분명 장점이다. 그러나 기존의 활동이 견고한 만큼 자기 폐쇄적 성향이 강하기도 하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완주의 고민은 기존 공동체 역시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지역의 중요한 이슈로 인식할 수 있는가였고, 기초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인식 개선과 이해를 높여야 하는 과제는 늘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지역 스스로 이슈를 발굴하고 지역의 콘텐츠를 문화예술교육 과정으로 엮어가는 합의가 필요했다. 완주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 완주이어서 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 그리고 완주에서 구현할 문화예술교육이어야 했다. 그리하여 오랜 협의 끝에 시설 중심·기능 중심·전문인력 중심인 도시형 문화예술교육을 마을 중심·과정 중심·공동체 중심 ‘농촌형 문화예술교육’으로 완주에서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게 되었다.
“완주에서 만들고자 하는 농촌형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입니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며, 답변에 가장 자신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완주가 만들어가는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은 기존 문화예술교육의 혁신에 있다. 우리 마을에서 아이들이 예술가를 만나며 삶의 즐거운 본능을 깨울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일상화를 실현할 수 있는, 그래서 마을에서 일상적으로 문화예술 활동이 이뤄지는 것을 보며 자연스럽게 배우는 문화예술교육이 가능한 곳. 이것이 완주가 추구하는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이다.
「확장(Rhyzome) & 연결(Network)」
⦁ 시설 중심의 문화예술교육 체계에서 탈(脫)시설 및 마을로 확장
⦁ 예술 기법 중심에서 지역공동체의 이슈로 문화예술교육 영역 확장
⦁ 마을 중심으로 문화사각지대 발견 및 지역 확장
⦁ 새로운 문화예술교육 주체 발굴 및 연결
⦁ 권역별(마을 단위) 새로운 협업 플랫폼 구축 및 연결
2021년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 거점 사업 추진목표(복합문화지구 누에)
역할과 관계 설정
완주의 협업 플랫폼은 정책거점 ‘누에’와 작은 ‘마을거점’으로 이뤄져 있다. 정책거점은 작은 마을거점들이 주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컨설팅하고 지원하는 역할과 함께 연결하는 ‘협업 플랫폼’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점진적으로 마을거점의 프로그램 운영 연구, 네트워크 활동, 공간, 인력 등의 지원을 확대해 나가려고 한다. 완주가 구상하는 ‘농촌형 문화예술교육’이 성과를 거둔다면, 생애주기별로 요구되는 문화예술교육이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모여 사는 삶의 공간인 마을과 동네에서 연결되어 이루어질 수 있고, 우리 동네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생태계를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요자 관점에서 모두를 위한 교육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완주는 하향식 전달체계를 거부한다. 정책거점과 마을거점은 평등한 관계이며, 정책거점인 누에는 마을에서 스스로 찾아서 드러내고 발견하도록 일상적·지속적 관계 안에서 관찰하고 지원해주며 창의력을 자연스럽게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정책거점이 마을거점의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지, 마을거점의 주축이 되는 마을활동가와 참여 예술가의 역할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등은 현재까지도 마을거점 주체들과 끊임없이 반문하고 고민하는 논의점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부족한 지역 예술가 발굴과 양성의 책무를 짊어지고 가는 길은 가히 고난에 가깝다. 그러나 지역 스스로 만들어가는,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의 지속성을 위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더디지만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여기에 턱없이 부족한 예산, 답답한 현실을 헤쳐나가며 혁신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기존의 방식과 태도를 고수하려는 모습이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낯설음을 이해는 하지만,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해 버리는 현실 앞에서 분노하고 좌절하는 일을 반복하는 게 매번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행보를 멈출 수 없는 명분은 완주 마을거점 주체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디더라도 한 걸음씩
주민 스스로 지역의 이슈를 발굴하고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이 지속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기까지는 더디고 느리기 마련이다. 마을거점 주체인 공동체의 성장 속도가 더디더라도 완주가 가고자 하는 길은 하나다. 외부 전문가에 의해서 설계되고 실행되는 문화예술교육이 아닌 완주가 찾아내고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으로 완주 주민들은 행복하고 싶다. 기존 법칙에 맞지 않아도, 화려한 이력의 전문 강사가 없어도, 완주 문화예술교육의 정책거점 누에와 마을거점이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길에 대해 행정과 광역의 관대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완주 문화예술교육의 느슨한 네트워크가 뒤뚱뒤뚱 깨금발로 걷는 모습이 미심쩍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완주는 지역이 할 수 있고, 만들어낼 수 있으며, 지역과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는 완주만의 농촌형 문화예술교육의 모습을 찾아가고 싶다. 문화 분권, 문화자치 시대. 완주는 완주의 방식대로 깨금발로 가련다.
김진아
김진아
완주 복합문화지구 누에 총괄팀장. 익산문화관광재단 문화정책팀장으로 근무하다 2년 전에 완주로 옮겼다. 20~30대는 방송 작가로 10여 년을 보냈고 2009년 문화재단을 기웃거리다 현재까지 문화재단 언저리에서 살고 있다. 지역의 스토리텔링과 공동체의 역할에 관심이 높아 최근에 사회적경제 석사 논문으로 ‘완주지역 마을공동체와 문화이장 연구’를 했고, 박사과정에서도 문화예술 분야의 공동체 연구를 진행 중이다.
jina2600@wfa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