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예술이 만나는 순간을 찾기까지”
누군가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고 했는가! 어르신들과 만남을 이어 온 지 어느덧 13년. 어르신들을 오래 보며 그들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발견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꽃을 있는 힘껏 피워드리고 싶은 나는 어르신들에게 음악과 영어를 가르치며 삶과 예술이 만나는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나에게는 이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기까지 몇 차례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5년 전, 예술강사를 시작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스토리텔링 수업’ ‘삶의 이야기가 있는 수업’이란 말이었다.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예술 수업을 통해 이끌어 내는 것이다. 내가 처음 이해한 방식은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수업이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너무 좁게만 생각했던 것이 아쉬움이 남는다. ‘삶의 이야기가 있는 수업’에 대한 숨은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기까지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두 가지 사건을 소개한다.
꿈을 찾아주는 음악수업
예술강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평가가 있었다. 첫 현장평가라 내가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수업을 잘 진행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수업 계획에 돌입했다. 수업이 무르익는 후반기 25회차 수업을 진행해야 했던 터라 그동안 어르신들이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면서 변화된 생각이 나, 모습을 발견하고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노래 <에헤라 친구야>를 선곡했다. 그리고 세부적인 수업 계획을 세웠다.
에헤라 친구야 내 꿈은 하늘이라 / 거치른 바다를 포근히 감싸는 / 내 꿈은 하늘이어라
에헤라 친구야 내 꿈은 구름이라 / 파란 하늘 아래 한가로이 떠가는 / 내 꿈은 구름이어라
<에헤라 친구야>는 국악 리듬을 바탕으로 작곡된 곡이기 때문에 굿거리장단을 활용하여 여러 가지 리듬 치기를 하고 특별히 준비한 소고를 활용하여 노래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는데 노래에 ‘꿈’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바로 어르신들에게 “꿈은 무엇인가요?” 하고 질문을 던지면 수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준비한 노래와 어르신들의 삶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만들어갈까 고민을 많이 한다. 이것이 우리 예술강사가 ‘삶의 이야기가 있는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연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연결고리를 어르신들이 처음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했을 때를 떠올려보고 변화된 모습을 찾아보는데 두었다.
“이 노래를 계속 부르다 보니까 노래가 ‘내 꿈은 바람이고 하늘이고 구름인데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는 것 같아요. 제가 노래를 대신해서 어르신들의 꿈에 대해 여쭤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꿈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되고요, 어르신들의 삶 속에서 바라는 아주 작은 것이어도 됩니다.”
첫 수업 시간, 어르신들에게 꿈에 관해 물었을 때는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잘 죽는 거죠. 어른이 되고는 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답하였다. 나는 그때 꿈에 어르신들 자신이 빠져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래! 이것이 우리 부모님들의 마음이지’ 하면서 어르신들의 꿈을 찾아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가족, 자녀 말고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하고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참여자 1 : 내 꿈은 잘 죽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잘 죽을까가 삶의 고민이었는데, 수업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이 나이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제는 우쿨렐레로 멋진 곡을 연주하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참여자 2 : 맞아요. 우리 나이에는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연주를 하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나는 것 같아요. 저에게도 새로운 꿈이 생겼는데 우리 손녀와 함께 이 악기를 연주하는 것입니다.
참여자 3 : 요새 다리가 아파서 고생인데 내 꿈은 내 다리로 걸어서 이 수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후 서너 명 정도 더 수업에 참여하면서 변화한 자신의 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 꿈은 000입니다.’로 문장 쓰기를 하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25차시 수업 목표 중 하나가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었는데, 어르신들이 이야기를 잘 나눠주셨으니 수업 목표는 달성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다.
수업을 마치고 참관하셨던 선생님께서는 어르신들이 나눠주신 이야기가 참 감동적이었다면서, 우리가 준비하고 있던 발표회를 어르신들의 이야기로 시작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도 해주셨다. ‘어! 나는 수업을 통해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었는데, 선생님은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 자체에 관심을 가져주시는구나. 머리로 생각하고 계획해서 좋은 수업을 만든다 하더라도 내가 마음으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면 어르신들이 마음으로 하신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겠구나.’ 그 순간 마음이 꿈틀거렸다.
삶의 이야기가 흐르는 시간
‘삶의 이야기가 있는 수업’을 준비할 때 나는 의도성을 가지고 계획 아래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계획된 틀 속에서 나눈 이야기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있음을 발견했다. 어르신들은 노래를 부르다가 감동받은 구절이 있으면 그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집에서 악기 연습을 하다 힘들었던 것이 있으면 또 풀어놓으시고. 요새는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관심을 두는 자녀들의 이야기도 풀어놓으신다. “줌(ZOOM) 수업에도 도전하고 참여하는 우리 엄마가 최고네”라는 말을 들으셨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나도 같이 어깨가 으쓱하고 올라가고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 어디서 풀어져 나올지 모르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우연히 보게 된 고영직 평론가의 글 속 ‘온몸이 귀가 되어’라는 글귀였다. 처음 이 문장을 보았을 때는 아무 감흥이 없었는데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하면서 정말 온몸이 귀가 되어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진정한 삶의 이야기가 있는 수업이라는 걸 깨닫는 꿈틀이 일어난 것이다.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지역에 따라서 조금 다르게 표현되는 것을 발견한다. 올해 처음 강원도 지역 수업을 배정받아 방문하게 되었을 때 첫 만남부터 정겹게 맞아 주시는 고성군과 속초시 노인복지관 어르신들에게 스르르 마음이 열렸다. 수업 시간에도 그 정겨움은 배어 나왔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시는 모습은 지역에 상관없이 모두 같다. 하지만 지방의 어르신들과 수업을 하다 보니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서로의 입을 통해 흘러져 나오는 경우가 있다. 서로의 삶과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더 풍성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그에 대한 진심 있는 반응이 이어진다.
악기의 특성에 따라서도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다르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난타 수업을 할 때의 일이다. 오른손과 왼손을 일정하게 움직이며 연주하는 별달거리 장단을 연습하고 있을 때였다. “별달거리 장단을 치고 있으면 옛날에 다듬이질했던 것이 생각나요.” “맞아요, 어렸을 때 엄마를 도우며 할아버지의 하얀 옷을 다듬이질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저는 시집가서 처음 다듬이질을 배워봤어요. 우리 시어머니는 참 감사하게도 서툰 저에게 잘한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들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한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저는 아픈 기억이 떠오르네요.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먼 친척 집에 팔려가다시피 간 곳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며 허드렛일을 했고 다듬이질도 했습니다. 못한다고 얼마나 구박을 받았던지 그 순간이 트라우마처럼 내 삶에 남아있습니다.”라며 심정을 토로하셨다. 어머님의 아픈 사연을 들은 분들이 아픔을 공감하며 어머님을 위로하셨다. 어머님은 창피하기도 하지만 아픈 일을 털어놓으니 좀 후련하기도 하다며 다른 분들의 위로에 감사함을 표현했다. 악기를 매개로 이야기가 흘러나온 경우이다.
진심과 관심, 관계의 시작
어르신들과 삶의 이야기가 있는 수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강사와 어르신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러나 어르신들과 관계 맺기를 위한 나만의 비법 같은 건 없다. 그래도 꼽으라고 하면 진심과 이해 그리고 기억과 관심을 꼽겠다. 다행히 나는 어르신들이 어떤 것은 잘 모르고 조금은 느릴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고, 나의 엄마 아빠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담 없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몰라도 창피하지 않도록 편안하게 수업을 진행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어르신들도 그런 진심을 알아봐 주는 것 같다.
그다음 단어는 기억과 관심이다. 나는 어르신들 이름을 기억하고 자주 불러드린다. 출석을 부를 때는 어르신 한 분 한 분과 눈인사를 한다. 이때 어르신이 “네” 하고 대답한 다음 눈이 가면 안 되고 출석부에서 이름을 보고 이름을 부르기 전에 어르신의 눈을 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ooo 어머님” 하고 출석을 부른다. 그러면 어르신들끼리 “어머 선생님 우리 이름 다 외우셨나봐” 하면서 이야기 하신다. 그러면서 어르신들이 지나가듯 한 말이나 지난 수업 중에 이야기했던 부분을 기억했다가 꼭 다시 여쭤본다. 예를 들어 “지난 주 시골 잘 다녀오셨어요? 백내장 수술하신 건 좀 어떠세요?” 하면 어르신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표현되는 것 같다. 이런 시간이 쌓여서 어르신들과 관계가 깊어진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신다.
삶의 이야기가 있는 수업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삶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도, 삶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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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김선영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음악교육, 영어교육, 사회복지를 묘하게 접목해가며 음악 강사, 영어 강사로 학교, 복지관,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2017년부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로 노인문화예술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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