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은 장애인이 문화예술의 주체가 되어 예술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분야 중에 장애인복지관 담당자들이 가장 모호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분야가 영화 분야이다. “장애인 대상으로 영화교육이 가능한가요?” “이러저러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과연 영화 수업이 가능할까요?” 영화 분야는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가능’에 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 분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상혁 예술강사는 2013년 사회 문화예술교육에서 장애인 대상 영화 분야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교육을 해왔다. 앞선 선배 예술강사도 없었고 전혀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서 ‘가능’의 목표치를 스스로 정립해 왔을 것이다. 그가 9년간 장애인 대상 문화예술교육을 했던 경험과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교육 철학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어떤 대상과 수업을 했는지 소개해 달라.
2009년부터 13년째 영화교육을 해오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어린이부터 75세 장애인까지 거의 전 연령대 대상으로 수업을 했다. 학교 문화예술교육은 13년이 되었고, 사회 문화예술교육은 2013년 정식으로 영화 분야 장애 수업이 출범했을 때부터 해서 9년이 되었다.
장애인 대상 교육은 어떻게 시작을 하게 되었나?
학교 예술강사를 5년 정도 했을 때 매너리즘에 빠졌다. 국어 교사였던 은사님이 말씀하셨던 게, 수업 전에 농담 칠 것을 책에 적어두며, 똑같은 소설에서 똑같은 농담을 하는 자기를 보고 내가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나도 어느 순간 공식처럼 매번 똑같은 것만 하고 있었다. 그즈음 장애 분야가 생긴 것을 알고 도전했다. 면접 볼 때 장애인 교육 경험이 있는지, 장애인을 만나본 적 있는지 등 우려 섞인 질문이 있었는데 사실 사촌 누나가 발달장애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봐 온 누나이고, 익숙하고 좋아했다. 장애인에 대한 걱정이나 이들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진입장벽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13년 동안 영화교육에서 가장 마지막에 만난 대상이 장애인이다. 장애 분야는 어떤 매력이 있나?
장애인과 수업하면서 어떤 대상과도 수업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부심이 생겼다. 사실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막연히 초등학교 저학년에 맞추면 다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는 지체, 지적, 자폐 등 다양한 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을 때였다.
장애 수업에서 최고의 매력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장애인 학교 수업에서는 해야 할 내용이 이만큼 있고, 반응이 어떨 것이고, 성과가 어느 정도일 것이라는 예상이 된다. 장애인 대상 수업은 전혀 그런 데이터가 없었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하나둘씩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장애인 참여자와 함께 작품을 만들 때는 1년 차 보다는 그다음 2~3년 차 때가 훨씬 더 좋았다. 익어가는 술처럼 서로 케미가 맞아 가면서 참여자뿐만 아니라 기관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중엔 한 팀처럼 된다. 함께 발전하고, 찾아가는 재미, 결과가 예상되지 않고, 열린 결말인 점이 좋았던 것 같다.
장애인 대상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라포’와 ‘관찰’이다. 우선 친해져야 한다. 툭툭 말을 건네면서 친해지게 되면 수업 끝나고 나를 기다리는 참여자도 생기고, 잠자다가도 일어나서 맞이해주기도 한다. 이런 순간들이 지나면 그만큼 수업이 원활해진다. 관찰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는지 따라가며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장애인복지관이나 주간보호센터 등에 가보면 문화적 프로그램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프로그램 일정이 꽉 차 있다. 그중에서 내 수업을 더 기억해주고 더 재미있어 해주기를 바라는 욕심은 있다. 결과물을 떠나서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다. 웃는 모습을 보이고, 신나서 소리를 질러도 좋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진행하며 ‘나’라는 사람이 해가 되지 않고 그들과 같이 놀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생기면서 라포가 형성된다. 그때 관찰을 통해서 그들이 흥미 있어 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수원시장애인복지관에서 참여자와 함께 만든 단편영화 <수장복혈투>를 보았다.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예술강사와 참여자들의 콜라보가 제대로 된 작품이 아닌가 생각했다.
수원시장애인복지관에 3년째 출강했을 때 만든 작품이다. 담당 복지사와도 호흡이 잘 맞았다. <수장복혈투>는 장애인과의 영상 제작에 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이전에는 영화를 찍을 때 시나리오도 써야 하고, 이야기 구조도 갖춰져야 하고, 대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나름 6~7개월 정도 장기 프로젝트였다. 1~2년 동안 같은 참여자들을 만나며 간단한 연기도 해보고 카메라에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졌고 참여자들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했다. 당시 캐릭터들이 독특했다. 그들을 관찰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스토리 속에서 그들 평소 모습 그대로를 캐릭터화했다. 그리고 말을 잘 못 하거나 글을 못 읽는 참여자가 많으니 그것들을 빼고, 무성영화처럼 음악을 깔고 거기에 스토리를 가미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퍼즐을 좋아하면 퍼즐을 하고 훌라후프를 좋아하면 훌라후프를 돌리고, 춤을 좋아하면 춤을 춘다. 주인공으로 나온 분은 평소에도 이소룡의 노란색 트레이닝복과 쌍절곤을 좋아해서 그런 캐릭터로 설정했다. 촬영 당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서 그런지 크게 NG가 나지 않았다. 이야기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작품이 나올 수 없지만 참여자들이 즐기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고,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 살리되, 하나의 포맷으로 묶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무엇보다 담당 복지사와 합이 잘 맞았고 아이디어를 시나리오화는 과정에서 복지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완성했다. 언제 돌발 연기를 펼칠지 모르기 때문에 액션! 컷! 하지 않고 찍었다. 쉬는 시간 없이 카메라 계속 켜놓았다, 사실 편집을 엄청나게 했다. 쓸만한 컷을 계속 찾아 완성한 작품이다.
<수장복혈투> 장면 중
소재를 찾고,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하는 등 모든 제작과정이 영화교육의 과정이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 과정을 예술강사가 다 하고 장애인 참여자는 연기를 주로 했다.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을 한 적 없나?
영화 제작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이 하기에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 중 어떤 부분에서 그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할지 최대한 고민한다. 또한 그냥 ‘화내는 연기를 하세요.’가 아니라, ‘여자친구가 없어졌다면?’ ‘제일 좋아하는 젤리를 빼앗겼다면?’ 등의 예를 들며 자연스럽게 감정을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최대한 상호작용하려고 한다. 솔직히 그 이상은 힘들었다.
모든 대상이 그렇겠지만 특히 장애 분야는 같은 대상을 최소 2~3년은 만나는 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한다고 갑자기 감정 표현을 잘하거나 연기가 엄청나게 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보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만들 때 의견을 내기도 한다. 2년 정도 수업했던 복지관에선 참여자들이 당일 촬영인 것을 알고 미리 삼각대를 펴놓기도 했다. 장애인 대상 교육은 한 기관에서 1년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해야 한다. 단발성으로 메뚜기 뛰어다니듯 준비해 놓은 것만 훑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중증 장애인도 영화교육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가능’의 목표치가 있나?
웃으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주관적인 기준이다. 그리고 기관에서는 어느 정도를 생각하는지 물어본다. 장애인 참여자를 만나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가능한 것의 범위를 알아보는 편이다. 물론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2시간 동안 즐겁게 무엇이든 할 수는 있다. 사실 장애인 대상은 진짜 영화에 국한된 수업만 할 수 없다. 미술, 연극, 크로마키, 종이 오리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한다.
소통카드를 활용한 수업을 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수업인지 소개해 달라.
‘AAC(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그림카드’라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보완대체의사소통 카드가 있다. 안산시장애인복지관에서 이것을 활용한 지역사회 연계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지역 마트에 카드를 배포하고 장애인이 왔을 때 그 카드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리키면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영화 수업에서 이 활동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실제 이 카드를 활용하는 마트를 찾아가 인터뷰를 해보고 싶었다. 그들의 인식,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다. 질문지도 만들어보고, AAC 그림카드를 만드는 과정도 촬영하고, 장애인이 마트에서 인터뷰도 하면서 뉴스 영상을 만들었다.
참여자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수업은 어떤 것들이 있나?
크로마키 합성 수업을 많이 하고 있다. 참여자들이 신기하고 재밌어한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가수가 있거나,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은 가수 뮤직비디오와 합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형광물감을 활용한 블랙라이트 수업에서는 얼굴에 물감도 칠하고 가수 클론의 뮤직비디오처럼 연출하기도 했다. 사실 모든 참여자가 다 좋아하고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다. 누군 좋아했고 누군가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여러 수업을 해오면서 느끼는 것은 참여자 중 한 명이라도 재미있어하면 그 수업은 완전히 실패한 수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패했다고 생각한 수업도 있었나?
영화 감상 수업. 발달장애인에게 영화 보는 수업을 했는데 30분 정도 지나서 대부분 집중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미안한 감정이 들더라. 그 이후로 영화를 보여주는 수업을 하지 않는다.
장애인 대상 수업을 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코로나를 겪으며 많은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었다. 주변 강사들과 연락했을 때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가 요즘 무슨 수업을 하는지였다. 사실 비장애인 수업은 비대면 수업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대상이 장애인이 되면 불가능한 것이 많아진다. 특히 영화 분야는 촬영을 해야 하는데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할 시 어려운 점이 너무 많다. 비대면으로는 어떤 수업을 해야 할지 고민도 많이 되고 굉장히 힘들었다. 요즘엔 실시간 비대면으로 크로마키 촬영도 하고 있다. 복지사님이 내 의도와 다르게 촬영하기도 하지만 현재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예술강사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교육과 목표가 있는지,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에 관심 있는 영화학과 후배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13년째 수업을 이어오고 있는 대안학교가 있다. 싸움도 잘하고 몸에 문신도 있는, 소위 문제 학생들이 많이 오는 학교였다. 3년째 되었을 때 영화를 만들어서 출품했는데, 단편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그 친구들이 나가서 상 받는데, 내가 만든 영화를 올렸을 때처럼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런 희열과 뿌듯함을 교육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내 영화를 찍어 올리는 것과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감독의 꿈을 가지고 영화학과에 들어가지만 사실 그중 극소수만 감독이 된다. 현실적인 방향에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는다면 교육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나 역시 처음엔 교육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영화를 찍기 위한 발판이 될 거로 생각했는데 교육을 할수록 갈증이 생겨서 교육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도 했다. 계속 교육을 하다 보니 나와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적성이 맞는다면 교육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능숙해지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전상혁
전상혁

중학교 때부터 음악과 영화의 꿈을 가지고 자라 용인대학교 영화영상학과에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단편영화 <회색도시> <음모론> <만수무강하세요> 외 다수의 작품을 연출했으며, 영화 <취화선>을 시작으로 몇 편의 장편영화에 스태프로 참여했다. 품안의예술학교 대표로서 영화를 기반으로 한 통합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강의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외에도 라오스 동덕대학교 매스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영화제작 실습수업, 가톨릭영화제 제작 워크숍, 경기필름페스티벌 영화제작캠프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강의했다. 현재 학교·사회 예술강사로 활동하며 매번 새로운 대상자에 알맞은 교육 방법과 재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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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희
성보희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장화홍련> <싱글즈> <황산벌> <말죽거리 잔혹사> 등 다수 영화에 사운드 에디터로, <야수> <1번가의 기적>에 스크립터로 참여했다. 이후 2009년 학교 예술강사로 활동을 시작하고, 2012년 시범 사업부터 장애인 대상 영화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서울문화재단 TA, 지역아동센터, 시청자미디어센터 강사로 활동하며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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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프램 사진제공_전상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