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섬
아이슬란드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은 『시간과 물에 대하여』 서문에서 ‘기후변화’라는 단어가 대다수 사람에게는 “백색잡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인지를 뛰어넘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그 안의 많은 소리를 부정하거나 넘겨짚고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해수면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멸종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매일을 살기 위해 애쓴다. 『그림자의 섬』에 등장하는 테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기나긴 악몽 끝에 왈라비 박사를 찾아간 그는 이런 결론에 마주한다.
“당신, 테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 씨는……멸종되었습니다.”
– 다비드 칼리, 『그림자의 섬』 중
다비드 칼리와 클라우디아 팔마루치의 몽환적인 그림책 『그림자의 섬』에서는 이처럼 멸종된 동물들이 섬으로 간다. 멸종 외에도 다양한 악몽이 존재하지만(이 악몽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책 속 그림에서 확인해 보라) 멸종은 왈라비 박사조차 치료할 수 없는 악몽이다. 동물들의 영혼은 ‘유령의 섬’으로 모이게 된다. 테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도 마찬가지로 배를 타고 물을 건너 이 섬에 도착한다. 이들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테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가 ‘섬’에 도착하는 사이 누군가는 자신이 살던 섬을 떠난다. 이지현 작가의 그림책 『마지막 섬』의 이야기다. 책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노인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진다. 자연과 평온하게 공존하며 일상을 보내던 노인의 터전에 점점 물이 차오른다. 노인은 떠나야만 한다. ‘마지막 섬’에 살던 노인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이제 우리 모두 그 노인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 테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
    [사진출처] 타일러사인박물관 ⒸE.J.Keller
  • 『그림자의 섬』, 다비드 칼리(글), 클라우디아 팔마루치(그림),
    웅진주니어(2021) |『마지막 섬』, 이지현, 창비(2021)
두 개의 선
“우리는 모두 (같은 폭풍우 속에 있지만) 다른 배에 타고 있다.”
이 문장은 ‘기후 정의’를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는 방법이다. 2021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기점으로 탄생한 영국의 시민 연합 ‘COP26 Coalition’에서도 이 문장을 제목으로 기후 정의에 관한 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이 ‘폭풍우’는 단순한 비유의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이 여름은 많은 것을 휩쓸고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지구 이곳저곳의 도시들이 물에 잠긴 것을 보았다. 한편 어떤 지역에서는 폭염과 가뭄으로 물이 마르고, 어떤 지역은 도시가 녹고 있다. 지금 잠깐 비가 그친다고, 오늘 조금 덜 덥다고, 이번 여름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대한 물의 흐름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을까?
다행히 우리 곁에는 기후변화의 ‘백색잡음’ 속에서 뚜렷한 ‘선’을 긋는 예술가들이 있다. 그중 두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페카 니티비르타(Pekka Niittyvirta)와 티모 아호(Timo Aho)는 스코틀랜드 아우터헤브레디스(Outer Hebrides) 제도에 빛으로 선을 그었다. 〈Lines (57° 59′ N, 7° 16’W)〉는 센서를 통해 조수 변화에 반응하며 미래의 해수면 상승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며 지금까지의 파멸적 관계가 가져다준 장기적인 효과를 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실제로 작품이 설치된 아트센터와 주변 섬들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
이브 모셔(Eve Mosher)가 2007년 뉴욕에서 시작한 프로젝트 〈만조선(HighWaterLine)〉은 뉴욕, 필라델피아, 마이애미, 브리스톨 등에 분필로 선을 그어 왔다.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전시에서도 작업이 소개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한 명의 예술가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다양한 단체와 커뮤니티가 함께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적은 기후변화를 시각화하여 지역 내부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회복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프로젝트는 워크숍과 공공 예술 활동을 연계하고 있다.
배를 짓는 시간
갈릴리시클리드, 도도, 리틀스완후티아, 레드레일, 윈난호영원, 부발하테비스트……. 『그림자의 섬』 겉표지 안쪽에는 이처럼 사라진, 또는 곧 사라질 이들의 이름과 모습이 나온다. 우리는 언젠가 ‘마지막 섬’을 떠나 ‘유령의 섬’에서 이들을 모두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섬을 떠나기 전 배를 지을 시간이 남아있다. 조금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이 배에 누구와 함께 탈 것인지, 또 얼마나 큰 배를 만들 것인지(또는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너무 심각해지지만은 말자. 우리 곁에는 늘 함께 ‘선’을 긋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사람들, 다양한 모양의 공존과 항해를 고민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이혜원
이혜원
다국적 공연예술컴퍼니 블루밍루더스의 공동예술감독으로 놀이와 오브제, 움직임을 통해 연극을 만들며 지구의 다양한 울림, 만남의 감각을 전하고자 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벨벳토끼>, 멧돼지들을 위한 <바위가 되는 법>, 여성들을 위한 <남의 연애>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최근 기후위기 속에 태어난 아기들을 위한 소리극 <환영해>를 만들었다.
haeweon_yi@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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