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했다. 사실 몇 해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구상한 프로그램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2008년 시작된 현장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다. 현장 인문학이란 넓은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들’, 이를테면 빈민, 재소자, 홈리스, 장애인 등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가난한 사람들 곁을 지켜온 활동가들과 몇몇 인문학자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들었다. 활동가들은 무기력한 채로 고립된 사람들에게 시급한 것은 삶의 의지와 욕망을 살려내는 일이라고 했다. ‘빵’만 던지는 것이야말로 한가한 짓이라고, 정말로 절실한 것은 ‘빵’이 아니라 ‘장미’라고.
2008년 나를 찾아온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야학)의 활동가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 학교에는 “뛰어내리려고 옥상에 세 번이나 올라갔다는 자살미수 3범”도 있고, “서른 살까지만 살고 죽을 거라며 죽을 날을 미리 받아 놓은 시한부 인생”도 있다고. 그런데 “죽고 싶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나 살고 싶다’가 핵심”이라고. 그는 이 사람들을 살리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실패의 연대기
이렇게 해서 노들야학에서의 내 수업이 시작되었다. 당시 야학 입구에는 델포이 신전의 문구처럼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만약 당신이 우리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히 결합하여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멕시코 치아파스의 원주민 여성이 했다는 말인데,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게 일어날 일에 대한 신탁과 다를 바 없었다.
내 수업은 그야말로 실패의 연대기다. 첫 학기를 니체의 책으로 시작했다. 니체의 저서들을 소개하자마자 학생들은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심각한 문제가 나타났다. 한 학생이 몸을 비틀며 힘겹게 무언가를 물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했다. 처음에는 다시 말해달라고 했지만 더는 부탁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준다고 해도 알아들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적 속에서 나 혼자만 떠들어대는 괴로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다행히 이 질식할 것 같은 상황은 나중에 해소되었다. 니체의 문장에 자극받은 학생들이 나타났고 나도 학생들의 발음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정신장애인 학생이 수업에 들어왔다. 정신장애인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에 열심인 사람으로 철학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대목을 읽으며 나는 산등성이에 오른 존재의 위험에 관해 이야기했다. 높은 곳을 향해 오르다가 문득 혼자라는 걸 알 때가 있다고, 정상은 보이는데 좀처럼 거기 닿지 못하면서 정상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길을 나선 것에 대한 후회까지 밀려올 때가 있다고, 그때 많은 영웅이 자기 불신에 빠져 망가진다고 했다.
내 말이 끝나자 그 학생이 말했다. 산등성이가 아니라 산 아래, 그러니까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을 때가 훨씬 위험하다고. 내가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말하자 정신장애인들이 복용하는 약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더니 어느 순간부터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황한 나는 그의 손을 잡고는 이해할 수 없다며 제발 앉아달라고 했다. 내 표정을 본 그는 크게 낙담했던 것 같다. 수업 후에 이야기를 다시 나누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교사대표를 만나 그 학생은 철학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빠른 결정이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노들야학에는 언제부턴가 지적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다. 지적장애인은 정신장애인과 또 달랐다. 학생들은 또렷하게 말했고 쉽게 말했다. 하지만 수업이 시작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바로 잠들거나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화장실 가고 싶다며 문을 열고 나가기 일쑤였다. 방금 말한 것을 물어도 제대로 답하는 경우가 없었다. 나는 또 한 번 교사대표를 찾아 지적장애가 심한 경우 철학 수업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철학 교실에는 정신장애인도, 지적장애인도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수업은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입장권을 얻은 사람들에게만 내놓는 장미. 현장 인문학을 시작할 때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인문학이야말로 힘이 된다고 했는데, 이제는 너무 가난한 사람은 인문학을 공부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느덧 나도 아카데미의 철학자와 다를 바 없었다. 칸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두뇌의 많은 병은 사회 속에서 생겨나며 사회 속에서 치유될 수 있다고. 당장 치유하지 못하더라도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하며, 설령 병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할 때조차 어느 정도 완화하는 것은 가능하며, 철학자는 의사와 함께 그 길을 찾아야 한다고. 그러나 그런 그도 두 부류의 사람, 즉 광인과 백치는 제외했다. 이성이 없거나 이성으로 인도될 가망이 없는 존재들은 공적인 존재가 될 수 없으며 자유로워질 수도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철학이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이다.
예술로부터 얻은 질문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지적장애인 동료들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였을까. 알록달록 그림을 그리고 신나게 노래하고 격렬하게 춤을 추는 모습을 부러워하면서였을까. 아니면 광기를 자기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만들어가는 정신장애인들을 만나면서였을까. 내게는 나의 실패가 장애인의 무능력이 아니라 철학의 무능력에 대한 폭로처럼 보였다. 언어와 이성 바깥에서는 사유하는 법을 모르는 철학자가 좁은 교실을 법정 삼아 철학의 자격, 자유의 자격, 인간의 자격을 논했던 건 아닐까.
그러던 중 한 전시회에서 길을 여는 질문을 만났다. 전시회 제목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였다. 전국의 맹학교 학생들과 진행한 아트 프로젝트라고 했다.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직접 코끼리를 만져본 후 빚어낸 코끼리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감각한 바에 따라 만들어낸 온갖 형상의 코끼리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상들이었지만 틀림없는 코끼리였다. 기분 좋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 프로젝트는 본다는 것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뒤흔들어놓고 있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각장애인들이 떠올린 이미지는 가짜인가. 그럼 내가 떠올린 이미지가 진짜인가. 나는 이 프로젝트가 미술로부터 미술을 구원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릴 수 없는가. 내게도 같은 질문이 생겨났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철학을 할 수 없는가. 나는 이 질문이 철학으로부터 철학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선은 장애인들의 독특한 생각과 삶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할 것이다. 우선은 철학자가 실패하고, 인문학자가 실패한 곳에서 더 많은 웃음이 터져 나와야 할 것이다.
여담 하나. 노들야학에서 그리스 비극 읽기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이 지난주에 웃으며 내게 말했다.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낸 수수께끼 있잖아. 처음에는 발이 네 개인데 다음에는 두 개가 되었다가 그다음에는 세 개가 되는 게 뭐냐고. 오이디푸스가 인간이라고 답하자 스핑크스가 자살했다는 이야기. 수업 시간에 그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 웃었지 뭐야. 우리 학생들은 전부 인간이 아니더라고.” 인간이라고 대답한 오이디푸스도, 그걸 정답으로 인정해서 투신한 스핑크스도 웃음을 자아낸다. 인간에 대한 질문도 대답도 모두가 엉터리다.
고병권
고병권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철학의 눈으로 우리 사회와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지 공부하고 있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십여 년간 공부하며 강의했다. 철학자 니체의 생각을 풀어낸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언더그라운드 니체』 『다이너마이트 니체』, 다양한 현장에서 삶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담은 에세이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살아가겠다”』 『철학자와 하녀』 『묵묵』,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생각한다는 것』 마르크스의 『자본』을 해설한 『북클럽자본 시리즈』 등을 썼다. 지금은 노들장애인야학의 철학교사이자 노들장애학궁리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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