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역시 사람들은 서로를 멀리하며 지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전보다 더 소수의 인원만, 아니 가능하면 그 소수의 인원도 서로를 위해 모이지 말아 달라고 한다. 변이 바이러스는 그렇게 사람들의 물리적 사이와 거리를 더 멀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흐름과 만남에 대한 욕구로 인해 소통의 방법이 점점 발전하며 우리는 현실 공간이 아닌 온라인 공간에서 만나고서 수업을 듣고, 회의하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문화예술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공간에서 오감을 나누며 진행해야 할 예술교육에 기술이 들어오고, 진화된 기술은 수업의 영역을 확장하기도 하지만 배척하기도 한다. 필자가 함께하는 발달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서는 기술의 진화가 이들의 예술적 영역을 더 갇힌 공간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일례로 팬데믹 이후 온라인 예술교육이 일상이 되었지만, 발달장애인의 속도로 천천히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자극을 받고 오감을 통해 느끼고 알아가며 서로 시선을 맞추고 연극 작업 속에서 교감하기에는 어려웠다. 온라인 안에서 이뤄지는 일방향적인 소통이 이들에게는 더욱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었다. 교육을 프로그래밍하고 이끌어야 하는 나에게도 과학과 기술은 너무 빨리, 무섭게 변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나 스스로 아날로그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과학과 기술의 변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변명일 수도 있다.
  •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사계절, 2021)
  • 『산책을 듣는 시간』
    (정은, 사계절, 2018)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김초엽, 김원영 두 글쓴이가 이야기하듯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의료에서부터 더 발전하고 있다. 치료라는 명목하에 ‘정상’이라는 명제를 강요하며 발전되는 것이 누굴 위한 것이었는지 이 책은 묻는다. 정상은 무엇인가? 기술은 누구의 입장에서 발전하는 것인가? 기술의 발전은 필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사이보그의 기계적 요소의 활용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사용과 비사용을 논하기 전에 단순한 선택을 존중해야 하며 존중받아야 한다. 그전에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존중, 인정함이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 사람으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그들이 선택하고 거부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이야기하는 존중은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지점과 닮았다. 문화예술교육은 다양한 사람이 함께하는, 존중하는 과정과 방법을 가장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나누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을 진지하게, 때론 문제에 거리를 두고 체험하고 생각해 보며,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는 과정을 나누고 표현하며, 또 다른 생각의 이해와 다가서기를 한다. 문화예술교육을 할 때는 만나게 된 인연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과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아야 한다. 나의 호흡이 아닌 상대의 이야기와 움직임을 기다리고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과 행동을 중요시해야 한다.
장애인, 비장애인을 굳이 나누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원한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그 점을 더 강조한다. 과학의 기술을 이용해 일상을 편하게 지내든, 기술의 편리함을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 생활하든, 패션처럼 필요에 따라 다양한 보조기구를 선택하든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고 결정이며, 장애인이 항상 도움을 받기만 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시간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고 소설 『산책을 듣는 시간』이 떠올랐다. 산책을 듣는다! 제목부터 산책을 보고 느끼는 것에서 더 확장하여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의 주인공 수지는 농인이다. 소리를 ‘듣는다’라는 것이 뭔지 모른 채 살아왔던 수지는 학교에 들어가면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헤드폰을 쓰고 피부에 와 닿는 진동을 통해 음악을, 아니 소리를 느낀다. 수화와 보청기로 소통하던 수지는 할머니와 가족이 ‘보호’라는 명목으로 강요하는 인공와우 수술을 하며 두려움과 무서움에 마음으로 외친다.
“왜 내가 그걸 원할 거라 생각하죠?”
음악 작업을 하며 있는 그대로의 수지를 좋아하는 전색맹인 한민, 그의 개 마르첼로와 함께 셋은 ‘산책을 듣는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산책을 듣는 사업을 하게 된다. 함께 있지만 혼자 있는 듯했던 서로에게 산책길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끼는 것을 설명해 주며 혼자서는 지나쳤던 다른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나눈다. 물론 때론 아무 말 없이 그저 울어버릴 수 있는 시간도 갖는다. 수지는 아픔을 지나면서 엄마와 세상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을 존중하고 선택을 존중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그 시간을 존중할 것을 다짐하며 산책을 계속한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문화예술교육이 그러할 것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연극 수업에서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끼는 것을 설명하고 가볍게 지나쳤던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나눈다. 이들의 공연에 음향과 조명 등 무대를 꾸미고 빛나게 해주는 기술적 요소가 반영되지만, 그들이 무대에 올라서 자신의 언어로 공연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정치적 견해,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 「문화기본법」 제4조(국민의 권리)
두 책은 「문화기본법」 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이 지켜야 하는 원론적인 이야기이자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있는 그대로의 존중과 인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도희경
도희경
아동청소년극 전문 제작 단체인 아트 컴퍼니 노닐다의 대표와 연출을 맡고 있다. 연극 기반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주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누구나 편안하게 “연극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무대를 지향하며, 문화예술은 그 대상의 차별 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 청소년 역시 문화예술을 체험하며 삶의 기쁨과 행복 안에서 사회와 잘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gomjaku@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