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음악을 어떻게 감각할까. 청각을 통해 들리는 소리로?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로? 음악을 처음 배우던 순간은 어땠는지 떠올려보자. 계이름과 악보 보는 법을 먼저 익히기도 하고, 혹은 악기를 다루는 손 모양을 통해 음악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음악을 감각하는 것은 아니다. 종종 그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감각하는 사람에게는 불친절한 방법으로 음악을 안내하기도 한다. 가령, 영화 속에서 음악이 나오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비장애인은 영상 속에서 음악이 나오는 순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고 느낄 수 있겠지만, 청각장애인에게는 고작 폐쇄자막에 [음악] 또는 [경쾌한 음악]이라는 글자만 제공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특히 청각장애인은 청각 예술로 여겨지는 음악을 어떻게 즐기거나 배울 수 있을까. 여기, 장애인을 위한 음악 교실을 진행하고 있는 <비비웨이브랩(BB Wave Lab)>이 있다. 비비웨이브랩은 모던록 밴드 ‘배희관밴드’가 2020년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음악 교실이다. 리더 배희관(보컬, 기타)과 김성일(키보드) 등 밴드 멤버들이 함께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시각, 청각, 지체, 발달장애인으로 대상을 확대하여 일대일 음악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예민하게, 다르게 들으며 터득한 시간들
무더운 어느 날, 시각장애가 있는 김성일 강사와 시각장애가 있는 류청 참여자의 건반 수업 현장을 방문했다. 가는 동안 잠시 피아노를 가르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모두 비장애인이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계이름을 알려주는 것을 시작으로, 건반을 보며 손 모양과 위치를 잡아주고, 악보를 통해 피아노를 가르쳤다. 내가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비비웨이브랩 수업을 상상해보려고 하니 잘 그려지지 않았다. 김성일 강사의 수업에서는 마침 화음을 배우던 참이었다. 두 개 이상의 음이 어울리는 소리가 화음이란 것을 알려주며 계이름이나 건반 위치로 설명하기보다 소리로 화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피아노 앞에서 어떠한 교본이나 악보도 필요 없이 소리와 손으로 감각하는 순간이 계속되었다.
밴드 리더이자 시각장애인인 배희관 강사는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특수학교 교사로 일한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악기를 다뤄왔고 작곡도 하고 밴드도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학교에선 배희관 강사에게 음악 수업을 맡겼다.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경험이 쌓일수록 교육 대상에 맞춘 방법을 연구한다면 장애인 음악교육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벗어나 좀 더 확장된 음악교육을 모색하면서 비비웨이브랩을 시작하게 되었다.
장애인 대상 음악교육이 쉽지는 않았지만, 배희관 강사 본인도 자신의 힘으로 음악을 터득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때의 경험이 음악교육의 토대를 만드는 데에 든든한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시중에 많은 음악 교본과 악보가 있지만, 대부분이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나온 책이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인 그가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기는 쉽지 않았다. 조력자가 있다면 좀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 또한 대부분 비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음악적 도움을 얻으려면 그 이전에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이해가 먼저 필요했다. 이처럼 그가 음악을 배우기 위해서는 항상 다른 사람보다 한 단계를 더 거쳐야 다음 관문으로 갈 수 있었다.
악보나 교본을 통해 음악을 배워가는 비장애인과 달리 배희관 강사는 처음 기타를 배울 때에 기본적인 손 모양을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익힌 다음 청음을 통해 기초적인 손 모양을 점차 확장하며 적용해 나갔다고 한다. 음악의 베이스를 먼저 듣고, 그 위에 얹어질 수 있는 음들을 추측하여 듣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음악의 본래 목적인 ‘듣기’에 더 집중하여 악기를 익혀갔던 것이기도 하다. 백지상태에서 악기를 하나둘씩 배워나갔던 시간 덕분에 비비웨이브랩 수업을 기획할 때도 배우는 사람의 관점에서 단계별로 어떤 것이 힘든지 더 세심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 문자통역 서비스로 수업을 보조하는 장면
  • 우퍼조끼를 착용하고 건반을 연주하는 장면
가장 도전적인 음악 수업
처음 비비웨이브랩을 시작할 때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도전적이어서”라고 그는 말한다. “음악은 어쨌든 소리라서, 도전하는데 가장 주저하는 사람들이 청각장애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청각장애인은 어떠한 방식으로 소리를 감각할 수 있을까. 우리가 대부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시각장애는 전맹(全盲), 청각장애는 전농(全聾)일 것이라는 오해다. 시력이 0으로 빛을 지각하지 못하는 전맹은 확률적으로도 5%에 불과하다고 한다. 청각장애인도 마찬가지로 전농이기보다는 난청인 경우가 많아서 보청기 등 보조 장치를 통해서 소리를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다. 비비웨이브랩 수업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수강생 역시 우퍼조끼, 진동 스피커와 같은 장치의 도움을 받아 악기가 내뿜어주는 진동이나, 진동의 리듬을 통해 어느 정도 소리의 높낮이를 느낄 수 있다.
처음으로 우퍼조끼 같은 보조 장치를 활용하게 된 것은 배리어프리 축제인 ‘페스티벌 나다’를 통해서였다. 페스티벌 나다를 기획한 독고정은 대표는 공연장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음악 공연에 우퍼조끼를 도입하게 되었다. 이렇게 기술적 장치로 촉각과 시각의 보조를 통해 청각장애인도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배희관 밴드에서도 비비웨이브랩에 장애인을 보조할 수 있는 도구를 들여왔다.
“각 장애 영역별로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너무 다르고 다양하다. 10명의 시각장애인이 있으면 그 안에서도 다 다르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교육자에게는 더 세심함이 요구되는 작업일 것이다. 시각장애인 음악교육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점자 악보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비장애인이 보는 악보에서는 음악의 구성음, 공간적 개념을 한눈에 볼 수 있지만 점자 악보에선 음악 기호가 수직적이 아닌 줄글로 펼쳐져 있어서 악보 분량이 많아지고, 화성(chord)을 보기도 쉽지 않다. 악보를 보는 클래식 음악에선 필수적일지 몰라도, 코드를 기본으로 때론 즉흥성이 요구되기도 하는 실용음악에서는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연주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 청음으로 듣고 암기해서 연주한다든지, 음악적 아이디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면 미디 작곡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음악을 들려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비비웨이브랩 수업에서는 참여자마다 각자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먼저 이뤄진다. 참여자가 악기를 배울 때에 필요한 최소한의 환경적인 요건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참여자와의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직접 만나서 어떤 장애적 특성이 있는지, 접근성에서는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파악한다. 관계 형성 또한 중요하다. 그다음은 여느 음악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참여자의 노력만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전문적인 악기 연주를 배울 수 있는 곳은 거의 전무하다. 장애인 당사자도 악기를 직접 배운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장애에 대한 이해를 가진 음악교육자도 많지 않아서 예술로서 음악교육의 확산은 쉽지 않다. 비장애인의 음악교육과 달리, 장애인을 위한 음악교육은 생활 예술로서 쉽게 퍼지지 못하고 어딘가에 따로 만들어지거나 분리되고 있다. 장소에 대한 접근성,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모두 낮은 상황이다. 배희관 강사는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분리하기보다는 장애·비장애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예술교육의 접근성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의 예시가 미디(MIDI) 작곡 프로그램이다. 비비웨이브랩의 수업에서나, 합주에서 음악적 아이디어를 공유할 때 주로 미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소통하는 편이다. 다행히도 ‘로직 프로(Logic Pro)’ 같은 미디 프로그램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이스오버 기능이 잘 되어있는 편이다.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미디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연주의 한 음 한 음을 악기별로 들어볼 수 있어서 효과적이다. 이처럼 장애인들을 위한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기존에 비장애인이 활용하고 있는 프로그램, 자원 등을 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 배희관 강사(왼쪽)와 김성일 강사(오른쪽)가 참여자와 함께 음악 수업을 하고 있다.
새로움이 또 하나의 장벽이 되지 않도록
예술교육의 본질적인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장애인에게 특히 예술교육은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지에 관한 물음에 배희관 강사는 “도전에 대한 성취”와 “궁극적으로는 행복 추구”라고 답한다. 음악을 하다 보면 장벽을 계속 만나게 된다. 늘 쓰던 미디 프로그램에 새로운 기능이 업그레이드됐을 때 장애인 뮤지션들은 그것을 활용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이후에도 업데이트된 내용을 연구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새로움이 하나의 장벽 같이 느껴지는 것”이 힘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지만 가장 뿌듯할 때도 그런 장벽을 한 단계씩 넘어갈 때다. 비비웨이브랩 참여자들 또한 악기를 배우면서 그런 어려움이 있을 터이다. 참여자들이 ‘장벽’을 만나는 순간 그는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악기는 기능이지만, 기능 이전에 열정이고 열망이라고 생각한다. 반복해서 하다 보면 손가락 힘도 늘어나게 되고, 어느 순간 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바라보며 천천히 차분하게 설명한다. 언젠가는 된다. 소리가 안 난다고 답답해하지 말고, 소리를 못 내는 이 손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 배희관 배희관밴드 리더, 기타리스트, 특수학교 교사
참여자가 어떤 장벽을 만나더라도 자신을 신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도와주는 것. 어쩌면 비비웨이브랩의 수업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자에게 가장 중요한 기다림이 아닐까. 비비웨이브랩 수업 현장에서 만난 참여자에게 음악 수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코로나로 혼자 고립되어 있는 시간이 많았고, 코로나 블루로 인해 고생했던 마음을 비비웨이브랩에서 음악과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기에 수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배희관 강사와 김성일 강사 또한 수강생들이 한 회기가 끝나고 “힘들었지만, 더 배우고 싶다”라고 할 때 가장 교육자로서 뿌듯한 순간이라고 한다. 아마 음악이 가지고 있는 여러 힘 덕분에 교육자도 참여자도 이 음악교육을 지속하는 것일 테다.
비비웨이브랩에서 음악은 다양한 방법으로 감각된다. 누군가는 귀를 통해 들리는 소리로, 손의 감각이나 떨림으로, 혹은 다른 사람과의 반응을 통해 음악을 느끼기도 한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감각하지 않기에 우리는 음악을 통해 더욱 서로가 연결되어있음을 느낀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의 말을 인용해본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보에 적혀 있지 않다고.
박다현
박다현
작곡가이자 티칭아티스트. 일상의 소리로 무언가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며 연극, 무용 등 다른 장르의 예술가와 협업하며 음악을 만들고 있다. 2017년부터 서울문화재단 TA로 활동하며 음악을 만드는 동시에 음악으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하며 살고 있다.
bornfre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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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사진제공_페스티벌 나다
사진_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