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세 가지 즐거움 중의 하나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라 했다. 가르치고 나아지고 달라지는 것을 보는 즐거움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백현호 예술강사가 소리꾼으로, 연구자로, 대학 강사로, 방송인으로, 국악 아카펠라그룹 토리스의 동인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예술교육만큼은 놓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가르치는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음악을 배우는 것이 즐거워서 차근차근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판소리를 전공으로 택하게 되었고, 그 즐거움을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소리를 배우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눈매는 그대로 우리 음악의 미래가 될 것이라 예감하는 백현호 강사. 그가 언젠가는 국악 대안학교를 세우고 싶다고 꿈꾸는 것이 그저 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학생들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백현호 예술강사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판소리를 전공하는 백현호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학교·사회 예술강사로 10여 년 정도 예술교육을 하고 있고, 현재 판소리 공연, 교육,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국악 분야 예술강사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솔직히 처음에는 안정적인 수입이라는 동기도 있었다. 하지만 교육을 시작하고 강원도 삼척이나 충남 서천, 경북 안동 등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저도 시골 출신이기 때문에 좀 더 젊을 때 시골에 가서 분위기를 느끼고 아이들을 발굴해내고 싶었다. 삼척 같은 경우는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시골 분교였는데, 시골의 정겨움,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은 잊기 어렵다. 경기도 안성에서 초등학교 1,2학년 때 저한테 배웠던 학생 중에는 판소리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한 친구도 있다. 특히 아이들은 판소리나 민요를 가르쳤을 때, 스펀지처럼 흡수를 잘한다. 거리가 먼 곳으로 수업을 다닐 때는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 당시는 20대였기에 열정적으로 찾아다녔다.
연주 활동과 교육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데, 공연 활동과 학교·사회 예술교육 사이에서 어떤 방향을 추구하고 균형을 이루고자 노력하는가.
공연하는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 또한 제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다. 예술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성실하게 쌓아가는 기초가 중요하다. 저 역시 어린 시절에 선생님들께서 ‘먼저 인간이 돼라’라고 하셨던 걸 기억하며 실기 외에 학생들의 인성교육도 신경을 쓴다. 교육할 때는 엄하게 가르치는 편이다. 때로는 호랑이 선생님이 되기도 하지만 저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없다. 제자들이 제 흉내를 내면서 웃기도 한다. 성실하고 진정성 있게 가르치려는 저의 진심과 노력을 아이들이 알아주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교육 현장이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코로나 시대의 예술교육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코로나 시대의 교육이 쉽지 않다. 민요나 판소리 자체가 학생들에게 생소하고 어려운데,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표현과 전달이 잘 안 되어 난점이 있다. 국악 교육이 전반적으로 위축되었지만, 차츰 적응해 나가고 있고, 비대면 실시간 형태의 수업을 잘 활용하고 있는 편이다. 대면 수업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영상 수업에서는 표정을 모두 볼 수 있고 학생들은 크게 소리를 내며 부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케이팝, 한류 등 전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시대에 판소리 교육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세계화 시대의 트렌드에 발맞추는 것 또한 이 시대에 해야 할 교육의 방향 중 하나이다. 과거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개방된 다양화된 교육, 거기에 맞는 교육안을 짜서 학생들에게 교육의 흐름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요나 판소리를 교육할 때 전통을 바로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학생들이 좋아하는 요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가사를 바꾸거나 혹은 아리랑에 일상적인 이야기를 가사로 붙여서 하도록 유도하면 학생들이 더 실감을 느끼면서 좋아한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요즘에는 유튜브에 학생들이 좋아하는 영상이 많이 나와 활용하기가 좋다. 초등학생에게는 <아기상어>, 중·고등학생에게는 BTS가 부른 <아리랑> 등 이들이 충분히 즐기고 관심을 가질만한 좋은 국악 영상이 많아서, 수업하기가 수월해졌다. 영상 시대를 맞아서 앞으로 점점 더 국악 수업이 큰 변화를 맞지 않을까.
판소리의 빠른 장단이 마치 랩 하는 것 같기도 하니 그런 걸 교육에 활용해도 좋겠다.
저도 우스갯소리로 ‘랩의 원조는 판소리’라고 한다. 학생들이 판소리의 빠른 장단을 배울 때, 빠르게 부르다가 발음이 꼬이니까 웃으면서 하게 된다. 처음엔 생소하게 생각하다가도 랩처럼 재미있어한다. 그래서 랩 같은 휘모리장단 부분을 반드시 넣어서 부르도록 하고, 발성을 뒤집어서 요들송처럼 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잘 뽑아내서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예술 활동과 예술교육을 병행,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가 언젠가는 국악 대안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일부러 시골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국악을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우는 학생들을 돕기 위해서다. 목도 좋고, 끼도 있고, 인물도 좋아 잘할 것 같은데 형편이 어려워서 소리를 배우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아서 국악 분야에 좋은 인재로 커나갈 학생을 발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몇몇 학생을 국악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갈 수 있게 가르치고 키웠다. 이 학생들이 대를 이어서 국악인으로 커나가면 그 이상의 보답은 없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대안학교를 세워 재능있는 여러 학생이 국악인으로 클 수 있게 하고 싶다. 한편, 송도에 정착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는데, 국제도시인데도 국악 쪽만 페스티벌이 없고, 인프라가 전혀 없는 점이 안타깝다. 언젠가는 전통음악이 주가 된 페스티벌을 열고 싶다.


특별히 의미 있었던 교육 현장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학교는 안성에 있는 광선초등학교이다. 아내가 방과후교실 가야금 강사로 활동하게 되어서 같이 갔다. 이 학교는 학생 수가 점점 줄어 폐교 위기에 처하자, 방과 후 교육으로 바이올린 및 다양한 악기를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가 가야금을 가르치게 됐고, 학생들이 실력을 키우고 국악 교육이 잘 이루어지자 오히려 다른 학교에서 일부러 전학을 오면서 학생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방학 특강으로 시작했던 저도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신청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만났던 학생 중에 서울대 국악과에 판소리 전공으로 진학한 학생도 있다. 제가 만났을 때 초등학교 2학년 어린 학생이었는데도 초롱초롱, 열정적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내에게 가야금을 배운지 1년도 안 돼서 청소년 예술제에서 1등도 했다. 결국 경기도 교육청에서 국악 특성화 학교로 지정했고, 기업도 투자하게 됐다. 학교의 제도적 교육, 기업, 예술강사가 함께한 좋은 사례다. 2012년도에 <스타킹>이란 프로그램에도 섭외가 됐다. 그 계기로 2013년 <인간극장>에도 ‘소리 부부가 사랑한 아이들’ 편으로 출연하게 됐다. 예술교육으로 안성의 작은 시골 학교가 살아났다. 지금도 다른 강사들이 국악 교육을 하고 있다. 그게 제 인생에서 예술교육으로선 가장 큰 에피소드이다. 한 다섯 명 정도 제자를 키웠다. 가장 보람 있는 일이다.
예술교육자로서 본인만의 철학, 관점, 방향은 무엇인지 듣고 싶다.
중요한 요소가 여럿 있겠지만, 남녀노소 세대를 불문하고 인생의 가치 중에 ‘즐거움’이란 덕목을 빼놓을 수 없다. 어린아이들이 소리를 배우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교육이 성공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들과 즐겁게 소통하고 웃으면서 가르친다면 그 즐거움 속에서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예술교육 측면에서 즐기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려운 공부’처럼 여겨지면 안 된다. ‘공부’가 되는 순간 아이들이 어려워하고 멀어지게 된다. 가르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즐기는 것이다. 나도 교육이라 생각하면 어렵다. 가르치면서 함께 배우는 것. 가르치는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와 학생들 간의 소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예술강사로서, 또 예술가로서 어떤 계획이 있는지 이야기하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올해로 예술강사로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10년 동안 많은 학생을 가르치면서 보람도 많았고 저 스스로 교육하길 잘했다 하는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제도적인 측면이 함께 가지 못한다면 예술교육이 더 나아지기 힘들다. 국가적으로도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10년, 제 개인적인 예술가로서의 인생, 교육자로서의 인생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꿈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이 일이 잘못된 일이 아니고, 불법적인 일이 아니고, 모두가 잘되고자 하는 일이기 때문에 초심을 잃지 않고, 제가 받았던 사랑을 아이들에게도 펼쳐 대한민국에 더 많은 국악인이 나올 수 있도록 예술교육에, 전통 예술에 이바지하고 싶다.
백현호
백현호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 국악 아카펠라그룹 토리스 동인. 박송희, 전정민, 성창순, 안숙선, 조상현 선생께 사사했으며, 박록주제 흥보가 완창 발표회(4회)를 비롯하여 활발하게 공연, 교육, 방송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4 제19회 전국판소리경연대회 명창부 대상, 2021 제12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 등을 수상했고, 창작국악앨범 《그리랑》(2020) 등 세 장의 음반을 발매했다. 2010년부터 국악분야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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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원
송지원
음악학자.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음악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사람과 학문의 건강한 소통을 모색하고 있다. 국악방송(FM99.1MH)에서 <국악산책>을 진행하면서 음악의 인문학적 지평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선왕실의 음악문화』 『정조의 음악정책』 『한국음악의 거장들』 『조선의 오케스트라 우주의 선율을 연주하다』 등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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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