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생애 전환을 꿈꾸며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더 배우고 겪어야 할 뭔가가 많다. 그러니 또 이런 책에 손이 갈 수밖에 없다. 『생애。전환。학교』 책 표지에 적힌 ‘모험을 디자인하는 신중년 문화예술 수업’이라는 부제도 마음을 끈다.
  • 『생애。전환。학교』 (고영직 외 10인, 서해문집, 2021)
전환을 위한 탐색과 재탄생
어린 시절, 화가들이 쓰는 베레모와 이젤,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화구가 담긴 컬러 박스가 무척 갖고 싶었다. 우수에 젖은 시인이 쓰는 만년필과 원고지, 책상 같은 것도 매혹의 대상이었다. 『생애。전환。학교』에서 경계한 ‘재현적 사고’, 즉 과거를 끌어와 미래를 예단하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나’ 중 하나를 기억하며 분석하고 싶은 거다. 그 시절의 나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나보다 ‘갖고 싶어 하는’ 내가 앞섰다. 겉으로 멋있게 보이고 남들에게도 그럴듯해 보이는 나를 꿈꿨던 거다. 아마도 그런 성향은 꽤 오래 유지되었을 것이다. 나 자신을 탐색하기보다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를 꾸미려고 하루하루 허겁지겁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100%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50+인생학교’(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공부하고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도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예전의 나’와는 다른 ‘나’를 계속 재탄생시키는 중이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전환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시기에 다다랐고, 이제는 엄마, 아내, 딸, 며느리 같은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나 자신으로 인생을 꾸려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50+인생학교’를 찾았고, 그곳에서 나를 세우기 위한 세 가지를 목표를 얻었다.
첫째, 내가 가진 자산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잘 관리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것을 포함해서 지인들과의 관계, 경험으로 쌓아 올린 다양한 노하우를 포함한 자산 챙기기다. 둘째, 누군가를 지배하지도 지배당하지도 않는 자율적인 인간 되기다. 셋째는 내 인생 드라마의 결말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목표를 실천하는 것이 어려울까? 그렇지 않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면서 나를 탐색하는 시간을 깊이 가질 수 있었던 덕분이다.
‘예술’이라는 삶의 나침반
몇 년 전 <문학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 <자연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 <품격 있는 고난으로 한 달 살아보기>로 나뉜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에 오랜 독서 모임 친구들과 함께 참여했다. 우리는 ‘내 인생 신화 찾기’라는 큰 주제를 정하고 <자연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에서는 ‘바다’에 따른 명상을, <품격 있는 고난으로 한 달 살아보기>에서는 ‘연극’을 배웠다. 1년 반 동안의 예술 활동으로 우리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궁극의 지점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완벽하게 깨우치지는 못했지만, 찾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예술 활동이 어떻게 우리를 깨닫게 하고 변화시키는지, 우리를 충만감으로 물들게 하는 게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처음 접한 토론연극과 즉흥 재현극을 해보면서 여러 친구들이 감명을 받았다. 사실 우리 모임 친구들은 <품격 있는 고난과 함께 살아보기>에서 연극을 하면서도 속마음으로는 사진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우리 중 누군가 “연극이야말로 누구든 꼭 해봐야 할 예술”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연극 강사로 참여했던 극단 ‘해’의 김현정 대표는 “예술교육은 질문을 찾아내면서 함께 배우고 스스로 깨우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그렇게 스스로 깨우쳐가고 있었다. 어쩌면 연극이 아닌 사진을 배웠더라도 같은 마음일 수도 있다. 『생애。전환。학교』에 나온 다른 참가자의 이야기, 사진을 찍고 시를 지어 녹음한 활동도 감동적이었으니….
물건이 아닌 ‘나’로 채워진 집
『생애。전환。학교』에 담긴 수많은 사례 중에는 내 얘기도 있고 지인들의 얘기도 많다. 그리고 아직도 모르는 세상, 낯선 길이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길어진 인생 여정에서 생애 전환에 대비한 공부가 필요한 사람들은 ‘신중년’이라 불리는 5, 60대뿐일까? 2020년 유엔이 발표한 새로운 연령 구분에 따르면, 0~17세가 미성년, 18~65세가 청년, 66~79세가 중년, 80~99세가 노인, 100세 이상이 장수 노인이라고 한다. 『노화의 종말』이란 책에서 싱클레어 교수는 단순한 수명 연장뿐만 아니라 활력 연장과 노화 회복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모든 경험을 다 할 수 있는 걸까?
지난해 4월, 대구에 사는 지인이 뇌출혈로 쓰러져 이틀 만에 발견되었다. 응급실로 실려 가서 급히 수술을 받은 후 의식은 돌아왔지만 스스로 보살피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지인이 살던 집을 정리하는 것을 도우러 갔다. 그 집에는 사놓고도 쓰지 않은 물건들이 무척 많았다. 쓰임 없는 물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물건, 물건, 물건들. 그 속에서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역할을 잃어버린 물건 몇 가지를 정리했다. 죽음이나 갑작스러운 병고가 나이 많은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건 아니다. 이 책에서 얘기하듯이 몸이 있다고 다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물건이 주인일 수는 없다. 늘 하던 관성으로 특별한 의미도 모른 채 살아왔다면 어떤 형태로든 멈춰서 자신을 탐색하고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다음에 방향을 찾아 나가야 한다. 모든 세대에게 생애 전환이 필요하다. 비록 장수 노인 세대라 해도.
나는 지금 새삼 다짐해본다. 경험보다 소유를 우선하지 않으리라. 앞으로는 내가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생각하고, 갖고 싶은 물건은 최소한으로 제한할 것이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많은 경험과 지혜를 보여줄 수 있는 노인이 되고 싶다. 젊은이에게 선배 시민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늙어가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생애。전환。학교』를 벗들과 함께 읽으며, 다양한 삶의 전환에 관해 얘기하며 배우고 깨달으려 노력할 것이다.
배홍숙
배홍숙
30대부터 이런저런 공부를 시작해 5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공부하고 있다. 작은 도서관과 학원에서 어린이 청소년 독서와 글쓰기 수업을 했다. 고양문화재단 도슨트와 50플러스 캠퍼스 홍보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는 행복한그림책연구소 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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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제공 _ 서해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