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예측하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나고 예술계에도 큰 위기가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도, 예술도 계속된다. 여러 변화와 위기의 순간을 지내온 예술가들이 각자의 삶을 지키고 예술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네 명의 예술가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본다.
 
① 박찬국 여기서 예술/작가
  
② 정진세 극단 문 대표, 극작가‧연출가
  
③ 박성선 미리오페라단 예술감독
  
④ 이성미 시인‧여성문화예술연합 대표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질문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이 확산되기 시작하자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의 문이 닫혔다. 영화 촬영이 중단되고 작은 서점의 행사와 창작 수업이 취소되었다. 예술과 문화는 사회의 필수적인 일로 인정되지 않았다. 저수지에서 물이 빠지면 바닥의 지형이 드러나듯 코로나19는 교육, 주거, 노동과 고용에서의 약자가 누구인지, 누가 사회안전망에 포섭되지 못한 취약계층인지 드러냈다. 예술인의 70% 이상이 프리랜서로 사회보장제도에 편입되어 있지 않으며, 예술인이 그동안 안전망 없이 취약한 창작환경에서 예술 활동을 해왔다는 것을 코로나19 국면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문화예술사업이 중단되고 공공기관 지원사업이 연기되자 대안이 없었다.
불안정한 일과 소득으로 창작 여건이 불안정한 것은 오래된 일이다. 올해 내가 일을 잘해도 내년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매년 이런저런 공공지원사업에 신청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선정되기 전까지는 한 해의 수입을 예측할 수 없다. 예술 활동 연차가 높아진다고 예술 활동 보수가 많아지지도 않으며 활동 여건이 안정되지도 않는다. 연예인처럼 예술인 역시 업계에서 새로운 예술가로 교체되는 주기가 점점 빨라졌다.
나는 올해로 데뷔 20년 차가 되었다. 중견 예술인들 앞에는 어떤 미래가 있을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성평등예술지원소위원회가 아르코 지원제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시각예술분야 개인 선정자 비율은 남성의 경우 30대 42.5%, 40대 37.9%, 50대 10.5%이다. 여성은 50대의 하락 폭이 더 큰데, 30대가 49.1%, 40대가 37.4%, 50대는 7.5%이다. 중견 예술가는 왜 점점 보이지 않는 것인가? 여성 배우는 나이가 들면 왜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라지는가?
예술을 그만두는 예술가들
2019년 젊은 여성 무용가가 남성 현대무용가의 성추행을 고소했다. 무용계에서 일어난 ‘위력에 의한 성추행’은 법원에서 징역 2년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여성 무용가는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무용계를 떠났다. 피해자의 지인 5명이 재판에 나와 모두 가해자의 편에서 위증을 했고 이를 본 피해자는 정신적 충격을 심하게 받았다고 한다.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용을 다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커졌다고, 절대 무용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피해자와 연대한 다른 여성 무용가들이 전했다.
2020년 김금희 소설가는 3년 동안 저작권을 출판사에 양도할 것을 조건으로 한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을 거부했고, 전년도 대상 수상자인 윤이형 소설가는 이상문학상에 항의하며 절필을 했다. 윤이형 소설가는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인데 계속 부조리에 얽히게 됩니다. (…) 더 이상 제가 무엇에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부조리에, 범죄에, 권리 침해에 일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 지금까지 일을 해 오면서 저는 문학계에 지뢰처럼 깔려 있는 이와 같은 수많은 문제와 부패와 부조리들을 한 명의 작가가 제대로 다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으며 “일하지 않는 것이 내 작품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작가를 그만두었다.
등단제도를 거부하고 소설을 쓰는 20대 여성이 10~20년 차 예술가들에게 “다들 어떻게 먹고사는 거예요?”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딱히 해줄 답이 없어서 민망했다. 우리에게 미래는 너무 불투명하고 내년에도 예술가로 존재할 수 있을지 우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인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중견 배우는 “다시 태어난다면 예술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저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예전에 나는 창작 에너지가 고갈되어 예술을 그만두는 상상은 해보았지만 불안정한 활동 여건과 예술가들을 함부로 대하는 예술계 때문에 예술을 그만두고 싶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016년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때 받은 충격으로 나는 1년 이상 시를 쓰지 못했고 시를 읽을 수도 없었다.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등단을 목표로 하지 않는 글쓰기 수업이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나는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들의 글이 어디에서 엎어져 있는지,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찾는지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 잊고 있었는데 나는 전문가다.
  •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을
    국회에 촉구하는 여성문화예술연합의 카드뉴스
  • ‘코로나19 예술포럼-예술의 가치와 미래’ 포스터
     
언택트 시대에도 예술은 지속되겠지만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영화 <기생충>은 상찬받았지만, 예술작품과 콘텐츠를 만드는 예술가들이 어떤 조건에서 창작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사회와 정치는 관심이 없었다. 성폭력, 불공정행위, 블랙리스트 작성 등에 의한 권리침해 발생 시 피해를 구제하는 절차를 담고 있는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은 20대 국회 때 통과되지 못했고,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되었지만 아직 상임위원회 법안심사도 거치지 못했다.
2020년 7월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공동주최하는 ‘코로나19 예술포럼-예술의 가치와 미래’가 7회에 걸쳐 열리고 있다. 팬데믹 시대에 공연, 시각예술, 예술인 복지, 예술교육 등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모색하는 포럼이다. 비대면 방식은 교육, 비즈니스, 서비스업, 예술 등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지만, 언택트 시대에도 예술은 지속될 것이다. 아이돌은 교체되지만 케이팝(K-pop)은 발전하듯이.
그러나 ‘나의 예술’은 지속될 수 있는가? 나는 예술가로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언택트 시대에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예술이 아니라 예술가이다. 예술가가 생존할 수 있다면 예술은 새로운 예술 발표 형식을 만들어내며 지속될 것이다. 달라져야 하는 것은 질문의 틀이다. 예술이 어떻게 변화할지 묻는 것, 그러면서 예술가들은 개별적으로, 그룹별로 창의성을 발휘해 버티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지속적으로 창작을 할 수 있도록 안전하고 공정한 환경을 만들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묻는 것. 코로나 시대에 해야 할 질문은 그것이다.
이성미
이성미
시인. 시집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칠 일이 지나고 오늘』 출간. 2017년부터 여성문화예술연합(WACA)에서 예술계 성폭력 해결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beebonbon@naver.com
이미지 _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