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거리 두기’의 삶은 생태계의 보전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한편,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후로 ‘여가(餘暇)’를 바라보는 관점과 즐기는 방법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 ‘일과 일 사이의 휴식 시간’에 지나지 않았던 과거 여가 생활과 달리 오늘날의 사람들은 ‘삶의 시간’을 회복하는 것에 집중했다. 소비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으로서의 여가 활동으로 도시에서 사람과 자연, 동물이 함께 공존하기 위한 변화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지속가능한 지구의 삶을 위해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세계시민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다양한 활동을 소개한다.
자연 생태계를 지키는 도시 양봉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FAO)에 따르면 꿀벌은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의 수분(受粉)을 약 70%까지 담당한다고 한다. 주변 환경에 매우 민감한 꿀벌의 서식은 곧 그 지역의 자연 생태계 상태를 보여주는 환경 지표이다. 어반비즈서울은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의 숲에서 꿀벌의 가치와 생태계에 관심을 두고, 꿀벌을 통해 도시를 바꾸어 나가는 도시양봉가 그룹이다. 2014년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 옥상에서 처음 도시양봉을 시작해 현재 서울과 수도권 일대의 21곳에서 도시양봉장을 운영하고 있다. 도심에 조성된 꿀벌 정원과 호텔, 높은 빌딩의 건물 옥상이 그들의 양봉장이다. 이들은 학교 옥상에 도시양봉장을 조성하여 청소년과 함께 직접 채밀하며 생태감수성 향상을 돕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2019년 『119구조구급활동실적보고』를 보면 전국 소방관 출동 건수의 약 22%가 벌집 제거 업무를 수행한다고 한다. 어반비즈서울의 ‘비일일구꿀벌구조대(Bee119)’는 벌집 제거가 필요한 곳에 출동해 무료로 꿀벌을 안전하게 포획하여 이동시키는 일을 하며 사회적 비용을 낮추고 꿀벌이 도시에서 잘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비긴 어게인(Beegin Again)’ 프로젝트나 ‘달콤한 나의 인생’ 프로그램을 통해 꿀벌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소외계층 사람들이나 전문 도시 양봉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교육을 진행한다.
서울 용산구 해방촌의 주택 옥상과 남산 소월길에서 2014년부터 꿀벌을 통해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비:밀(BEE:MEAL)도 있다. 비:밀은 유아름과 이종철의 도시 양봉 프로젝트로 ‘꿀벌을 키우고 꿀을 수확하는 양봉가(beekeeper)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태와 환경 감수성을 키우고 꿀벌을 통해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활동가(beesavers)로서의 활동’을 겸한다. 비세이버스(bee-savers)에서는 매주 토요일에 모여 생태와 양봉에 대한 지식 및 기술을 배운다. 1년에 한 번, 키운 꿀을 동네 주민들과 나누기 위한 나눔 축제도 연다. 2019년에는 해방촌 신흥시장 내 광장에서 세계 벌의 날을 기념하여 밀원식물을 심는 행사를 하고, 동네 주민들과 밀랍초를 만들거나 꿀벌백일장을 열기도 했다. 양봉은 경제활동 성격이 강하지만 도시에선 사회 활동이 되기도 한다.
  • 비세이버스 수업
    [사진출처] 비:밀
  • 밀원심기 행사
    [사진출처] 비:밀
도시에서 즐겁게 농사짓기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를 맞아 로컬푸드(local food)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도시농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도시농업의 방식이 자투리 땅을 활용한 텃밭에서 옥상정원이나 베란다, 앞마당, 거실 등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상자 텃밭 등 점차 다양하고 수월해지면서 농사도 여가활동 중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도시농업 참여자 수는 2019년 기준 241만 8000명으로 2010년 대비 15.8배 증가했다. ‘파릇한 절믄이’의 준말인 파절이는 청년 도시 농사꾼들의 비영리 커뮤니티 단체로 서울 마포구 한 건물 옥상에서 농사를 짓는다. 분양한 텃밭에는 개인의 취향대로 상추, 루꼴라 등의 채소가 심겨있고, 공동경작 구역에는 토마토, 쪽파, 홉 등의 작물이 자란다. 파절이는 ‘농사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즐겁게 즐기자는 것’을 기본 틀로 하고 있지만, 농사를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파머스 스쿨’을 통해 작물 재배 관리법에 대해 교육하기도 하고, 강사를 초빙하여 막걸리를 만들고 토종 쌀 테이스팅을 진행하는 등 농사를 둘러싼 교육과 학습을 지속해나간다. 또한 커뮤니티 회원들과 독서 모임 ‘농사편력(農事篇力)’을 꾸려 농사에 관한 책을 읽고, 풀을 뽑는 풀 명상, 농활 캠핑, 옥상에서 재배한 홉으로 만든 맥주를 판매하는 등 그들만의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먹고 지식을 나누고 공유하며 교류의 장을 넓힌다.
우리동네텃밭협동조합은 2009년부터 도시농업에 관심 있는 동네(서울시 은평구) 사람을 중심으로 도시농업에 대한 인문학 강의와 도시농부학교를 운영하다 2016년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2017년부터는 고양시 원흥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 것뿐만 아니라 자원 순환 교육도 진행한다. 자원 순환 교육에서는 버리는 나무 팔렛트를 재활용하여 퇴비간을 만들고 집에서 모은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해 농사에 쓰일 퇴비를 만든다. 참여자는 이 활동을 통해 자원순환의 중요성을 익히고, 익숙한 도시민의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찾는 실험을 한다. 자신의 터를 중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동네텃밭협동조합은 예술가와 주민이 만나는 문화예술시장 ‘재미난장(場)’에서 ‘텃밭이 차린 밥상’을 진행하며 제철 음식을 나눈다. 또한 ‘은평 꽃 피는 장날’을 공동 주관해 지역 안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로컬 푸드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한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의미
바쁜 일상과 1인 가구의 증가로 ‘혼밥’의 풍경이 익숙한 시대가 되었다. 같이 밥을 먹는 행위가 점차 사라지면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함께 모여 밥을 먹는 모임인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이 급부상하기도 했다. 음식은 생존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같이 식사를 한다는 건 시간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로 끼니를 때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대전 서구 내동은 1인 고령 가구와 1인 청년 가구가 많은 동네다. 이곳에 있는 내동네부엌은 다양한 주민이 함께 어울려 밥을 먹으며 마을의 여러 문제를 힘을 모아 해결하는 시민 공유공간이다. 식생활의 문제는 정서적 고립감으로 이어진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자발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마을공동체 부엌을 열었다. 내동네부엌은 마당에 있는 텃밭에서 직접 농산물을 가꾸고 수확해 함께 밥을 지어먹는 ‘밭꽃 밥꽃’, 퇴직 남성의 먹거리 자립을 위한 ‘삼식이, 눈치는 이제 그만’, 어르신과 청년이 함께 요리하는 ‘세대융합으로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음식을 통해 이웃과 세대 간의 벽을 허물며 잃어버린 공동체 의식을 되찾는다.
청년살이발전소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공유주방이다. 성북구는 안암동, 동선동, 정릉동, 삼성동 등에 여러 대학이 포진하고 있어 전체 가구 대비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청년살이발전소는 주방 시설을 무료로 대관하고 주민이 주도적으로 모임을 꾸리는 등 청년과 마을 주민의 식문화 창업을 위한 실험의 장소뿐 아니라 음식을 매개로 교류와 소통을 돕는다. 2019년에는 함께 요리와 식사를 하며 취향을 나누는 커뮤니티 <쿠킹앤섬싱(Cooking&Something)>을 진행했다. 커뮤니티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호스트(리더)가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모임을 이끈다. 해외 식문화 정보를 발굴·번역하여 국내에 전달하는 사람들의 모임 ‘클럽 콤(ClubComb)’,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끼 식사 음식을 배우는 ‘쿡민유니버시티(Cookmin University)’, 반려동물을 위한 수제 간식을 만드는 ‘펫 러브(Pet Love)’ 등 주제도 다양하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참여자는 자신이 사는 지역 구성원과 음식과 문화를 나누며 이해와 존중의 크기를 키운다.
성효선
성효선_프로젝트 궁리
hyosundrea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