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음악이라는 뿌리와 몸통에 현대음악, 대중음악, 월드뮤직 등 이질적인 음악들을 빨아들여 만들어진 열매들은 낯설지만 매력적이며, 정가악회가 말하듯 이것이 우리가 향유하는 음악적 현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는 정가악회의 궤적에는, 분명 음악적이지만 음악 이상의 것이 담겨있다. 전통음악의 내부와 외부를 끊임없이 실험하는 단체, 음악만 하면서 밥 벌어먹겠다는 꿈으로 사회적기업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월급 주는 회사의 역할을 지켜나가고 있는 단체, 길거리 버스킹에서부터 세계무대까지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단체이자 삶의 노래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예술과 삶, 예술과 교육을 합류하는 단체. 20년 동안 한 번도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았던 정가악회 천재현 대표를 만나, 음악· 사람· 삶을 엮고 풀어가는 그 흔적을 따라가 본다.
“국악의 밭을 일구는 건강한 농부”는 정가악회가 가장 전면에 내세우는 타이틀이다. 미개척지를 일구겠다는 말도 되겠지만, 이미 일구어진 토양의 속성을 바꾸어보겠다는 말로 읽힐 수도 있겠다.
핵심 슬로건이기도 하고 지난 20년간 정가악회의 활동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수년 전부터 “음악의 밭을 일구는 건강한 농부”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 국악이라고 했던 것에서 스스로 놓여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음악이란 전체 범주 안에 전통음악도 포함되어 있고, 또 국악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찬성할 수 없어서이기도 하다.
애초에 우리가 살아왔고 살아가는 밭, 때로는 사회일 수도 있고 국악 또는 음악이 될 수도 있는 이 밭이 “건강한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했다. 그에 앞서 우리 스스로는 건강한가, 우리는 좋은 예술가, 건강한 예술가인가 자문했을 때 “아니”라는 부정적인 답이 나왔다. 우리가 성장한 토양 자체가 좋은 토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밭에서 양분을 골고루 먹고 자란 것이 아니라 뭐 하나라도 삐끗 잘못되면 고사할 수밖에 없는, 겨우겨우 양식된 그런 밭에서 자라난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자기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슬로건이 나왔다. 우리가 작물이 되기를 자처해서 건강하게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농부 된 자로서, 농부 된 태도로서 세상을 살아간다면, 우리 스스로가 밭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 스스로가 농부가 되고, 세상을, 음악 하는 밭을 건강하게 일굴 농부들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다. 이 슬로건이 우리의 비전이 되고 미션이 되다 보니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돈 안 되고 가치로운 일을 해야 하는 강박, 너무 힘들더라. (웃음)
정가악회의 실제 음악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정확히는 집단 창작에 관한 것이다. 정가악회가 가지고 있는 안으로부터의 고민이나 밖으로부터의 고민이 실제화되는 지점일 텐데.
서구적 창작 개념은 다양한 음악 창작 방식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 이외의 지역이나 역사단계에서 이와 다른 음악 생산방식, 즉 다 같이 만드는 방식이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하는 집단 작업은 오히려 일반적인 방식이다. 충분히 더 좋아질 수 있는 어떤 작품이 서양의 기준이나 관습 때문에 개인의 것으로만 머물러 있는 경우들이 많다. 예를 들면 모차르트의 어떤 음악을 다양하게 변형시키면서 더 좋은 음악이 될 수도 있다. 밴드 음악 역시 이런 작업 방식을 따르고 있고, 전통음악도 이렇게 만들어져 왔다. 서구적 관습을 좇아가기 급급했지만, 이런 점에서 서양화가 아닌 ‘현재화’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유럽 몇몇 관습이 아닌 우리의 관습에 따라 음악을 만들어갈 수 있고 그런 집단 작업 방식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마치 우리에게 없었던 것을 다시 습득하는 느낌으로 다시 공부한다.
국악이 제도화되기 시작하면서, 서양 교육제도의 모델을 따라갔고 국악 범주에 작곡이나 지휘 개념 같은 것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간극이 있었는데 정가악회는 이 지점에서 ‘다시 원래’ 그랬던 모습을 회복하거나 복원하는 시도를 보였다고 생각된다.
작곡가의 작업은 그 나름대로 충분히 인정할만한 일이고, 다만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소위 음악적 집단지성의 실험이다. 한 개인이 자기 것을 다 동원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열 사람 정도가 모여서 의견을 내고 토론하고 같이 작업해서 만들어내는 음악이, 음식으로 치면, 훨씬 풍부한 맛을 낸다는 생각이다.
20여 년간의 정가악회의 궤적을 한마디로 축약할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내외적으로 정가악회의 성숙함과 농후함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아리랑, 삶의 노래> 시리즈가 꼽힌다.
<아리랑, 삶의 노래>는 질문이 딱 하나였다. 아리랑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했고, 이에 대한 답은 이미 제목에 나와 있다. 노래라는 것이 가진 가치는 삶에 있지 않을까, 이걸 계속 확인하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노래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삶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 아리랑이란 걸 평생 부르면서 살았던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불렀을까, 여기서 아리랑은 무슨 의미였을까. 이런 질문으로 <아리랑, 삶의 노래 – 평창이야기> 작업을 했고, 그다음으로 <아리랑, 삶의 노래 – 흩어진 사람들>로 고려인이나 재일 조선인들의 디아스포라적 삶에 관해 작업했다. <아리랑, 삶의 노래 – 은평이야기>에서도 역시 이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노래는, 노래의 가치는 뭔가라는 질문. 다큐멘터리 공연이라는 형식으로 만들어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수년 동안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난 작가, 다큐멘터리 감독, 그리고 음악 하는 우리들의 시선이 교차하고 얽혀져 갔다. 처음부터 작품의 플롯을 만들어놓고 접근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가며 이들이 얽히는 과정을 담아내려고 했다.
노래를 따라가다 보니 이 사람의 삶이 나오고 나의 삶이 나오고, 노래 자체가 이들 삶의 얽힘 그 자체라는 것, <아리랑, 삶의 노래>는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차원에서도 의미깊다고 생각된다. 교육이라는 말은 아무리 전달자와 전수자의 수평관계를 강조한다고 해도 여전히 무언가를 이미 습득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의 일방향성이 전제되기 마련이다. 오늘날의 교육은 무언가 다른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틀을 깨버린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막연한 질문을 넘어서 구체적 실천이 중요할 것 같다. 정가악회의 활동을 통해서 문화예술교육의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하게 될 듯싶다. 특히 <아리랑 삶의 노래-은평이야기>가 이런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은평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은평은 좀 특별했다. 서울남산국악당 상주단체로 활동했던 경험 이후 새로운 작업을 고민하던 와중 은평과 만나게 되었다. 서울문화재단의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에 은평문화예술회관과 함께 신청해서 선정됐다. 우리의 목표는 작품이나 단체육성에 있지 않았고, ‘예술생태계’, 그러니까 극장과 지역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극장과 지역의 요구를 살피고, 예술을 둘러싸고 있는 관객과 세상을 살피는 일을 목표로 했다. 전작의 아리랑에서처럼 여기에서도 삶의 여러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했다. 은평구는 서울시에서 재정자립도가 하위 1, 2위에 속하는 곳으로, 노인 인구도 많고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이다. 워낙 은평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 때문인지 시민운동의 흐름도 강한 편이다. 처음에는 그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은평지역 한 곳에서도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에 따른 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재개발되고 아파트가 들어선 지역의 새로운 이주민들, 재개발에서 배제된 원주민들, 은평지역의 거듭남을 지향하는 핵심조직의 주민들로 이뤄진 세 합창단을 만났다. <은평이야기 1>에서는 은평이 변화되고 있는 재개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했다. 쉽지 않았다. 대책을 내놓을 형편도 아니고 자칫 갈등을 조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민감한 문제를 합창단의 이야기와 노래로 풀어나가고자 했다. 총 100여 명의 출연자가 이렇게 한 공간에서 은평의 삶을 노래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서로의 노래에 박수를 보냈다. 정가악회 역시 공연을 통해 은평과 같은 마음이 되었다. 사실 이를 예술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지는 않았다.
<아리랑, 삶의 노래 – 은평이야기>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예술단체의 새로운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역민들과 공연 하나를 무대에 올린다는 결과로서가 아니라, 예술과 예술교육이 분리되지 않고, 또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과정 자체로서 말이다.
지역민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다음 주제를 청소년 문제로 정했다. 은평은 서울에서 대학 진학률이 가장 낮은 지역이고 고등학교까지 책임지는 보육원이 있다. 지역 청소년 문제가 끊이지 않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청소년 도서관 ‘작공’(작은공원)이 있다. 도서관인데 책 읽는 친구들은 없고, 주로 같이 밥을 먹는 공간이다. 그곳에 오는 청소년들과 처음 만났을 때는 무서웠다. 정말. (웃음) 계속 만나다 보니 그 친구들의 노래도 무대에 그대로 같이 녹여내고 싶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중심이었다가 또 하나 놓칠 수 없었던 것이 선생님들 이야기였다. 왜 이 일을 하고 있고, 이것이 이 지역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의 문제는 오히려 선생님들에게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마음들, 생각들, 이걸 공연에서 그대로 풀어내려고 했다. 그렇게 선생님들, 아이들, 그리고 마을주민들의 이야기가 오가면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이렇게 3년 동안 꾸준히 지역민 그리고 지역합창단과 관계를 맺어 갔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그들 속으로 들어가고 그들이 우리 속으로 들어왔다. 물론 무대를 만들고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서 예술적으로 우리가 좀 길잡이가 되었을 테고 그분들의 음악적 성장, 발전 같은 측면에 우리가 도움이 좀 되기는 했겠지만, 오히려 그분들이 우리에게 준 메시지가 더 컸다. 예술만 알고 음악만 알던 우리였다. 막연하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자는 슬로건에 동의를 해왔지만, 실제로 그런 활동을 하는 분들과 만나서 3년 동안 작업했다는 점, 그러면서 그 마음들을 공유했다는 것, 그것이 훨씬 의미 깊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건 정가악회는 그간의 행보를 통해 항상 새로운 롤모델을 만들어왔고 여전히 만들어가고 있다. 어떤 시도를 먼저 해냈을 때 이런저런 평가가 엇갈릴 수 있겠지만, 결국 저렇게도 음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롤모델 말이다.
심어지고 씨를 뿌리고 하는 작업에는 결국 시간이 필요한데, 그래서 버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존재하는 것. 정가악회는 20년을 존재했다. 우리 외에도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수많은 작업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결국 존재했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지고 가야 할 숙제와 주제가 아직 많다. 지금도 공부하며 연구 중인데, 음악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도 있지만, 특히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이 가사라고 생각된다.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만들어내는 능력. 전통음악계는 아직 그런 능력이 없다. 예를 들어 유산슬의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같은. 하하!
천재현
천재현

서울대학교 국악과에서 거문고를 전공했다. 예술과 사회의 건강함에 대해 고민하고 모색하면서 2000년 정가악회를 창단하여 대표이자 예술감독,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활발한 국내 활동과 더불어 미국, 독일,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페루, 멕시코, 코스타리카, 에스토니아, 브라질 등 전 세계에 전통음악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아리랑’이라는 문화 자산이 지난 가치의 본질을 밝히고자 ‘다큐멘터리 콘서트’라는 새로운 무대예술적 양식을 시도한 <아리랑, 삶의 노래> 시리즈를 선보이는 등 전통의 자생과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프로그램 사진 제공_정가악회
사진_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송화숙
송화숙
음악학자, 음악문화평론가. 서울대 작곡과(이론전공)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에서 음악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음악과 문화, 미디어, 젠더 등에 관한 여러 저술이 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전북대학교에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lagrimash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