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궂은 날씨에 서울 송파구에서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2박 3일간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로스앤젤레스 청소년 오케스트라(Youth Orchestra Los Angeles, 이하 ‘YOLA’) 단원들의 음악캠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찾아가 보았다. 도착하자마자 들리는 악기 소리에 시나브로 이끌려 음악캠프 장소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압도되는 악기 소리에 그들이 음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들어보았다.
낯선 공기와 시간, 조금씩 친해져 볼까
같은 음악, 조금은 다른 소리, 약간 어설프지만 뜨겁고 열정적인 소리가 큰 공간 안에 울려 퍼진다. 뒤편에 몰래 앉아 단원들을 지켜보는데 그들의 눈이 반짝였다.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YOLA 단원들의 연주에서 아직은 서로 낯선듯한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집중하며 전문 연주자라고 해도 무색할 만큼 여유롭게 연주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지휘자부터 마지막 연주자까지 단원들의 열정으로 뜨거운 이곳에서 그들이 함께 연습한 곡은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의 <신세계 교향곡> (Symphony No.9 in E Minor, Op. 95 ‘From the New World’), 아르투로 마르케즈(Arturo Márquez)의 <콩가 델 푸에고 누에보(Conga del fuego nuevo)>, 이지수의 <아리랑 랩소디>였다. 각각 다른 느낌과 다른 이야기를 담은 세 곡을 연주하면서 연주 안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지휘자부터 마지막 단원까지 음악으로 인사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느낌이다.
합주 연습을 이끌어 나가는 지휘자는 LA 필하모닉의 부지휘자인 파울로 보르톨라메올리(Paolo Bortolameolli)였다. 서로 잘 모르는, 국적도 다른 단원들이 마음을 모아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 낸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합주였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긋나기도 하고, 나와야 할 순간에 놓치기도 하며 아직은 각자의 소리가 모두의 소리로 한데 모이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렇듯 개인 기량에 상관없이 여물지 않은 듯한 연주는 아마 아직 단원들 사이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약간의 틈이 각자 악기에 투영되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싶었다. 그걸 알아차리기라도 하듯이 지휘자는 소리 안의 작은 틈을 좁혀나가기 위해 연주 단원들의 시선에 맞춰 음악에 대한 해석을 한다. 음악은 비가시(非可視)적인 예술이다. 소리를 매개체로 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나버리기 때문에 연주자들이 음악을 해석하는 방향이 어떠냐에 따라 같은 곡이지만 전혀 다른 연주가 나올 수도 있다. 지휘자는 연주자들이 음악을 통해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연주를 하면서 마치 그 그림을 보듯이 연주할 수 있도록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표현하였다.
지휘자는 “이 부분은 최후통첩을 내리듯 연주해주세요” “이 부분은 신나게 춤추다가 지친 상태를 생각해보세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자들에게 음악을 설명해 주었다. 특히 입으로 악기 소리를 묘사하는 지휘자의 소리를 듣고 연주하도록 만드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흘러가는 음악 속에서 중요한 선율을 담당하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확히 짚어주고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치며 연주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소리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단순히 아마추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연습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 연습할 때마다 계속해서 혼자만의 소리가 모두의 소리로 바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도착하여 들었던 음악과 마지막 합주 연습에서 들었던 곡은 같은 곡이지만 전혀 다른 곡이 되어있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나아가는 그들의 음악이 아직 다 완성되진 않았지만, 다음 연주, 그다음 연주, 그리고 또 내일의 연주가 기대되는 긍정적인 울림이었다.
아이들은 소리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다
전체 연습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파트별 연습을 하였다. 쉬는 시간 웃으며 잡담을 나누는 아이들은 아까의 전문 연주자다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아이들로 돌아간 것 같았다. 첫 번째 파트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두 번째는 첼로와 베이스, 세 번째는 목관, 금관, 타악기로 나뉘어 연습하였다.
파트별 연습을 보며 강사들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중 가장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모든 파트의 강사들이 연습 전에 단원들에게 음악이 만들어진 시기와 그 배경, 작곡가에 대한 정보와 작품에 투영된 작곡가의 의도 등 음악적 배경지식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연습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모이자마자 악보만 보며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 배경을 알고 연습에 임하니 단원들의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또한, 들었던 내용을 음악 안에 담기 위해 집중했다. 첼로, 베이스 파트에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끝까지 정확하게 조율을 하였다. 첼로와 베이스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기본음이 되기 때문에 조율을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모든 악기의 음정이 흔들릴 수 있다고 악기 강사가 설명했다. 단순한 조율을 통해서도 오케스트라에서 각 악기가 가진 소리의 구성 또한 알 수 있었다. 목관, 금관, 타악기 파트 연습에서는 강사가 직접 지휘를 하며 이끌어 나가는데, 강사의 기량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목관악기나 금관악기처럼 숨을 불어 넣는 악기의 경우 얼마나 많은 양의 호흡으로 얼마나 길게 연주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 강사가 입 앞에 종이를 대고 불어서 호흡의 양과 길이를 연주자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연주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기도 하였다.
아이들의 파트 연습을 보면서 그들의 성향과 악기가 잘 맞아 떨어지며 연주되어 울리는 소리가 마치 연주자들의 목소리 같았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자들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작은 박자와 활의 움직임까지 세부적으로 민첩하게 연습하고, 표현도 다 같이 정하며 연주한다. 첼로와 베이스 연주자들은 우직하지만 덤덤하고 자신의 소리를 바탕으로 하여 다른 악기들이 더 빛나게 만들기 위해 넓은 마음으로 다양한 소리를 마주한다. 목관악기와 금관악기 연주자들은 가장 빛나는 한순간을 위해 현악기의 풍성하고 넓은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며 자신이 등장할 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에 혼을 담아 말하듯이 노래를 만들어 낸다. 타악기 연주자는 전체 곡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등장하여 우리가 음악에서 기대하는 것보다 더 큰 만족감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에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살아가는 것처럼, 여기 모인 아이들도 다양한 성향과 다양한 소리로 서로를 배려하고 자신이 돋보일 자리와 비켜줘야 할 자리를 알아차리며 함께 힘있게 나아가야 하는 순간 손을 맞잡고 목표하는 지점으로 달려나갔다. 이렇듯 아이들은 소리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이야기한다.
너와 나의 소리로 만드는 우리의 호흡
참여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연주에 임하고 있는 것일까? 가장 좋았던 시간은 언제인지, 함께하는 음악이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 직접 들어보았다.
“이렇게 멋진 단원들과 지휘자님을 만나게 된 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예요. YOLA와 연주로 소통하게 되어 좋아요. 우리는 약간 경직된 자세로 연주를 하는데 LA 친구들은 마치 춤을 추듯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했어요. 지휘자님은 음정, 박자, 리듬, 멜로디 등 원하는 소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놓지 않고 집요하게 이끌어 나가는 것 같아요. 지휘자님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시니 저의 작은 표현력이 더 향상되는 걸 느껴요. 멜로디와 화음이 만날 때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것처럼 희열을 느끼는 순간을 마주하게 돼요. 이러한 감동적인 순간은 함께하는 음악이 제게 주는 의미인 것 같아요.”
– 이현도(오산 꿈의 오케스트라 클라리넷 단원)
아이들은 함께하는 연주가 지니는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진지하고 깊은 생각으로 연습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들이 보내고 있는 시간이 인생에서 좋은 경험이 될 순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악캠프에는 학생들뿐 아니라 한국의 예술강사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강사들이 바라보는 음악캠프는 어떤 의미일까?
“아이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좋고 한편으로는 부럽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지휘자의 지휘가 조금은 낯설고 어려워 보이기도 했지만 잘 적응하는 것 같아요. 제가 꿈의 오케스트라에서 아이들과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양한 음악을 접하는 것, 그리고 수준 있는 악보를 다루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음악적 갈증을 이해하고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이번 캠프에서 LA 강사들로부터 발견한 점은 특성이 다른 곡들을 아이들의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그림 그리듯 설명해 주는 것에 강사들이 익숙하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음악적 표현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요. 쉽게 경험하지 못할 순간을 마주하고 있는 것을 아이들이 지금은 잘 느끼지 못할지라도 시간이 흐르고 보면 큰 경험이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 김수민(아산 꿈의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강사)
이렇듯, 참여하고 있는 모든 이들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체험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처음 꿈의 오케스트라에 와서 악기를 배우고 연습하던 그 순간부터 오늘 이 자리, YOLA와 함께 하는 음악캠프에 참여하기까지 ‘나의 소리’에서 ‘너의 소리’를 발견하고 여러 소리가 모여 ‘우리의 소리’가 되며 함께 호흡을 맞춰 나가는 경험, 그 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꿈의 오케스트라 X YOLA – 다 함께 새로운 세계로
3월 16일 3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드디어 기다리던 공개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리허설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제법 긴장한 모습이었다. 어제의 열정적인 연습 현장을 떠올리니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모든 오케스트라 대원들의 작은 움직임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의미심장한 긴장감은 마치 당장이라도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한 전사 같이, 지금이라도 당장 본 연주에 들어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제의 학생다움은 온데간데없고 리허설 시작 전 모두 소리를 확인하고 자신이 부족했던 부분들을 짧게 반복하여 연주하며 마지막 확인을 했다. 어제 함께 연습하였던 파울로 보르톨라메올리 부지휘자와 <아리랑 랩소디> <콩가 델 푸에고 누에보> 두 곡으로 공개 리허설의 문을 열었고 참관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다.
경쾌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야생의 기운을 담은 연주를 끝낸 후 LA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인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이 등장하였다. 등장만으로도 모든 공간을 압도하는 지휘자 두다멜의 기세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의 눈이 앞을 향하고 있었다. 새로운 선장을 맞이하는 선원들은 한마음으로 항해를 준비하였다. 안토닌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4악장의 첫 부분은 긴장이 가득한 부분이다. 첫 박자에 나오는 마단조의 딸림화음을 듣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4악장의 마지막 부분까지 손에 땀을 쥐고 들으며 그들과 함께 항해를 한 기분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두다멜은 고개를 내저으며 아직 부족하다고 얘기하였다. 단원들도 약간은 당황스러워하며 실망한 눈치였다. 두다멜 지휘자는 연주에 더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반복해서 연습하며 단원들이 포기하려 할 때마다 그는 그들 안에 있는 잠재력을 알아차리고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계속해서 집요하게, 끈질기게 바늘구멍만 한 소리의 변화를 요구하는 모습이 지휘자와 단원 간의 줄다리기 같기도 하였다. 두다멜은 짧게 흘러가는 부분의 음악을 놓치지 않고 순간적으로 편곡하여 연주하도록 하여 단원들이 화성의 길이와 깊이를 소리로 직접 듣고 몸소 느낄 수 있도록 알려주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소리의 무게감과 중요도를 알아차린다. 짧은 시간 대가의 가르침을 통해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완전히 다른 소리로 변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음악을 묘사하며 설명해 주는 것들이 아이들의 시선에 맞을 수도 있으나 음악가인 나 스스로에게도 큰 가르침이 되었다. 리듬, 멜로디, 하모니 등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각 파트가 구성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까지 알려준다. 곡의 마지막 부분인 마장조 부분으로 마무리를 해나갈 때는 모든 단원, 지휘자, 그리고 참관하는 관중들까지 환희에 찬 순간을 맞이했으며, 관악기의 긴 마무리는 음악이 끝나고 난 순간 이후까지 마음에 담겨 여운을 느끼게 해주었다. 잠깐의 정적 후에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다. 음악을 통해 그곳에 있던 단원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낯선 곳에서부터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경험을 하였다. 깊은 여운을 마음에 품고 공개 리허설이 마무리되었다.
이번 꿈의 오케스트라와 YOLA가 함께한 음악캠프와 공개 리허설은 단순히 두 오케스트라가 만나 교류하며 음악을 연습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이들 안에 있는 자신을 꺼내고 한계를 정해놓은 나를 넘어서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익숙하지 않은 현장에서도 인적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고 소통하며 애정과 소속감을 다졌다. 다년간 전국에서 성장해 온 꿈의 오케스트라가 앞으로도 오케스트라 연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발전되고 성장하며 세계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사진 _ 아동청소년교육팀, 이재범(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소수정
소수정
작곡가.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2013 범음악제(Pan Music Festival 2013)에서 젊은 작곡가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단편영화 <사랑의 무게> <새벽> 음악감독으로, 다수의 영화음악에 작곡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강사로 있으며, 작곡 활동과 함께 문화예술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음악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sumo8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