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도서관이라고 하면 책장 가득히 꽂혀 있는 온갖 책들과 ‘정숙’이라고 적혀 있는 안내문 등을 떠올릴 것이다. 이처럼 도서관은 책이나 신문 등의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 보관하여 독서나 연구 등을 할 수 있도록 설립된 기관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런데 해외의 공공 도서관 및 교내 도서관의 모습들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등의 기계들과 알록달록한 교구들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는 바로 해외의 도서관들이 공공 도서관 및 교내 도서관을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로 바꾸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메이커와 메이커 스페이스의 시작
메이커 스페이스의 ‘메이커(Maker)’는 평범한 사람들이 기업이나 전문가가 만든 기성 제품들을 맹목적으로 소비하는 것에서 벗어나, 웹 인프라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다양한 재료와 기술, 도구를 활용해 주체적으로 물건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것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메이크진(Makezine: 누구나 집에서 만들어볼 수 있는 테크 DIY(Tech DIY)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발간물)*’의 창간자 데일 도허티(Dale Dougherty)는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드는 사람들인 메이커들이 만드는 법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흐름”이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필요한 물건을 제작하는 D.I.Y(Do-It-Yourself)가 웹이라는 시공간을 초월한 지식 공유 인프라를 만나며 등장하게 된 메이커 운동이라는 개념은 ‘지식의 공유’라는 핵심 가치를 기반으로 민주주의적인 웹 문화를 탄생시켰다.
* 메이크진: 누구나 집에서 만들어볼 수 있는 테크 DIY(Tech DIY)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발간물
여기에 3D 프린터 등의 기술이 더하여지면서 메이커들의 활동 반경은 물리적인 제조업에까지 확장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최첨단 장비와 최신 기술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고, 일반인들이 동참하기에는 진입 장벽이 존재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장소, 즉 메이커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3D 프린터와 레이저 커터 등을 갖춘 공동 작업실이자 기술에 대한 정보의 공유가 이루어지는 물리적인 공간을 바로 ‘메이커 스페이스’라고 부른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최근 제작을 위한 고가의 장비를 제공하고, 필요한 기술들을 교육하며, 메이커들이 지식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초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독일의 c-베이스(c-base)로, 당시에는 해커 스페이스라고 불리다가 ‘해커’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이후 메이커 스페이스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외에 전 세계의 대표적인 메이커 스페이스로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테크숍(TechShop), MIT의 팹랩(Fab Lab), 일본의 팹카페(Fabcafe), 중국의 씨드스튜디오(Seed Studio)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무한상상실 ‘아트팹랩’, 판교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창의 디바이스랩’ 등 메이커들과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미래 혁신의 인큐베이터이자 새로운 산업의 베이스 캠프인 메이커 스페이스의 역할을 기대하며 메이커 운동을 후원하고 있다. 해외의 공공도서관과 학교 등의 교육기관에서도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을 ‘기술과 예술이 어우러지며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배움의 공간’으로 주목하며 공공 도서관 및 교내 도서관에 메이커 스페이스를 조성하는 붐이 일어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 ‘무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샌프란시스코 공공도서관 ‘더 믹스(The Mix)’
샌프란시스코 공공도서관(San Francisco Public Library) ‘더 믹스(The Mix)’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정보와 기술, 디자인과 창조성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된 복합 문화예술 공간이다. 더 믹스는 지식의 평등한 공유와 다양한 제작 활동을 지원하는 메이커 스페이스, 카펫 가든, 스터디 공간과 비디오 부스 등의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더 믹스의 스터디룸은 도서관의 본연에 충실한 책들이 가득한 공간이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책꽂이 밑에 위치한 바퀴들이다. 더 믹스의 스터디룸은 책장 및 책상, 의자를 자유롭게 이동하여 용도에 맞게 공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카펫 가든(Carpet Garden)이라고 불리는 라운지는 공연과 발표, 회의와 교육 장소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이 외에도 컴퓨터실, 오디오 및 비디오 부스가 있어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관람 및 제작해 볼 수 있다.
또한 더 믹스는 도서관 입구를 여러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터치스크린 유리벽으로 만들어, 과학기술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였다. 이중에서도 특히 더 믹스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3D 프린터 등 메이커를 위한 고가의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는 공간이다. 더 믹스는 주기적으로 3D 프린터를 활용한 DIY 프로그램과 스팀(STEA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 Mathematics) 교육 활동을 운영하여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메이커가 되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과 과학기술을 활용한 더 믹스의 공간들은 딱딱하고 지루한 도서관의 이미지를 뒤엎고 공공 도서관을 책과 기술 등의 다양한 지식을 공유하며 배워볼 수 있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학습 공간으로 탈바꿈한 좋은 사례이다.

교내 도서관, 창의력 공간으로 탈바꿈하다
메서피쿼(Massapequa) 교육구와 스튜어트 미들 매그닛 학교
학교에서도 이러한 메이커 스페이스의 창조적이고 교육적인 기능에 주목하여 교내 도서관을 메이커 스페이스로 바꾸는 사례가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뉴욕에 있는 메서피쿼(Massapequa)의 교육구는 도시에 있는 6개 초등학교의 도서관을 메이커 스페이스로 바꾸었다. 학교 내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3D 프린터 등 고가의 기계를 구비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학생들이 기술과 예술이 접목된 다양한 제작 활동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성해 놓았다. 메서피쿼 교육구에 있는 초등학교의 메이커 스페이스 도서관에는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책상과 의자들, 다양한 제작 활동을 위한 교구들이 구비되어 있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이해와 창의력, 예술성이 필요한 법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단순히 책을 보는 것에서 나아가, 과학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실험과 예술 활동을 통해, 즐겁게 배우며 창의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중학교에서도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과 예술을 접합시킨 융복합 교육인 ‘스팀(STEAM) 교육’을 활용하고 있다. 스튜어트 미들 매그닛 학교(Stewart Middle Magnet School)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메이커 스페이스를 조성해 학생들에게 스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스튜어트 미들 매그닛 학교의 사례는 메이커 스페이스를 조성하는 데 반드시 많은 돈과 고가의 기계가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메이커 스페이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이 주체성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스튜어트 미들 매그닛 학교의 메이커 스페이스 탄생 과정을 살펴보자.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로 이루어진 메이커 스페이스 계획 위원회(Makerspace Planning Committee)를 구성하여, 메이커 스페이스를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실행하도록 격려했다. 처음에는 레고, 스냅써킷(Snap Circuits: 전자회로 키트의 한 종류) 등 몇 가지 교구 세트들로 시작하여, 학생들과 함께 도서관을 직접 페인트칠하고 재구성하고, 학생들 스스로 메이커 스페이스를 만들게끔 했다. 현재 스튜어트 미들 매그닛 학교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초반부터 훨씬 다양해진 교구들과 오디오-비디오 룸, 컴퓨터 랩실을 갖추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학생들이 서로서로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모습은 평등한 지식의 공유와 협업을 통한 제작이라는 메이커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메이커 스페이스 안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만든 공간에서 배우기만 하는 수동적인 자세를 벗어나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는 주체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며, 지식을 나누는 메이커 정신을 몸소 터득하고 있다.

‘고차원적’ 융복합 교육공간으로 거듭나다
켄트주립대학교와 위스콘신대학교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는 고가의 장비를 구비한 메이커 스페이스 도서관을 설립해 학생들이 보다 최첨단에 환경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켄트주립대학교 투스카라와스(Kent State University Tuscarawas) 캠퍼스는 메이커 스페이스를 조성하고 비즈니스 공동체센터와 협업하여 창업 지향적 생태계를 지원하는 공간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 특히, 체리 브론카(Cherie Bronkar) 켄트주립대학교 투스카라와스 소장은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도서관 이용자들 그리고 지역 사회 구성원들까지 대상 영역을 넓혀 비즈니스와 관련된 소스들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오하이오 중소기업 개발 센터(Ohio Small Business Development Center)를 비롯한 비즈니스 및 커뮤니티 서비스 등과 협력해 시장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위스콘신대학교 메디슨캠퍼스(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의 경우에는 디자인랩과 미디어 스튜디오를 조성하여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에서 보다 다양한 분야의 융복합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교육 대상을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범위를 확대하여 디지털 프로젝트 작업을 장려하고 있어, 메이커 스페이스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메이커 스페이스 세대를 마주하다
학습의 즐거움·창작의 기쁨이 발현되는 배움의 장
이제 기성 제품을 구입하고, 책에 적혀 있는 지식을 통해서 학습하는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대신 스스로 만들며 배우는 즐거움과 지식을 공유하며 배우는 새로운 세대가 다가온다. 이에 따라 책장 가득 꽂혀있는 책들과, 독서를 통해 지식과 감수성을 향상시키는 공간인 도서관도 점점 변화하고 있다. 보다 효과적인 배움은 책의 페이지를 넘어 보고 듣고 만지며 경험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운다. 처음 끓여본 된장찌개의 맛은 차치하고서라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된장찌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우리 안에 내재된 예술과 창조의 본성은 ‘만드는 작업’을 통해 발현되고 개발된다. 미래를 이끌어가는 능력인 주체성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닌, 적극적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향상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메이커 스페이스는 학습의 즐거움과 창작의 기쁨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공간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가득 담아내고 있다.

김연수
김연수_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연극 리뷰 및 문화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어린이청소년극과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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