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여행을 떠날까?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낯선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그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먹거리들을 처음 맛보며 느끼는 기쁨은 우리의 지친 심신을 깨우는 기분 좋은 자극이 된다. 이렇듯 여행지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모든 낯선 경험이 여행의 참 묘미라면, 여행지에서 새로운 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진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을 매개로 자신만의 여행을 만들어 나가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주말문화여행 <소리여행 스케치> 프로그램의 사운드아티스트 정만영 작가를 만나보았다.
소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발상이 독특하다. 작가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소리와 이번 프로그램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였다. 그림을 보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때 이후로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미지를 통해 소리를 들었던 것과 반대로 소리를 듣고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로 소리를 듣고 다양한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다. 이번 프로그램의 목적은 가족들과 함께 여행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듯 소리를 귀 기울여 듣다보면 새로운 경험이 찾아온다.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들과 함께 소리를 찾아 떠나본 경험은 색다른 추억으로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소리가 주가 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여행지의 장소 섭외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여행 장소로 특별히 순천과 여수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가족들과 여행하기에 어떤 장소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생태계의 소리가 풍성한 순천만으로 결정했다. 의사는 청진기로 몸 곳곳의 소리를 듣고 그 사람의 상태가 어떻다는 것을 판단한다. 우리도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의 소리를 듣고 그 지역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순천만의 갯벌에 뚫려 있는 수많은 구멍 속에는 게들이 살고, 그 위로는 갈대들이 자란다. 생태계가 살아있다는 것은 그만큼 소리가 풍성하다는 얘기다. 순천만에서 그러한 풍성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여수 모사금 해수욕장은 바다 앞에 펼쳐진 자갈밭과 모래사장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돌들이 부딪히는 소리, 모래가 쓸려가는 소리 등 여러 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들이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조용한 장소이기도 했다.
자연의 소리를 듣기 위해 어떠한 방법과 도구를 사용했는가?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순천만으로 답사를 와보니 해설사들이 집음기를 통해 멀리 있는 철새들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순천만의 넓은 갈대밭과 갈대밭 너머 갯벌에 사는 새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걸 보고 우리 프로그램에서도 집음기로 같이 소리를 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비를 했는데 가족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사실 사람의 귀가 가장 좋은 마이크다. 귀로 민감하게 듣는 연습을 하고, 여행을 와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하는 게 본래 의도였다. 그런데 가족들이 집음기를 너무 좋아했다. 가족들이 흥미를 가지고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도구라는 점에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장비 못지않게 사람의 귀로도 얼마든지 민감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집음기를 사용하면서도 우리의 귀로도 소리를 들어보는 연습을 계속 했다.
이번 <소리여행 스케치> 프로그램은 1박 2일 여행 일정을 포함해 총 3회차의 일정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전체 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참가자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1박 2일의 본격적인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첫 번째 만남에서는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우리 귀에까지 들려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지에 와서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했다. 소리를 듣고 그림을 그린다든지, 눈을 가리고 귀로 들려오는 소리에만 집중을 하는 활동을 했다. 여행 첫째 날에는 가족들과 함께 몸에서 나는 소리를 찾아보는 활동도 했다. 휘파람을 불고, 손방귀에 겨드랑이방귀까지 뀌면서 다들 너무 즐거워했다. 1분 동안 눈을 감고 주변의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기도 했는데,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서 들으면 의식하지 못했던 풍성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부모님들의 경우엔 ‘같은 장소가 다르게 느껴진다, 평소에 듣지 못했던 아주 민감한 소리가 들려서 새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잔디를 밟는 소리 등 생각지도 못했던 소리들을 듣기도 했다. 또 아이들은 스스로 소리를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부모님들은 평소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바뀐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무척 신기해 하셨다.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미세한 소리들이 주는 예술적 영감과 원천이 있는지 궁금하다. 소리에 민감함을 느끼는 것 자체를 문화예술 활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
소리에 민감하다는 것은 모든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실 나도 소리에 예민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소리를 민감하게 듣는다고는 할 수 있다. 소리에 예민한 사람은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는 등 모든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편 소리를 민감하게 듣는다고 할 때 중요한 건 소리를 집중해서 듣는 거다. 들려오는 소리를 그냥 듣는 것과 집중해서 듣는 것은 천지차이다. 소리에 예민하지 않아도 집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누구나 새로운 소리를 듣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도 소리에 민감함을 느낄 수 있도록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만 했는데도 가족들이 무척 즐거워 해주셨다.
예술가로서 ‘소리여행 스케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활동은 어떤 의미를 주는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모든 사람은 다 예술가다”라는 말을 했다.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도, 영상도 전문가 못지 않게 잘 찍는데, 이 시대에 예술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지금의 예술가는 서로 다른 것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과거 다른 장소의 소리를 현재의 시간과 연결시켜 주거나, 사람과 자연을 만나게 하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지금의 예술가이지 않을까 싶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내가 예전에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배우고 느꼈던 점들을 가족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보통은 작가라고 하면 어려워하는데, 1박 2일 동안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이름을 불러주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서로 친해지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어려웠던 작가라는 존재가 이제는 선생님 같고, 친한 동생, 형으로 바뀌어 가는 게 좋았다.
이렇게 어울리는 과정 속에서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예술을 경험하고, 예술가의 관점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것이 내가 가진 교육관이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라는 형식으로 아이들에게 인위적으로 가르치고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말문화여행 프로그램과 같이 자연스럽게 여행을 통해서 문화예술을 느껴보는 것이 하나의 문화예술교육의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예술가는 무언가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이라고 보는 관점이 인상 깊다. 이러한 생각이 소리를 채집해서 다른 미디어와 매치하는 작가님의 작업에도 반영되어 있는가?
지난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소리 채집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다양한 소리층이 있는 장소와 좋은 소리가 나는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나중에는 현장에 가서 녹음을 하고 그걸 전시장에 설치 미술의 형태로 전시했다. 그러면 그 장소만의 소리가 또 생겨난다. 현장에서 녹음한 소리를 전시장에 풀어놓을 때 소리가 주는 기억이 과거와 현재의 중간에 끼어들게 된다. 부처가 했던 최초의 말이 있었을 거고, 설법을 들었던 제자 중에서 머리가 굉장히 좋았던 제자가 그것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기록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수천 년이 지난 현재까지 남아있는 거다. 지금도 절에서 스님들이 외우는 암송은 그 시대 부처의 소리가 지금까지 연결되어 온 것이다. 소리와 장소에 대한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이 매체가 되어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낸다. 사운드 전시라고 해도, 그 장소에 가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현장성과 현장성을 연결시키는 기억, 그 사이에 필드 레코딩*이 있다.
* 필드 레코딩(Field Recording) : 필드(Field), 즉 스튜디오와 같은 작업환경이 아닌 외부에서 녹음한 소리를 이용한 음악
수많은 사운드 중에서 작가님이 집중하게 되는 소리는 어떤 소리인가?
주로 자연의 소리, 그리고 작은 소리들에 집중하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물소리를 많이 찾아다녔다. 폭포에서는 아주 많은 물이 거세게 쏟아져 내리지만, 사실 폭포가 시작되는 곳은 산위의 작은 물줄기다. 샘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부터 폭포에 이르기까지 물의 시작과 끝을 기록하는 작업도 했다. 또 우리 몸에도 물이 많이 있는 것처럼, 물은 생명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아까 바다에 가득한 물과 파도를 볼 때도 지구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만약 지구가 죽어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 파도도 잔잔할 것이다. 하지만 지구가 자전하며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파도가 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물에 계속 관심이 가고, 물소리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소리여행 스케치> 프로그램을 통해 추구하는 목표와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이번 <소리여행 스케치>는 꽉 짜여지지 않고 여유를 느끼며 자유롭게 여행하는 프로그램이었으면 했다. 소리를 듣는 간단한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 여유를 즐기며 자연 속으로 소리 산책을 떠나보는 것이다. 그 여유 속에서 자발성이 싹튼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작은 방법만 일러줘도 아이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바뀌었던 것처럼 말이다. 가족들 스스로가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서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소리에 집중해본 경험은 일상생활로 돌아가서도 주변의 소리를 민감하게 듣고, 어떤 소리에 귀 기울일지 분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소리여행 스케치>와 같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들이 주변을 지각하는 새로운 방식을 경험하고, 자발성과 민감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주말문화여행>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학교 밖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매주 토요일 아동·청소년 및 가족들이 문화예술 소양을 함양하고 또래, 가족 간 소통할 수 있는 여가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그중 ‘주말문화여행’은 예술가와 아동‧청소년을 동반한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으로, 참여 가족들은 예술을 매개로 자신들만의 여행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을 경험하게 된다. 올해에는 사진, 애니메이션, 사운드아트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링크]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홈페이지

김연수_작가
김연수_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연극 리뷰 및 문화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어린이청소년극과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이 많다.
dustn01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