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영화나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고, 토론회에 참가할 수도 있으며, 작가들과 식사를 하면서 수다를 떨 수도 있다. 더불어 작가의 창작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처럼 미술관이 전시를 감상하기 위한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며 소통하는 마당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는 소위말해 ‘플랫폼으로서의 미술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이들이 미술관 프로그램을 다채로운 형태로 참여하며 관계를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미술관의 변화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미술관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의 사례들을 통해 현대의 미술관이 관객과 만나는 방식을 살펴보자.
온·오프라인 플랫폼의 샌프란시스코 어린이 박물관

The Children’s Creativity Museum의 story project 웹 배너 이미지


현대 사회에는 다양한 플랫폼이 존재한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전 세계 누구나 함께 나누고자 하는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다. 이처럼 미술관 교육에서도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 있는 어린이 박물관(The Children’s Creativity Museum)에서 진행하고 있는 ‘스토리 프로젝트(Story project)’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잘 활용하고 있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스토리 프로젝트(Story project)’는 참여자들이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보고 그것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로써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이야기를 만들어낸 참여자의 ‘창조적인 과정’을 포착해내는 것이 목표다. 참여자들은 ‘크리에이티비티 스토리즈(Creativity Stories)’라는 체험공간에서 자신의 작품 사진을 캡처한 뒤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등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녹화한다. 이후 이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이메일(Education@Creativity.org)로 링크를 보내면 프로젝트가 완료된다.
위 과정을 통해 어린이들은 미술관(오프라인 플랫폼)에서의 활동을 유튜브(온라인 플랫폼)를 통해 공유하고 소통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매체를 동시에 접하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의 창의성도 공유하게 된다. 이는 아이들로 하여금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그 과정을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어 흥미로운 플랫폼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열린 마당’으로의 카네기 미술관

카네기미술관에 설치 된 Lozziwurm


미술관이 ‘창의적인 놀이터’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카네기 미술관은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과 예술가들의 독창적인 하모니가 멋진 놀이터를 구현해낸다.
필자는 “미술관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아름다운 예술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러한 생각에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프로젝트가 2013년 미국의 카네기 미술관에서 진행되었다. 미국 카네기 미술관의 ‘로치웜(Lozziwurm)’이 바로 그것이다. ‘2013 카네기 인터내셔널(Carnegie International)’의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로 진행된 ‘로치웜(Lozziwurm)’은 1972년 스위스의 예술가 ‘이반 페스탈로치(Yvan Pestalozzi)’가 디자인한 다채롭고 꼬인 ‘관’형의 구조물을 재해석하여 만들어졌는데, 미술관 관객들의 공개적인 참여를 이끌고 놀이 개념을 보여주기 위해 탄생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카네기 미술관의 ‘포켓 파크(Pocket Park)’는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획된 공간이다. 카네기 미술관은 ‘포켓 파크(Pocket Park)’가 가정, 탐험, 창의적인 상상력에 대한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현대 미술과 미술관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위한 무대라고 피력하였다. 누구든지 미술관을 접할 수 있는 열린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현대 미술관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잘 보여주는 프로젝트이다.
이제는 미술과 기술의 개념을 가르치는 미술관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발적으로 소통·공감·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 마당을 펼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미술관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이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놀이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역 커뮤니티의 좋은 예…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이 지속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가운데 미술관에서 항상 참가할 수 있는 ‘시그니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건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이다.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은 어떤 요소를 내재하고 있어야 할까?’라는 물음에 답하려던 찰나,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의 <그림책을 읽어요>라는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2010년부터 이어져 온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지역기반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다. 한 권의 그림책을 읽고 책과 연관된 작품을 큐레이터와 함께 감상하는 소소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참석 가능하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그림책을 읽어요’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 장면

이 프로그램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전 연령을 아우를 수 있는 그림책을 이용하여 난해한 현대미술작품을 감상한다는 발상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름다운 그림과 글이 있는 책을 읽고, 그와 관련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참여자들에게 미술관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행복한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미술관 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에듀케이터에게 쉬운 프로그램은 아닐 것이며, 수많은 그림책 중 출품된 작품들과 연관된 책을 고른 뒤 프로그램화하는 과정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2010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봤을 때 참여자들과 원활한 소통과 의미의 지점들이 존재하지 않나 싶다.
‘미래지향적’ 야마구치센터의 YCAM 프로젝트
마지막으로 함께 나누고 싶은 프로그램은 야마구치센터의 ‘YCAM’ 프로젝트이다. 야마구치센터는 일본의 작은 도시 야마구치에 위치한 미디어센터이다. 이 센터는 2003년 개관한 이래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새로운 표현 탐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시, 공연, 영화 상영, 어린이를 위한 워크숍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YCAM의 교육장면

센터의 목표는 ‘오픈’과 ‘콜라보레이션’으로 새로운 지역사회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시민이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만들고 함께 배운다’는 활동이념 아래 미디어테크놀로지에 대한 대응, 문화기반으로서의 정보 가능성, 인간에 대한 정보 의미 등 주제에 대하여 폭넓게 접근하고 있다.
특히 미래세대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2016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미래의 야마구치 수업 : 배움의 플랫폼으로서의 YCAM’ 프로젝트를 살펴보자. 이 프로젝트는 YCAM이 연구 활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성과를 바탕으로 개발한 인재육성 교육프로그램이다. 넘쳐나는 정보에 휩싸여 살아가고 있는 미래 세대들이 미디어기술의 적절한 취급방법을 파악하고 정보를 해독하는 능력을 함양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미디어의 이해와 활용에 대한 기초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매우 뜻깊다. 결과물의 바탕이 되는 원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다는 점도 이 프로젝트의 장점이다.
이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YCAM의 풍부한 지식을 활용하여 초·중학교에서 실시 가능한 교육프로그램으로 개발하여 실행하여 보고, 이를 차세대를 향한 새로운 교육모델로서 전국에 보급하는 것이다. 지난 2016년에는 초등학생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개발되어 야마구치 시내의 초등학교 3곳에서 실행되었다. 올해에는 지속적 실행을 위한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야마구치 관내에서 시험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앞으로 필자도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색깔이 다른 4가지의 현대 미술관 교육프로그램을 살펴보았다. 미술관 교육은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넘나드는 참여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으며, 놀이터로 변신시켜 지역과 함께 호흡하고 공간으로도 거듭날 수 있다. 또한 화려하진 않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지역 주민들 곁에 늘 존재하는 참여의 창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미술관이 지닌 특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미술관이 ‘배움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기를 기대한다.
최혜경
최혜경
에듀케이터.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박물관과 인연을 맺은 뒤, 2014년 한양대학교에서 박물관교육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부터 경기도미술관에서 에듀케이터로 근무하다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경기도어린이박물관에서 교육업무를 총괄한 바 있다. 현재는 다시 경기도미술관으로 돌아와 교육업무를 담당하며 현장 에듀케이터로 활동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