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은 과학, 예술, 놀이를 혼합할 수 있는 도구다. 표면이 편평한 유리판 뒷면에 수은을 바르고, 그 위에 습기를 막기 위한 붉은 연단(鉛丹)을 칠해서 만드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울은 무겁고 깨지기 쉽다. 최근에 고반사 미러시트지가 개발되면서 거울을 좀 더 손쉽고 적극적으로 놀이와 예술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미러시트지는 기존 유리거울과 비교해 가볍고 깨질 염려가 없어 안전하다. 못이나 망치 없이 미러시트지 뒷면의 이형지를 떼어내고 벽면에 부착하기만 하면 된다. 칼이나 가위로 오려내어 모양을 낼 수도 있다. 휘거나 말수도 있고 곡면에 부착할 수도 있다.
거울을 이용한 놀이라고 하면, 우리는 쉽게 과거 유원지에서 보았던 일그러진 상을 비춰주는 오목거울(凹面鏡)이나 볼록거울(凸面鏡), 그리고 무한 반복되는 이미지에 압도되던 거울의 방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최근 예술가와 건축가들은 더욱 넓은 공간으로 거울을 가지고 나와 멋진 예술적 경험과 놀이를 제공하는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미러시트지를 이용해서 물체의 모습을 비추는 ‘반사’ 기능을 쉽게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 설치된 거울은 물체의 상(像)을 ‘복제’한다. 거울을 이용해서 주변 전경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어들어 ‘투명’해질 수도 있다. 거울은 빛이 반사되는 방향을 바꾸고 시각 정보를 왜곡하고 착시와 환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때 비로소 거울은 예술과 놀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고 세상의 진실을 묻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거울로 투명해진 숲
자신의 모습을 매일 매시간 비춰보며 정체성을 만들어 가던 우리의 성장기처럼 숲 속 나무들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숲 속의 빛과 느낌과 냄새, 기억을 거울에 저장해보려는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2011년 조아킴 카민스키(Joakim Kaminsky)와 마리아 폴(Maria Poll)은 스웨덴 북쪽 메델패드(Medelpad)의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예술과 자연을 결합시켜 환상적인 공간과 경험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이들은 미러시트지를 숲 속 나무에 부착했다. 두 예술가의 바람처럼 숲 속의 기억을 거울에 저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작업을 통해 숲 속 공간을 투명하고 더욱 신비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이들이 시도한 방법을 확장해서 미러시트지를 나무 밑동에서부터 좀 더 높은 곳까지 부착한다면 숲은 색다른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숲 속 전경을 비추는 거울을 입은 나무들로 인해 나무는 물론 숲까지 투명해지고 우리의 시선은 착시와 환상을 오가며 더욱 신비로워진 숲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나무뿐 아니라 우리도 숲의 일부가 되어 투명하게 사라질 수 있다. 그러자면 주위의 빛과 이미지를 받아들이면 된다. 2013년 영국 케임브리지에 살던 19세의 소녀 사진작가 로라 윌리엄즈(Laura Williams)는 우리가 거울을 이용해서 전경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SNS에 ‘거울은 나를 보이지 않도록 만듭니다’란 제목의 사진들을 올렸다. 이 사진은 소셜 뉴스 웹사이트 레딧(www.reddit.com)에서 2013년 최고의 사진으로 뽑히게 되었다.
  • <보이지 않는(invisible)> <투명(transparency)> (로라 윌리엄즈, 2013)
관련링크 (이미지 출처)

http://www.laurawilliamsart.co.uk/selfportraits#24
거울을 이용해서 우리는 더욱 적극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다. 건축 스튜디오 STPMJ는 첫눈에 숲으로 착각할 수 있는 거울 오두막을 미국 캘리포니아 타호(Tahoe) 국립공원의 자연연구시설 내부에 만들었다. 일명 <보이지 않는 오두막>이다. 이 오두막 외부에 부착한 거울은 오두막의 모양과 크기를 착각하게 만들고 위장한다. STPMJ는 뉴욕과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승택과 임미정이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미러시트지를 이용해서 예술, 소설적 경험, 광학, 자연환경을 통합한다. 이처럼 미러시트지를 이용해서 건축물을 자연경관 속으로 통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사례와 같이 거울은 숲을 충분히 탐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숲을 빛으로 왜곡하고 시선을 교란해 더욱 복잡하게 얽힌 환상의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반사된 나무와 수풀의 이미지와 실제의 수목을 어렵게 구분하면서, 어쩌면 보이는 세상은 실제와 환영이 뒤섞인 공간이지 않을까 의문을 갖게 된다. 이런 생각이 일어난다면 거울 뒤편에 숨어 전경 속으로 사라질 때라도 그의 영혼과 정신은 성숙하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오두막(Invisible Barn)> (STPMJ, 2015)
관련링크 (이미지 출처)

http://www.stpmj.com/work/#/invisible-barn/
거울 골목
숲뿐만 아니다. 도시에서도 거울은 왜곡하고 착시를 불러일으키며 제한된 물리적 공간을 시선 속에서 확장한다. 아티스트 키릴 쿠즈마노프(Kiril Kuzmanov)는 불가리아 제2의 도시 플로브디프(Plovdiv)의 주도로인 카판(Kapan)의 츠라타르스카(Zlatarska) 거리에 거울 골목을 만들었다. 그는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양면 거울로 골목을 정밀하게 막았다. 건물의 굴곡에 맞춰 정밀하게 오려낸 거울을 부착한 까닭에 사람들은 이곳에 거울이 부착된 사실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때문에 골목을 바라보는 시선은 막히지 않고 더 확장되고 깊어졌다. 이 거울 골목으로 주변 사람들이 모이고 이곳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 거울 골목이 있는 카판(Kapan)은 불가리아어로 ‘함정’이란 뜻인데 거울 골목은 또 하나의 예술적 함정을 만들어낸 셈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예술가 레안드로 엘리히(Leandro Erlich)는 다른 방식으로 거울을 이용해서 도시 골목에 환상적인 체험 공간을 만들어냈다. 2013년 런던 동쪽에 달스턴 하우스(Dalston House)가 만들어졌다. 이 집의 창과 벽에서 아이들이 매달려 놀고 있는 아찔한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전혀 겁먹지 않고 즐거워했다. 달스턴 하우스는 실제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면에 빅토리아풍의 건축물 전면을 실제 크기로 만들고, 그 위에 45도 각도로 대형 거울을 매달았다. 건물 벽이 눕혀진 바닥 위에서 사람들은 눕고 서고 뒹굴고 기어 다닌다. 사람들은 대형 거울을 통해 마치 건물 외벽에 위험하게 매달리거나 건물과 수직으로 서 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자신의 모습을 사진기로 찍을 수 있다. 만약 가까운 곳에 이러한 거울 공간이 있다면, 누구라도 거울이 비추고 있는 바닥을 기꺼이 기거나 뒹굴게 될 것이다.
거울 미로
뉴욕 브루클린 브릿지 공원(New York’s Brooklyn Bridge Park)에 덴마크 예술가 예페 하인(Jeppe Hein)은 강을 건너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이미지를 복제하여 불규칙하게 반사하는 거울 미로를 만들었다. 거울은 다양한 높이로 설치되었지만, 일정한 폭을 유지하고 있다. 미로를 지나는 사람마다 독특한 각도에서 반사되는 뉴욕의 다른 풍경과 거울 속으로 흡수된 전경들, 다른 사람들의 분절된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브릿지 공원의 거울 미로
이처럼 깨지기 쉽고 무겁고 설치하기 어려운 유리 거울 대신 고반사 미러시트지가 개발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 거울은 오래된 유원지의 답답한 ‘거울의 방’에서 나와 숲과 도시 골목과 공원에 설치되면서 새로운 시각적이며 예술적인 경험을 만들어낸다. 거울은 단지 반사경이 아니라 전경 속에 우리를 보이지 않게 하고, 투명한 공간을 구성하는 손쉬운 수단이 되고 있다.
김성원
김성원
적정기술, 기술놀이교육 연구가.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매니저이자 (사)한국흙건축연구회 기술이사, (주)숲과도시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들녘, 2009), 『점화본능을 일깨우는 화덕의 귀환』(소나무, 2011), 『화목난로의 시대』(소나무, 2014), 『근질거리는 나의 손』(소나무, 2015) 등이 있다.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http://cafe.naver.com/earthbaghouse
이메일_ coffeetalk@naver.com
페이스북_ http://www.facebook.com/fatdog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