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춤은 미리 안무된 형식이나 구조에 구애받지 않고 직관적으로 자유로운 흐름에 따라 매 순간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표현방식을 의미한다. 특히 상대와의 신체적, 정신적 접촉을 유지해나가며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접촉즉흥(Contact Improvisation)은 포스트모던 댄스에 하나의 분야를 이루면서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최근 일반인에게는 심적 치유의 효과로도 주목받고 있다. 계획과 효과에 중점을 둔 교육과정 안에서 즉흥춤은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아르떼 아카데미(ArtE Academy, AA)에서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전문성과 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그중 ‘해외전문가 연계연수’ 프로그램 과정 중 하나인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The Invisible Matters)’ 1차 과정이 지난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용인에 위치한 한라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되었다. 접촉즉흥과 움직임에 대한 해외 전문가 막심 이안나렐리(Maxime Iannarelli, 바르셀로나 예술학교 전임교수) 강사가 진행한 이 프로그램을 참관하기 위해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8월 16일, 연수 2일차 수업 현장을 찾았다.
전체 2박 3일 동안 진행된 이번 워크숍은 즉흥춤에 기반한 공연예술에서의 여섯 번째 감각을 통해 움직임을 탐구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조력자(facilitator)로서의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강의를 시작으로, 사회와 교육 안에서 예술의 역할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회적 예술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는 한편, 즉흥춤을 통해 신체를 탐색하고 파트너와 함께 창의성을 위한 공간을 설계하여 상상을 현실로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실행을 포함하였다.
참가자들은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둘러 앉아 방금 마친 실행(exercise)을 통해 자신들이 경험한 것에 대해 섬세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토론에 집중하며 한사람씩 자신의 외적, 내적 체험을 상세히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한 강사의 피드백이 덧붙여진 후,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위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씩 짝을 만든 후, 작은 접촉으로 시작하여 서로의 무게를 나누며 형태를 만들어가기까지, 신체 언어를 개발하고 표현할 수 있는 활동이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강사는 감각을 일깨우고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 서서히 관계를 형성하며 신뢰를 구축하는 것, 움직임을 통해 서로 대화하고 탐색하고 나누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을 잊지 않도록 강조했다.
오전 과정이 마무리된 후, 강사 막심 이안나렐리를 만나 이번 워크숍의 진행과정, 구체적인 방법론 및 그 의미에 대해 들어보았다. 먼저, 그는 한국에서의 첫 워크숍 경험에 대해 참가자들이 이론 뿐 아니라 실제 활동에도 “마치 차가운 물이 가득한 수영장에 주저 없이 뛰어드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라고 표현하며, 배우려는 열정과 배운 것을 공유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며 감탄했다. 또한 이미 가지고 있는 교육 방법을 확장하고 강화하고자 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어 함께 작업하기 수월하다며, 강사로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자신도 참가자와 같은 예술교육자이기 때문에 이번 워크숍이 스스로에게 큰 도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매순간 깨어있을 책임감, 사회적 예술가
이번 워크숍은 제목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다루면서 그것을 느끼고 시각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이 창작에 임할 때 사회나 주변과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창작에 몰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여기에서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아닌 우리 사회에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먼저 느끼고 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사회 안에서의 이런 기본적인 책임감, 즉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태도가 예술가에게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우리가 감각을 열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자 한다면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 감각을 통해 바로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선생님들 또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전하고 싶습니다.”

– 막심 이안나렐리

그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감에 대해, 서로 공유하고 존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일임을 거듭 강조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그 과정의 일부일 것이며, 이번 작업은 이러한 생각들을 신체화(身體化)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아이들을 대할 때 그저 이걸 해라, 저걸 해라라고 말하는 대신 그들의 존재를 느끼고, 알아가고,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아이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그들을 조금 더 창의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통합예술은 장애인들과의 작업에도 매우 도움이 되는데, 늘 사회에서 거부당하는 느낌을 많이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안전지대를 확보하여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우리 모두 능력이 다른 것처럼, 각자에게는 다 장애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서로 신뢰와 믿음을 확보해야 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대화와 교류를 위한 공간, 플랫폼
주어진 구조 안에서 단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기초적이고 원초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신뢰를 쌓는 것에 대해 강조하면서, 그는 작업을 할 때 과제 지향적(task-oriented)으로, 과제를 주면서 시작해서 조금씩 과제를 늘려가면서 발전시켜 나가고, 그렇게 해서 한 번에 창의성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게 하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정교한 연습들을 통해 경험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궁극적으로는 플랫폼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실제로 뭔가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고, 이것이 교육에 있어 밑거름이 되는 역할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뭔가가 일어나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가 모든 교육자의 고민이기 때문에 플랫폼을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막심 이안나렐리

그가 말하는 플랫폼은 학생들에게는 창의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거나 이해하기 위한 신체능력을 강화시켜 움직임에 적응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이 워크숍처럼 전문가-참여자들의 경우, 그가 먼저 상황을 만들어 제공하면 그 위에서 참여자들이 피드백을 주고받고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는 이번 연수의 참가자들은 분명 이와 비슷한 활동 경험이 많은 분들일 거라 여겨진다면서, 새로운 활동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을 제공하고 싶었고, 모두 다른 시각과 배경을 가진 분들이기 때문에 기존에 느꼈던 것들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번 워크숍 과정의 참여자들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와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강사의 움직임 접근법에 대해 기대하고 참여하게 되었는데, 공감이 되고 신뢰감이 생기면서 진행 과정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단지 어떤 기술이나 도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체험하고 녹아들면서 새로운 경험의 장으로 이끌어 주는 과정이었습니다. 강사에 대한 신뢰감이 수업에 더 몰입하게 한다는 점, 조력자로서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 참여자 김옥희(무용분야 예술강사)

이어 김옥희 예술강사는 예술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예술가로서 교육에 접근할 때 늘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인데, 이번 연수를 통해 ‘사회적 예술가’로서 사회 속에서 예술의 가치를 대상자들에게 좀 더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구현해본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또한 현장에서 예술적 접근이나 체험에 대해, 교육 과정의 결과들을 공연으로 가져가려고 하는데 많이 어려워한다며, 이번 연수에 기대하는 것도 “결과에 눌리지 않고 어떻게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공연이나 체험으로 더 확장해 갈 수 있는가에 대해 궁금하다”며 참여소감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막심 이안나렐리는 공연자로서 작업을 선보이는 자리로 꼭 다시 올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예술교육에 있어 교육과정에 집중하다보면 실제 예술을 접하는 기회들이 적어질 수 있는데, 여전히 그 역할이 중요하고 강조했다. 이러한 예술적 접근이 아이들에게 삶을 좀 더 재미있고 풍요로운 것으로 만들고 하고 싶은 것들을 발견하게 해줄 것이라 믿었다. 이런 워크숍의 경우에도 실제 공연을 하고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예술적 요소가 보완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시각에서 촉각으로 감각적 경험을 재조명하여 또 다른 감각을 열어가고자 하는 접촉즉흥은 감각의 대부분을 시각에 의존해온 우리의 체험을 변화시키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기존에 우리가 느껴온 시공간을 재구성하는 원초적이고 강력한 체험을 제공한다. 가치와 태도는 그것을 수행하는 몸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통합적 경험의 출발점이 예술교육에 있어 또 하나의 가능성의 시작이 아닐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아르떼 아카데미(Arte Academy)는
문화예술교육 분야 창의적 리더와 인재 육성을 위해 전문성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와 복지시설에 출강하는 예술강사부터 문화예술교육 기획자 등 문화예술교육의 핵심 매개자 대상 내용별, 단계별 연수프로그램으로 문화적 역량과 전문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연수를 제공한다. 또한, 문화적 가치 공감과 확산을 위해 각 부처 공무원, 교원 등을 대상으로 현장 중심의 다양한 연수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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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_ 마루스튜디오
홍은지
홍은지
다양한 공연방식을 고민하고 고안 중인 공연예술 연출가. 얼라이브아츠 코모(alivearts co_mo, collecors of moments)에서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순간을 채집하고 그 흔적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벙어리시인>, <카페더로스트>, <야만적 낭만> 등을 연출했다.
eufy654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