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월이면 어김없이 찾아가는 문화예술교육 ‘움직이는 예술정거장’이 전국을 누빈다. 올해도 지난 7월 14일부터 문화예술교육을 접하기 어려운 농산어촌지역에 예술가들이 직접 찾아가 연극, 설치미술, 무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중 전라남도에서는 병원선과 연계하여 전남 도서지역에 의료서비스와 함께 문화예술교육 체험이 가능한 ‘예술선’이 운영되었다. 지난 5월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에 열린 신진 문화예술교육자(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아르떼 펠로우’에서 선정된 창작집단 움스의 <동네방네 춤 메들리>는 ‘예술선’을 타고 섬마을 주민들을 만났다. 창작집단 움스의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일지를 통해 생생한 현장을 소개한다.
어렵지 않은 춤, 즐기는 춤, 표현하는 춤
[준비과정] 시, 노래, 춤이 함께하는 섬마을 감성충전 프로젝트
혹자들은 춤을 어렵게 생각한다. 사실 춤추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춤추기까지의 과정이 어려운 것이다. 춤추고 싶다는 마음과 상황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일 것이다. 3회차를 진행할 당사도와 예작도로 향하는 뱃길에서 폭염 탓에 전복 수확이 어려워져 어가(漁家)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와 더불어 프로그램 참여를 너무 독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도 해주셨다. 여유가 있어야 노래도 나오고 춤도 춰지고 시도 읊어지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어렵기까지 하다면 더더욱 안 될 터이고, 그렇다고 너무 경계를 나눠서 보고 듣기만 하는 수업은 어르신들에게 한 수 배우기에 적절치 않고.
<동네방네 춤 메들리>는 섬마을 어르신들과 건강한 몸, 감성적인 몸을 위해 음악과 춤 그리고 이야기가 함께 하는 추억 만들기 프로젝트이다. 처음 프로그램 기획을 시작할 때 참여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을 고민했다. 참여자가 어렵지 않은 창작을 통해 가까운 거리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춤 수업을 만들고 싶었다. 기능적인 춤의 형태보다는 춤을 추고자 하는 정서적 시작점을 공유하기 위해 노랫말과 시를 도입해 수업을 전개해보기로 했다. 뽕짝부터 발라드, 국악과 탱고 등 다양한 음악에 맞추어 춤과 시낭송 그리고 몸풀기 체조까지, 절대 운동처럼 느껴지지 않게 메들리로 구성해 <동네방네 춤 메들리>가 탄생했다.
섬마을까지 가는데 선물로 라이브 음악을 들려 드리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악사를 수소문하던 끝에, 대학에서는 판소리를 공부하고 최근에는 아프리카 음악에 빠져 살고 있는 신보섭 강사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내건 악사의 조건은 까다로웠다. 즉흥연주가 빼어나고, 예술로서 나눌 마음의 여유가 있으며, 뽕짝부터 클래식까지 스펙트럼이 넓을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뱃멀미를 극복할 수 있을 것. 조건이 이러하다 보니 악사가 확정되기까지 프로그램을 기획한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소리꾼이자 악사인 신보섭, 춤과 연극·노래지도가 가능한 석수정, 신체 컨디션을 살펴볼 수 있는 춤꾼 정진우로 구성된 팀은 섬마을 어르신들의 신체 컨디션에 맞추어 단계를 조절하며 시, 노래, 춤이 함께하는 다각적 감각의 수업, 말랑말랑해지는 섬마을 감성 춤 메들리를 준비했다.
  • 눌옥도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신나는 춤 메들리
  • 아름다운 섬마을 어르신들께 달아드리는 꽃
병원선에 춤과 노래를 싣고
[7월 26일] 1회차 – 전라남도 진도군 옥도, 눌옥도
섬마을 어르신들에게 한 수 배우러 간다. 그 섬엔 어떤 분들이 계실까? 생애 처음 가보는 곳, 어쩌면 딱 한 번 가게 될 곳. 그 섬으로 향해간다. 일방적으로 주는 형태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물들이는 수업 혹은 체험의 형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프로그램은 시작되었다.
첫 출항이다. 어제 차로 6시간 이동해 목포에 도착했다. 빈속이 오히려 멀미가 심하다고 해서 전날 이동으로 피곤함에도 이른 아침에 속 풀이 콩나물국으로 배를 채우고 배에 올랐다. 병원선의 존재도 모르다가 ‘움직이는 예술정거장’으로 병원선을 처음 타게 되었는데, 그 내부는 보통 병원을 옮겨 놓은 듯 치과부터 한방치료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예술선의 프로세스는 이러했다. 배가 섬 근처에 다다르면 의료진이 먼저 보트를 타고 들어가 마을회관에서 진료를 본다. 우리 팀은 2차로 섬에 도착해 진료가 진행되는 동안 준비한 다음, 진료가 끝나면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병원선에서 오는 주민들의 처방 약과 맞물려 우리는 섬을 떠난다. 섬에 병원선이 들르는 횟수는 연 2~3회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처방 약은 마치 산타클로스 보따리처럼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옥도의 주 경제활동은 톳과 미역이다. 섬 입구에는 톳이 마르고 있었다. 보트에서 내리자마자 2분 거리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진료가 먼저 시작되었다. 우리는 마을회관에서 프로그램 장소를 물색했다. 마을회관에 있는 2개의 방 중 한 곳은 진료실로, 나머지 한 곳을 프로그램 공간으로 세팅했다. 진료만 받고 가실까 싶어 급하게 들어가 봤지만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방에 할머니 몇 분이 침을 맞고 계셨다. 마음을 접고 침방으로 쓰시게 공간을 내어드리며 다시 공간 물색에 들어갔다. 도착하면서부터 눈여겨보았던 마을회관 앞 정자를 첫 프로그램 장소로 확정했다. 바다가 바로 보이고 사방이 뚫려 있으니 더위만 극복하면 춤추고 노래하기엔 이만한 장소도 없겠다 싶었다.
예상보다 어르신들의 몸 컨디션들이 좋지 않아서 대부분 앉아서 진행했다. 정자가 좁고, 또 앉아계신 분들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무릎을 꿇고 진행하느라 고생스러웠지만 노래가 나올 때마다 표현하시고 잘 따라와 주셔서 첫 진행은 만족스러웠다. 인사 후 보트를 이용해 다시 병원선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두 번째 정거장인 눌옥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도 마을회관 앞 정자에서 진행했는데 눌옥도 주민들 역시 순박하고 정이 넘쳤다. 어르신들이 노랫말과 시구에 몸을 싣고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이 오히려 강사인 나에게 많은 에너지를 주는 듯했다. 프로그램이 중반쯤 진행되었을 때, 방학을 맞아 찾아 온 손자들이 도착해 아이들도 함께했다. 보트로 돌아가는 길에 항 입구에서 손낚시로 바로 잡아 선물로 주신 노래미 몇 마리를 들고 다시 진도항으로 이동했다. 진도항에 내려 남도소리전수관 인근에 한옥으로 되어 있는 민박집에서 묵으며 다음날 외병도와 내병도 방문을 준비했다.
  • 외병도에서 손자들과 즐거운 춤 메들리
  • 시를 낭송하는 외병도 목사님
더위보다 강한 어르신들의 흥과 멋
[7월 27일] 2회차 전라남도 진도군 외병도, 내병도
외병도로 들어가는 뱃길은 안개가 자욱했다. 신보섭 강사는 <캐리비안의 해적> 영화 삽입곡을 틀었다. 보트를 타고 가는 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놀라울 정도로 갑작스레 섬이 나타났다. 안개를 뚫고 시작된 외병도에서의 프로그램은 방학으로 놀러 와 있던 손자들과 함께 진행했다. 섬에서는 아이들과 젊은이를 볼 수 없었기에 진귀한 풍경이었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피어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띠는 그 이름 달맞이꽃
– 장사익 노래 <달맞이꽃> 중에서
여느 할아버지가 그러하듯 남자 어르신들은 무뚝뚝하고 표현을 꺼리시는데 신명 나게 분위기를 띄워주신 한 어르신 덕에 장사익의 <달맞이꽃> 안무가 풍성해졌다. 달맞이꽃과 같은 분에게 한 수 배운 셈이다. 프로그램 진행 내내 ‘참 멋있는 분이다’ 생각했는데, 프로그램이 끝나고 보트를 타려는 우리에게 “내가 누군지 아오? 이곳 외병도 목사요.” 하시며 배웅해 주셨다. 서울에서 목사 퇴임을 하시고 섬에 오신지 20여 년 되어 간다고 하셨다. 아직도 섬마을 멋쟁이 목사님의 풍류가 눈에 훤하다.
네 번째 섬 내병도에 도착했다. 마을회관이 가파른 계단 위에 있어 신보섭 강사와 나는 입구에 정자에 프로그램 준비를 마치고는 노래하고 춤을 추며 기다렸고, 정진우 강사는 혹시 몸이 불편해 못 오시는 어르신이 있을까 걱정하며 진료실로 가보았다. 이장님은 어업이 밀려 있어 많이 참여하지는 못할 거라고 하신다. 내병도는 유일하게 여자 이장님이셨다. 이장님이 다른 섬의 안부와 참여도를 물으셔서 답해 드렸더니, 갑자기 주민들이 모으기 시작했다.
무척 더운 날씨였다. 정자에는 선풍기도 없고 바람 한 점 없다. 소품으로 가져온 부채는 향을 전해드리려던 것이었는데, 부채질을 해드리는 인간 선풍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템포도 멘트도 더위를 극복하는 프로그램이 되어야 했다. 내병도에서는 소리하시는 멋쟁이 어르신을 만나게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을 즉흥으로 소리로 들려주셔서 프로그램에 흥과 멋을 더해주셨다. 여장부 이장님이 손수 타주신 시원한 냉커피와 수박을 얻어먹고 병원선에 몸을 싣고 서울로 다시 향한다.
가는 배여 가는 배여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꾸밈없이 꾸밈없이 홀로 떠나가는 배
바람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 박은옥, 정태춘 노래 <떠나가는 배> 중에서
바다와 섬은 번져 춤이 되고 노래가 되고
[8월 24일] 3회차 – 전라남도 완도군 당사도, 예작도
2회차 프로그램이 끝나고 거의 한 달 만이다. 이번에는 완도항으로 왔다. 당사도와 예작도는 전복이 주 경제활동이다. 그래서인지 1,2회차와 다르게 젊은 세대가 많다. 앞서 4개의 섬에서는 대부분 앉아서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참여자들이 스스로 일어나 흥을 보이신다. 약 스무 살 정도 더 젊은 섬이었다. 이로써 ‘춤 메들리’도 두 가지 버전으로 리뉴얼되기 시작한다. 프로그램 후 뭍에서 온 귀한 과일들을 잔뜩 꺼내어 주시는 당사도 할머님, 전어회와 인근 옥천막걸리를 대접해주시는 예작도 이장님의 인심, 그리고 본인들을 캐스팅해서 함께 유랑을 떠나보자고 제안하는 분들까지. 이제 춤 메들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순간 가까운 미래에 섬에 다시 오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섬마을 어귀를 돌아보고 눈과 마음에 담고 싶다. 일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프로그램 후 섬에서 숙식을 하는 줄 알았다. ‘전기는 들어오겠지?’ 막연한 걱정들이 있었다. 실제 당사도 외에는 민박집 하나 없는 곳 이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30분 이내에 정리하고 섬을 빠져나오다 보니 이렇게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이 우리에게 장기기억으로 저장 될 것 같다.
처음 목포항에서 신안 쪽으로 가면서 흡사 산맥처럼 바다 위에 표류하는 많은 섬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직 가보지 않은, 느끼지 못한, 만나지 못한 그 많은 것들이 내게 밀려오고 있음을 잠시나마 상상해본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싸고 섬으로 한 수 배우러 가련다.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또 한 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 장석남 詩 < 번짐> 중에서
  • 창작집단 움스의 첫 출항.
    왼쪽부터 정진우, 석수정, 신보섭
  • 안개가 잔뜩 낀 외병도 앞
  • 당사도에서 나가는 길목
창작집단 움스
2014년 창단한 ‘창작집단 움스’(움’S)는 전공자와 춤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비전공자가 함께 새로운 방식의 몸 풀이와 창작을 통해 공연과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운영 하고 있다. 움직임 스터디 <움스 아카데미>, 워크숍과 퍼포먼스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관객참여형 무용공연 <워크먼스>, 일반인 대상 교육프로그램 <몸플학교>와 <오픈 몸플>,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마마몸플> 등 움직임에 대한 활동과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cg-wombs
· 페이스북 www.facebook.com/CG.wombs
관련링크
·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홈페이지 http://artebus.arte.or.kr/2016/
석수정
석수정
중앙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2003년 똥자루무용단 소속 안무가로 데뷔했다. 첫 안무작 <오렌지 도마뱀>을 시작으로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안무가로 활동했다. 2011년부터 일반인 대상 무용공연체험 프로그램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에서 <햄릿게임>, <트루나잇>을 연출하며 커뮤니티 댄스로 작업을 확장하여 비전공자와 전공자 경계를 넘나들며 창작안무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2014년 창작집단 움스를 창단해 안무와 연출, 교육프로그램과 워크숍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그 과정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메일 sukdosa@gmail.com  홈페이지 www.mompl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