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열린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행사 가운데 현장이야기마당 ‘마음탁자’에 참여한 많은 이들은 참여자(수혜자)를 알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참여자의 수요로부터 출발하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은 것이다. 대전지역의 여성들과 함께 지역의 수요를 읽고, 수혜자의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한밭문화마당 이춘아 대표를 만나 수혜자를 이해하는 방법과 원칙에 대하여 들어보았다.
2001년 대전으로 거처를 옮기신지 2년 만에 ‘한밭문화마당’을 여신 것으로 안다. 그 창립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2001년 5월에 대전 문화유산해설사 교육을 받으면서 알게 된 동료들과 함께 한밭문화마당을 열게 되었다. 내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을 알고 사랑하지 않으면 지역문화를 꽃 피울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었다. 서울은 나에게 직장이 있는 곳 정도의 의미 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전에 정착하고 문화유산을 공부하면서 사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러다 더 새롭고 재밌게 살아가는 방식을 함께 찾아보자는 뜻에서 단체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저런 강의를 하면서 내 소개를 할 때, “어려서는 낙동강 물을 먹고 자라, 성인이 되어 한강 물을 먹고 살다가, 중년이 되어 금강 물을 먹으며 살고 있는데, 노년에는 무슨 물을 먹고 살게 될까요?”라곤 한다. 요즘 지역학 개념으로 대전학, 충청학 등의 말을 하곤 하지만, 산하(山河), 즉 산과 강으로 지역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살고 있는 터와 나 자신을 일치시켜 가는 것으로 정체성을 깨닫고 역사적 의미를 가중시켜 가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외국에 입양 갔다가 한국인으로서 나는 누구인가, 나의 부모님은 어떤 분인가를 알기 위해 고국을 찾아오는 사례와 비슷하다고 본다. 문화예술교육은 결국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게 하고,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방법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법상으로는 문화예술 장르를 선택해서 나 자신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 문화예술교육이다. 한밭문화마당에서는 우리가 지내고 있는 터의 아름다움을 알기 위하여 문화유산을 교육 소재로 삼고 있다. 그래서 ‘한밭’은 대전, ‘문화’는 지역 사랑이자 확장된 자신의 정체성이며, ‘마당’은 만남과 생산의 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현재 한밭문화마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올해 2016년 사업으로 문화유산 학교방문교육과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문화재 지킴이 기본교육과 활동, 생생문화재 사업, 공개강좌와 지역답사 등의 사업이 있다. 5월부터는 자유학기제 관련 사업으로 중학생 지역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먼저 문화유산 학교방문교육은 우리 단체의 모태 교육사업이다. 1년 과정에 400여 학급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 첫 사업은 생생문화재 사업인데, 대전지역의 전통문화유산으로서 이사동에 위치한, 500년 된 1천여 기(基) 분묘와 석물이 있는 공간에서 여는 전통문화 교육사업이다. 서산(書算), 전통책, 책걸이, 전통제사상, 마을 한천제 재연, 전통 상여 행렬 재연 등 체험과 재연행사에 참여하면서 진행된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의 경우, 유형 문화유산 교육 중심으로 진행하다가 무형문화유산 교육을 도입하기 위해 자체 강사교육을 하고 있었다. 4년 전부터 대전무형문화재전수회관과 연계하여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 참여하게 되었다. 대전의 무형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문화재에 날개를 달다’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 개정되면서 교육 분야에 문화재가 추가로 들어갔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 유형문화재뿐만 아니라 이렇게 전통 무형문화재를 이해하고 전수하는 문화예술교육은 매우 소중하고, 또 바람직하다고 본다. 현재까지 악기장(북), 불교조각장, 웃다리 농악, 단청, 입춤 등 대전의 22개 무형문화재를 활용하였고, 가족 단위로 참여 가능한 프로그램이다.
문화예술교육 사업에서 지역의 수요를 파악하는 방식 그리고 그 수요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더불어 참여자(수혜자)를 어떤 방법으로 모집하는가.
내 경험으로는 무엇보다 개인이나 단체가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문화예술교육 강사 개인보다 단체가 좀 더 유리한 것은 개인의 아이디어를 여럿의 힘으로 함께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를 한 후에 완성된 프로그램을 한밭문화마당 온라인 카페에 게시하는 것으로 홍보한다. 리플릿도 좋은 매개가 된다. 좋은 프로그램의 경우 하루 만에 마감이 된다. 누군가가 늘 보고 있다는 거다. 좋은 프로그램을 찾는 수요자는 늘 있다. 우리 단체는 아이들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주부들이 주축이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어린이와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일반 시민도 다수 참여한다. 문화소비자에만 머물렀던 주부들을 문화봉사자, 다시 말해 문화생산자로 양성하는 것을 우리 단체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실행하고 있다.
활동인력이 20명 정도인데, 우리 단체의 좀 특기할 만한 점은 사무국장의 임기가 1년이라는 것이다. 로테이션 형식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회원 모두가 각각의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고, 단체 전반의 업무에 대하여 누구든 총괄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각 회원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 매회 돌아가면서 중도일보 시민기자 활동을 하며 대전의 역사와 문화에 관계된 다양한 기사들을 작성하는 일도 했다. 대표도 공동대표제로 하여 업무를 나누어 맡고 있다. 그렇게 우리 단체는 3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의 주부들이 주축을 이루어 문화생산자로 거듭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역 문화예술교육 사업에 있어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우선 교육사업을 추진하는 문화단체 자체의 내부 역량 문제를 들 수 있다. 2~3명이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1년 프로그램을 그렇게 소수 인원으로 운영하다보면 교육은 부실해질 가능성이 크고, 또 지속성이 떨어지기 쉽다. 좀 더 많은 인력이 해당 사업의 기획에서 실행에 이르기까지 사업에 관한 이해력을 기르고, 사업 추진과정에서의 결속력을 강화해야만 성공적인 지역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경우, 예술강사 혼자서 외롭게 교육을 진행하는 사례가 많다. 사업 전반에 관한 공공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활력을 잃지 않으려면, 단체 기획자와 강사, 교육기관 담당자가 만나는 횟수를 늘려야 한다. 그렇게 친목을 도모하고 일에 대해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육사업에 관한 지원을 맡고 있는 문화재단(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역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지원사업이 잘 되기 위한 방안을 세심하게 검토하고, 지역 문화 생태계를 염두에 둔 다각적인 지원방식을 항상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 지역민, 여러 기관과 더불어 지역 문화예술교육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상호이해와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그 신뢰의 연결망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유지되는지, 궁금하다.
상호이해와 신뢰는 무엇보다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에 달려 있다고 본다. 참여 강사진의 열의가 매우 중요하다. 감동을 만드는 진정성, 열의, 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한밭문화마당에서 진행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 참여했던 한 아버님이 매우 좋은 프로그램이었다며 수박을 사가지고 교육장으로 오셨다. 그렇게 열의와 정성을 다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다음에는 꼭 참석해 봐야겠다며 입소문이 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어떤 사업을 집행하고 어떤 성과를 낼 것인가 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자발적 참여다. 즐겁지 않다면, 또 어떤 다른 이득을 전제로 하는 행위라면 의미가 상실되어 버린다. 자발성이 첫째다. 우리 단체는 지역 문화예술교육에서 전문성보다는 공공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높은 수준의 예술교육 성과보다 서툴지만 즐겁게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 중심을 두어야 그 결과 역시 의미가 있다. 그렇게 되어야 열의와 정성이 생기고 신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 단체는 그런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최근에 ‘대전문화유산협의회’가 발족되어 매달 문화유산 관련 기관회의가 있다. 이번 자유학기제 시행에 맞춰, 앞에 이야기한 청소년 문화탐방 교육을 대전 시내 중학생에게 1주일 1회 진행하자는 제안이 나와 여러 기관·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예산에서부터 일정, 단체별 역할 조정 등 많은 현안을 협의하였다. ‘민관 협력’이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러한 민관 협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의 확고한 의지와 열의가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대전시 문화재과의 담당자께서 매우 열정적으로 협의와 실행에 준비해주셔서 단체별로 교육 일정이 무리 없이 잘 조정되는 등 사업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교육에서 있어 ‘민관 협력’의 좋은 선례가 되는 것 같아 뿌듯하다.
한국문화의집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신 걸 뒤늦게 축하드린다. 문화의집은 지역주민과 가장 밀착된 거리에 있는 만큼,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 같다. 문화예술과 지역 주민과의 매개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문화의집이 앞으로 나가야할 방향은 무엇이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
지역 생활문화공간으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문화의집’이 처음 만들어진 지 20년이 되었다. 문화의집이 있게 된 데는 돌아가신 이중한, 강준혁 두 문화기획자분들의 공로가 크다. 현재 전국에 150여 곳이 있는데, 슬리퍼 끌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문화공간을 추구한다. 문화예술교육에서 말하는 자기주도적 학습, 즉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우리가 요구하는 강사들과 함께 해보는 공간이 되고자했다. 문화의집은 하고 싶도록 유도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문화의집 직원은 지역민들이 가장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로 오랫동안 해오다보니 최근의 트렌드와 맞아 떨어지면서 문화의집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이러한 가치관과 방향을 함께할 수 있는 ‘생활문화센터’라는 문화공간 리모델링 사업이 3년 전부터 추진되고 있다. 2004년에 4년 정도 대전 유성문화원 사무국장을 했을 때, 주민 대관사업을 추진한 경험이 있다. 각자 모두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어떤 가족이 문화원 공간에서 작은 가족음악회를 열었다. 비슷하게 2013년, 전국에서 처음 시민 문화예술 활동 연습장으로 24시간 개방한 전주시민놀이터 역시 지역의 생활문화공간 활용 차원에서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기관, 단체, 개인에게 드리고 싶은 제언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지난 10년 동안 ‘이것이 문화예술교육이다’라고 강조하는 시범프로그램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추진하는 분들이 지역주민들이 손수 진행하는 문화예술 활동이나 마을 만들기, 열린 문화공간 만들기 등 여러 다양한 주체들과 협력하여 문화예술교육 장르를 확장시켜 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문화공간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마을로 찾아가는 프로그램 등이다. 예술단체 및 공간이 주민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여자를 모집하거나 찾아가는 방향, 마을 만들기처럼 주민주도형 문화프로그램으로 주민들이 공간과 강사를 찾고 예술단체와 협력하여 운영하는 방향 등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점차 주민주도형 문화프로그램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한다. 지역문화 전문인력을 지속적으로 양성하는 일과, 마을 중심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려는 사업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춘아
이춘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1983-1997)과 한국문화복지협의회 연구실장(1997-1999), 대전 유성문화원 사무국장(2004-2008) 등을 역임했다. 2001년 서울에서 대전으로 터전을 옮긴 후 문화유산을 공부하며 뜻 맞는 동지들을 만나 2003년 한밭문화마당을 만들었다. 2015년 (사)한국문화의집협회 회장을 맡아 ‘생활 속 문화공간’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화복지, 문화자원봉사, 생활문화 등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에 평가와 자문도 맡고 있다. 지역 주민 스스로 지역의 문화를 만들고 함께 누리는 세상을 꿈꾼다.
사진 _ 마루스튜디오

소종민
소종민
문학평론가. 충북 청주에서 ‘북클럽 체홉’을 운영하고 있다.
messai@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