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에게 예술교육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 없이 모두가 인지하는 내용이 되었으며, 특히 아동·청소년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다. 이에 한국은 물론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자국의 특성을 살려 아동·청소년 대상 문화예술교육을 발전, 확대하고 있다. 예술교육에 대한 인식이 우리보다 앞섰던 서방국가들은 정부 주도의 정책적 지원을 넘어 이미 공교육 내에 예술교육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거나, 민간차원의 고도화·다양화된 문화예술교육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주도로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마련하여 전국의 학교에 예술교육을 지원하는 ‘예술강사 지원사업’이 10년째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과 구조와 방식 면에서 유사한 점들이 눈에 띄는 노르웨이 학교 문화예술교육 정책인 ‘문화배낭 프로그램’(The Cultural Rucksack programme, 이하 문화배낭)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해외 전문가 초청 워크숍을 위해 지난 11월 한국을 방문한 시앙세 예술센터(Seanse Art Center) 관계자 인터뷰와 관련 자료를 통해 살펴보았다.

창작과 예술교육의 환류 구조 만들기
문화배낭은 노르웨이의 일반 학교에 전문 예술가들을 파견하여 학생들이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하도록 하는 국립 프로그램으로 2001년 노르웨이 내 여러 정당의 초당적 합의를 통해 국가적 정책목표로 발족되었다. 현재 고등학교까지 대상을 확대하여 6세부터 19세까지의 모든 학생들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문화배낭을 통해 노르웨이의 일반 학교 안에서 전문적 예술창작 활동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또한 초당적 합의를 통해 발족한 국가적 정책목표인 만큼 노르웨이 주정부와 지방 자치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문화배낭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주정부의 문화 및 교육부서가 해당지역 내 프로그램 조정을 담당하고 지역 자치단체에서 개별 프로그램을 고안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참여 당사자 모두 주인의식과 열의를 갖게 되고 지역적 다양성이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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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앙세 예술센터(Seanse Art Center)는 노르웨이에서 문화배낭을 진행한 첫 번째 지역에 소속된 단체로 문화배낭 정책 초기단계부터 긴밀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특히 기존에 없던 이 생소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예술가들의 작업을 학교와 파트너(정책 관련자)들에게 알리는 차원에서 ‘문화 광장(cultural plaza)’이라는 쇼케이스를 개최하였다. ‘문화 광장’은 지역 내 학교별로 2인의 교사를 초청하여 예술가들이 어떤 프로젝트를 갖고 학교로 찾아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지 시연하는 자리로 3~4일간 진행된다. 첫해뿐만 아니라 매년 쇼케이스를 진행하며 그들의 파트너들에게 문화배낭을 통해 아이들이 어떤 것들을 제공받을 수 있는지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자리에서 학교는 희망 예술가에 대한 목록(wish list)을 작성할 수 있으며, 쇼케이스 외에도 각 예술가들의 교육프로그램을 담은 브로슈어를 학교에 배포하여 학교가 희망하는 예술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예술가 스스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역의 대학(볼다대학교)과 연계하여 예술가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배낭의 주요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예술강사 본인의 창작 작업이 교육프로그램을 고안할 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술강사의 첫 번째이자 필수적인 조건은 그들이 ‘예술가’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예술강사는 전문 아티스트로서 교육 혹은 커뮤니티 환경에서 예술작품 활동을 펼치는 이들을 말한다. 예술강사에게 필요한 역량으로 예술성, 태도, 참여, 이 세 가지를 꼽는다. 예술강사에게 필요한 태도로는 학생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연구하는 자기반성적 태도가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또한 신체를 활용한 참여와 협업, 창의적이며 순발력 있는 참여 등이 예술강사에게 필요한 역량일 것이다.”

– 마리트 울번트 (시앙세 예술센터 디렉터)

시앙세 예술센터 디렉터 마리트 울번트(Marit Ulvund)와의 인터뷰를 통해 문화배낭에서 활동하는 예술강사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 최우선 조건임을 알게 되었다.
예술가 스스로 창의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고안하여 학교에 제시하고, 학교가 필요한 교육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구조이다 보니, 예술강사가 창작활동을 통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문화배낭의 재원은 주로 복권기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사의 출장비와 강사료 정도만 지원된다. 예술강사들은 문화배낭 이외의 예술가 지원 정책을 통해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한다. 문화배낭은 지역별로 상이하지만 미술관, 박물관 등 국립예술기관으로부터 예술창작에 대한 별도의 기금을 지원받는다. 이를 통해 예술강사들은 본인의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그 결과는 교육프로그램으로 연결된다.
사실 창작활동에 대한 기금은 문화배낭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고, 창작기금을 지원받는다고 해서 모두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르웨이의 많은 예술가들이 문화배낭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작가이자 문화배낭 예술강사로 참여하고 있는 베넷 아힘(Bente Aasheim)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노르웨이에서 단순히 창작활동만 하는 예술가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술가들에게 문화배낭은 생계수단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업이 단순히 생계유지만을 위한 것이라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만나고 교육을 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며, 교육프로그램을 고안하고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내 예술활동에도 큰 영감을 주고 있다. 이것은 다시 더욱 질 좋은 교육프로그램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교육프로그램이 좋을수록 더 많은 지역과 학교에서 나를 찾게 되며, 결국 더 큰 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작년에 오슬로에서만 170개 학교에서 나와 프로그램을 하길 원했다. 일정상 12개 학교와만 작업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학교가 나와 작업하기 원하는 것은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게 함은 물론 재정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 베넷 아힘 (문화배낭 예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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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고 성장하는 문화배낭
성공적인 정부 정책 사례인 문화배낭은 2016년 1월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그간 노르웨이예술위원회 내 작은 부서에서 주관했던 것을 ‘콘서트 노르웨이(CONCERTS NORWAY)’로 이관하게 될 예정이다. 콘서트 노르웨이는 50여 년이 넘은 국립 예술기관으로 주로 공연예술을 전담하고 있다. 문화배낭에 참여하는 다양한 주체 간 의견을 조율하고 교육지원의 확대 등을 실행하기 위해 보다 큰 규모의 기관인 콘서트 노르웨이로 문화배낭 기능이 이관되어 각 주체간의 소통 및 지원체계를 효율화 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콘서트 노르웨이는 새로운 기관명으로 변경하고, 전 예술장르를 문화배낭 프로젝트로 다루게 될 예정이다. 그러나 주관기관의 변화로 인해 문화배낭이 공연예술에 집중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걱정도 여전히 있다. 한편, 다음 단계의 성장을 위해 학생들의 더욱 직접적인 교육 참여 유도, 학교 안에서 예술가가 보다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변화를 앞두고 우려와 고민도 많지만 참여주체 간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더 나은 프로젝트로 만들어가고자 하고 있다. 문화배낭에 참여하는 각각의 주체 간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겠지만, ‘학생-학교의 아이들에게 양질의 예술교육을 제공한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다양한 고민과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의 학교 문화예술교육 정책인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올해 공식적으로 10살을 맞았다. 하나의 제도가 만들어지고 안착하는데 10년이란 시간은 결코 넉넉한 시간은 아니다. 이제 겨우 10살,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그 나이에 걸맞은 고민과 성장통을 겪고 있다. 예술강사 지원사업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고민에서 우리 모두가 바라봐야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학교의 아이들’일 것이다.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정부부처, 지자체, 중앙 및 지역기관, 학교, 그리고 예술강사 모두 주인의식을 갖고, 학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성장의 고민을 지속하길 희망한다.
공교육에서 미쳐 채워주지 못하는 예술적 감수성을 누리고 경험하는 시간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어느 한쪽만 비대하게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르게 성장하길, 고른 성장을 기반으로 삶의 다양한 선택지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지금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의 의무이지 않을까.

오숙현 _ 학교교육팀
오숙현 _ 학교교육팀
audrey@art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