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7일은 생활연극네트워크(이하 생연)가 세상에 나온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10년 전에는 혼자 고민하며 계획했던 많은 일들을 지금은 자생적으로 조직된 생연 사무국 가족들과 같이 모여서 하고 있다. 지금은 10주년 기념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생활연극네트워크의 시작

 

10년 전, 이삼십 대를 오직 연극만을 하며 지내온 연극 연출가에게 개인적 욕심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시민들에 의해 시민들을 위해 탄생한 예술 장르인 ‘연극’을 언젠가는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것.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예술가들이 고민하고 실험해 왔지만, 연극에서 ‘하는 이와 보는 이’의 간극은 더욱 벌어진 상태이고, 이제는 아예 전문 관객 집단까지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연극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연극의 효용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는 ‘연극의 힘’을 이렇게 시시하게 써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객을 무대로 끌어올리고 그들의 삶 속에 연극의 힘을 직접적으로 섞어 내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동안 해 오던 연극 환경에서 빠져 나와 전혀 새로운 틀을 짜고 만드는 작업. 최소 10년은 하자고 다짐했다. ‘생활연극네트워크’라고 단체명을 정하고, ‘연극’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활용되길, ‘연극’이 보다 많은 곳에서 ‘새로운 대안문화’로 자리 잡길, ‘생연’이 반듯한 ‘시민문화공동체’로 성장하길 서원했다.

 

2005년 2월, ‘보는 연극에서 하는 연극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연극학교를 모집해, 현재는 11기를 교육하고 있으며, 연극학교를 졸업한 180여 명의 동문들과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생활’과 ‘연극’을 함께하고 있는 시민문화예술단체가 되었다.

 

생활연극 네트워크 생활연극 네트워크

(왼쪽) 연극학교 11기 입학식, 대표 인사말 (2014년3월)
(오른쪽) 동문단체 생동씨어터 정기공연 기념사진 (2012년11월)

 

생활연극네트워크의 10년

 

‘생활연극 네트워크’는 태생부터가 일반 시민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여 만들어졌으며, 10년 동안 진화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통해 시민들을 위한 ‘보다 효과적인 운영 시스템’을 자발적으로 연구하며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연극학교’는 1년 3학기제로 운영되며, 1학기는 자체 개발한 ‘One-by-One 프로그램’, 2학기는 ‘공동창작 프로그램’, 3학기는 ‘졸업공연’으로 진행된다. 동문활동인 ‘생동씨어터’는 1년을 4분기로 나눠 실험성을 강조한 ‘인큐베이터 프로그램’, 일반 시민들에게 맞는 창작 방법을 도모하는 ‘공동창작 연극제’,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름축제 ‘한밤’, 생동씨어터 ‘정기공연’으로 짜여 있다. 이 모든 프로그램들은 전원이 연극학교 출신들로 조직된 ‘사무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모든 프로그램들은 전원이 연극학교 출신들로 조직된 ‘사무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100여 명의 구성원을 이끌고, 주 활동공간인 ‘공연 스튜디오’와 ‘외부 연습실’ 같은 큰살림을 어떻게 꾸려 나가는지 많은 분들이 궁금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생연’에는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참가비’제도가 있다. 강제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매달 소정의 참가비를 납부하고 있다. 참가자 모두가 ‘생연’의 지속성을 고민하고 반드시 이어가야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일이다. 서로가 연극을 통해서 만나고, 목표를 세우고, 이제는 ‘함께 살아가는’방법들을 배워서 찾아나가는 모습들은‘연극의 힘’이 보여준 놀라운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생활연극 네트워크 생활연극 네트워크

(왼쪽) 생연 여름축제 한밤 기념사진 (2014년8월)
(오른쪽) 지역 카페에서 열린 주민들을 위한 예술 특강 (2014년 10월)

 

시민이 생활예술가로 변해가는 연극의 힘

 

“저의 인생은 생연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생연을 하기 전에 저는 어둡고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생연을 시작한 뒤 밝고 명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연극의 힘’을 몸소 체험한 것입니다. 2006년 생연 2기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잡지를 만드는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이었습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연극을 만나고 매력을 느껴 공연장을 찾아 다니며 관람하곤 했지만, 연극을 직접 해본 경험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우연히 인터넷 카페를 통해 ‘보는 연극에서 하는 연극으로’라는 슬로건을 가진 생활연극네트워크를 알게 되었고, 용기를 내어 연극에 도전했습니다.
연극학교 시절에는 누구나 배우, 작가, 연출로서의 경험을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작가의 역할이 가장 재미있고, 저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극학교를 졸업한 이후 동문 극단인 생동씨어터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작가에서 스태프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습니다. 새로운 꿈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생연다운 대본을 쓰는 생활극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생연에서 연극을 시작한 지, 올해로 9년째를 맞습니다. 그동안 생연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아름다운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생연 활동을 꾸준히 계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재미와 감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극을 만들어 가는 일이 재미있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공간이 점점 더 소중해지기 때문일 겁니다.” – 생활연극네트워크 2기 남궁소담

 

“생연과 만난 지 벌써 2년. 직장인이라면 슬슬 매너리즘에 빠지고 연인 사이라면 눈에 콩깍지가 벗겨질 그런 시기죠. 하지만 생연은 어찌된 영문인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좋아집니다. 생연에 처음 와서 자기소개 인터뷰를 하던 날이 생각나네요. 나이, 직업, 생연에 오게 된 이유는 사람들마다 제각각 달랐지만, 모두가 평범한 보통사람들이었죠. 이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 꼬박 1년이란 시간 동안, 생연이라는 울타리 안에 모여서 크고 작은 연극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배우가 되고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소품을 만들면서 말이죠.
공연에서 연극을 하다 보니 ‘우린 왜 생연에서 연극을 할까?’ 하는 점이 궁금해졌습니다. 수많은 약속과 야근, 가족들을 잠시 뒤로 미뤄 놓은 채 말이에요. 그땐 그 이유가 그저 ‘재미있으니까’라고 생각했는데요. 이젠 조금 분명히 알 것 같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만드는 과정 속에는, 나 조차도 몰랐던 새로운 나를 만나고 스스로 규정지었던 틀을 깨고 나오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요. 이것이 ‘보는 연극이 아닌, 하는 연극’을 지향하는 생연이 가진 힘이 아닐까요.” – 생활연극네트워크 10기 엄현진

 

생활연극 네트워크 생활연극 네트워크

(왼쪽) 연극학교 9기 졸업식(2013년2월)
(오른쪽) 생연 염랑 연기 대상 및 송년회 (2014년12월)

 

시시콜콜 지원사업에 뛰어들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도전해 본‘정부지원사업’은 생연인들 모두를 들뜨고 기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단지 생연 창립 10주년을 맞아 생연 가족들에게 우리 단체의 정체성을 알려주고 지속 가능성을 심어 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고민들을 가져왔다. 서울과 경기권 시민들을 대상으로 자발적으로 신청자를 받아오던 시스템에서 스튜디오를 거점으로 지역 참가자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지역 주민들을 만나면서 왠지 모르는 압박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냥 잘 해오던 ‘생연’일이나 하지 괜스레 지원사업을 받아 ‘연극’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연극 포교’를 하고 있는 꼴이 아닌지 회의감마저 들었다. ‘시민’, ‘문화’, ‘예술교육’에 대한 개념 정리까지 다시 해보게 되는 과정을 겪었다.

 

그러다 점점 주민들이 드나들면서 생연 스튜디오가 ‘우리동네 사랑방’으로 변화되고 ‘연극’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갈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주민들 역시 기쁘게 환영해 주었다. 생연 역시 어쩔 수 없이 주민들을 찾아가서 문화예술교육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수정했다. 생연 스튜디오를 거점 공간으로 기존 생연 프로그램들을 홍보하며 주민들을 1차 구경꾼으로 참여시키고, 마을 주변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재미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계획하고 만드는 일에 상상력과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 시민들 속으로 뛰어든 예술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생활연극네트워크의 새로운 10년을 꿈꾸다

 

2015년 ‘생활연극네트워크’는 기대 이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10년 동안 한결 같은 초심을 모두가 지켜온 결과일 것이다.

 

얼마 전 밖에 세워진 간판을 보고 지나가던 지역 주민들이 우리도 같이 해도 되는 거냐고 묻는다. 이번 주부터 공지한 연극학교 12기 모집에도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어젯밤 스튜디오에서는 10주년 기념공연을 위해 여럿이 모여 대본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연습실에서는 11기들이 졸업 공연 연습을 하고 있었고, 사무실에서는 사무국 사람들이 다음 달에 있을 10주년 기념 행사들에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었다. 그때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스튜디오로 돌아온 세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선생님도 뭐 좀 하세요!”

 

우리는 생연의 앞으로 10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생연의 새로운 2기는 우리들만의 단체가 아닌 ‘지역과 함께하는 예술단체’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예술적 감성이 필요한 곳곳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예술문화단체’로 발전할 것이다.


 


임재찬

글_ 임재찬 / 생활연극네트워크 대표
중앙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한 후, 연극연출가, 연기 강사, 시민문화예술 강사로 활동하며 30여 편의 연극을 연출하였다. 2005년 생활연극네트워크를 창립하여 현재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생동씨어터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본 기사는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임대아파트 주민과 산업단지 근로자 문화예술교육, 사회적 기업과 시민문화공간 연계 모델 개발 사업, 그리고 시시콜콜 지원사업까지. 시민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이 사회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정식사업으로 채택된 지 5년이 되었다.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지난 5년 간 시민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참여한 전문가와 활동가들의 의견을 모아 만들어졌으며, 다양한 현장 사례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