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 해변을 지척에 둔 곳에 부산 수영구 노인복지회관은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 년간 진행되어 온 ‘노인사진’ 수업이 마무리 된다. 수업에는 60~70대 사이의 어르신 열다섯 분이 각자의 카메라를 들고 자리하고 있었다. 수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두 시간가량 진행되었고, 수업 이후에는 뜨끈하고 진한 전복 미역국으로 쫑파티도 진행되었다.

 

사진 선생님, 어르신들을 만나다

 

김동휘 예술강사는 자신을 ‘사진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곳 부산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지난 19년간 대학 강단에서 사진강의를 해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작 작품활동을 하는 사진작가로서의 자신보다는 ‘사진 선생님’으로서의 모습이 익숙하고, 또 편하다고.

 

김동휘 예술강사가 예술강사로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4년 여 전. 대학생과 성인 외에 다양한 연령층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처음 초등학생 대상 사진 수업을 맡았던 것이 첫 인연이었다. ‘노인사진’ 수업은 3년 째. 부산에서는 이곳 수영구 노인복지회관과 또 다른 한 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집은 대구인데 먼 걸음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가르쳐주신다고, 어르신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선생님, 그러니까 아들 선명하게 잡으려면 노출은 무조건 짧게 잡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여기 AV라고 써 있는 게 조리개 우선이란 뜻인가요? 노출만 정하면 나머진 자동인가요?”

 

요즘은 카메라가 워낙 다루기 쉽게 제작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도 대부분 ‘P모드(프로그램모드)’나 ‘오토모드(자동모드)’에 놓고 셔터만 간단히 눌러 찍는다. 카메라의 기본 구조를 알고 있지 않아도 결과물은 좋은 편이다. 하물며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인생의 첫 카메라인 어르신들에게 사진의 원리와 개념을 설명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몇 번을 설명해도 수업 시간마다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그러나 김동휘 예술강사는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사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카메라 조작에 대한 개념이 익숙해지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거든요. 어르신이라서가 아니라 원래 사진의 기초적인 개념은 반복적으로 사진을 찍어 가면서 감이 생겨야 하는 일이에요. 설명하고 또 하고 사진 찍어 보고 또 설명하고 이 일의 반복은 누구나 마찬가지로 겪어야 하는 입문절차 같은 겁니다.”

 

하지만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은 사실 상대에 대한 큰 이해심 없이는 번거롭게 여겨질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 것이 그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해 보인다.

 

‘어떻게 찍습니까?’
카메라 조작 방법에서
표현 방식을 묻게 되기 까지

 

어르신들은 ‘카메라’가 아니라 ‘사진’을 배운다. 사진은 내가 관찰한 세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그 과정 속에서 단조로운 환경과 반복적인 일상이 특별한 의미를 갖고 내 삶으로 편입되는 것. 그래서 사진의 시작과 끝은 관찰이다. 어르신들에게 사진 교육이 좋은 이유는 이 분들이 살아온 긴 시간만큼 세상을 관찰해 왔기 때문이다. 노련한 관조가 그대로 묻어난 사진의 깊이와 진지함은 누구도 따라잡기 어려운 일이니까.

 

“처음 어르신에게 사진을 가르쳐 드리자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어요. 지방자치단체에서 진행하는 사진 교육을 견학한 경험이 있는데, 거기서는 사진이 아니라 카메라 장비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더군요. 그러다 보니 비싼 장비를 사도록 은연중에 권유하는 형태가 되기도 하고, 어르신들이 정작 사진이 아니라 카메라에만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사진을 배우는 게 아니었어요. 갈수록 어르신들의 경제적 부담도 커지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사진을 통해 세상과 자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취지는 보이지 않았죠.”

 

그래서다. 사진을 찍는 일은 사진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다채로워질 수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행위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래서 김동휘 예술강사는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카메라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씀 드립니다. 그 대신 카메라 매뉴얼은 반드시 확보하라고 주문하죠. 최근 기술이 좋아 똑딱이(콤팩트 카메라)>로도 충분하거든요. 반드시 좋은 카메라만이 좋은 사진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 손에 익은 카메라가 제일 좋은 카메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조건 많이 찍어 보라고 당부합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댁에서 광안대교가 보이는 최고의 경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빛이 좋으면 한 컷 찍고, 수업 받으러 오시는 길 위의 풍경도 한 컷 담고. 즉 ‘카메라를 자신의 일부로, 사진을 생활의 일부로 만들라’고 말씀 드리고 있지요.”

 

그의 이러한 철학은 어르신들의 질문을 변화하게 만들었다. 이제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표현에 관련된 것에 궁금증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사진을 찍을 때 의도대로 나오지 않는 걸 어떻게 하냐고 물으십니다. ‘손자가 너무 빨리 움직이는데 거실에서는 셔터스피드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든가 ‘일몰이 너무 좋은데 언제쯤 찍는 게 좋아요? 노출은 어떻게 할까요?’ 혹은 ‘그 왜 물이 이렇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해요?’ 자신이 본 세상을 카메라를 통해서 구체화 시켜 나가는 과정에 대한 질문인 거죠. 사진 수업에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르신들이 그걸 은연 중에 깨닫게 되신 거예요.”

 

그래서 어르신들도 ‘사진 찍는 재미’를 알고, ‘사진과 함께 하는 생활의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업에 참여하는 어르신들 역시 이 점을 가장 기뻐했다.

 


 

순간 순간이
감동이 된다

 

2014년에는 특별한 성과도 있었다. 부산특별시가 주최한 ‘제4회 부산실버영상제’에서 어르신들의 사진이 입선과 장려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경험은 어르신들에게 큰 성취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김동휘 예술강사는 그것보다 어르신들의 일상 생활 속으로 들어온 사진예술이 더 감동적이라고 했다.

 

“얼마나 진지하고, 열심인지 모릅니다. 어르신들의 나이나 카메라 기종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물론 자기 표현이 서툴고, 카메라를 조작하는 손이 느리긴 하지만 지긋한 시선과 꾸준한 자세로 세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사진 속에 담아 내려는 태도는 정말 프로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거든요. 그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자체가 이미 예술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2014년 수업은 취재일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고, 2015년에 다시 개설된다. 수업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마련된 자리에서 어르신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면서 한결같이 김동휘 예술강사를 칭찬했다. 김동휘 예술강사의 말처럼 ‘너그럽고 넉넉하신’ 어르신들이라 칭찬마저 넉넉하게 해주시는 지도 모르겠지만, 어르신들의 말 속에 담긴 진심은 그저 빈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르신들에게 김동휘 예술강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여쭙자, 모두 하나같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진’을 알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꼭 다시 만납시다.”

정민영

정민영 _ 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