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송도가정’은 ‘송도에 있는 집’이라는 뜻을 지녔다. 영아부터 고등학생까지 보호자가 없는 아동청소년의 ‘가정’이다. 아이들은 수녀님을 ‘엄마’라고 불렀다. “수염 좀 만져봐도 돼요?” 취재 기자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대답도 듣기 전에 이미 콧수염을 만져보는 아이들은 티없이 맑았고, 자유분방했다. 예정원 예술강사가 미리 예고(?)한 대로, 천방지축이었다. 이 곳에서 이 밝은 아이들과 미술 수업을 함께 하고 있는 예정원 예술강사를 만났다.

 

예정원 예술강사는 예술강사로 활동하기 전, 장애인학교의 학생들과 3년간 미술 수업을 함께했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더욱 가까이서 자유롭게 만나 신나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 끝에 ‘예술강사’의 길을 선택했다. 2008년 만화애니메이션 학교 예술강사로 활동을 시작해 지금은 학교와 복지기관 모두에서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특별히 그녀는 아이들에게 더욱 중요하고 필요한 예술활동에 대해 고민해오며 ‘움직이는 예술정거장’의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에 약 2년간 참여하는 등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시도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예정원 예술강사는 현재 부산의 송도가정에서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송도가정을 찾았던 날의 수업은 「우드락 종이태권도를 활용한 조각조각 이미지 해체와 조합놀이」였다. 거창한 듯 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제목의 이 수업에는 송도가정에서 지내고 있는 열다섯 명의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이 참여했다. 이 수업은 예정원 예술강사가 고안해 운영해보고 있는 ‘아직 발전 중’인 과정이다. 이처럼 예정원 예술강사가 진행하는 과정의 특징은 바로 ‘진화하는 수업 만들기’이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예정원 예술강사는 먼저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오늘 학교에서 기뻤던 일이 뭐예요?”
“시험을 잘 봤어요! 그냥 기분이 좋았어요. 내 얼굴이 예뻐 보여서 기분이 괜찮았어요.”

 

“그럼 기분 나빴던 일도 있었어요?”
“음, 친구랑 싸웠어요. 날이 너무 좋아서 기분이 나빴어요.”

 

“날씨가 좋은데 왜 기분이 나빴을까?”
“모르겠어요. 그냥 우울해졌어요.”

 

예정원 예술강사의 질문에 돌아오는 아이들의 대답은 때로는 아기자기했고, 때로는 어른의 그것처럼 깊은 속마음이 들여다보이기도 했다. 공통점이라면 참 솔직하고 망설임 없이 답한다는 것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충분히 친숙하고 신뢰감이 쌓일 만큼 쌓여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 이제부터 오늘 느꼈던 많은 감정들을 생각하면서 이 우드락을 태권도로 부숴보기로 해요!”

 

예정원 예술강사가 꺼낸 우드락을 가져간 아이들이 혼자, 혹은 둘 셋이서 서로 도우며 우드락을 조각내기 시작했다. 어린 몸짓 하나하나에 좋고 싫었던 감정들이 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권도 하듯 팔을 뻗고, 발로 차며 우드락을 부수는 과정에서 힘들고 무거웠던 감정들이 해소되고, 좋았던 감정들은 더 크게 재생되는 듯 했다.

 

아이들이 잘게 부순 우드락 조각들이 바닥에 쌓였다. “얘들아, 바닥에 얼음이 쌓인 것 같지?”라는 예정원 예술강사의 질문에 아이들은 “눈 온 것 같아요, 렛잇고 해요!”하고는 우드락 파편들을 하늘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교실은 순식간에 우드락 눈이 펑펑 쏟아져 쌓였다. 예정원 예술강사는 아이들이 이 순간을 만끽하도록 제지하지 않고 잠시 놔두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조금씩 싫증을 느낄 때쯤, 바닥에서 우드락을 주워 새로운 놀이 하나를 제안했다.

 

“얘들아, 이 조각 꼭 장화처럼 생기지 않았니?”
“선생님! 이건 술병이에요! 코끼리 코 같아요. 드라큘라 이빨 같아요!”
“그럼 이 조각들을 모아서 집을 지어볼까?”

 

예정원 예술강사예정원 예술강사

 

이제부터 아이들의 창의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오늘 수업의 목적지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오는데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하는 집이 낯설다. 하지만 어렴풋한 기억 속 할머니 집을 떠올려보고, 가족과 지내고 싶은 집도 상상해 보았다. 어떤 친구는 미용실을, 그 짝꿍은 그 위에 방을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은 집짓기 놀이는 바닥에 떨어진 우드락의 형태에 의미를 부여하고, 재조합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30분만에 7채의 집을 완성해냈다.

 

예정원 예술강사는 아이들에게 다음 주 수업에서는 이 집들을 모아 마을을 이루고, 오버헤드 프로젝터를 그 위에 투사해 또 다른 이야기를 더해 나갈 거라 귀띔했다. 아마도 아이들은 집에 어떤 숨결을 불어넣을지 고민하고 상상하며 다음 수업을 기다릴 것이다.

 

예정원 예술강사는 수업 시간 동안 아이들이 자유롭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물론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녀는 시간 안에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방식을 과감히 거두어내었다. 문화예술교육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아이들을 기다려 주고,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느끼게 된 계기는 지난해 참가한 ‘국제예술강사컨퍼런스’였다. 그곳에서 만난 세계 여러 나라의 예술강사들이 나눈 다양한 의견과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술강사로서 한 뼘 더 성장했다.

 


 

송도가정에서 만난 아이들은 거침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법에 익숙했다. 주눅들고 우울해지기 쉬운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씩씩하고 활기차게 생활했고, 선생님,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었다. 초여름, 늦가을에는 아이들과 송도 앞바다를 찾아 백사장에 ‘예술작품’을 남기고, 돌아오는 길에 떡볶이를 사먹는 일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는 예정원 예술강사.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그녀는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내일의 수업을 고민하고, 아이들의 내일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