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소재한 용강중학교에서는 매주 ‘미디어아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디어’와 ‘아트’의 조합인 만큼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그림 그리기나 사진, 동영상 촬영 등을 상상하고 수업현장을 찾았으나 정작 눈에 들어온 것은 핫팩, 실, 사인펜, 이불 등 일상 생활에서 흔히 만나는 물건들이었다. 모두 ‘미디어아트’ 수업을 위해 준비된 재료들이다. 과연 이 재료들로 어떤 수업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자리에 앉았다.

 

용강중학교 미디어아트 수업 현장

 

“너희들의 불평불만
마음껏 털어놓아 봐!”

 

‘학교문화예술교육 미디어아트분야 시범사업’은 학교문화예술교육 미디어아트 분야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9월부터 시작해 이번 달 마무리된다. 미디어를 통해 청소년의 상상력을 이끌어내고, 소통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으며 전국 10개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미지의 이해’, ‘상상의 소리공간’, ‘가상공간 스토리텔링’ ‘학교 사용법’ 등 시각과 청각, 공감각, 디지털 공감각 등 다양한 감각을 이용한 프로젝트 가운데 서울 용강중학교에서 진행중인 ‘즐기로운 학교 사용법’ 수업 현장을 아르떼365가 찾았다.

 

‘즐기로운 학교 사용법’은 즐겁고 슬기로운 학교 생활을 스스로 고안해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학생들은 총 12차시의 수업 과정에서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오감을 통해 일상적인 공간인 학교를 미디어를 이용하여 탐색하고 재구성하게 된다.

 

취재 일은 ‘불평박물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날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 사항을 어떻게 표현하고 해결할 것인지 생각해 그 해결 방안을 실제 제작해 보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굳이 이 ‘불평’이라는 테마를 즐기로운 학교 사용법에 적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아람 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높은 점수 등이 윤택한 삶을 영위하는 전부가 아니잖아요. 자기가 가진 콤플렉스를 마주하고 표출해 내야만 건강한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을 미디어로서 알려주고 싶었어요. 물론 영상촬영이나 사운드,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나에게 익숙한 재료로 먼저 다루어보면서 그 매체들과 접목시키고 활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과정입니다.”

 

즉, 학생들의 시선에서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고민해보는 단계였다.

 

아령으로, 두툼한 이불로
‘감정’을 표현하기

 

용강중학교 미디어아트 수업 현장

지난 차시에 학생들이 작성한 기획서

 

전 차시 수업에서 학생들은 각자의 불만 사항과 해결 방안을 위한 제작 기획서를 작성해둔 상태였다. 기획서에는 대부분 ‘공부’, ‘성적’, ‘미래에 대한 압박’ 등의 소재로 불평을 토로하고 있었다. 이 불평들은 일종의 ‘감정’이다. 과연 이 감정들이 어떻게 물체화 되어 전해질 수 있을까. 학생들의 기획서를 토대로 준비된 재료들이 바로 이불, 박스, 인공잔디 등이었다. 이 재료만으로는 무엇을 만들게 되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용강중학교 미디어아트 수업 현장

수업을 위해 마련된 재료들. 사인펜, 테이프 등의 문구류는 물론 핫팩, 아령, 공기탈취제, 밧줄, 물풍선 등 일상 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물건들도 준비되었다.

 

학생들은 제작 과정에 대해 강사와 구체적으로 논의해가며 자신에게 필요한 재료들을 챙겨 작업을 시작했다.

 

이날 용강중 학생들의 작업 내용을 살펴보면, ‘악취가 진동하는 남자화장실에 액상 공기탈취제를 담은 물풍선을 던진다’, ‘시험지 뭉치를 밧줄로 꽁꽁 묶어 교수형에 처한다’, ‘시험을 앞두고 학교 밖에서 초과 공부를 하는 이들에게 공부 금지 스티커를 발부한다’, ‘인조잔디 운동장 설치를 요구하는 인조잔디 피켓을 만든다’, ‘남성ㆍ여성을 가르는 고정관념에 대항하여 성의 구분이 불분명한 박스옷을 만들어 입는다’ 등 다양한 소재와 그에 따른 다양한 표현 방식이 제시됐다. 각자의 불평이 자신만의 해결책과 함께 세상에 표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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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로 표현하는 방법
미디어아트의 숨은 뜻

 

처음 ‘미디어아트’ 수업을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핸드폰,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사진을 주고 받거나 동영상 촬영을 하는 등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미디어 활동들을 생각하며 이 수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런데 스마트 기기는 온데간데 없고 낯선 두 명의 선생님이 끊임없이 질문을 건네왔다. ‘너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 ‘어떤 불만을 갖고 있니?’, ‘지금 무슨 생각해?’, ‘너의 마음을 표현해 볼래?’.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몰라 우물쭈물해 했다.

 

“학생들은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묻는 질문에 어떻게 사고해야 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몰라 곤란해 했어요. 초등학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자 나름대로 학교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잖아요. 기존의 수업처럼 이 수업을 대하다 보니 그걸 깨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죠.”

 

장근희 강사의 말에 의하면 학생들은 과정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수업 차수가 늘어갈수록 ‘미디어’가 단순한 매체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다.

 

“‘미디어아트’가 뭔지 모르고 핸드폰, 컴퓨터 만지는 줄 알고 들어왔어요. 재료가 한정되어 있지 않고, 무한한 재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특히 재미있었어요.”

 

김동재 학생의 말처럼 학생들이 가장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재료들이 자신들의 감정과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점이 미디어아트 수업의 가장 핵심이 아닐까. 그것이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작업물 일 수도 있고, 줄로 묶거나 펜으로 그려 완성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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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석 학생은 ‘공부’의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며 ‘공부’의 영정사진을 만들어 향을 피웠고, 학교가 조금 더 따뜻했으면 한다는 임예진 학생은 핫팩을 잔뜩 부착한 이불에 몸을 녹였다.

 

특히 이 ‘불평박물관’은 인터넷을 통해 타 학교 학생들과 서로의 불평을 들어주고, 해결방안을 제시해주는 네트워크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었다. 용강중, 청담중, 충암중 세 학교의 미디어아트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하나의 주제로 소통하며 협업하는 실험적인 디지털 콜라보레이션이다. 왜 굳이 얼굴도 알지 못하는 학교의 학생들과 연계하여 진행하는 걸까. 장근희 강사는 개인의 문제와 공동의 문제는 해결을 위한 접근이 다르다는 말로 이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학생들이 사춘기인 만큼 각자 본인의 문제에만 매몰되기 쉬워요. 그러나 다른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고, 스스로 타파해보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타인의 불만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길 바라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세 학교 학생들이 가진 공동의 불평은 ‘급식이 맛없다’, ‘매점이 없다’ 등의 문제였고, 학생들은 한번쯤 도시락을 싸보거나 군것질 거리를 챙겨 오는 게 어떻겠냐는 방안을 제시하며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용강중학교 미디어아트 수업 현장

 

학교에서의 일방적 주입 교육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만의 이슈를 스스로 해결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이 수업의 핵심이라는 이아람 강사의 말처럼 미디어아트 수업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시간이었다.

 

언제나 넘지 말아야 할 선 앞에서 스스로를 제한하는 아이들은 점차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도 잊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불평도 자연스럽게 늘어놓을 줄 알고, 스스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식도 찾아가면서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가질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미디어아트 수업이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2014 학교문화예술교육 미디어아트분야 시범사업 결과발표회

2014년 한 해 동안 운영해 온 이번 미디어아트분야 시범사업의 결과물을 한자리에서 공유하는 결과발표회가 12월 23일(화) 네이버 그린패토리(경기도 성남시)에서 마련된다. 용강중학교, 청담중학교, 충암중학교 3개 학교가 <학교사용법>을 주제를 중심으로 소통하며 협업하는 실험적인 디지털 콜라보레이션 ‘불평 박물관’ 결과물을 비롯해 학교문화예술교육 미디어아트분야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10개 학교가 한 학기 간의 수업 결과를 나누게 된다.


-석관중학교(이미지&무빙이미지): 영상물 상영과 설치(installation)작업
-언남중학교(이미지의 이해): 풍선 퍼포먼스 시연
-수서중학교(미디어 파사드): 우드락 입체 스크린을 이용한 영상물 상영
-숭인중학교(상상의 소리공간): 일상의 소리를 활용한 즉흥연주
-대치중학교(숨쉬는 학교): 핸드메이드 악기를 활용한 연주 및 작곡
-부평동중학교(가상공간 스토리텔링): 온라인상에 만든 개인의 가상공간 공개
-신길중학교(디지털 자아): 미래의 공간과 하루 일상을 재구성
-용강중학교(즐기로운 학교사용법): 학교에 대한 불평과 해결안 궁리
-충암중학교(남다른 학교사용법): 불평박물관 DIY 결과물 발표
-청담중학교(학교공간 사용법): 공적 공간인 학교를 사적인 공간으로 바꿔보는 경험 공유

 

2014 학교문화예술교육 미디어아트분야 시범사업 http://artemediartedu.kr

최민영

최민영 _ 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