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해맑다. 오후 2시의 쨍한 햇볕처럼 아이들은 높은 소리로 웃으며 뛰어다닌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보다 훨씬 더 큰 소리로 웃는 이가 있다. 그녀는 이곳 저곳에서 끊임없이 “선생님!”을 외쳐대는 아이들에게 “그래, 00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며 대답한다. 경기남부아동일시보호소에서 아이들의 음악수업이 진행되는 금요일 오후 2시 40분, 송승민 예술강사를 만났다.

 

송승민 예술강사

 

“대학에서 해금을 전공했는데, 손을 다쳐서 연주를 지속할 수 없게 됐어요. 그때 음악치료 쪽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요. 해금을 가르치던 학생 중에 자폐증세를 가진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를 위해 책도 읽고 공부를 하면서 음악치료라는 것에 새롭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 스스로도 손 재활훈련을 지속하는 동안 힘들었던 경험도 있고요. 제가 정말 좋아하던 음악을 더이상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이 힘들었는데, 대학원에서 음악치료를 접하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어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음악’이 있고, ‘음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거죠.”

 

송승민 예술강사가 사회 예술강사로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3년 전부터다. 그동안 보육원과 지역아동센터 등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음악으로 소통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이들이 음악교육에서 빠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며 그녀는 음악의 힘을 실감했다.

 

송승민 예술강사
송승민 예술강사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같은 것을 듣고 느끼는 것이 바로 ‘음악’이에요. 특히 자폐아동들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전혀 두지 않기 때문에 소통이 쉽지 않은데, 음악만큼은 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현재 학교에서도 국악분야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송승민 예술강사는 학교에서의 음악교육과 시설에서의 음악교육의 차이를 ‘밀착’, 그리고 ‘마음으로 소통하며 다가가는 교육’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어디에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은 있게 마련이지만, 시설에서의 수업에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수용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그렇게 다가오게 된다는 것이다.

 

송승민 예술강사를 만난 경기남부아동일시보호소는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긴급보호가 필요한 미아, 결손가정, 미혼모아동, 아동학대, 방임 등에 노출된 아동들에 대해 1차적인 상담과 보호, 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정서적,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곳이다. 아이들은 이곳에 긴 기간 머물지 않고, 향후 양육계획이 정해지면 각자의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게 된다.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전문적인 보육시설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그런 곳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송승민 예술강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송승민 예술강사
송승민 예술강사

 

“아이들은 이곳에 오기까지 방임이나 기아 상태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식습관을 비롯한 전반적인 생활습관이 올바르지 않아요. 그래서 짜증, 화 등을 잘 내는 편이에요. 그런 아이들이 조금씩 안정을 찾도록 돕고, 음악을 통해 긍정적인 정서를 제공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이곳 아이들은 그런 두려움이 더 큰 편이에요. 그래서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실패할 수 없는 경험들을 접할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새로운 아이들이 수업에 들어왔다가도 얼마 후면 보이지 않는다거나, 함께 수업하던 아이가 급히 거처가 정해져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인 이곳에서의 수업은 그래서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진행된다. 그때그때 얻어갈 수 있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것이 송승민 예술강사의 마음이다.

 

 

복지시설에서 장기간 거주한 이들은 사회에서의 독립적인 삶에 두려움을 갖게 되고, 눈 앞에 있는 것들에 집착하며 쉽게 무기력해지고 체념한다. 아동 시설 아이들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형제들과 갖는 관계, 질투, 애증 등의 감정을 가족이 아닌 타인과 가져야 하는 데서 오는 특성을 보인다. 뚜렷한 위계질서나 지속적인 따돌림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송승민 예술강사는 아이들간의 그런 불편함을 융화시켜주기 위해 모둠을 짠다거나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성원이 꼭 필요한 수업을 진행하는 등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감동의 순간은 언제나 있어요. 저와 손을 잡지 않던 아이가 하이파이브를 해준다든지, ‘저는 음악이 싫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아이가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든지. 혼자 지낸 시간이 많아서 누군가를 배려하기보다 자기가 우선이었던 아이들이 서로 노력하고, 협력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제가 고마워요.”

 

 

수업 현장을 찾은 날은, 곧 있을 호두까기 인형 뮤지컬 관람을 앞두고 아이들이 호두까기 인형 음악에 익숙해지도록 돕는 사전활동 수업이었다. ‘꽃의 왈츠’와 ‘행진곡’을 감상하고, 그 느낌을 신체와 악기와 시각적인 결과물로 표현하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공연 장면을 보며 병정처럼 걷고, 발레리나처럼 춤 추었다. 리본 테이프를 빙글빙글 돌리며 꿈 속을 헤엄치다가 예쁜 종이꽃도 만들었다. 아이들은 시종일관 열심이었고, 송승민 예술강사는 모든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송승민 예술강사
송승민 예술강사

 

수업 시작부터 시무룩하게 앉아 집중하지 못하던 한 아이가 수업이 끝날 때 즈음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리본 테이프를 열심히 돌리며 “선생님, 이것 봐요!”하고 큰 소리로 제 리본을 자랑했다. 송승민 예술강사가 몇 개월 동안 지켜보며 느꼈다던 아이들의 변화를 기자는 단 두 시간 만에 눈으로 확인했다. 물론, 송승민 예술강사가 느낀 그것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 잠깐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송승민 예술강사가 전하고픈 음악이 주는 따뜻한 활력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글,사진_ 최민영
영상_ 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