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3시, 구로노인종합복지관 3층의 대강당은 어르신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20명 남짓한 연극반원들은 3개 그룹으로 나뉘어 연극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곳의 ‘노인연극반’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이난희 예술강사다. 그녀는 구로와 용산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노인연극반을 4년째 담당하고 있다. 과연 이난희 예술강사가 생각하는 사회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일까.

 

“전공은 영어영문학과인데 연극동아리를 하던 가락으로 8년 동안 극단활동을 했어요. 배우이자 기획자, 운영자로 활동했죠. 제가 속한 극단은 철저하게 공동창작형 연극을 지향했는데, 예를 들어 가출청소년에 대한 연극을 하기 전에 가출청소년과 함께 동거동락 하면서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극단생활을 하면서 연극을 전업으로 하지 않은 사람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일을 해 왔던 거죠. 그런 덕에 예술강사로서의 역할이 처음부터 익숙했어요. 처음에는 학교 예술강사만 하다가 4년 전부터 사회 예술강사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꽤 긴 시간 연극과 연극교육 활동을 해온 그녀에게 사회 문화예술교육과 학교 문화예술교육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가장 큰 차이는 입시지향형인 우리의 학교교육에서는 문화예술교육이 설 자리가 좁고 고립감이 크지만, 어르신 교육은 목표 자체가 행복과 생활의 질 향상에 있다 보니 훨씬 의미가 크고 반응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어르신과 함께 하는 시간에서 특별한 보람을 느낀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어르신 연극은 ‘어르신’이라는 특별함 때문에 예술강사 스스로의 처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삶의 연륜이나 경험에서 차이가 큰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뻘 되는 어르신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하는 질문에 답을 찾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어르신이라서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녀가 내린 결론이고, 이에 따른 스스로의 지침은 ‘공동작업 동료로서 동등한 대우를 한다’ 였다.

 

 

무엇보다 공동작업을 하는 파트너로 대등한 대우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쉬세요”, “제가 할게요” 라고 공경의 마음을 보이는 것은 자칫, 나이 들었다고 무시한다는 오해를 사기 쉽다. 연극에서 정당한 역할을 배분하고, 의무를 다하게 하는 일은 공동작업자로서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자부심을 심어준다. 이렇게 대등한 관계로 연극수업을 이어나가다 보면 그 분들이 느끼게 되는 만족감은 ‘제2의 인생’ 혹은 ‘인생 이모작’이라고 스스로 표현할 만큼 크다. 이런 이난희 예술강사의 입장은 대다수의 사회 문화예술교육에서 예술강사와 수강생 사이의 큰 세대차를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예술강사 스스로도 배우고 느끼는 것들이 많다. 특히 오랜 연륜으로 세월을 견뎌온 분들에게서는 감히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어르신들을 너무 어린아이 취급하는 우를 범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이난희 예술강사는 ‘피부가 얇아지는 것 같은 순간’이라고 표현한 특별한 깨달음의 순간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깨우친 어르신들의 연극을 진짜 연극무대에 올리고자 하는 노력도 결실이 있었다. 연말에 서울시 4개 구청의 노인복지회관이 공동으로 대학로 소극장을 빌려 정식 공연을 하기로 한 것. 오늘 공연 연습도 그때를 대비한 것이다. 과연 이런 만족감을 주는 연극수업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나게 될까?
“연극수업을 통해 어르신들은 연기를 통해 내면의 이야기를 밖으로 표출하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특히 내 몸이 아닌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알려주게 됩니다. ‘연기’라는 것이 처음에는 단순히 특별한 대사를 정확히 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대사보다 더 많은 표현방식으로 내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일이라는 것을 통찰하게 되는 거죠.”

 

 

어르신들에게 연극수업이란 살아온 세월 동안의 자기를 되돌아 보는 성찰의 기회이자 현실에서 이룰 수 없었던 꿈 혹은 희망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린 나이에 시집갔다가 청상과부가 된 어르신은 연극 속에서 금슬 좋은 부부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역할을 맡고 마치 누리지 못한 사랑의 시간을 회복한 듯 기뻐하셨다고 한다. 그 분이 누구보다도 연극수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마지막으로 이난희 예술강사는 사회 문화예술교육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긴 호흡으로 두고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했다. 사회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낼 수 있는 성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그녀의 충고, 예술강사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두 시간 남짓 진행된 연극연습은 신나는 트롯트에 맞춰 전체가 무대에서 춤을 추며 차례로 나와 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진지한 연기자의 모습 속에서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얼굴이 엿보이고 신나게 리듬을 타는 몸짓에서 언젠가의 날렵함이 되살아 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연극 속 역할을 통해 자신의 삶과의 차이를 배우고, 그렇게 두 번째 삶을 사는 것 같다는 어르신들께는 이번 연말에 있을 대학로 공연도 또 하나의 기회일 것이다. 무대 위 눈부신 조명 속에서 어르신들의 열정이 더욱 빛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