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부산에서 소득이 높았던 서구 공업지역 학생들에게 “느그 아부지, 어무이 모하시노?”라 물으면, 과반수가 “신발공장 댕깁미더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신발공장 어디에 있는지 아나?”라 물으면 제대로 답하는 학생이 열에 하나도 안 된다.

 

1980년대 부산은 ‘신발의 메카’라 불릴 만큼 거의 모든 신발의 탄생지였다. 세계 유명 브랜드의 주문자 상표 부착 OEM 방식을 맡아, 세계 유명 브랜드화의 80%를 생산했다. 반면, 현재의 신발공장들은 명맥만 유지할 뿐, 갈수록 문을 닫는 추세다.

 

이에 부산토박이 손현준 예술강사가 직접 신발을 들고 부산의 한 여고를 찾았다. “부산에서도 일본의 아식스 미즈노를 능가하는 신발을 만들 것이다”라며 웃는 그가 학생들의 손에서 다시 ‘신발 탄생’의 경이로움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다.

 

손현준 예술강사, 신발을 들고 부산서여고를 찾다!

 

지난 4월 7일 부산 서구에 위치한 부산서여자고등학교 1학년 5반에서는 ‘창의적 체험활동’ 과정 중 하나로 신발 디자인 수업이 한창이었다. 총 33명의 학생들이 삼삼오오로 모여 6개의 조를 만들었고, 손현준 예술강사가 강단에 올랐다.

 
손현준 예술강사 강의

손현준 예술강사의 첫인상은 ‘친절한 부산사나이’였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답게 부산의 옛 신화를 되살리기 위해 부산디자인센터에서 기능성 신발을 디자인하고 있다. 대학에서 디자인 관련 강의 경력 18년 차이며, 부산지역 중고등학교의 수업을 맡은 지는 올해로 5년 차다.

 

그가 교실의 문을 열기 전, 귀띔하듯 건넨 첫마디는 “먼저 학생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해야, 그들도 마음을 열고 다가온다”였다. 수레에 한 가득 미술과 관련된 각종 도구들을 챙기고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뒷모습에서 새 학기 첫 수업과 같은 설렘이 느껴졌다.

 
손현준 예술강사의 '재미있고 기발한 신발 디자인' 수업진행 단계
 

‘재미있고 기발한 신발 디자인’ 수업이 시작되다!

 

손현준 예술강사의 신발 디자인 수업은 참 청각적이다. 먼저 학생들에게 아이디어 회의시간이 주어지는데, 자유로운 토론 방식을 지향하다 보니 금세 교실은 여고생들의 수다와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각사각한 연필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운다. 수업 진행의 다음 단계인 ‘스케치’와 ‘디자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손현준 예술강사 강의
손현준 예술강사 강의

 

이 때, 손현준 예술강사의 손에는 일반적인 채색도구인 붓과 물감, 색연필, 파스텔뿐 아니라 지점토, 노끈, 리본, 색종이 등의 다양한 재료들이 있다. 그것을 본 학생들이 무엇이든지 스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는 “좀 더 학생들의 창의력을 자극시킬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준비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털어놨다.

 

손현준 예술강사의 말에 따르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각각의 수업 내용에 적합한 재료나 도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에 제한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수업 진행을 위해 필요한 물품과 도구를 직접 챙겨 준비한다고 했다.

 

손현준 예술강사 강의
손현준 예술강사 강의

 

“왜 사비를 털어서까지 준비를 하냐고요? 학생들에게 준비물을 챙겨오라고 사전에 공지를 해도, 막상 수업시간이 되면 미리 준비하지 못한 친구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그 중에는 형편이 어려운 상황도 있을 텐데, 그런 이유로 수업에 참여하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도록 좀 더 다양한 재료를 보여주고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거든요(웃음)

 

부산서여고학생들의 손에서 신발이 태어나다!

 

45분의 수업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서두르는 학생들 틈 사이로 기발하고 재미있는 신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걸을 때마다 칼로리 소모량이 측정된다는 디지털 신발, 해운대에 신고 가기 딱 좋은 돌고래 모양의 신발, 자신의 기분상태에 따라 그림에 불을 들어오게 할 수 있다는 신발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쌤, 이거 어떻게 붙입니꺼?”. 그 친구의 책상에는 여러 모양의 폼보드 조각들과 서툰 솜씨로 꼼꼼하게 밑그림까지 그려낸 종이가 있었다. 정답은 단순하게 ‘풀’이었다. 머쓱한 표정을 짓는 학생에게 손현준 예술강사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

 
손현준 예술강사 강의
 

“지난 주말에 한 예능프로그램을 봤어요. 호주에서 온 쌤 해밍턴이 우리나라 군대를 체험하는 내용이었는데, 쌤이 조교에게 “질문 있습니다”라며 “신발끈 어떻게 묶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신발끈 묶는 거 누가 모릅니까? 하지만 저는 그 친구가 참 용기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어리석은 질문은 없습니다. 계속해서 질문하세요. 그래야 성장합니다.”

 

손현준 예술강사의 수업노트

글·사진 _ 황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