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기원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

 

브라이언 보이드 저 | 남경태 역
휴머니스트 | 2013.01.28

 

사무실 인근 홍대 뒷골목에는 갖가지의 그래피티(graffiti)와 낙서가 남겨져 있다. 간밤에 어떤 낙서가 늘어났는지 살펴보는 것이 출근길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다른 날에 같은 글씨로 쓰인 낙서 시리즈는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들려주기도 한다. 누구를 향한 커뮤니케이션일까? 오늘 만난 스토리텔링은 아마도 헤어진 애인에게 하는 이야기인 듯싶다. 언젠가 케이블 채널에서 본 프랑스 쇼베(Chauvet) 동굴의 벽화가 홍대 뒷골목의 그래피티 예술 작품 위로 오버랩 되기도 한다. 3만 2천 년 전의 조상들도 동굴 벽에 야생동물 그림을 그리며 함께 놀았다. 일렁이는 모닥불에 비쳐지는 벽화들은 실감나는 사냥 이야기와 함께 즐거운 오락이 되고, 위험을 피하며 먹거리를 구하기 위한 집단적인 지식이 되었을 거다.

 

‘이야기의 기원’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다윈의 ‘종의 기원’의 학문적인 패러디를 의미한다. ‘진화론이 과연 어떻게 스토리텔링에 적용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최근 진화론은 과학 영역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 타 학문 분야들을 넘나들며 적용되고 있으며, 문학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실체적인 적용사례를 보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서다.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보이드(Brian Boyd)는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횡단하며 그 원형을 밝히는 탐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뉴질랜드의 영문학자다. 저자는 이 책 ‘이야기의 기원 –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를 통해 진화 비평이라는 문학연구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 문학이론이 인간의 사고와 발상을 단지 언어, 관습,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봄으로써 문학과 삶을 분리시키는 반면, 진화비평은 문학을 삶 전체와 연관시키는 작업을 펼쳐 보인다.

 

저자는 1편에서 진화의 견지에서 보는 인간 본성을 다루고 있으며, 예술 일반을 진화적으로 설명한다. 즉, 문학과 예술 전반이 인류 문명과 사회의 진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예술이란 생존과 종 번식을 위한 투쟁에서 유리한 특징을 얻으려는 적응 과정이며, 놀이의 결과라는 것이다. 스토리텔링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자유롭게 과거의 경험을 재조합할 수 있으며, 경험의 재조합을 바탕으로 미래를 상상하거나 가상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한다. 이 과정은 집단 내부에 서로간의 신뢰와 이해를 향상시키는 협력 증진 이점을 얻는 과정인 셈이다.

 

픽션은 대리 경험과 행동 선택의 범위를 넓혀준다. 놀이처럼 픽션은 가능한 기회와 위험을 배우도록 해주며, 실제로 위험에 처하지 않고서도 피할 수 없는 좌절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전략과 감정적 수단을 제공한다. – p.274

 

2편에서 저자는 예술(art)과 픽션(fiction)의 자연주의적 설명을 개괄하고 이 두 가지 모두가 환경에 대한 적응의 과정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예술과 스토리텔링에 참여하도록 진화한 이유는 우리 종이 생존하는 데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술은 정신의 개방적 학습과 창조성에 도움을 주는데, 픽션은 특히 우리의 사회에 관해 인지하는 수준을 즉 ‘지금 여기’를 뛰어 넘는 사고력을 향상시켜 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고전작품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와 현대를 대표하는 닥터 수스의 동화 ‘호턴이 듣고 있어!’를 분석함으로써 진화비평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오디세이아’에서 저자는 픽션의 핵심요소로서 인물과 플롯, 구성을 독자(청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진화론적 전략의 일환으로 소개한다. 연대기적인 조선왕조실록보다는 창작자의 역사소설에 독자들이 몰입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이야기를 공연하는 시인으로서 호메로스는 먼저 청중을 잡고 끌고 움직여야 한다. 청중이 지루해 하면 그는 다시 만찬에 초대받지 못할 것이다. – p.311

 

호메로스는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수십 가지 방식을 고안하며, 지역 전통, 트로이 전설, 인물과 플롯의 보편적 영향력을 이야기의 요소로 빌려온다. – p.328

 

‘호턴이 듣고 있어!’를 통해 저자는 단순한 어린이용 이야기도 사회적 인지를 발전시키고, 협력을 장려하며, 상상력을 길러준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예술과 이야기의 주요 기능이 인간의 인지, 협력, 창조성을 높이는 데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호턴이 듣고 있어!’처럼 유쾌하고 소박한 이야기도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사회적 인지를 발전시키고, 협력을 장려하며, 상상력을 기른다. – p. 529

 

저자는 진화론을 통해 예술과 문학에 대해 더 명확한 견해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진화론은 예술일반이나 문학이라는 구체적 예술, 혹은 예술과 문학의 원천이자 대상인 인간 본성의 요소들을 더 정확하고 폭 넓고 깊이 있게 바라보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이야기한다. 대화를 통해, 이메일을 통해, 미디어를 통해, 나아가 SNS를 통해. 그리고 이야기는 사실과 콘텐츠와 픽션들이 때로는 뒤죽박죽된 스토리가 되고, 더 즐겁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를 향해 박수를 보낸다. 누가 더 많은 박수를 받게 되는가? 그것은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소통과 공감을 원하는 것이며, 그것이 스토리텔링의 진화 방향일지도 모른다. 일과 놀이가 극단적으로 분리되어 표준화에 집중하던 대량생산 위주의 제조업이 뒷전으로 물러나고 집단적인 일과 커뮤니티적 놀이가 뒤죽박죽되는 창조적인 산업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출현하고 있는 21세기,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스토리텔링은 무엇일까. 예나 지금이나 진화의 DNA는 동일한 것이 아닐까.

 

글 ㅣ 공병훈(출판인,교수)

“창조적 공유지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