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펠리체 바우어

20세기 작가나 예술가들 중에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왜 그랬을까? 거기에는 그들의 활동과 관련된 어떤 깊은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작가 프란츠 카프카 역시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도 낳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때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가 있었다. 그의 절친 막스 브로드의 집에서 알게 된 펠리체 바우어였다. 결국 깊은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약혼은 파기되지만, 그 전까지 카프카는 그녀에게 수백 통이 넘는 편지를 보낸다. 그 중 한 편지에서 그는, 전장에 나간 나폴레옹이 죠세핀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자식 없이 죽는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깊은 공감을 표한다. 하지만 바로 다음 문장에서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감히 아버지가 되려는 무모한 시도에 날 내 맡겨서는 안 돼요.”

(dem Wagnis, Vater zu sein, würde ich mich niemals aussetzen dürfen).

 

카프카의 이 독일어 문장은 기묘하다. 이 문장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는 선호나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사용한 독일어 조동사 ”dürfen“은 예를 들어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라고 말할 때의 윤리적 의미를 함축한다. 그러니까 그는 ”아버지가 되려는 시도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을 스스로 용인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 그는 ‘자식 없이 죽는 것의 끔찍함’에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아버지가 되려는 시도’는 스스로 금지시켰던 것일까?

 

문학 평론가이자 노벨상 수상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는 그 이유를, 카프카 문학에서 드러나는 특유의 세계관에서 찾는다. 카프카의 주인공들에게는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구원을 요청할 신이 없다. 닥쳐오는 문제를 온전히 혼자 힘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이 택하는 전략은 스스로를 ‘작고, 보잘 것 없게’ 만드는 것이다. <변신>1)의 주인공은 –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 벌레가 됨으로써 그가 떠맡아야 할 직장 업무와 가족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난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철장 속에서 단식을 계속하는 <단식광대>2)는 굶음으로써 그가 역겨워하는 사람들의 습성에서 벗어난다. <법 앞에서>3)의 시골사람은 죽을 때까지 문지기의 허락을 기다림으로써 법의 문을 닫게 만든다. 그들은 의지를 내세워 대결하기 보다는 ‘스스로 작아짐’으로써 권력과 삶의 강제로부터 벗어난다. 카네티에 의하면 이는 카프카의 삶의 태도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 다시 말해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이러한 삶의 태도와 충돌한다. 아이는, 어른은 힘겹게 얻어내야 하는 ‘작은 자’의 위치를 처음부터 차지하고 있는 존재다. 그 ‘작은 자’의 지위로부터 아이는 모든 것을 용서받고, 모든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며,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마음 놓고 외면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는다. 카프카에게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가 ‘작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아이에게 탈취 당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아이는 ‘작은 자’로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그들은 커지도록 자극받고, 스스로도 커지려 한다. 점점 작고, 조용하고, 가벼워짐으로써 결국 사라져 버리려는 카프카의 인물들과는 반대로, 아이는 ‘작은 자’로서의 특권을 한껏 향수하면서도 그로부터 벗어나는 ‘가짜 작은 자’인 셈이다. 그 때문일까. <재판>4)에서 아이는, 난데없이 소환된 재판에 관한 조언을 얻으러 간 주인공을 성가시게 함으로써 그를 더 큰 곤혹에 빠뜨린다. 아이들은 ‘작은 자’로서의 탈 권력적 장점을 한껏 향수하며 아버지/어른의 탈주를 가로막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카프카의 말이 이해될 만도 하다. 그가 아버지가 되었더라면 우리는 독특한 그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 <변신>: 카프카의 대표작의 하나로, 여행사의 말단 직원인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보니 자신이 커다란 벌레로 변해있는 걸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방안에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어머니와 누이의 보살핌을 받다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은 몸 부분이 부패하면서 죽게 된다.

2) <단식광대>: ‘단식광대’는 공개적으로 단식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의 관심을 끌던 서커스 단원이었다. 단식광대에 대한 관객의 관심이 식어감과 서커스 관리자들조차 철창 안에서 날짜를 세며 단식하던 그를 잊어버리고 그는 철창 안에서 굶어 죽게 되는데, 자신이 단식을 한 건 사람들의 음식이 역겹기 때문이라는 말을 남긴다.

3) <법 앞에서>: 법의 문으로 들어가려던 시골사람을 문지기가 가로막자, 그는 문지기가 들여보내줄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리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그렇게 기다리다 죽어가던 시골사람이 문지기에게‘왜, 자기 말고 아무도 이 문을 들어가려는 사람이 없는가를 묻자 문지기는 ’이 문은 너 만을 위한 문이니까‘라고 대답하고 법의 문을 닫는다.

4) <재판>: 난데없이 재판에 소환된 K가 재판에 유리한 조언을 구하려고 재판소 화가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 건물의 아이들은 그를 쫓아와 문 안으로까지 들어오려 하고,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를 방해한다.

 

글 | 김남시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훔볼트 대학 문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에서 미학과 문화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예술과 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감성을 통한 세계 인식이라는 미학 Aesthetics 본래의 지향을 추구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권력이란무엇인가』,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노동을 거부하라』,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등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