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탐구해온 전 세계의 여러 학자들은 ‘저항’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청년들의 음악 청취 행위를 해석해 왔다. 1960년대 범세계적 차원에서 펼쳐진 반전평화운동의 경험과 궤적을 같이 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세대 간의 갈등 혹은 단절이 반전평화운동 뿐만 아니라 음악적 취향에서도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났던 까닭이다. 부모와 자녀들은 서로 다른 음악을 들었고, 부모세대의 취향을 거부한 자녀들의 음악 듣기는 일종의 저항으로 간주되었다.

 

사실 1960년대 이전까지 가족들은 음악을 함께 듣는 경우가 많았고, 음악적 취향을 공유하는 편이었다. 20세기 초반의 오디오나 라디오는 집안 거실, 안방 같은 곳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기의 덩치가 상당했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족들이 공동으로 향유하는 기기였지만, 만일 당시에 리모컨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버지의 손에 자연스레 쥐어져 있었을 것이다. 발매되어 인기를 얻는 음반이나 라디오의 편성 내용도 그러한 청취 환경에서 크게 어긋남이 없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가족들은 ‘국민가요’ 취향을 공유하였다.

 

하지만 한 손에 쏙 들어가는 디자인의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워크맨이 출현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은 새로운 오디오 기기를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와서는 냉큼 문을 잠갔다. 거실 한 가운데에도 음악은 여전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함께 듣는 음악이 아니었다. 음악은 혼자 듣는 것으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거실의 라디오와 공부방의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는 각기 다른 음악이 흘러나왔다. 혼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가 일상화되면서, 세대 간의 교감은 줄어든 반면 갈등은 증폭되었다. 음악을 듣는 행위를 저항적인 코드로 분석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1960년대 이전의 라디오와 세계 최초 포켓라디오의 신문 광고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음악의 혼자 듣기가 성행하고 세대 간 갈등이 증폭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것을 결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발명이든 저항이든 대개는 사람이 하는 일, 따라서 우리가 음악을 향유할 때 어떤 맥락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오디오 기기의 사회적 쓰임새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법이다. 게다가 자동차와 같이 현대의 물질적 풍요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오디오 청취 환경은, 함께 듣기의 구체적인 공간이자 음악의 뉴미디어이다.

 

일본의 음악학자 고이즈미는 최근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자가용 승용차의 사용이 가족ㆍ세대 간 음악적 취향의 동질화에 기여한다고 주장하였다. 부모와 자녀가 자동차를 함께 타고 다니게 되면서, 하나밖에 없는 카오디오가 세대 간 취향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가족들 사이 음악적 취향의 상관관계가 높아졌다는 것인데, 이는 전통적인 문화연구자들이 주목했던 저항으로서의 음악듣기가 아닌 화합과 공감의 매개체로서 음악듣기의 의미를 잘 드러내준 것이다.

 

고이즈미의 문제 설정과 연구 결과는 가정의 달이라고 일컬어지는, 하지만 두말할 것 없이 스마트폰이 지배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가족과 세대 간의 소외가 점점 커져만 가는 이 시대에 함께 듣는 음악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와 그것의 긍정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서 그렇다.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러 더욱 철저한 개인화가 추구되고 있지만, 자가용을 이용한 음악 감상의 예에서 보듯 함께 들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여전히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은 음악을 함께 듣고 교감을 나누기에 최고로 좋은 계절이다. 가족음악회 같은 것도 많이 열리고 가족과 함께 하는 다양한 시간이 제공되고 권장되는 때이다. 그런고로 푸른 5월에는 가족들이 함께 음악을 듣는 따뜻한 시공간이 자주 펼쳐질 수 있기를 바란다. 가령 자동차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스마트폰에 꼽힌 이어폰을 스피커에 연결해서 같이 듣는 건 또 어떨까. 그러다 마음이 제대로 통하여 가족들이 함께 듣는 노래가, 노래방에서 신나게 함께 부르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글 | 김병오 (음악학자)

전주대학교 연구교수, 라디오 관악FM 이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음악사를 전공했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OST 작업 및 포크 음악을 토대로 전통음악과의 퓨전을 추구하는 창작 작업을 병행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소리의 문화사』가 있고, 「한국의 첫 음반 1907」, 「화평정대」, 「바닥소리 1집」 등 국악 음반 제작에 엔지니어 및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