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명의 십 대와 함께 보낸 10주간의 마법 같은 기록

강혜인 외 지음 |
이야기 공작소 | 2013.03.25

 

 

제목이 눈길을 끄는 책이다. 고양이가 되기로 한 동기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누가 이런 책을 썼을까?

 

지난해 10월과 12월 사이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경기도 16개 고등학교에 전문예술강사를 파견해 각각 문학에 관심 있는 학생 10여 명(총 83명)을 모아 문학수업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물들을 모아서 <나는 고양이가 되기로 했다>라는 한 권의 책을 냈다.

 

이번 교육의 출발점인 ‘나를 이해하고 글로 표현하기’는 성인들에게도 어려운 과제다. 남이 제시한 기준으로 평가 받는 일에만 익숙한 학생들이 막상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막막해 지는 것은 자기성찰의 기회가 그만큼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수업은 자기를 돌아보는 일로 시작되어야 했다. 낯설어 하던 아이들이 점차 자기 생각이 고이고, 하고 싶은 말들이 생겨 글로 옮겨가는 과정은 비록 어렵지만 매우 흥미진진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아마 나를 글로 표현하면서 얻은 열정과 몰입, 감격의 순간은 일생을 가는 추억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학교 수업 때는 작가가 쓴 글을 선생님이 읽으시는데, 이번엔 우리가 쓰고 우리가 읽었어요. 내가 창작자라는 점이 가장 다르죠. (중략) 우리가 이번에 사용한 교재는 텅텅 비어 있어요. 텅 빈 종이를 우리가 직접 채우는 게 곧 수업의 모든 것이었죠. 또 학교에서는 시험을 대비해야 하니까 선생님이 쓰시는 단어 그대로, 정답만 기억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친구가 쓴 작품을 읽고 나서 합평하는 시간에는 뭐든지 내가 느낀 걸 말하면 되니까, 속 시원한 해방감 같은 게 있었어요. – 용인고등학교 심채리

 

이 ‘속 시원한 해방감’을 느낀다는 것이 바로 창작의 카타르시스가 아니고 무엇인가? 내가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발표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경험하고 난 삶의 미래는 전혀 달라진다. 내 삶의 창조자는 나라는 주인의식이 문화수업의 진정한 산물이 아닐까?

 

단순한 글 선생으로서 가르침보다 함께 한 시간에 대한 즐거움, 진정한 소통의 기쁨, 뛰어난 재능에 감탄했던 시간들의 기록이 놀라움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예술강사들의 후기를 읽다 보면 이런 감동은 예술강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 모양이다.

 

드디어 아이들의 말문이 트였다. 입을 다물고 있던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에게 마음을 열어 보인다는 표시였다. 이제 문학과 함께 놀 준비가 되었다. -예술강사 정정희 중

 

10주간 내가 한 일은 그저 너희의 상상력에 놀라다가 집에 오는 거였다. ‘상상의 공간’ 수업을 준비하면서 난 내가 학생이라면 어떤 글을 쓸까 하고 궁리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정도면 너희의 상상력을 압도할 수 있겠다 싶은 걸 구상해서 수업에 갔다. 하지만 결국 그걸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막상 너희에게서 즉흥적으로 나온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레 그리 되더라. 조앤K롤링도 한글을 알았으면 깜작 놀랐을 걸? -예술강사 임광민 중

 

온 교실에 글 쓰는 소리만 가득 찼던 순간들이 저에게는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소리를 만들어 낸 것은 누구인가요? 저는 분명히 아닙니다. (중략)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썼던 그 시간들을 기억하길 바라요. 그 때 아무 생각도 없이 글만 썼던 여러분 스스로를 끝까지 간직하길 바라요. -예술강사 이소연

 

이 책에는 반짝이는 표현들과 생각들이 가득하다. 평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해 사용한 창작의 시간이 이들의 독창성을 마음껏 발휘하게 만들었나 보다. 구조가 탄탄하고 표현력이 뛰어난 글도 있고, 어떤 글은 전문 작가의 글보다 세련되었다.

 

그런데 정작 나를 빙그레 웃게 만든 글들은 ‘아, 그때 나도 이런 생각들을 했었는데….’하는 공감의 글들이었다. 나를 한없이 여려 쉽게도 수줍어하던 나이로 돌아가게 해 주는 글들. 행복이었지만 이제야 그 가치를 알게 된 아쉬운 순간의 기억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 감정은 그 때 그 나이의 사람만 쓸 수 있는 휘발성 강한 감정이니까.

 

 

(전략)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았지
뒷골목에서 잠들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스러지고 벼룩의 간을 내어먹으며
하지만 나는 고양이가 되기로 했다.
자줏빛 커튼이 서럽고 희미하게 스쳐가는 봄비 소리 같은
고양이가 아닌 그들이 만들어내는
어쩌면 루머에 지나지 않는 것들
결국 나는 뭣도 아닌 고양이가 되기로 했다.

 

-‘겨우 존재하는 것들의 허밍’ 중에서, 윤가영 용인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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