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운동이 당사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작동하는 듯하다. 세월이 흘러 숨어있는 진상이 드러나기도 하고, 시대 정신에 따라 해석이 변이되기도 한다. 전쟁도, 사랑도, 심지어 날씨조차도 그렇다. 이번 <프로젝트; 손-À LA MAIN>(2024.7.30.~8.1. 프랑스 파리, 코리아 하우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글을 작성하기에 앞서 여러 시각에서의 유효성을 추측해보고 내용을 추려내는 것이 꽤 고생스러웠다. 우선, 파리에서 귀국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돌아보건대, 아무래도 결과론적인 성찰은 충분히 소화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그간의 과정이 스스로 의미를 어느 정도 갖추기 시작했다고 보아 여기에 집중하고자 했다. 이는 내부자로서 객관성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대신, 보다 긴밀하고 미시적인 내용을 다루려는 결정이기도 하다.
꿈의 무용단부터 파리올림픽까지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4년 국제 아동청소년 예술교육 워크숍>은 참여자 모집과 국내 및 현지 워크숍을 거쳐, 마침내, 8월 1일에 파리올림픽을 계기로 대한체육회와 협력하여 ‘한국의 날’ 행사에서 결과물을 실연한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전 준비 단계부터 결과물 발표일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고민이다. 예술교육이란 무엇일까? 예술교육자의 올바른 자세란 무엇일까? 어느 하나 쉬운 질문이 없었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접근해 보면, 기예적인 측면에서 양질의 지식과 훈련을 제공할 수도 있고, 일상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유희로써의 감흥을 유발할 수도 있다.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참여자의 만족도라든지, 미디어의 권력이라든지, 또 그 외 여러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작용의 얽힘이 발견될 수도 있다. 가령,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사업의 경우, 과연 어른들의 원츠(wants)인가 아이들의 니즈(needs)인가에 대한 물음을 충분히 던져볼 만했다. 그렇게 2022년, 꿈의 무용단 시범운영 당시부터 여러 고민을 거치며 내린 선택의 총체를 이제 와서 보니, 지극히 안은미-스러웠다고 평가해 본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풀어가자면, 필자는 무용 비전공자다. 길을 걷다 우연히 스친 안은미 예술감독에게 오디션 제의를 받았고, 그렇게 전문 무용수가 되었다. 기본적인 용어, 동작, 역할 등의 이해가 부재한 상태에서 멀뚱하게 서 있던 신입 단원에게 그가 요구한 것은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폭력 같은 무책임한 행동까지 허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타자를 존중하는 영역 안에서 창의적으로 나름의 자유를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시 사항은,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비롯한 인류학적 탐구를 내세운 그의 지난 작업에서도, 즉 소위 일반인 출연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왔다. 개인 작품이 아닌 예술교육 활동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통의 아동‧청소년 예술교육 사업이 지닌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성장을 위함’이라는 목적에 있어서, 구체적인 방법론과 체계화된 프로그램을 제시하기보다는 참여자가 일련의 권한들을 직접 행사하도록 이끌었다. 극단적이면서 본질적이고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강렬한 방식이 아닐까 한다.
에피소드가 여럿 떠 오르는데 특히나 인상에 남은 순간들이 있다. 그의 철학은 평소에 비가시적으로 공기 속에 조용히 잔존하지만, 간혹 내막을 찢고 나타나 현실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때가 있다. 그것은 매번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는데, 이번엔 참여자 학생들과 어른 간의 관계를 흐리는 힘으로써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테면 그가 “여기서 하고 싶은 거 하면 돼”라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그 권한을 넘겨받은 스태프진, 사진작가, 부모 등의 어른들은 다양한 갈래로의 번역을 시작한다. “집에서 했던 거 보여드려 봐”라던가 “하나, 둘, 셋, 점프!”와 같이 주로 단서를 제공하는 메시지로 둔갑한다. 이때 예술감독은 그들에게 이른바 비밀의 윙크를 날리며 모든 발언을 중단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이제부터다. 그렇게 오롯이 혼자가 된 아이들은 뭔가 어색하고 낯설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거듭되면 서서히 적응할 뿐 아니라 점차 과감해지는 것을 현장에 있는 누구라면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끝내 홀로서기를 거부한 이들도 있었다. 그때는 전략이 추가됐다. 예컨대, 국내 워크숍에서는 파리 현지 참여자를 고려하여 자리를 비워둔 채로 연습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부모들에게 그 대역을 맡김으로써 일종의 연극이 시작됐다. 여전히 그 실체는 부모 자녀 사이이지만, 다른 역할로써 서로를 대하기 때문에 완전한 분리를 보류하면서 부분적 독립을 경험토록 했다. 반대로 지나치게 과감해지다 보면 다른 이의 ‘마음대로’를 방해하기도 했다. 그럼 두 참여자는 소통하고 합의도 해야 한다. 여기서 누군가는 사과하고 용서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약속을 하나하나 탄생시키며 자신들이 완성해 낸 20여 분간의 집단 의지는 씩씩함으로 가득하여 바다 건너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함께하면, 다 됩니다, 으라차찬!
엄밀히 따져보면, 이번 활동은 상상의 범위를 넓히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한다기보다 생활 속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역할에 가까웠던 것 같다. 안은미 예술감독 지휘 하의 꿈의 무용단을 일컫는 ‘으라차찬’이라는 명칭처럼 말이다. 예술감독 어시스턴트의 입장에서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는 예술감독의 작업 세계부터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꿰뚫는 표현이기도 하며, 무용단 내부의 유행어인 ‘다 됩니다’라는 문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늘 마음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럼 누군가는 기존의 경로를 포기하고 우회하거나, 누군가는 휴식을 선택하여 재충전 이후에 재도전을 다짐한다. 안은미 예술감독의 경우는 밀고 나아가기 위한 더 큰 원동력을 모색하고, 혼자보다는 ‘함께’를 강조하여 그 힘을 극대화한다. 당장 이번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이번 <프로젝트; 손> 활동을 단순히 꿈의 무용단의 확장사례로 볼 수도 있지만, 그에 따른 부수적인 문제들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인력 구성부터 재원 운영 등의 전반에서 훨씬 더 복잡한 체제를 요한다. 창작진 입장에서도 도전적인 과제가 다수 있었다. 효율성을 고려하면, 위에서 언급한 권한 부여의 방식을 포기하고 전문 멘토진에 의해 만들어진 동작을 입력시키는 것이 탁월했다. 그러나 예술감독은 ‘으라차찬’ 정신으로 끝까지 자신의 길을 고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프랑스 간의 원격 작업에 양분이 되어준 작품 <드래곤즈>도 대표적인 사례일 테다.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을 당시였다. 아시아 각국의 무용수들과 함께하는 프로덕션 계획이 전부 취소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결국 기지를 발휘하여 홀로그램을 활용한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극장에 누수 문제가 발생하여 무대에 물이 떨어졌을 때도, 공연 도중 정전으로 모든 조명이 셧다운됐을 때도, 화재 경보 알람이 수시로 오작동했을 때도,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서 공연했을 때도 그와 그의 무용단은 언제나 으라차찬을 외쳐왔다. 그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들어 올리는 의지와 실천이 근육을 형성해 내는 신체의 메커니즘을 대입하여 세상을 바라본다. 지극히 안무가답고 안은미-스러운 점이다. 혹여나 지치는 날이 오진 않을까 우려한 적도 가끔 있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도대체 끝은 어디일까 궁금하고 기대하고 응원하게 만드는 것이 그만의 설득력이고 매력인 것 같다.
재론하자면,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멘토진이 최후의 안전망을 설치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과정이 이뤄졌다. 실질적으로 결과물 만들기에 진전을 이룬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참여자들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과정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창작진 모두에게 힘든 시간도 분명히 있었다. 또한 외부 관객에 따른 책임감으로 인해 끝에 가서는 결국 구체적인 안무를 제시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지속해 온 추구 가치를 최대치로 확보하고자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 큰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낀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참여자들은 자발적인 배려와 화해, 협동 안에서 자유를 찾아 나가는 경험을 통해 성숙한 공동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그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든든한지를 조금이나마 느꼈을 거라 믿는다.
개인적으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가 시사하는 바에 크게 공감하며 항상 구멍을 찾으려는 비판적인 관점을 추구하지만, 힘 쏟았던 프로젝트의 무사 완결일로부터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인류세의 위기를 언급하는 마당에, 그리고 삶의 개인적인 투쟁들로 인해, 더구나 아동‧청소년에 대한 필자의 이해도가 전문적이지 않기에, 순수하기만 한 아동‧청소년 참여자들과 조우하는 것이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으며 모종의 두려움이 공존했다. 그저 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어 공허한 매일의 반복, 타인과의 충돌, 도전과 실패, 더 나아가 어떠한 시대적 난제를 마주하였을 때, ‘으라차찬’의 씨앗이 말 그대로 용기와 인내와 현명함으로 꽃 피울 수 있기만을 희망한다. 함께 하지 못한 전국 각지의 신청자들도 아른거린다. 후일의 도모를 통해 더 많은 아동‧청소년에게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 이재윤
- 2017년부터 안은미 컴퍼니의 무용수로 이력을 쌓기 시작했고 현재는 무용, 미술,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며 안무가로서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4년 국제 아동청소년 예술교육 워크숍 사업에 예술감독 어시스턴트 역할로 참여했다.
jay_plusi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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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손에 손잡고, 앙 두 투와!
2024 국제 아동‧청소년 예술교육 워크숍
잘 보고 갑니다
다 함께 손에 손잡고, 앙 두 투와!
2024 국제 아동‧청소년 예술교육 워크숍
기대만점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동그자체네요^^
문화를 넘나들며 자유롭고 아름답게 춤추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참 멋집니다!
아이들에게 경험은 큰 나비효과를 자아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경험이 훗날 멋진 예술의 씨앗이 되길 바라봅니다 😀 정말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이런다양한 문화교류를 통해 아이들의 예술성과 감수성이 엄청 좋은 자극을 받을것같아요 좋은 기획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