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 2020.9.14~9.17) 개막식에서 발표한 사이먼 맥버니의 기조발제 <예술가와 마주하기 :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서(encounters with artist : in search of your own pathways forward)>를 지면으로 옮긴 것입니다.
배가 고파진 아이들이 언덕을 넘어 저에게 옵니다. 얼굴에 피곤이 가득합니다. 제가 사는 이곳의 코로나 상황은 지독한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마치 전쟁과도 같았던 시기는 이제 넘겼으니, 뭐라도 먹어야겠습니다. 점심으로는 계란 토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이내 스테이크를 내려놓은 아이들은 다시 뛰어 들어갑니다.
좋은 밤 보내고 계신가요? 여긴 아침이긴 합니다만, 어쩐지 저녁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조금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어떤 공간, 어떤 시간 여러분들이 언제 이 영상을 보고, 들을지조차 알 수가 없으니 말이죠. 하지만 오늘날, 이와 같은 거리는 중요치 않습니다. 팬데믹이 보여준 것이 있다면, 우리가 다른 공간에 함께 있는 것에 그 어느 때보다 잘 적응했다는 것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노는 것으로 보냈습니다. 예전에 한 은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죠. 여섯 살 아이처럼 놀지 못하는 배우는 배우를 해서는 안된다고요. 저희는 매 순간 놀이를 합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역할을 맡죠. 이것은 우리 안에 아주 깊숙이 자리 잡아서, 점차 어른이 되어가며 우리는, 그 역할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믿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나고 자라며 기반을 둔, 우리를 둘러싼 문화로부터 나오는 하나의 서사일 뿐입니다.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문화(culture)’는 성장에 적합한 조건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의 세포를 그 안에 위치시키면, 그 세포가 자라는 것이죠. 저희는 이제 어떤 방식으로 성장해야 할까요?
“우리 언제부터 다시 학교 가요?”
“잘 모르겠구나.”
“왜요?”
“그러게, 무어라 확실히 말하기가 어렵구나. 아이스크림 줄까?”
사실, 몇 주 전만 해도 저에게 있어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시 등교를 할 수 있을지, 제가 극장으로 돌아가 다시 연극을 할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생각보다 그것에 관해 신경 쓰지 않았던 것도 같습니다. 더 심오한 질문들이, 그 반대급부로서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봉쇄조치는 한결 느슨해졌고,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하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보수당 내각을 구성하는 토리당원들이 2미터 간격을 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맹렬히 비난하며 해당 조치를 기각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허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고,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죠. 그렇다면, 여기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걸까요?
이와 같은 팬데믹 상황 속에서 목격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1950년대 이래 가장 적은 도로 교통량을 기록하고 있고, 대기오염도 감소해서 고층 건물에 거주하며 천식으로 계속 고통받던 친구들 역시 호흡이 한결 편해졌다고 합니다. 또,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종차별이 얼마나 우리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지, 너무나 오랜 시간 우리가 외면해 온 질문들을 던지게 됩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이 현재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역사적 서사들을 여전히,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고 있음 역시 말이죠. 어떻게 하면 다시 새롭게 듣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 모든 질문들은 실상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문화를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요?
문화. 영어로 문화(culture)는 ‘돌봄’을 뜻하는 라틴어 ‘cultus’와 손으로 땅을 갈거나 일굼을 뜻하는 불어 ‘cultiver’를 어원으로 합니다. 이외에도 발육을 돕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단어들과 그 어원을 같이 하죠.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성장은 문화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문화는 우리의 삶과 별개로 극장이나 미술관, 책이나 콘서트장에서 발전시키거나 경험해야 하는 것도, 세계 각지에 서로 다른 원천으로부터 쏟아지는 무엇인가의 흐름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저는 어젯밤 웨스트 글로스터셔에 있는 우리 집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구름이 밤하늘 별을 감추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날씨는 쌀쌀합니다. 이제 가을이 시작되려는 것 같습니다. 작은 부엉이들의 낮은 울음소리가 골짜기로부터 들려옵니다. 새끼 부엉이들이 어미 부엉이를 찾고 있는 모양입니다. 집 아래 언덕에 세 그루의 사과나무가 그 윤곽만 어렴풋이 보입니다. 여우가 우는 것을 보니, 쓰레기를 바로 치우지 않고 밖에 두었다가는 여우들이 헤집어서 잔디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 모든 것을 설명드리는 것은,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처 알기도 전에, 금세 겨울이 찾아올 것입니다.
1994년 12월 18일, 어느 겨울밤 프랑스 아르데슈(Ardèche)의 한 협곡. 세 명의 프랑스인 동굴 탐험가들이 높이 30인치, 폭 10인치의 좁은 터널을 통과합니다. 줄사다리를 따라 틈새를 내려가 보니, 비록 어둠 속이지만, 거대한 공간에 들어왔음을 직감합니다. 길이도, 높이도 수 십 미터가 되는 공간이었죠. 여성 탐험가 엘리엇 브루넬이 그녀의 불빛을 들어 올리며 소리칩니다. 아마 2만5천년 만에 처음으로 울려 퍼진 사람의 외침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들의 조명이 “매머드, 곰, 사자까지 비추었다”라고 기록합니다. 뒤이어, 양각, 음각 모두로 찍힌 사람의 손들도 보입니다.
지금, 여기, 아르데슈 쇼베 동굴(Grotte Chauvet), 스텐실로 새겨진 손 벽화를 클릭합니다. 3만 5천여 년 전에 그려진 것들이죠. 물론 이와 같은 손 벽화가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죠. 인도네시아 레앙 팀푸셍(Leang Timpuseng)의 것은 최소 3만 9천9백 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쇼베 동굴보다 무려 4천 년 앞선 것입니다. 또, 터키, 남아프리카, 이란, 노르웨이부터 아르헨티나 ‘손의 동굴’까지 쇼베와 유사한 암각화가 발견됩니다. 이는 9천 년 전의 것이라고 하죠. 과거 이러한 바위 혹은 나무에 손을 올렸던 누군가 역시 표면의 이 결을 느꼈을 것입니다. 마치, 그 바위가 우리를 기다리고, 이어주는 듯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난 3만 년 간, 같은 방법으로 손에 대고 뿌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새긴 것이죠.
과연 예술가를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사회로부터 떼 놓고 얘기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유럽의 경우, 아마 계몽주의 시대였겠죠. 그때부터 우리는 몸과 마음을, 과학과 예술을, 자신과 자연을 분리해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현재를 생각해 봐도, 예술가들을 새로운 질서 밖의 존재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감흥의 영역 속,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 때로는 성가신 장애물들이, 심지어는 위협도 존재합니다.
싱구(Xingu) 카무쿠와카(Kamukuwaká) 동굴, 조각칼을 가진 무리가 등장합니다. 싱구는 아마존 동부의 마투 그로수(Mato Grosso) 주에 위치하며, 면적은 약 270만 헥타르에 이릅니다. 1961년 원주민에게 반환된 곳입니다. 수천 년 전 카무쿠와카 동굴에 나타난 이 예술가들은 정체성의 서사를 새깁니다. 전설적인 영웅이자 그들의 선조인 카무쿠와카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죠. 이내, 다른 무리가 조각칼을 들고 나타납니다. 상징과 동물들을 부수고, 망가뜨려, 그 신성한 벽에 새겨진 이야기를 모두 지워냅니다. 이들이 누구였는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싱구로 확장을 꾀하던 다국적 기업 소유의 콩밭이 이 동굴 바로 인근까지 다다랐다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팔미라(Palmyra) 역시 다이너마이트로 파괴되기도 했죠. 그리고 이곳 영국에서는 지난 10여 년 간 아동 예술교육을 타깃으로 한 아주 절묘한 조각칼이 고안되었습니다. 현 정부는 의도적 방치를 통해 한 세대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예술을 단지 하나의 상품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거죠. 그것을 만든 사람이나 그 과정과 별개로 예술의 가치가 판매가로 책정됩니다. 지금의 문화가 보장하는 단 하나의 서사는 지속적인 이익 증대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 세계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보고, 만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사시대를 포함해 역사를 모두 통틀어서 가장 단절된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 사이, 사람 사이, 사람과 동물, 사람과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지구, 현재와 과거,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말이죠. 어떻게 우리는 우리를 자연과 분리된 존재라 믿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이전 빙하기 시절, 수렵인 화가, 수렵인 예술가들은 그들을 인류뿐 아니라 그들이 쫓는 동물들 무리의 일부로서 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지하 쇼베 동굴 바위를 보며 그 바위와 동물들과 불가분한 관계로서 공존했습니다. 지상 위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속도와 온갖 것들에 취해 동물을 보지 못합니다. 공원에서나 보곤, 우리와 아예 분리되어 연결고리가 없는 존재로서 보죠.
우리의 언어도 같은 상황입니다. 영국의 작가인 로버트 맥팔레인은 그의 저서 『랜드마크(Landmarks)』에서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사용하는 옥스퍼드 주니어 사전이 자연과 관련된 단어들을 제외한 사실을 밝힙니다. 도토리, 뱀, 민들레, 담쟁이덩굴, 수달 등의 단어 대신 블록 그래프, 채팅방, 유명 인사 등의 단어로 교체되었다는 것이죠. 이는 자연과 관련된 단어가 더 이상 서구 사회 어린이들의 경험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절의 변화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풍경에 대한 경험과 완전히 분리된 것이죠. “여기”와의 단절. 우리의 “지금”은 과연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가끔 우리는 우리 문화가 즉각적이며, 오직 현재만이 그와 유관하다고 믿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현재는 아주 작은 일부입니다, 아주 일시적인 것이죠. 우리는 직전의 과거와 목전의 미래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거 갖고 싶어, 저거 살래” 그리고 그걸 사는 순간 그것은 과거가 됩니다. 그 즉시 다른 것을 필요로 하게 되죠. 우리가 단절된 것은 머나먼 과거와 무한한 미래 사이의 그 심오한 지속성입니다. 이는 우리 현재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협화음과 정보의 소음, 우리를 압도하는 이미지와 서사로 가득한 시대에, 예술가로서 우리의 위치는 어디일까요?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1930년 덴마크의 극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쓴 글에서 브레히트는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들려드릴 버전은 아나 보스톡과 존 버거가 번역한 것입니다.

인간의 공존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것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나와 너를 드러내고,
이 운명의 그물이 어떻게 엮여지고 던져졌는지,
그것이 다름 아닌
인간에 의해 던져지고 엮어졌음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Yet how to begin? How to show
The living together of men
How to reveal not only yourself and others
Floundering in the net
But also make clear how the net of fate
Is knotted and cast,
Cast and knotted by men?

『함께 사는 위대한 예술 : 극장에서의 시(The Great Art of Living Together: Poems on the Theatre)』 중에서
(베르톨트 브레히드 지음, 아나 보스톡‧존 버거 번역)
도무지 메워지지 않을 것 같은 이 틈을 메워줄 말, 행동, 문구, 노트를 어떻게 찾아 나서야 할까요?
하늘을 찌르는 비명소리에, “들었어요?”라며 한 손에는 토스트를 쥔 아들이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제 손을 꼭 쥐며 “저 소리요, 저 비명, 뭐죠?” 새들의 울음소리 때문에 정확히 듣기는 어려웠습니다. 호루라기 소리가 나고 곧이어 카랑카랑한 비명이 협곡을 가득 채웠습니다. “보세요! 참새예요!” 함께 참새를 봅니다. 그리고 소리를 들어봅니다. 사라졌습니다. 계속 들어 봅니다. 새들은 다시 지저귑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파란 하늘에도, 우리 위를 번갈아 오가며 십자 문양을 만들던 것들도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갔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우리에게 고통도 주지만, 새로운 서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군중 소비 사회가 고집해온 그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이제 멈춰서, 우리 주변의 세계와 서로와 연결해야만 하며, 관찰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그렇다면 관찰하는 것,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과거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그가 말하길, 관찰을 위해서는 비교할 줄 알아야 하며, 비교는 관찰이 끝나야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물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좋은 관찰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사과나무를 보는 과수원 주인의 관찰력이 지나가는 행인의 그것보다 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운명을 아는 것은 인간뿐이며 전 세대의 발자취를 예리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인간뿐입니다. 이것이 관찰의 기술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술가’라는 것, ‘예술 교육가’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제게는 그 답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것은, ‘예술(Art)’이 ‘끼워 맞추다’를 뜻하는 인도-유럽어 ‘Ar’를 어원으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우리가 이 행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만큼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성질을 이해하고 표현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미학도요.
사진을 다시금 봅니다. 왼손이네요. 이것을 그린 이의 손이 약간 구부러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손을 뻗어, 이 사람의 손에 맞춰 봅니다. 지금 이렇게, 여러분의 손과 맞춰보려는 것처럼 말이죠.
사이먼 맥버니(Simon McBurney)
사이먼 맥버니(Simon McBurney)
영국의 연출가‧배우‧작가. 오늘날 가장 혁신적이고 활발하며 영향력 있는 연극 제작자 중 한 사람인 그는 1983년 컴플리시테(Complicité)를 공동 창립했으며 현재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연극 형식의 한계에 도전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깊이 연구하고 고도로 협력하는 프로세스를 통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철학적 문제에 천착하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연극 형식과 최신의 현대 기술을 결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최근 작품으로 <Mnemonic>(1999) <The Encounter>(2015) <The Rake’s Progress>(2017) 등이 있으며, 2005년 대영 제국 훈장 4등급(OBE)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