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 ‘지역 중심’ ‘주민 주체’라는 화두가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진정한 지역 중심 문화예술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그리고 그 노력을 지속하기 위한 힘은 무엇일까? 민운기 스페이스 빔 대표는 온화하지만 강단 있는 눈빛으로 이 생태계의 ‘주인’으로서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천 배다리 마을 한가운데 무심한 듯 아담하게 자리 잡은 생태공원을 지나 골목을 돌면 깡통 로봇이 반기는 스페이스 빔이 보인다. 2007년 이곳에 자리 잡은 후 진정한 주민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예술적 매개와 촉매, 중재 역할을 고민하면서 서울 중심의 자기장, 제도와 관행, 관리와 배제로부터 자유롭고자 고집스러운 싸움을 하고 있는 ‘자유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르떼365]는 코로나19로 힘든 요즘, 예술가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가 시행되며 이런저런 일정이 많이 취소되었다. 사실 예정대로라면 이번 주에 무척 바빴을 텐데 몇 개가 취소되다 보니 약간 붕 떴지만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요즘 배다리 생태공원 풀 뽑기 작업을 열심히 해서 나름 멋지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댑싸리 몇 그루가 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엄청 좋아했는데 구청에서 포크레인을 들여보내 이 일대를 파헤치는 바람에 모두 사라져버렸다. 올해 신기하게도 그 자리에 댑싸리 새싹이 쫙 퍼져있길래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이번에는 잘 살려야겠다 싶어서 공공근로 아저씨들의 투박한 작업 전에 내가 먼저 이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아예 한 쪽을 혼자 다 해 버렸다. 공원을 산책로로 이용하는 주민들이 기왕이면 조금 더 자연을 가까이 친숙하게 접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이사이 작은 오솔길도 냈다. 그리고 고양이들만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전용 길(?)도 내주었다. 그 와중에 보니 일종의 기생식물인 ‘새삼’이 쫙 번져나가고 있더라. 이게 숙주 역할을 해줄 식물을 감지하면 막 휘감아 영양분을 빨아들이며 고사시킨다. 코스모스 입장이 되어 어떻게든 해방시켜 주기 위해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많이 없앴는데 비가 오면 퍼져나가서 또 해야 한다. 내가 해놓은 나름의 ‘작품’을 즐기면서 보람도 찾고, 아침저녁 오다가다 짬짬이 들락거리면서 즐겁게 하고 있다. 생태적인 복원이라는 게 그냥 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황량한 땅에 풀꽃이 하나둘 올라오지만,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막 우거지기도 한다.
아까 배다리 생태공원을 잠깐 둘러봤는데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생태적인 복원이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좀 더 설명하자면, 이 공원은 ‘배다리 관통 도로’ 부지이자 우리 마을 가장 큰 이슈의 현장이다. 봄, 여름, 가을 서로 다른 풀‧꽃들이 피고 지면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구청에서는 이것을 그냥 방치한다고 본다. 한 가지 식물을 심고 경계를 분명하게 만들어야만 관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차이가 워낙 커서 서로를 인정 못 하니 영화 <고지전>처럼 서로 뺏고 뺏기는 싸움터가 되었다. 구청에서 예초기로 모든 풀‧꽃을 제거해버리기도 하고 또 다른 꽃을 심기 위해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헤치기도 했었는데, 재작년부터는 한쪽은 구청이, 다른 쪽은 주민들이 관리하기로 타협을 했다. 공원에 가보면 양쪽의 관리 방식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서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하다. 구청의 획일적인 관리방식과 배다리 마을의 역사와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체적 특성과 의미를 잘 살리면서 생태적으로 복원하려고 노력하는 ‘배다리지기’들의 생각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지난해 10년 넘게 끌어온 배다리 마을 관통 도로를 지하차도로 건설하고 지상부지 활용방안은 주민 주도로 하자는 합의가 있었다. 그 합의 때문인지, 코로나19 때문인지, 아니면 지난해 우리가 배다리 생태공원을 1년 동안 관찰하고 기록해서 만든 <배다리 생태숲 보고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는 구청에서 건드리지 않아서 과거와 같은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2002년 처음 스페이스 빔을 열었던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저는 중3 때부터 인천에서 자랐고 서울에서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다녔다. 졸업 후 인천으로 내려와 보니 다른 쪽도 그렇지만 미술 쪽은 변변한 갤러리도 없이 너무나 열악하더라. 이유를 생각해보니 인천이 서울에 가까운 탓도 있지만 다들 서울 내지는 중앙을 지향하는 열망이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예술을 하면 유명해져야 하고, 그러려면 주변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중앙중심주의적 사고나 욕망이 팽배하다 보니, 그것이 서울의 변두리라고 할 수 있는 인천에 그늘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하기보다는 궤도를 이탈해서 내가 사는 이곳에서 예술의 역할을 찾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에 대한 관심을 박하게 끊고 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졸업했던 후배, 미술학원 제자들과 함께 ‘지역미술연구모임’을 만들었다. 우리가 사는 도시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우리의 역할을 찾아보자는 제안에 이제 본격적인 미술 활동을 시작하려는 신진 작가 대여섯 명이 화답해주었다. 지역에 관한 공부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세미나도 하고, 앞서서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선배 작가도 찾아뵈었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고 논의를 하고자 『시각』이라는 미술 잡지를 발간하게 되었고, 3년 동안 《인천 포스트》라는 대안적인 전시 기획을 맡기도 했다. 전시가 짧게 끝나는 것이 아쉬워서 작더라도 상시적인 논의의 장을 만들고자 지역미술연구모임 회원 세 명과 공동출자해서 구월동에 스페이스 빔을 만들었다. 기존의 정형화된 갤러리와는 다른 운영방식을 도입했고, 전문가들의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서 공간을 매개로 서로 만나고 어울릴 수 있는 쪽으로 운영했다.
2007년 구월동에서 배다리 마을로 이전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스페이스 빔의 역사(?)를 크게 구월동 시기와 배다리 시기로 나눠볼 수 있다. 구월동 시기에는 미술 영역 내의 관습과 관행, 권위, 권력 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이었다면, 배다리로 이전한 이후에는 도시 공간으로 관심과 활동을 확장하며 좀 더 구체적인 이슈와 현장을 중심으로 개입하고 활동하면서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려고 했다.
지역을 좀 제대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작가와 연구자, 비평가를 중심으로 인천도시문화탐사대를 조직하여 <도시유목>이라는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하게 됐다. 세 번째 탐사지로 배다리에 와서 2007년 1월 20일부터 24일까지 머물렀다. 몽골텐트 칠 곳을 찾다 보니까 마을 중간에 휑한 곳이 있어서 그곳에 설치했다. 지금의 생태공원 자리다. 그날 저녁에 주민 몇 분이 우리가 뭐하러 왔는지 궁금해서 텐트로 찾아왔고, 이렇게 파헤쳐진 이유가 도로 공사 때문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5일 동안 머무르며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이 마을이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도로가 마을을 얼마나 파괴할지 걱정이 앞섰다. 미술계 안에서 나름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활동을 한다고 자부해왔는데 현장으로 나와 보니까 주민의 삶을 뒤흔들고 역사 문화를 파괴하는 일이 경제적인 효율성의 논리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도 받았다. 그런 만큼 각성도 했다. 그래서 예술영역에 갇혀서는 안 되겠다, 도시 차원의 논의나 정책 사업에 관심을 두고 개입해서 변화를 끌어내지 않으면 이 도시는 계속 그런 개발 논리로 망가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좀 더 확장된 활동을 하게 되었다.
2015 여름 생태캠프 <배다리 밭캉스>
배다리 마을과의 첫 만남을 날짜까지 기억하고 계신 것이 놀랍다. 마을 주민과의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후 사는 집도 배다리로 옮겨 올해로 13년째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나가다 만나는 분들과 웬만하면 다 인사를 나눠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그때그때 상황이나 국면, 개개인의 입장과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를 막는 싸움을 할 때는 다 좋았다. 자신이 사는 주거지 바로 옆에 대형차량이 온갖 매연과 소음을 뿜으면서 지나간다면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받을 거라고 직감한 분들이 대부분 반대 싸움에 나섰고 나도 같은 입장에 서서 똘똘 뭉쳐 서로 격려했고 고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 촉진 계획’이라는 대규모 전면철거식 재개발 문제에서는 주민 간에 찬반이 갈렸다. 나는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보니 개발을 원하는 분들과 갈등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관통 도로 지상부지 관리에 대하여 구청과의 갈등이 있었지만 주민들과도 의견이 갈렸다. 또 배다리 마을 관통 도로와 관련된 합의서를 둘러싸고 주민대책위 내에서도 의견이 달라 내홍과 진통이 있었다. 참 복잡한 상황이다. 모든 분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해 나가면 좋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내가 지향하는 공공적인 가치와 원칙을 지키며 행정에 맞서고 있고, 주민들 눈치도 보면서 그때그때 합의와 공감을 끌어내며 큰 틀에서 이 마을의 방향을 잡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주민 모두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다양하고 첨예한 갈등 속에 있는 것은 상상 이상의 어려움일 것이다. 그 속에서 예술 공간으로서 스페이스 빔이 맡은 역할이 작지 않을 것 같다.
주민은 단순하지 않고, 누구나 자기가 가진 생각을 바꾸기 쉽지 않다. 다만 개인이 지닌 좋은 것을 잘 끄집어낼 수 있는 여건과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행정은 늘 친절을 내세워 주민을 관리나 시혜의 대상으로 삼고 자기 능력을 발휘하거나 좋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차단하려 한다. 우리는 그동안 오래된 주민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대응하면서 주민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들의 경험과 지혜, 재주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펼치고자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변화를 기대하는 교육 활동보다는 이러한 도시 구조, 기반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상상하기 어려운 다툼과 갈등, 중재와 해결 속에서 10년 넘게 활동하다 보면 지칠 법도 하다. 대표님을 지탱하고 회복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제 나름의 고집이 있는 것 같다. (웃음) 한번 시작한 일에 대해서 기승전결 멋진 마무리를 해보고 싶은데 그게 계속 연장되듯 미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아예 결말이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평생 안고 가야 할 나만의 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 여기서 떠나면 어디 갈 데도 없다. (웃음) 어떻든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나 같은 사람도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야 하는 이유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자유롭게 내 의지대로 살고 싶은데, 힘 있는 자들이 일부의 이익을 위해 자기 권력과 자본을 활용해서 도시를 주무르고 자신들의 관리 시스템 속으로 자꾸 집어넣으려고 한다. 그걸 뻔히 알면서 그들의 움직임에 놀아나는 것은 못 참는다. 내가 자유로우면 다른 사람들도 자유로울 것이기에 나를 관리하고 옥죄려는 부분에 대해서 끊임없이 저항할 수밖에 없다.
공유공간 ‘인천문화양조장’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민을 대상화하지 않고 주민이 주체가 되는 예술 활동이 이뤄지기 위해 중요하게 놓치지 말아야 할 태도나 관점이 있을까?
하나의 사례를 말씀드리자면, 2008년 <동네美술공장 ‘땜빵’>은 전문 작가의 완성된 작품을 주민들에게 단지 보여주는 게 아니라 술 공장으로서의 역사와 정체성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거기에 ‘미(美)’라는 또 다른 영역이 개입하고 합쳐지면서 또 다른 역할을 하게 되는 퍼블릭 스튜디오 관점의 프로젝트였다. 실제로 주민들이 작가들과 함께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제작하거나 수리하며 구멍 난 부분을 때우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위계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 수평적으로 만나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각자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자신의 숨어있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러한 관점을 지금껏 유지하고 있다.
2010년 <도시수리센터 엎어~컷>도 기억에 남는다. 파티션으로 공간을 나눠 각자 평범한 시민 입장에서 맞닥뜨린 여러 가지 불편하고 부당한 상황과 문제의식을 다 펼쳐 놓고, 찾아오는 분들에게 그것을 설명하고 같이 공감하면서 어퍼컷을 날리고 함께 해결할 방도를 상의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예술가와 비예술가, 작가와 주민으로 구분 짓지 않고 모두가 시민의 관점에서 함께 도시의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주체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간 것 같다.
그 외에도 도로 부지에 텃밭을 만들고, 정자를 세우고, 생태 캠프도 진행하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만들고, 텃밭에 물을 줄 수 있게끔 빗물저금통을 만들어서 자원의 재사용을 도모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주민들이 공동체 의식, 생태적인 사고와 감수성이 높아지기를 기대하였다. ‘이 공간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할 때 ‘우리다’라고 재인식하게 되는 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생태공원 지상부지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관심사와 원하는 것, 모두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제안을 내놓았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지나온 시간은 여러 가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한 개인의 생각으로 해결되거나 변화될 성격이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노력 속에서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을 들여 여러 사람의 변화를 이끌고자 배다리 도시학교를 열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런 활동을 하다 보니 민‧관‧학이 좋은 관계로 맺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서로의 전문성을 잘 살리면 좋은 도시가 될 텐데 민‧관은 갈등과 충돌의 관계이거나 학계에서는 일부 관심을 보인 교수님들이 있긴 했지만 미약한 상황이었다. 이런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2010년 일본 요코하마 코가네쵸에 초청받아 창조도시 사업 현장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키타나카 스쿨(北仲學校)이라는 학교를 방문했는데, 요코하마 시내에 있는 각 대학교수들이 참여해서 도시개발 정책과 계획, 각종 재생 사업, 마을 만들기, 디자인, 예술 활동 등이 어우러진 교육과정을 별도로 만들어 설립한 것이었다. 관심 있는 학생들이 수강 신청해서 이론과 실제 현장 수업을 같이하고, 마치면 학점도 부여되고, 졸업하면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식으로 운영하더라. 이런 시스템이 인천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관심 있고 같이 할 수 있는 분들에게 말씀드려서 지난 2012년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 퍼블릭스튜디오 <동네美술공장 ‘땜빵’>
  • 배다리 도시학교 Road & Memory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
일종의 학교처럼 운영하는가? 어떤 분들이 참여하여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하다.
체계적으로 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1년에 한 번씩 주제와 방식을 정해서 진행하고 있다. 초기에는 교수진들의 자기 활동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다음 해에는 인천의 도시 개발이나 재생 이슈와 현안이 되고 있는 곳의 관계자를 모셔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3년 차에는 현장 탐방도 했다. 이어서 도시 혁신, 사회 혁신을 위한 여러 활동 사례들을 나누는 아이디어 교류 장터를 마련하기도 하고 저마다 모둠별로 조사‧연구를 해서 발표하는 캠프를 운영하기도 했다. 2018년부터는 ‘인천 에코뮤지엄 플랜’ 관점에서 진행하고 있다. 인천이 바닷가 도시이고, 개항과 일제 강점기, 분단과 냉전, 산업화의 역사 속에서 노동, 인권, 민주화 운동이 어느 도시보다 더 활발하게 벌어졌던 곳이다. 그런 역사성을 존중하고 보존하는 차원의 도시 재생이 이뤄지면 아주 괜찮은 도시가 될 것 같은데, 점점 정체성 없는 도시로 변질되는 상황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도시계획이 소수 전문가와 일부 행정 관료에 의해 만들어지고 집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시민이 주도적으로 나서려면 역량을 키워야 할 것 같아서 인천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분들과 함께 공부해 나가면서 도시 재생의 다양한 방법, 방향을 찾아보고 제시해보고자 하고 있다. 3년 차인 올해는 특정 장소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확인해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하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인천 여성 노동운동의 상징적 장소인 동일방직과 이를 지원했던 도시산업선교회가 있었던 현재의 일꾼교회를 잇는 길의 역사성을 복원해보자는 취지로 여러 강좌와 도보 순례, 공연, 토크콘서트 등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배다리 마을이 큰 위기를 넘기고 영화나 드라마에 소개되면서 구청이 추억의 관광지로 만들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걱정이 많다. 이곳이 과거시제가 아니라 미래의 대안적인 도시와 마을의 모습을 찾아가는 다각적인 논의와 실험에 배다리 도시학교가 같이 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엉뚱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작가의 삶이 그립지는 않으신가? 서양화를 전공하고 전시와 작업도 많이 하셨을 텐데 최근에는 기획자, 연구자, 어쩌면 활동가의 역할에 훨씬 더 치중하시는 것 같다.
내게는 중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웃음) 제도화되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데 관행적으로 반복하는 작품활동 또한 나에겐 하나의 제도로 여겨졌다. 그림도 내 생각의 진정성, 그 속에서 겪는 문제의식을 검증하고 해결하기 위한 나의 의지였을 텐데, 다양한 상황과 국면에서 내 생각과 입장을 표현할 가장 적절한 수단을 찾다 보니 그림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을 찍거나 글을 써서 알려야 할 수도 있고, 거기에 필요한 디자인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때그때 걸맞는 표현 언어와 형식, 소통의 매체를 열린 태도로 찾아내고 선택하는 가운데 실질적인 변화를 도모하고 어떤 결과를 찾으려고 하고 있다. 이런 활동 방식을 소셜아트, 소셜디자인, 커뮤니티디자인 등으로 부르던데, 이렇게 명사로 끝나면서 그 자체가 또 제도화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내 나름대로 모든 공공적 행동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예술이 안 돼도 상관없는 ‘액츠(acts)가 아츠(arts)가 되는’ 관점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영역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전문가들과 인연을 맺게 되더라. 하지만 미술 작가에서 기획자나 연구자로 건너뛴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작가의 입장에서 ‘작가’라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시 따져보면서 확장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자로 작가는 무언가를 만드는(作) 사람(家)이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낸다면 꼭 그것이 그림에 국한될 필요는 없고, 그 안에 여러 다양한 것들이 있다는 관점에서 다차원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환경이 너무 많이 달라졌고 힘들어졌다. 이러한 시기에 예술가가 각자의 삶을 지키고 예술 활동을 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지 개인의 차원, 제도나 정책의 차원에서 당부 말씀 부탁드린다.
예술가들이 겪는 어려움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어쨌든 코로나19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 아닌 뭔가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 현재 닥친 삶의 환경과 조건을 생태적으로 바꾸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또 그런 것들을 좀 더 독려하고 견인하는 관점과 방향으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어려움에 부닥친 많은 예술가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지탱하기 위한 지원책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우리 모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크게 보면 지구의 주인으로서, 안전한 지구를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활동은 활동대로 해나가면서 도시 구조와 기능, 일상생활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전문예술가, 아마추어, 시민을 떠나서 모두에게 해당하는 사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대면 상황 속에서 인간 활동이 축소됐을 때 공기가 맑아지고 동물들이 다시 돌아오는 상황을 목도했다.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다시 회복되는지를 잠깐의 작은 사례를 통해서라도 확인한 만큼 그러한 노력을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나가면 좋겠다.
민운기
민운기

예술의 사회적, 지역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2002년 대안문화공간 스페이스 빔을 열고 각종 전시 및 비평지 발간, 공공예술 프로젝트와 교육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등 다양한 실천을 모색해 왔다. 현재 인천 동구 배다리 마을을 거점으로 ‘열린 도시공동체 인천’을 만들기 위해 여러 시민문화예술단체 및 활동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예술 활동을 제도화된 영역에서보다는 구체적 상황과 맥락 속에서 풀어내는 가운데 다양한 활동 방식과 언어를 찾아내고 원활한 소통과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는데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arte365
남은정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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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_ 박영균 영상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 _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 _ 스페이스 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