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특별한 영감을 준다. 그렇다면 예술을 하는 예술가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을까? 예술가가 읽는 책과 그 공간에서 영감의 원천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일상에 특별한 영감이 필요할 때 갈 수 있는 다양한 예술가의 공간을 찾아보자. 커피와 함께 여유로운 독서를 즐기고 싶을 때, 특이한 취향을 엿보고 싶을 때, 지역 역사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등 취향이나 관심에 따라 방문할 수 있는 예술가의 책방을 소개한다.
감성과 낭만 사이
책과 함께 고요한 밤낮을 보내고 싶다면, 서울 합정동에 있는 ‘책과 밤,낮’이 제격이다. 짙은 네이비 컬러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배치된 앤티크한 가구, 은은한 커피 향은 마치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서재에 들어온 느낌이다. 낮은 조도는 오롯이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기 때문에 천천히 구매할 책을 고르고 바로 독서에 들어가기에 좋다. 이 감성 넘치는 공간의 주인은 바로 ‘쓸 만한 인간’이자 개성 넘치는 배우 박정민이다. 영화 <파수꾼>의 홍보용 블로그에 촬영 뒷이야기를 쓰고, 잡지 [TOPCLASS]에 칼럼을 연재할 만큼 글솜씨 있는 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방의 매력이다. 어떤 책을 사야 할지 고민될 때는 배우 박정민이 직접 포스트잇에 작성한 책 소개를 하나씩 읽어 보는 것이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다.
널찍한 공간에서 나만의 독서 시간을 갖고 싶다면, 수원에 자리한 서점·북카페 ‘헤세처럼’을 방문해보자. 책방 이름에서 드러나듯, 작가 헤르만 헤세에게 영향을 받아 내부 인테리어를 꾸몄다. 주인인 정슬 작가는 상담과 미술치료를 접목하여 특수교사로 20년 넘게 일해온 교사이자, 일상 예술가이다.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시(책), 그림(또는 사진), 음악, 자연 네 가지 콘셉트에 따라 각각 공간이 구성되어있다. 북카페 실내 공간은 물론 테라스 곳곳에 크고 작은 화분을 배치해 마치 정원 속 한가운데서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2층에는 그림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음악과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작가의 북카페 운영 이야기를 담은 책 『당신에게도 낭만이 필요합니다』의 첫 장 제목 「머물고 싶은 카페에는 낭만이 있다」처럼 카페 구석구석 자리한 주인장의 취향과 커피는 손님들의 일상에 낭만을 선물한다.
개성과 취향을 엿보는 재미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세계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요조. 그가 제주도에서 운영하는 ‘책방 무사’도 음악적 세계만큼이나 독특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 ‘한아름 상회’라는 이전 점포 간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건물의 외관과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내부 인테리어가 대조되면서 손님들에게 신선한 이질감을 선사한다. 곳곳에 배치된 고풍스러운 소품들과 강한 디퓨저 향기는 때로 누군가의 개인적인 다락방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서점에서 취급하고 있는 책들은 대부분 독립 출판물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만큼 하나씩 꺼내어 보며 신중하게 책을 고르는 재미가 있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은 구매한 책을 쇼핑백이 아닌 에코백에 담아주는 것이다. 이 에코백 역시 새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고 있는 에코백을 보내면 중고 책으로 교환해주는 이벤트를 열어 마련한 것이다. 제주에 방문한다면, 책의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이곳에 꼭 들러 보길 바란다.
어른들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쓰디쓴 지루한 일상에 달콤한 활력을 더하고 싶다면, 서울 경복궁역 근처에 위치한 ‘앨리스 설탕’에 방문해보자. 성미정, 배용태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두 시인의 취향이 100% 반영된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시 스타일은 다르지만, 빈티지 골동품을 좋아하는 취향은 같다는 부부는 베어브릭, 미니카, 로봇 등 여러 장난감과 각종 팝업북, 동화책, 빈티지 서적들을 한데 모아 이 책방 겸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 동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장난감을 구경하다 보면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생소한 제목의 책들이 눈에 띄는데, 알고 보면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진귀한 컬렉션이다. 어린이를 위한 최초의 그림책 『더벅머리 페터 』(Der Struwwelpeter) 1900년 판부터 1890년대 케이트 그린어웨이(Kate Greenaway) 『알파벳북』(ABC Alphabet learning book)까지 박물관에 가까운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직접 찾아가기 어렵다면 온라인을 통해서도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눈으로 직접 구경하는 재미를 놓치지 말기를. 여행 중 골동품 가게는 꼭 들러 보는 빈티지 마니아라면 이곳에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역의 과거와 미래를 만나는 여행
광주의 근현대사를 느낄 수 있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광주극장 골목에 위치한 ‘소년의 서’를 꼭 들러야 한다. 70·80년대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충장로5가를 걷다 보면 한 편에 자리 잡은 8평짜리 작은 서점을 만날 수 있다. 오래된 건물과 세월이 엿보이는 목조 서재는 보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지역극단 ‘토박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인자 연극연출가는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쓴 『살아남은 아이』를 읽고 삶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이 책방을 열었다. 이곳에선 책을 매개로 한 특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충장로의 상인들과 도심 재개발 과정을 담은 『충장로-오래된 가게』를 출간하였고, 광주 동구 출신의 근현대사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을 조명하는 ‘동구 인물원형 발굴 및 기록물 제작’ 사업을 진행하였다. 지역문화를 계승하고 더 확장해 나가는 ‘소년의 서’에서 광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나보자.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선 혜화동 책방의 오래된 미래를 만날 수 있다. 대학로 책방의 터줏대감인 67년 전통의 ‘동양서림’ 안으로 들어선 후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위트 앤 시니컬’이 자리하고 있다.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이 서점은 이름에 담긴 ‘재치와 냉소’라는 태생적 모순처럼, 유서 깊은 책방과 요즘 취향의 감성 책방이 공존하고 있는 신선한 모순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다. 시를 자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유희경 시인의 바람처럼, 출판사별로 큐레이션 된 시집과 아기자기한 굿즈까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방 한 편에는 시집을 읽을 수 있는 독서공간도 마련되어 있고, 한 달에 2~3번 시집 낭독회가 열린다. 한 번에 25명 정도 모일 수 있는 미니 낭독회는 인기가 많아, 모집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이다.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시집서점’이라고 적힌 명함 문구처럼, 이 세상 어딘가 이런 낭만이 존재하는 건 큰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