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 하던 거를? 이해 못 했죠?”
“그런데 도와줄 수 있잖아요, 재밌을 것 같아요.”
그는 전화로 질문하는 나를 강릉영상미디어센터 미디어 교육실로 불러서 직접 시연을 하며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사람 – 녹색 스크린 – 카메라 – 컴퓨터 – 스위처 – 출력 스크린 – 사람’ 낯선 장비들의 개념과 시스템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의 머릿속 상상들이 날아갈까 봐 걱정되어 얼른 작업실로 돌아와 이 낯선 사이를 들락거리고 있다. “도대체 뭐 하려고?” 영화 만드는 이 사람은 매번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들고 찾아가는 나를 동네로 불러 언니들 사이에서 같이 다큐멘터리 수업을 하고 있다.
낯선 비대면 세상의 입구
7월 초, 참여 제안을 받은 프로젝트의 설명회가 있었고, 드디어 온라인 화상회의를 접했다. 메일에 첨부된 안내를 따라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고, 세팅을 점검해서 무사히 기획자와 다른 작가들을 만났다. 아니, 보았다. 나는 의도적으로 대체한 이미지를 얼굴로 삼았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갈 때 짐짓, 표정과 말투, 그리고 상황을 유심히 살피곤 하는 내가 아주 정성껏 선택한 이미지였다. 온라인이라 할지라도, 첫 교감의 자리니까. 낯선 시스템에서 조금은 방관자의 자세로 있던 중, 오디오 문제로 작은 헤프닝이 벌어졌고 격식 차리지 못한 감정들 사이로 겨우 웃음소리를 만났다.
“가상배경과 녹색 스크린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감지 색상을 수동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숨은그림찾기> 놀이는 내 작업의 출발이다. 낯선 것을 만날 때면 한참을 살피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림을 그린다. 그 안에 자리를 펼치고 사람들과 만난다. 숨겨놓은 것들이 발견되길 기다리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수수께끼를 내며 말을 걸기도 한다. 컴퓨터 화면 속 어색한 ‘얼굴과 뒷배경’이 전부인 새로운 접촉 지대 안에서 인사를 하고 마음을 전하려다 보니, 그제야 ‘팬데믹’에 가 닿는다.
낯선 비대면 세상의 입구로 들어서며 여전히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중에, 또 다른 동네 사람들을 찾았다.
“앉을 자리와 플라스틱 호스를 연결해서 만든 공간 설치 작업 <플레이 존(play zone)>을 펼쳤을 때 그 안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았잖아, 그거 다시 해봐.”
상상을 현장으로 불러내는 과정을 함께하는 목공작업 협업자가 말했다.
“말하는 손 프로젝트를 펼쳐놓았을 때 사람들이 종이 위에 서로의 손을 겹쳐 잡은 채 그림을 그리고 까르르하던 모습, 당분간은 보기 힘들겠죠?”
창작자 훈련을 위해 예술가의 작업실을 찾는 커피집 청년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있다.
예술가인 나는 온라인 환경에서, 마음이 만나 놀 수 있는 그림을 상상한다.
“아니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으니까, 자기가 그린 그림으로 자기만의 가상세계를 만들고, 수백 명이 숨은그림찾기를 한다고 생각해봐요. 신나지 않아요?
현장에서 상호적으로 감각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는 비대면의 방법을 찾으며 모두가 관계의 사이를 인식하고 그사이를 낯설게 헤매고 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또 다른 낯선 동네를 만난 듯, 동네 예술가로 움직인다.

  • 플레이 존(play zone)

  • 봉봉이, 봉순이, 봉백군

  • 개보리 산책, 서부시장
사이를 흔들어 깨우는 이웃 되기
변화무쌍의 자연과 관계하며 깨어난 감각으로 기나긴 예술가의 항해를 하고 있다. 터키와 유럽 사이를 흐르는 바다 보스포루스(Bosporus) 앞에서 ‘사이의 이야기’를 만난 이후로, 여러 나라와 도시들로 이동하며 사이를 읽어 나가고 있다. 공사장의 기중기를 움직이는 도시의 풍경화로 불러냈다. 줄리아나의 집 마당에서는 단단하게 크고 강한 색을 지닌 농업용 호스들과 오래 기억하려 남겨둔 빈 개집, 정원의 아늑한 테이블 그리고 창고 속 나무판들을 모아 이리저리 옮겨가며 한나절을 풍경화 속에 같이 머물렀다. 풍경의 사이에서 풍경을 발견했지만 낯선 산책자였고, 작업이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움직이는 경험을 하는 동안은 동네에 머물렀다.
쾰른 뒷골목, 쓰레기통 옆으로 내어놓은 ‘꽃덩이’(골판지 오브제)를 동네 사람들은 선물인 듯 뜯다가 내동댕이치기도 하고, 혹은 자기 가게 앞으로 옮기고 싶다며 예술가를 찾아내 편지를 쓰기도 했다. 또 엘베강이 흐르는 동네에서는, 골목길의 돌무더기 사이로, 화분들 옆으로, 예술가의 부표를 띄우고, 교회 오르간 연주자의 즉흥 연주 순례를 더해 동네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예술이 사이를 흔들어 깨우는 경험을 간직하며, 삶의 풍경 안으로 점점 더 들어갔다. 그리고 예술가의 손으로 ‘사이의 말’을 찾기 시작했다. 골판지로 만들고 꽃 천을 씌운 강아지 ‘개보리’와 동행하면 “거 뭐요?” 하는 무뚝뚝함 사이로 수십 년 동안 특별해진 손들이 “깊은 안녕”을 건네 왔다.
얼마 전 봉씨네(봉봉이, 봉순이, 봉백군)를 강릉 명주 동네로 들여보낸 뒤, 예술가도 동네로 따라 들어왔다. 앞집 할아버지가 손주와 마실을 나오고, 마을해설가로 지나가는 언니들이 소개한다. “얘는 봉봉이랍니다…” 오래된 누군가의 집이 새로운 모색 중에 잠시 비었고, 예술가는 6개월 살이를 청했다. 올해 7월부터 겨울까지 <프로젝트 예술가의 집>으로 항해를 이어간다.
“동네 예술가… 동네 이웃이 되고 싶은 거예요.”
“동네에 들어왔잖아. 그건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고.”
2012년 낯선 산책자로 처음 만난 명주동, 여기 사람들은 30~50년 정도는 서로 알고 지내서 대문을 열어놓고 산다. 음식을 나눠 먹듯, 꽃 식물이 골목 담벼락을 넘어 온 동네에 퍼지는 걸 지켜본다. 경옥 씨가 30년 넘게 키워 천장에 닿을 듯한 나무 화분을 골목길을 따라 옮기고, 서울 사는 선희 씨의 숲을 닮은 그림들도 불러서, 노래하고 사진 찍고, 걷는 사람들 모두가 앉을 자리를 펼쳤다. 5년 전부터는 평균 연령 70대 언니들의 열린 마당에 사진 배우기와 영화 만들기가 더해졌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만날 때는, 집 밖으로 매일 아침을 달리는 순남 씨가 더 이상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지 않고 “고놈의 숙제”를 스마트폰에 담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여기서는 동네 사람들과 예술가들이 더불어 지낸다.
작업과 장소, 장소와 사람, 사람과 시간의 사이에서 사유하고 노동하는 동네 예술가이다.
발견의 지점에 앉을 자리를 펼치고 관계하는 동안, 예술가는 동네에 머문다.
다음의 항해가 어디든, 어떤 삶의 짐을 싸든, 만나거든, 안녕?
사족. 긴 항해일지를 썼었다. 예술가의 작업을 따라 함께 걷는 상상을 머릿속에 그렸음이 분명하다. 이 산책 안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문득, 칼럼이 뭐지? 다시 쓴 서툰 글쓰기다.
최제헌
최제헌
동덕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Maik Löbbert 교수 사사로 마이스터 슐러를 취득하였다. 《발견의 지점》 《명주에, Boje》 외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었으며, 독일 플뤼쇼우성 예술가의집,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광주 대안예술시장 등 다수의 국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설치미술이라는 형식으로 사유하고 움직이는 것들을 표현한다. 현재 강릉에서 동네 예술가로 살고 있다.
siweal@hanmail.net
사진 _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