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터무늬'

최신기사

이어지고 달라지며 삶을 엮는 노래

예천통명농요보존회 <노세 노세 캥마쿵쿵 노세>

20여 년 전에 서울의 작은 극장에서 경상도 지역 보존회의 농요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그때 ‘모심기’라는 것을 처음 봤고, 하얀 삼베 옷을 입고 머릿수건을 두르고 모심기 소리를 부르는 모습이 한 편의 연극처럼 느껴졌다. 보유자 선생님의 작고 단단한 몸에서 나오는 구성진 소리는 극장 밖을 넘어가는데, 무대 바닥에 놓인 가짜 모는 묘하게 어색한 광경이었다. 아마도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 노동의 이야기, 파란 하늘과 황금빛 논의 드넓음을 담기에는 네모난 극장이 너무나 작았던 게 아닐까. 20년이 지난 지금도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유의 색을 지키며 변화하는 삶터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시골 마을, 결핍이 만들어 낸 변화 지역의 결핍은 인구감소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떠나고, 출생인구가 준다는 것 그 자체로도 엄청난 결핍이다. 이런 결핍은 사람들의 힘을 빠지게 한다. 하지만 가끔 결핍은 또 다른 에너지로 전환되기도 한다. 가미야마 마을이 그랬다. 마을의 결핍을 외부에서 채우기 위해 가미야마 사람들은 스스로 변화를 택했다. 『마을의 진화』는 일본 작은 산골 마을이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들이며 멋진 변화를 만들어낸 이야기다. 가미야마 마을은 인구소멸지역이었다. 산골 마을을 세계적인 예술가 마을로 만들자는 누군가의 무모한 구상은 마을의 빈집을 활용한 예술가 레지던시 사업을 탄생시켰다. 낯선

더 깊어지고 진해지는 감정의 교류

마당극패 우금치의 비대면 시대 생존기

명칭의 힘이었을까? 무거운 이름값은 그들이 섣불리 후퇴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우금치’, 우리나라 연극, 마당극 계의 결코 작은 이름이 아니다. ‘우금치’는 공주에서 부여를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과 친일 관군이 최대 격전을 벌인 역사적인 곳이다. 마지막까지 항전하다 죽었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문화로 꽃을 피우자는 그 사명과 가치는 마당극패 ‘우금치’를 여전히 충청도에 묶어두고 있는지도 몰랐다. 30년, 적지 않은 세월이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끼기’ 딱 좋은 시간이다. 서울의 ‘자장’이 예술판에도 강력하게 작동되었을 테고, 문화예술의 불모지인 지역에서 무언가를 일군다는 것은

배움에 약자가 없는 마을을 만드는 꿈

지리산씨협동조합 ‘지리산 마을학교’

코로나, 다른 방식으로 사부작거리기 ‘계획’이 무의미해져 버리곤 하는 재난의 시대를 사는 우리, 슬프지만 이미 ‘취소’ ‘연기’ ‘중단’ 등의 언어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동네 지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함양지역 한 마을학교도 일정이 미뤄지고 미뤄지다 드디어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아이들과 딱 한 번 만나고는 학교 측 요청으로 다시 무기한 연기되었다. 우리와 비슷한 조건인 구례도 당연히 분위기가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지리산 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지리산씨협동조합(이하 ‘지리산씨’) 임현수 대표에게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여기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못하니 (마을학교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라는 분위기예요.” 역시 중요한 것은

도시의 터 무늬 위에서 공들여 놀기

훌라가 도시를 탐사하는 방법

훌라는 최근 버려지거나 인근에서 구할 수 있는 파이프, 플라스틱 통 등의 재료들로 악기를 만들고, 연주를 더한 퍼포먼스 팀으로 많이 알려진 듯하다. 지난해 여러 도시를 돌며 순회공연(?)을 할 정도였고, 악기의 음색이나 퍼포먼스가 잘 다듬어진 기성의 것이 아니라 뜬금없고 날 것 같으면서도 흥겨워서 한 번 본 사람들은 쉽게 매료된다.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미있지만 이 퍼포먼스로만 훌라를 이야기하기에는 모자란다. 그들을 잉태시킨 대구의 근대 골목과 북성로 공구 골목 인근, ‘모루’라는 공간에서 훌라를 만났다. 기술예술융합소 모루 업사이클링 밴드 훌라(HOOLA) 공연 터무늬 있는 이야기들 대구에서도 북성로 인근은

아름다운 제주를 닮은 공동체

서귀포귀농귀촌협동조합 마을기업 제주살래

제주도는 대표적인 한국의 관광‧휴양지이기도 하지만 제주시와 서귀포시 일대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농‧어촌지역이다. 읍·면·리사무소를 중심으로 마을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한라산 중산간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기점으로 해안마을과 중산간 마을로 분류된다. (중산간 위로 19개의 마을은 4·3으로 인해 모두 사라졌다) 2010년을 기점으로 제주도의 유입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해 2만 명에 달하는 이주 열풍은 2016년 정점을 찍고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육지에서 섬으로, 도시에서 시골로 삶의 터를 옮기는 이주민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제주도에서는 이주민을 ‘이민자’라고 부른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그만큼 적응하기 힘든 이국의 땅과 같다는 말이다. 이민자의

예술과 교육, 마을이 순환하는 생태계

편집위원이 만나다② 안석희 마을온예술협동조합 이사

최근 웹진 [아르떼 365] 편집위원회의에서 주요하게 논의한 것은 공간을 구획하는 새의 조망보다는 땅에 무늬를 내며 기어가는 벌레의 포월(匍越)에 있었다. 사람들은 주저 없이 안석희 마을온예술협동조합 이사를 추천했다. 다양한 지역에서 터의 무늬를 몸소 새겨온 그는 신촌에선 꽃다지를, 구로와 부산에선 노리단을, 성북에선 마을온예술을, 도봉에선 평화문화진지를 이끌며 문화예술현장의 시대적 진화를 개척한 최적의 인물이었다. 터의 고유한 무늬, 지역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문화예술교육을 발굴하는 것이 최근 우리의 주 관심사다. 선생님께선 다양한 지역에서 선구적인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다. 지역마다 터의 무늬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고유의 정체성을 풍성하게 드러내는 것이

삶을 읽고 쓰고 말하는 ‘동네 지식인’이 필요하다

대안적 삶을 연구하는 지역사회를 향하여

‘지식인은 죽었다’라는 선언이나 ‘대학은 죽었다’라는 주장이 익숙함을 넘어 진부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 대학은 폐교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고, 대학교수는 수많은 직업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과거 대학교수가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시대의 예언자 역할을 하던 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더 이상 대학이나 지식인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고, 기술의 발달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플랫폼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식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최근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유튜브(YouTube)’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실제로 유튜브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유아를 키우는 엄마들이

동네 숲에서 지구에 접속하기

나만의 고유한 터 닦기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였다. 스크린을 통해 폭발하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내 인생 두 번째 재난 이미지였다. 첫 번째는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될 때의 이미지이다. 지구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이지만 내가 딛고 서 있는 지반이 같이 붕괴되는 느낌을 받았다. 무너진 장소, 삶의 변화 9·11과 3·11, 두 사건은 나의 내면세계의 어떤 장소를 무너뜨렸다. 3·11 당시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안에서 강하게 일었다. 그래서 일본 친구와 함께 몇 해 동안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규슈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묵묵히 꿈틀거리는 고유한 ‘터무늬’를 찾아서

웹진 [아르떼365] 편집위원 좌담

웹진 [아르떼365]는 올해 초부터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문화예술교육의 공론장이자 담론을 만들어가는 역할과 변화를 모색했다. 8월 개편을 앞두고 그동안 논의했던 내용을 아우르는 좌담을 진행하고자 충북 옥천을 방문했다. 지역 언론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옥천신문사, 옥천 로컬푸드직매장과 옥천 농산물을 주재료로 만든 브런치를 판매하는 카페 뜰팡, 2007년 안남면 주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으로 시작한 배바우작은도서관, 옥천의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는 사회적기업 고래실이 운영하는 마을카페 둠벙 등을 방문하며 ‘지역’의 움직임을 탐색하고, 지역으로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시대의 문화예술교육과 웹진 [아르떼365]의 방향을 논의하였다. 좌담 개요 일시: 2019년 6월 29일(토) 장소: 카페

미디어로 동네일에 참견해 보세요!

문화공동체 아우름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

광주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양산마을에 ‘미디어 기록단’이 떴다. 양산동은 농촌의 정서가 남아 있는 자연마을도 아니며 그렇다고 유서가 깊은 도심 중심지의 마을도 아니다. 광주 행정구역의 주변부에 있는, 무심코 지나칠 때는 아무런 특징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도시 마을이다. 왜 하필 그곳에 마을 미디어기록단을 꾸렸을까? 미디어 기록단의 활동이 궁극적으로 마을공동체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을까? 너무나도 평범할 것 같은 이 도시 마을에 어떤 기록할 거리가 있을까? 거기에도 그 동네만의 특별하고 별스런 이야기가 있을까? 마을 기록단 활동을 기획한 양산문화사랑방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