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철학'

최신기사

철학과 예술을 구원할
알록달록한 질문

실패한 인문학자가 되는 즐거움

나는 실패했다. 사실 몇 해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구상한 프로그램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2008년 시작된 현장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다. 현장 인문학이란 넓은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들’, 이를테면 빈민, 재소자, 홈리스, 장애인 등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가난한 사람들 곁을 지켜온 활동가들과 몇몇 인문학자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들었다. 활동가들은 무기력한 채로 고립된 사람들에게 시급한 것은 삶의 의지와 욕망을 살려내는 일이라고 했다. ‘빵’만 던지는 것이야말로 한가한 짓이라고, 정말로 절실한 것은 ‘빵’이 아니라 ‘장미’라고. 2008년 나를 찾아온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야학)의 활동가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 학교에는 “뛰어내리려고

끊어진 맥락을 찾아 다시 처음으로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Nostalghia, 1983) 끝부분에는 주인공 고르차코프의 촛불의식이 나온다. 8분 30초 동안 이어지는 이 무의미해 보이는 롱테이크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이 장면을 지금 우리의 문화예술교육 맥락에서 다시 떠올려본다.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어디에서 언제 다시 시작해야 할까.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현병호, 민들레, 2020)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실』(알베르 자카르, 동문선, 1999) 교육은 만남, 소통, 사건이다 교육은 곧 만남이다. 교육의 장에서 학생과 교사, 부모는 만난다. 서로 알게 되고 존중하면서 함께 자란다. 눈빛을 교환하고 표정을 살피면서 몸짓과 말에서 드러난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나는 마을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의 회원이다. 십 년째 문탁을 드나들며 공부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인문학공동체의 공부와 활동은 어떤 것일까. ‘앎과 삶의 일치’ ‘자기 삶의 연구자’라는 모토 아래 우리는 정해진 커리큘럼 없이 동서양의 고전과 사회과학 서적을 용감하게 횡단하며 공부했다. 십 년의 세월은 우리만의 커리큘럼을 만들어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북드라망, 2018년)로 출간되기도 했다. 제도나 시스템에 따라 학력을 인증해주는 학위나 자격증은 없지만, 우리는 나름의 체계를 갖춰 ‘강좌-세미나-에세이 발표회-인문학 축제’ 등과 같은 공부법과 의례를 만들었다. 문탁은 국가와 시장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며, 마을경제, 마을교육, 마을공유지 등

학교와 예술은
왜,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2019 충북문화재단 ‘헬로우 아트랩-교강사랩’

2005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공식화되면서 학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이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학교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아쉬움은 늘 있었다. 모든 국민을 위한 보편적이고 균등한 문화예술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어린이집, 유치원을 비롯한 학교에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행하여지는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 매우 크지만, 종합적인 관점에서의 교육 방향과 접근방식에 대한 논의와 방법론은 부재했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2018~2022)」에 담기기도 했다. 하지만 정책적 한계와는 별개로 현장에서는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하고 개선하려는 크고 작은 실천과 움직임이 계속되었다. 충북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 연구개발사업 ‘헬로우 아트랩’도 그중에 하나이다.

문제해결로서의 교육과 방법적 혁신

바우하우스의 교육적 의미

문제해결로서의 교육 삶은 문제해결의 과정이다. 개인과 사회, 그리고 시대는 모두 자신의 문제를 안고 있다. 개인이든 사회든 자신의 문제를 잘 파악하고 해결해나가는 것이 좋은 삶의 조건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보면 사실 교육도 문제해결을 위한 수단이다. 교육은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교육은 주체를 변화시킨다. 교육 이전과 이후의 주체는 달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교육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기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문제해결 능력의 향상에 의한 주체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엇이 문제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능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흐름을 읽고 각오를 다진다”
독자 추천 처방전

변화하는 시대, 힘이 되어줄 영화・음악・도서

시대가 빠르게 급변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 삶의 양상도 변해간다. 그 속에서 함께 변화해야 할 가치와 변치 말아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문화예술교육 매개자로서 어떤 생각과 태도로 이 흐름을 맞아야 할까. 사회·정치·경제·문화·환경 등 거대한 세상의 변화 흐름 속에서 [아르떼365] 독자들은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세상의 변화에서, 힘이 되어준 ○○○은?’이라는 주제로 콘텐츠를 추천하는 독자 참여 이벤트를 진행했다. 2019년 9월 3일부터 29일간 총 177명이 참여한 만큼, 책, 영화, 음악, 전시, 공연 등 정말 다양한 콘텐츠를 추천해 주었다. 그중 변화의 시대를

용기 있는 성찰의 두께와 예술적 실천의 근육

김월식 다사리문화기획학교 교장

2016년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에 경기상상캠퍼스가 문을 열면서 다사리문화기획학교도 이곳에 자리 잡았다. 도시에서 보기 힘든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는 오래된 대학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장소에서 문화와 예술의 역할을 고민하고 시대와 사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학교가 열리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이 학교는 재미있게 ‘노는’ 학교를 표방한다. 학생들을 강요하지도 재촉하지도 않고 ‘모두가 말하고 모두가 잘사는’ 문화기획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는 얘기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문화기획의 성찰과 실천을 가르치는 학교, 다사리문화기획학교 김월식 교장을 만났다. 2016년부터 다사리문화기획학교를 이끌고 계신다. 어떻게 시작하게

현실에 발붙인 철학과 실천,
노동의 가치

차세대 예술 종사자에 필요한 교육

사실 ‘교육’은 예술가를 양성할 수 없다. 예술을 ‘가르치는’ 학교는 필요 없다. 진정한 예술은 안락한 책걸상이 아닌 땀내 풍기는 삶의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참 많은 문장을 쓰고, 지웠다. ‘대학’ ‘예술’ ‘교육’ 각각의 단어만으로도 할 말이 참 많은데, 이들이 뒤엉켜 있으니 참 난감하다. 예술대학이 커리큘럼을 개선하면 예술가를 양성할 수 있을까? 아니, 근본적으로 ‘대학 교육으로 예술가를 양성’할 수 있다는 전제부터 틀렸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와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보자. 대학은 우리 사회의 차세대를 양성한다. 예술대학은 ‘예술계’ 차세대를 양성하는 보고다. 이제

오늘의 배움을 그리고 쓰고 붙이면

아카이브 예술놀이,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

학교는 청소년 시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에게 학교는 어떤 공간이었나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소도시 레지오 에밀리아(Reggio-Emilia)의 어린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내고, 함께 프로젝트를 설계하며, 자율적으로 자신이 던진 질문의 답을 찾아 나갑니다.

‘무지한 스승’들을 위하여

책으로 만나는 문화예술교육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철학자 랑시에르가 쓴 『무지한 스승』(1987년, 한국어판 2008년 출간)의 핵심 문장이다. 랑시에르는 자신도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스승을 ‘무지한 스승’이라 부르는데, 그 구체적인 인물로 19세기 교육자 조제프 자코토(1770-1840)의 교육 경험을 예로 든다. “1818년에 루뱅대학 불문학 담당 외국인 강사가 된 조제프 자코토는 어떤 지적 모험을 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무지한 스승』은 “창시자는 그것을 이미 예언했었다.

숨겨진 욕망을 응시하라

영화로 만나는 문화예술교육

욕망은 원하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내게는 ‘결여된’ 무엇을 욕망한다. 내게 없는 모든 것은 욕망의 대상일 수 있는가. 아니다. 그것은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가치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는가. 가치는 내가 부여한 가치인가 아니면 대상이 지닌 가치인가. 전자라면 가치 판별 능력은 천부적 재능인가, 후천적 학습에서 비롯되는가. 후자라면 가치는 대상의 외양에 있는가, 대상 그 자체에 있는가. 질문을 더할수록 욕망에 관한 일반적 정의는 불충분하거나 서로 모순된다. 추론이 문제인가 아니면 전제가 문제인가.

아이들의 믿음에 귀 기울이다

2015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 결과공유워크숍

다른 해보다 유난히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뒤늦은 한파가 찾아온 지난 12월 17일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2015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 결과공유워크숍이 개최되었다. 4일간 열린 결과공유워크숍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 전국에서 진행한 6개 프로그램의 결과물을 모아 선보인 통합결과전시회를 비롯하여 컨퍼런스, 소규모워크숍 등이 마련되었다. 많은 이야기와 사람들이 모였던 그 현장을 소개한다.

왜 이 의자입니까_디자이너가 말하는 디자인

왜 이 의자입니까_디자이너가 말하는 디자인   ‘왜 우리는 이런 디자인을 선택하게 될까?’ 이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중요한 질문이다. 결국 디자인은 선택의 문제인데 왜 그런 선택을 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에 분명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평범한 과제를 완수해 내기 위해서 디자이너는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실을 우리는 선택하게 된다.   이 책은 2005년 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베를린예술대학교 산하 연구소인 디자인트랜스퍼가 주관한 금요 포럼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금요 포럼은 전문가부터

면과 선에 깃든 역사의 흔적
_미술사를 보는 방법에 대하여

우리는 항상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현상의 배경지식을 늘리려고 애쓴다. 미술사의 목적은 한가지, 배경지식 전달로 압축된다. 미술에 있어서 배경지식은 역사와 철학이다. 같은 미술의 역사를 적었지만 조금씩 다른 접근방식을 택하고 있는 세 가지 책이 있다.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서도 대중의 눈높이에 근사한 글쓰기 특징을 가진 미술사 책 들을 소개한다.   서양미술사 E. H. 곰브리치 지음 | 백승길 옮김 | 예경   미술사는 지오르지오 바사리가 ‘미술가 열전’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바사리를 ‘미술사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에 비견할 수 있는 미술사 저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