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공동체'

최신기사

새로운 교감의 방식을 찾아서

언택트 시대, 길을 찾는 예술

‘사회적 거리두기’는 모든 사회적 존재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예술가 또한 예술 활동이나 작업 방식을 바꾸고 온라인으로 관람 방식을 확장시키면서 그동안의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가늠하며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아가는 예술작업을 소개한다. ‘창문 초상화’[사진출처] 아담 이스펜디야르 홈페이지 기록으로 연결하는 지역사회 “역사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학자 오항녕이 쓴 책 『기록한다는 것』에 나오는 말이다. 기록을 남기는 일과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생태계 내적 존재로서의
삶과 문화예술교육

2020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을 맞으며

하늘이 놀랄 만큼 맑다. 항상 눈앞을 가리고 있던 뿌연 막이 사라졌다. 코로나19 감염증의 장기화로 인해 미세먼지가 확연히 줄어든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나서야 뭔가 달라졌음을 알아차리지만, 다른 생명체들은 온몸의 감각으로 훨씬 빠르게 변화를 직감한다. 공기 중의 분진뿐 아니라 땅의 울림과 소음이 감소하면서 동물들이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제한되자 지구 생태계에 바람직한 변화의 징후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삶이 단지 인간들끼리 만의 삶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일깨운다. 비대면 실기교육을 영 불편해하며 등교 수업할 날만 고대하고 있던

건강한 성장과 생명을 불어넣는 교육

전환의 시대, 학교 교육과정의 변화를 위하여

물개는 헤엄을 잘 치고, 원숭이는 나무에 잘 오른다. 아이들도 저마다 수십만 가지의 천부적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아이들의 다양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공정한 평가라는 이름으로 동일한 시험을 강요하며 경쟁을 부추긴다. 이는 물개가 나무에 오르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획일화된 평가를 기초로 한 대학입시제도에서 학생들은 불안해하며 병들어간다. 사제이자 심리학자인 헨리 나우웬은 그의 저서에서 “무한경쟁을 시키면 불안, 긴장하게 되고 친구를 경쟁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고립된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으로 내몰린 아이들은 정상적인 생각을 하기 어렵다. 어린 학생들에게

비우고 버리며 채워지는
‘무정형’ 문화예술교육

채성태 문화공간 싹 대표

2010년 늦은 봄, 문화공간 싹을 처음 찾았다.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 지하에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 주는 자유로운 느낌이 매우 신선했다. 역할이 부여된 공간이 아닌 쓰임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 사용하는 이들 누구나 주인이 되는 모두의 장소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채성태 대표는 그렇게 자신의 옆자리를 모두에게 내어준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눈높이를 맞추고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촘촘한 관계망이 맺어진다. 그는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통해서 ‘자기 삶을 기획하는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동반자이자 친구다. 수학자 아미르 악젤은 ‘‘0’은 무한이면서 동시에

문화, 예술, 삶의 좌표를 담아

지역 특색이 담긴 문화예술지도

새로운 곳을 찾아가거나 여행을 떠날 때 준비해야 할 필수품 중 하나가 지도이다. 떠나기 전 지도를 보며 지형지물을 익히고, 길을 확인하며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호기심이나 기대감을 갖기도 한다. 이제는 구글어스로 세계 어디든 직접 가지 않아도 거리의 풍경까지 확인할 수 있다. 보이는 그대로의 지형지물이나 풍경 중에서도 지도에 어떤 것을 어떻게 표기하고 드러내냐에 따라 만든이의 취향이나 생각을 공유하는 창구이자, 발견에 대한 기록이 되기도 한다. 문화예술지도에는 일정 지역에 있는 다양한 문화, 예술 콘텐츠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다. 미술관, 공연장, 책방,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문화예술교육의 역할을 말하다① 김도연 청년협동조합 뒷북 조합원

올해로 문화예술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국제적인 담론의 장을 형성했던 ‘서울 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가 채택된 지 10주년이 되었고,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본격화된 지도 15년이 지났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을 받았던 어린이·청소년들은 자라서 청년이 되었고 사회인으로서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료가 되기도 했다. 문화예술교육은 이들에게 어떤 기억과 영향을 주었을까?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갈 시대에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문화예술교육과 함께 성장한 청년에게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역할, 방향에 관하여 들어본다.   ① 김도연 청년협동조합 뒷북 조합원    ② 최진성 안무가·댄서

아이들의 목소리에서 답을 찾는다

학교에 뿌리내리는 문화예술교육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노래’라는 예술은 대부분의 사람이 보편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문화 중의 하나이며,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방식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청소할 때도 과제를 하면서도, 심지어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알 수 없는 가락을 흥얼거리곤 한다. 이처럼 아이들의 생활에 노래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 실려 있는 노래는 수업 시간에만 부르는 게 되어 버렸고, TV나 유튜브를 통해 아이들 삶 속에 파고든 대중가요가

교사로부터, 번지고 물드는
예술적 경험

남궁 역 세월초등학교 교사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던 학교 교육의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서서히 다가오던 4차 산업 시대의 초연결성이라는 특성이 학교 현장에 다급하게 도입되었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가 접촉에서 접속으로 바뀌었고, 오감을 동원하여 교류하던 교실은 시각과 청각만 열어놓으면 되는 프레임이 대신하고 있다. 이제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이어야 할까. 몸들이 한데 모여 함께 겪으며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 가는 소중한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의 학교 교육에 있어서 문화예술교육이 담당해야 할 역할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문화예술교육은 ‘교사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삶과 업의 조화를 향한 끈기 있는 모험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우리는 기획자로서 기획할 때, 아무것도 미리 기획하지 않기로 했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이하 ‘플마1도씨’)의 탄생 배경과 약 10년간 이어온 활동의 일관성을 살펴볼 때, 이 자기 선언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스스로 기획자로서 자각함과 동시에 ‘기획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질문이 발화됨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기획하지 않는 기획자들 플마1도씨의 김지영, 유다원 공동대표는 2010년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자기 성찰을 통해 변함없이 ‘지역의 일상 속 발견된 기획’을 자기 주체성으로 발현하고 있다. 이들은 2006년 공공미술 영역 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우연히 만났으나 돌이켜보면 운명적인 조우였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첫 흥미를

삶의 가치를 심고 가꾸고 수확하기

충북 괴산 문화학교 숲

새로 길이 나서 이제는 청주에서 1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괴산하면 겹겹의 산과 계곡, 대학찰옥수수와 고추, 유기농과 귀촌 정도를 떠올리게 되는 시쳇말로 ‘걍 시골’이다. 그 괴산 시골 마을에 ‘문화학교 숲’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거점을 발굴하고 사업역량을 키우는 거점사업을 시작한 2019년, 청주와 괴산 등을 오가며 매달 정기적으로 단체들을 만나고 지역의 거점에 대한 역할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때 서류에서만 보았던 문화학교 숲의 다른 면을 보게 되면서 이 사람들이 사는 법이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한 해의 사업이 마무리되는 12월 문화학교 숲을 찾았다. 도시 청년

공동체, 주름을 읽고 이름을 기억하기

A.C.클리나멘 ‘빼뻘주름프로젝트’

의정부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기지촌을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는 곳이 있다. 고산동 ‘빼뻘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그 이름의 유래에는 주변 배나무밭이 많아서 그렇다는 설과, 뺑이라는 식물이 많아서 그렇게 부르게 됐다는 설, 한 번 들어오면 발을 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세 가지 다 빼뻘을 설명하는 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경기 북부는 문화 소외 지역으로 분류되곤 한다. 국가 안보를 위해 지역이 희생한 시간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다. 빼뻘마을은 한국전쟁 직후 미군기지 캠프 스탠리와 함께 자연 형성되었으나 평택으로 기지 이전이

혐오의 시대, 당신의 다양성은 안녕하신가요?

차별과 갈등을 넘어 존중과 공존으로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가진 정치적 지향성이 어떻든지, 어떤 취미와 사회적 위치를 가졌든지 상관없이 사회 모든 구성원의 공통된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모두의 소망과는 상관없이, 한국 사회의 갈등과 혐오 그리고 차별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점점 더 훼손되고 조롱당하는 나와 당신의 다양성이 존중받는 길은 없는 것일까? 2018년 전 세계를 대상으로 BBC의 글로벌 서베이(Global Survey)가 진행되었다. “당신은 당신과 배경, 문화, 견해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관용적인가”에 대한 질문에 한국은 전 세계 조사 대상국 중 뒤에서 두 번째를 했다. 많은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대에 발맞추는 문화예술교육

소통의 시대 기술문명이 발달하면서 문화예술의 표현 방법은 달라져도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는 그 역할은 달라지지 않는다. 역사의 방향성이 있다면 인류의 상호작용 총량이 늘어나는 쪽이다. 문화예술은 상호작용의 촉매 역할을 한다. 사람들 사이뿐만 아니라 기계와 인간, 기계와 기계 사이의 상호작용 총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인공지능(AI) 혁명이 진행되는 이 시대에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최근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위를 한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는 한류 바람이 국소적 또는 일시적 팬덤 현상이 아님을 새삼 확인했다. 문화는 곧 소통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노래와 춤은 통한다. 클래식이 계몽시대의

예술과 교육, 마을이 순환하는 생태계

편집위원이 만나다② 안석희 마을온예술협동조합 이사

최근 웹진 [아르떼 365] 편집위원회의에서 주요하게 논의한 것은 공간을 구획하는 새의 조망보다는 땅에 무늬를 내며 기어가는 벌레의 포월(匍越)에 있었다. 사람들은 주저 없이 안석희 마을온예술협동조합 이사를 추천했다. 다양한 지역에서 터의 무늬를 몸소 새겨온 그는 신촌에선 꽃다지를, 구로와 부산에선 노리단을, 성북에선 마을온예술을, 도봉에선 평화문화진지를 이끌며 문화예술현장의 시대적 진화를 개척한 최적의 인물이었다. 터의 고유한 무늬, 지역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문화예술교육을 발굴하는 것이 최근 우리의 주 관심사다. 선생님께선 다양한 지역에서 선구적인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다. 지역마다 터의 무늬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고유의 정체성을 풍성하게 드러내는 것이

삶을 읽고 쓰고 말하는 ‘동네 지식인’이 필요하다

대안적 삶을 연구하는 지역사회를 향하여

‘지식인은 죽었다’라는 선언이나 ‘대학은 죽었다’라는 주장이 익숙함을 넘어 진부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 대학은 폐교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고, 대학교수는 수많은 직업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과거 대학교수가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시대의 예언자 역할을 하던 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더 이상 대학이나 지식인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고, 기술의 발달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플랫폼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식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최근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유튜브(YouTube)’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실제로 유튜브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유아를 키우는 엄마들이

동네 숲에서 지구에 접속하기

나만의 고유한 터 닦기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였다. 스크린을 통해 폭발하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내 인생 두 번째 재난 이미지였다. 첫 번째는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될 때의 이미지이다. 지구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이지만 내가 딛고 서 있는 지반이 같이 붕괴되는 느낌을 받았다. 무너진 장소, 삶의 변화 9·11과 3·11, 두 사건은 나의 내면세계의 어떤 장소를 무너뜨렸다. 3·11 당시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안에서 강하게 일었다. 그래서 일본 친구와 함께 몇 해 동안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규슈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