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거대한 에너지이다. 고로 인간을 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에게 열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과업들이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적절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타인이 늘 필요한데, 그들이 스스로의 생활을 변화시킨 사례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바이블 – 호세마리아 신부의 생각』 중
재미난협동조합은 생기 있는 마을의 인문생태계 조성을 위해 지역 청년들이 지역 인문강사로 자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생활문화시설 인문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 청년은 재미난협동조합의 든든한 지원을 얻어 ‘인문협업자’로서 자신들이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자연과 하나 되는 활동을 아무런 부담 없이, 자유롭게 펼치며 자연과 하나가 되고 있다. 재미난협동조합 인문협업자들과의 대화가 스스로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사례가 되길, 문화예술교육이 삶과 별개가 아닌 삶 자체를 지탱하는 힘임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들과의 인터뷰를 기록했다.
불멍숲멍때리기학과
숲과 흙에서 놀며 자연과 하나 되기
‘불멍숲멍때리기학과’는 사람을 숲으로 이끄는 프로그램이다. 숲에서 시간을 보내며 침묵과 성찰의 시간을 주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이미 자연을 경험한 이들(인문협업자)이 숲에 대해 가이드 역할을 하고 숲이 편안한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참여자 10명 정원에 21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지금은 9명의 참여자가 순창, 하동, 고흥, 남원 등 다양한 자연을 만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참여자들 모두가 여자라는 것에 놀라워한다. 인문협업자들은 참여자가 모두 여자인 것에 다양한 분석을 제기하며 젊은 남자 청년들이 올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퍼머컬처: 우리 흙에 놀러 갈래?’(이하 ‘퍼머컬처’)는 자연과 함께 놀자를 바탕으로 ‘퍼머컬처(Permaculture, 영속농업 혹은 영속문화)’의 기본 철학인 상호작용, 순환, 공동체 회복의 마음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텃밭을 일구는 시간을 통해서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함으로써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해 의미 있게 바라보자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총 3회로 한 달에 두 번 가족팀과 청년팀으로 나눠서 진행하고 있다. 가족팀은 다섯 가족으로 8명의 아이가 함께하고 있다. 6시간의 프로그램 동안 ‘안돼’라는 제재 없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허용되어서 상당히 반응이 좋다고 한다. 또한 엄마와 아이의 감각이 분리되지 않음을 느끼게 해 준다. 퍼머컬처 프로그램 자체에 편안하고 존중받는 감각들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퍼머컬처 참여자들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다. 프로세스 하나하나에 대한 고민이 있음을 참가자들이 몸으로 느낀다. 처음 하는 프로그램이라 잘 모르겠다고 하는 생각이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꼼꼼하게 챙기게 만들었다. 결국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운영자의 마음과 준비가 고스란히 녹아난다.
퍼머컬처: 우리 흙에 놀러 갈래?
지역민의 환대와 지지의 힘으로
‘불멍숲멍때리기학과’와 ‘퍼머컬처’를 진행하는 인문협업자들은 대부분 재미난협동조합이 있는 순천 지역 청년들이 아니다. 순천에 내려와서 생활한 5,6개월이 전부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삶의 철학을 듣는 순간 기간이 중요치 않음을 알게 된다. 그들에게 순천이란 도시는 많은 생각과 활동을 거침없이 하게끔 해주는 곳이다.
‘불멍숲멍때리기학과’를 기획‧진행하는 민지홍 인문협업자는 넥스트젠(NextGEN) 안식년에 여행을 하며 한국에 자리 잡기 위해서 숲을 찾고 있었다. 청년이 가질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땅을 찾아 남쪽의 숲을 탐색하던 중 친구의 소개로 순천에 오면서 정착하게 되었다.
“연고가 없는 청년이라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이었던 것 같다. 안정감을 갖고 받아준 곳, 마음을 열어준 곳이 ‘공유공간 너머’였다. 커뮤니티 공간이 있음으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삶의 가치관, 방향성에 비슷한 결로 연결고리가 생기면서 도와주는 분이 생기고, 그것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
– 민지홍 불멍숲멍때리기학과 인문협업자
“연고, 혈연이 없는 청년이 지역에서 살려고 할 때 청년을 이해하는 어른 즉, 중간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정착이) 결정된다. 순천에는 아무 선입견 없이 도와주는 어른이 많았다. 나를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과 같다.”
– 강효선 불멍숲멍때리기학과 인문협업자
여기에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어른 ‘재미난협동조합’이 있었으며, 비슷한 결의 생각을 공유하고 받아준 ‘공유공간 너머’의 역할이 지대했다. 공간은 비어 있되 생각과 행동은 가득 차서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무형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새로운 흐름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은 따뜻하게 맞아준 어른이 있어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역에서 청년들이 살아가기엔 만만치가 않을 텐데, 흔히 이야기하는 ‘요즘 애들 같지 않은’ 그들이 지역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자연을 생각하다 먹거리 농사, 흙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딱히 어느 지역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건 없었다. 친구가 있어서 순천으로 오게 되었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고 다른 친구들을 만났을 때 누구와 함께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결국 사람인 것 같다.”
– 황진선 퍼머컬쳐 인문협업자
“대안학교 교사를 지망하면서부터 여행을 많이 했는데, 공교육보다 여행에서 얻은 경험이 나를 바꾸고 성찰하게 했다. 교육 주체로서 나 역시 수동적으로 바라본 것에 대해 반성하며 다른 새로운 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다. 5년 동안 별에별꼴 프로젝트로 공동체살이를 하며 시골에서 자립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웠다. 논농사, 집 짓는 기술, 소통 관계의 기술을 실험하고 정리하고, 넥스트젠을 통해 나와 같은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민지홍
“16살에 읽었던 책이 나를 바꿨다. 농사를 짓는 삶이 내가 바꾸고 싶은 세상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에별꼴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것이 지역이구나 느꼈다. 지역과 도시의 격차가 상당히 컸다. 시골의 빈집은 늘어가고 도시의 청년은 일자리가 없고 고시원은 늘어가고… 하나의 흐름이자 운동이 되어야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지역으로 내려왔다. 지금은 지역 한달살이 하는 것을 보면서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
– 강효선
인문 협업자들에게 비친 세상은 변화가 필요한 대상이었다. 도시에서 느껴지는 답답함과 해결되지 않고 쌓여만 가는 문제들은 인위적이고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거대한 목표보다는 스스로 변화되는 삶을 추구하고 서로 연결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큰 도시를 벗어나 작은 소도시, 지역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 그들에게는 작은 변화의 시작이 된 것이다.
공유공간 너머
소유하지도 소비하지도 않는 관계
재미난협동조합은 시민활동가 8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싶은 이들에게 바탕, 받침이 되어 주는 역할을 한다. 유연한 조직으로서 이번 생활문화시설 인문 프로그램 역시 지역의 청년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지원한다. 협업이라고는 하지만 청년들이 기획하고 활동하는 것에 대해 적극 지지를 보낸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그 중심축에 임경환 이사가 있다.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으며, 지역 커뮤니티 형성과 문화예술교육 발전에도 버팀목이 되고 있다.
재미난협동조합과 더불어 관심이 가는 곳이 ‘공유공간 너머’이다. 인문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넥스트젠 청년활동가들이 지역에서 기반을 다지는 데에도 공유공간 너머의 역할이 컸다. 공유공간 너머는 누구든지 와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관리자가 없다. 운영 3년차 이지만 여전히 ‘깨끗해요’라는 후기가 남는다. 비용도 머무른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지불하는 자율적인 운영을 지향하고 있다. 누군가는 공용물품으로 지불하고, 누군가는 청소를 하고 간다. 소비자(방문자)가 아닌 주인으로서의 사명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유에 대해 질문을 계속 던지며, 소유의 개념이 아닌 공유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활용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여의 방식은 다르지만 서로의 마음이 닿아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임경환 이사는 더 많은 공유공간이 생기고 활용되어 공유공간 지도를 만들어보는 것도 소망하고 있다. 관계망 형성과 연대, 협력이 이뤄지는 거점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공간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끊임없이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이 커뮤니티 공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된다.
지금을 살아가는 지탱의 힘
불멍숲멍때리기학과와 퍼머컬쳐 프로그램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통해 삶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실험을 하는 것이다. 청년 인문협업자들에게 삶과 자연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이며, 문화예술교육이 일상 그 자체로 보여진다.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고, 주체적이며 순환하는 삶을 살고 싶다. 감각의 힘이 커지면 어느 곳에 살더라도, 주거, 직장은 2차적인 문제이다. 내 삶을 돌아보고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프로그램으로 숲에서 지내고 불을 지피면서 멍 때리면서 내 삶을 성찰하는 것이 문화예술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 민지홍
“지역 청년운동의 흐름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엔 청년들이 마을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이 강조되었다면 지금은 지역에 이런 자원이 있고 더 재밌게 살 수 있다고, 체험도 할 수 있게 하고 훨씬 더 부드러워진 것 같다.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은 지역에서 사는 것은 이런 거라고 소개해주는 정도다. 다른 지역에서 왔다갔다 하는 청년들이 여기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명상에서 중요한 세 가지가 ‘도반, 도장, 스승’인데 맥락이 비슷하다. 지역의 지지하는 어른, 거점 공간, 활동을 지지하고 성장하는 친구, 세 가지가 어우러졌을 때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다.”
– 강효선
“사람이 가장 큰 힘이라고 본다. 5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지역이 낯설기도 하지만 공유공간 너머에서, 마주침 안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편안함, 안정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공간 너머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느껴지는 것이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 황진선
코로나로 인해 많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비대면으로 변경되거나 중단되었다. 굳이 ‘기후 위기, 극심한 양극화, 해로운 도시화’(『로컬의 미래』)를 들춰내지 않더라도 우린 몸으로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 만나지 못하고, 생산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지역의 많은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버틸 수 있도록 지역에서 새로운 상상으로 기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우리의 밥그릇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 김훈 소설가의 말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산소를 주입해주고 생각을 나눠주고 밥을 해결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역의 청년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어른이 보이지 않는 끈이며, 그런 어른의 손을 잡고 한 발씩 내딛는 청년들이 함께 어우러져 재미난협동조합 생활문화시설 인문프로그램은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임선이
임선이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에서 문화이론 및 기획을 전공하고 문화기획과 교육 및 컨설팅을 하고 있다.
북구문화의집 기획팀장과 북구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을 지냈다.
fodsun@naver.com
사진 _ 재미난협동조합